동문 고수와의 디너타임⑫
부지런함이야말로 창업가에게 꼭 필요한 자질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12호(2018. 1. 9)
강대신(15회) (주)케이티엠파트너스 회장
이달의 ‘동문고수와의 디너타임’은 창업가편이다. 총동창회가 초청한 동문고수는 강대신 (주)케이티엠파트너스 회장(15회)이다. 강회장은 행시출신으로, 국제그룹으로 옮겨 CEO를 지낸 후 40대에 (주)정원종합산업을 창업했다.
그는 또 18대 서울고 총동창회장을 지냈고 그에 앞서 서건회장과 서울고 야구 후원회장을 맡았다.
이날 저녁식사를 같이한 춘하추동은 강회장의 25년 단골집이다. 춘하추동 대표는 강회장과 학교 동기인 구본국 전 (주)건영 회장의 부인. 긴 세월 두 사람을 지켜본 강회장은 이들에게 부부의 연을 맺어줬다.

왼쪽부터 김대영(35회), 강대신(15회), 조용수(25회), 한만엽(28회) 동문
참석자: 강대신(15회) (주)케이티엠파트너스 회장·전 총동창회장
조용수(25회) (주)서전엠디에스 대표
한만엽(28회) 아주대 건설시스템공학과교수·서건회장
김대영(35회) (주)보라티알 대표
김신기(54회) MECEIN대표
진행·정리: 이필재(29회, 편집인)
일시: 2018.1.5(금) 저녁7시
장소: 서초동 춘하추동
“작은 기업도 망하면 기업인은 범죄자가 되는 겁니다. 사람취급도 못 받죠. 그래서 창업은 신중히 해야 합니다.”
33년전 창업을 한 강대신 (주)케이티엠파트너스 회장은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세 가지를 권했다.
첫째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의 10분의1 범위에서 창업하라.
둘째 아는 사람 믿고서 창업하지 말라.
셋째 3년간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벌이라.
“서울시청 과장 출신이 퇴직해 시청 앞에 식당을 차리면 시청직원들이 맛있게 먹고도 내가 팔아줬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지인이 아니라 불특정다수의 고객을 상대하라는 거죠. 기술이든, 특허든 아니면 인맥이든 독점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게 좋습니다. 저의 경우 88올림픽 사업 라이선스를 따 올림픽 기념 티스푼을 제작했습니다. 나머지 사업권도 받을 수 있었지만 가용자금의 10분의1 범위에서 투자를 했어요. 그래서 조급하게 벌이지 않을 수 있었죠. 당시 저에 대해 ‘대기업 대표출신으로 날리던 사람이 저렇게 작게 사업을 시작하나’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실제 창업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시겠습니까?
“인류문명사적 흐름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해야 합니다. 요즘 같으면 지식정보화 사회를 뛰어넘어 융합, 블록체인 같은 흐름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창업가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집중력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 미래에 대한 통찰력, 부지런함이죠. 우리학교 교훈이기도 한 부지런함은 창업단계부터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필요조건입니다.”
그가 창업을 하기 전 일이다. 과거 국제그룹에서 30대에 월급쟁이 사장으로 날리다 보니 스카우트하려는 회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5공 때 공중분해 된 국제그룹은 당시 재계 4~5위권이었다. 그는 어디 몸담아도 그 시절 대접을 받지 못할 거 같았다고 말했다.
서울고는 호국정신의 산실
+왜 서울고 후배들에게 그토록 호국을 강조하십니까?
“한일병합이라는 치욕의 현대사를 딛고 경희궁에 설립된 서울고는 호국정신의 산실 같은 곳입니다. 설립초기는 말할 것도 없고 20회까지도 이북출신이 50%를 차지했죠. 한국전쟁 당시 3~5회가 재학 중이었는데 근 70%가 참전했습니다. 당시 다른 명문고도 참전율이 15%가 채 안됐어요. 또 서울고는, 교정에 국가보훈처가 관리하는 보훈시설이 네 개(삼일탑,·포충탑,·고 강재구소령 동상,·6·25참전 기념비)나 되는 유일한 학교죠.”
강 회장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농림부차관으로 발령받은 후 납북됐다. 그는 “일찍이 처형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서울고 시절 487명 중 483등으로 졸업했다 (동창회장 때 학적부를 특별 열람해 알게 된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역도부원이었던 그는 재학 중 교내 폭력서클인 자이안트 클럽의 창립을 주도했고, 직접 디자인한 회원메달을 만들어 휴대하게 했다. 자이안트라는 이름은 제임스딘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온 미국MGM사의 헐리우드 영화 자이안트에서 따왔다. 그래서 회원 중 덩치 큰 친구도 별로 없다고 했다.
그 시절 그는 무기정학을 세 번 맞았고, 졸업반이었던 3학년 땐 5월13일 이후 등교정지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이듬해 자이안트 회원 9명 중 그를 포함해 다섯 명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학창시절 그가 폭력의 유혹에 휩쓸렸던 건 비주류였기 때문이었다. 해방둥이인 그는 고관의 아들인 ‘금수저’ 출신이었지만 다섯 살 이후로는 비주류였다. 서울고 시절에도 그는 타 중학교 출신의 비주류였다. 중동중을 나온 그는 타 중 출신 첫 총동창 회장이었다.
“그래서 동창회장일 때 더 열심히 했습니다. 재학 중 우리학교 위상을 떨어뜨렸는데,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픈 보상심리가 작용한 거죠.”
+어떤 동창회장이었습니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나 만난 게 행운이 되도록, 그렇게 평생을 살았습니다. 창업 후 우리회사 첫 사훈도 구성원이든 거래처 사람이든 ‘우리회사의 이해관계자가 손해보지 않게 한다’ 였어요. 동창회장도 그런 각오로 했습니다. 서울고 동문들이 나를 동창회장으로 뽑은 게 나의 행운이자 서울고의 행운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결국 저에게는 행운이었고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얻은 게 훨씬 많았어요.”
서울고 1학년 중간고사 때 그는 반에서 18등을 했다고 한다. 몇 달 전 입학성적은 전교 10위권이었다. 속이 상한 그는 성적표를 갈기갈기 찢어 가방에 처넣었다. 다음날 성적표를 발견한 어머니가 퍼즐 맞추듯 수십 조각으로 찢긴 성적표를 흰 백지에 붙여놓았다.
“어머니는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신 분입니다. 서른아홉에 남편이 납북된 후 수절을 하며 5남매를 홀로 키우셨죠. 아흔아홉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슬하에 우리 5남매에 손주가 열둘입니다. 이 가운데 단 한 명도 이혼하지 않았고, 남자는 모두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어머니 교육의 영향이죠.”
군수의 딸로 이화여전을 중퇴하고 군수에게 시집온 어머니는 성장기의 그에게 단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공백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계산’이었을 거로 그는 추정한다.
+젊은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시겠습니까?
“어느 분야로 진출하든 상위1%가 되면 서바이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법대 나와 제너럴 매니저로서 어느 정도 성취를 했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갈수록 경쟁이 격화할 거예요. 좁은 범위에서 전문가가 되어보세요.”
+선배님의 ‘인생문장’이 무엇인가요?
“해불양수(海不讓水). 바다는 어떤 물도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들여 대양을 이루죠.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합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구절도 좋아하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버킷 리스트가 있습니까?
“우리나라가 선진화되려면 탈북민과 다문화가정 출신을 케어 해야 합니다. 그게 고급국가다운 면모죠. 그러나 이들이 처한 현실은 2등국민이에요. 장차 탈북민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지금 선배님이 하실 수 있는 가장 밸류 높은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인류의 역사는 승자의 관용과 패자의 도전으로 끝없이 점철돼있습니다. 그 덕에 인류사회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죠. 그런데 대한민국이 언제부터인가 승자가 관용을 잃어버린 사회가 됐습니다. 승자 독식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집권세력도 관용을 잃으면 결국 정권을 잃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