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분홍신 외 1편
-2018 대구문학 시부문 신인상
이명희
아스팔트길에서 뜨거운 물집 잡힐 일도 없고
공원에서 개똥 밟고 투덜댈 일도 없는
분홍신 한 켤레가 침대 밑에 엎드려 있었다
발은 언제나 침대 위에 머물렀으므로
분홍신은 때로는 머리맡에 놓이거나
그녀의 가슴에 안겨 깊이 잠들기도 하였다
자갈길이나 가시밭길이라도
하루 종일 땀 흘리며 걷고 싶은 거룩한 신이 있었다
그녀 평생, 가장 곱고 폭신한 분홍신
오래 두어도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발은 언제나 허공중에 떠있었고,
다소곳 엎드려 발을 기다리던 분홍신은
어느 해,
빈 절 같은 적막한 얼굴로
초이레 달을 타고 산 너머 가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낙화
태풍의 소식을 듣고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모두 가슴에 몇 개씩 돌덩이를 안고 끝없이 달려
델마와 루이스*처럼
절정의 꽃잎이 속절없이 제 몸을
바닥에 던지듯
절벽 아래로 낙하하기를 희망했다
저마다 떠나온 천 가지 이유들이
바람맞이 언덕에 차를 세웠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서핑을 즐기며 흥해 바다를 건넌다
물결에 피어올랐다 잠겨드는 꽃잎, 꽃잎들!
바다는 스스로 가슴을 열고 또 닫으며
찢고 소리쳤다
소화되지 못한 응어리들을 해초들과 함께 꾸역꾸역 토해내며
긴 꼬리를 흔들어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지웠다
가슴에 박힌 돌덩이들이 꽃잎처럼 파도 위에서 팔랑거렸다.
*영화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
이명희
*수필사랑문학회 회원
*텃밭시인학교 회원
첫댓글 이명희 문우님! 아름다운 시, 수필 많이 쓰십시오. 다시 축하드립니다.
이명희선생님.
축하드립니다_()_
<어머니의 분홍신>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코맹맹이가 되곤 하시던 언니의 절절한 사모곡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