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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刑)
최 창 학
다시 발작이 심해진 한 입원환자에게 클로르프로마진*을 주사하고 진찰실로 돌아오자, 언제 왔었는지 조 검사가 환자처럼 의자에 어정쩡히 앉아 있다가 느물느물 웃음으로 인사를 보내오며 일어섰다. 범죄자들의 정신감정 의뢰 관계로 이따금 드나들던 터였기 때문에 또 그 일로 온 줄 알고, “어서 오쇼”라고 사무적인 인사를 하자, 조 검사는 담배를 꺼내어 이쪽에 건네려다가 “참 안 피우시지?” 그러면서 혼자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이 방엘 들어오기만 하면 약 냄새가 나서…… 날씨가 좋은데 밖의 벤치로 잠깐 갑시다.”
전엔 없던 일이어서 무슨 일이냐는 뜻으로 바라보자, 조 검사는 쏘아보듯이 빤히 맞바라보며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시선을 거두더니 성큼 앞장을 섰다.
따라 나서면서 성훈은 퍼뜩, 이제껏 직접 정신감정을 해왔던 그 많은 범죄자들 속에 자기가 의사로서가 아니라 범죄자로서 끼여 있는 환시(幻視)에 부딪혔다. 이번만이 아니고 다른 때도 조 검사와 함께 있을 때는 언제나 한 번쯤은 부딪혔던 환시다. 가벼운 이야기, 심지어는 농담을 할 때도 조 검사는 이쪽으로 하여금 그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칼빛 같은 걸 번뜩이는 버릇이 있었다. 아니, 조 검사가 그 칼빛을 번뜩인다기보다는 성훈 자신 스스로가 그 칼빛을 의식해왔던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비단 조 검사에게서만이 아니라 거리에서 지나치게 되는 제복을 입은 한 경관, 경관이 아니라 눈빛이 강한 신분을 모르는 한 행인에게서도 그것은 종종 의식되어왔던 일이었다.
바람이 약간 싸늘하기는 했지만 봄 날씨답게 밖은 더할 수 없이 청명했다. 조 검사의 칼빛에 햇살이 부서져 내려 눈이 시렸다.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느다랗게 뜨며 벤치에 먼저 앉더니 조 검사는 불쑥 물었다. “허범민이라는 사람을 아쇼?”
순간 성훈은, 흔히 표현하는 식으로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상태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었구나, 나로 하여금 항상 칼빛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어왔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했던 대로 놀라시는군. 앉으쇼. 앉아서 이야기 합시다.”
그러나 성훈이 앉아도 조 검사는 이쪽의 견딜 수 없음을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들려고 일부러 그러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참이나 침묵했다.
견디다 못해 성훈이 물었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습니까?”
그래도 한참이나 더 침묵하다가 조 검사는 그의 체질로서는 퍽 담담한 편인 어조로 말했다. “내가 직접 담당한 사람은 아니고 다른 곳에 있는 잘 아는 친구가 담당한 사람인데…….”
“다른 곳이라뇨?”
“뭐 그것까지야 아실 것 없고…… 언제든 곧 그 친구가 한 번 다녀가든가 아니면 불러다가 물어볼 텐데……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그 사람과 닥터 윤과는 어떤 사이요?”
“형이 되는 셈이죠.”
“이종사촌이지만, 내가 독신이고 또 내겐 이렇다 할 친척 형제도 없으니까 유일의 형이나 마찬가지죠.”
“그래요? 닥터 윤에 비해 나이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던데?”
“함께 서른일곱이지만 생일이 며칠 빠르죠.”
시선은 그대로 앞을 향한 채 고개만 끄덕이고 나서 조 검사는 피우던 담배를 멀리 내던지며 물었다. “그동안 왕래가 더러 있었소?”
“어쩌다가 가끔…… 하지만 요 몇 년 동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소식조차 못 듣고 있었죠.”
“왜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소?”
“그거야……”
말을 못 잇는 대신 성훈은, 자기와 만나 이야기할 때 자주 무섭게 쏘아보던 허범민의 눈을 떠올렸다.
“알고 있었으면서 혹 숨기는 건 아뇨?”
“도대체 무슨 죕니까?”
“나보다도 더 잘 아실 텐데……?”
갑자기 조 검사는 돌아보았다. 분명히 이쪽을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 눈빛을 꺾을 만한 눈빛을 성훈은 갖지 ˙못했다. 눈빛을 피한 채 약간 자연스럽지 못한 어조로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든 좋습니다만 모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건 만나봤자 내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그는 나를 만나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으니까요.”
“알겠소. 무슨 말인지…… 그래 지금도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은 없소?”
“만나보고 싶든 안 싶든, 만나보긴 해야 되겠죠. 무슨 죄인지 우선 그것부터 가르쳐 주십시오.”
“대강 짐작은 하고 계실 텐데·……?”
“혹 사상적으로 어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나서 조 검사는 말했다. “아직 발표할 단계는 아니지만 꽤 큰 죄를 진 것 같습디다.”
“구체적으로 좀…….”
“구체적인 거야 나도 모르죠.”
“성격이 좀 외곬진 데가 있어서 그렇지 무슨 비행을 저지를 사람은 아닌데……”
“말조심하시오. 비행을 안 저지르다니…… 그럼 괜한 사람을 잡아다가 그런다는 말이오?”
“아니,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 뭐란 말이오?”
“하긴 죄야 사람이 나빠서만이 아니고 누구든 순간적으로 지을 수 있는 거니까…….”
“순간적이 아니고 과거부터 오랫동안'아주 계획적으로 음모를 꾸며 왔던 것 같습디다. 자칫하면 극형을 면치 못할 테니 그런 줄이나 아시오.”
“극형?”
교수형에 처해지는 허범민의 몰골이 떠올랐다. 눈을 까뒤집고 혓바닥을 내빼문 채 그는 비웃고 있었다.
“가족이 살아 있다던데……?”
“아니죠. 어머니가 계시다가 돌아가셨죠.”
“어머니가 아니고 처자 말이오.”
“네? 그럼 결혼을 했단 말입니까?”
“무슨 소리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군. 나보다도 더 모르고 있다니 그게 말이 되오? 처자가 시퍼렇게 살아 경기도에 있다던데……”
“만난지가 벌써 육칠 년이나 되니까……” 중얼거리다가 성훈은 물었다. “한 번 만나볼 수 있습니까?”
“아직 문초 중이니까 그 사람은 안 되고, 가족이야 언제든 만날 수 있겠죠.”
간호원이 저쪽에서 성훈을 부르며 다가오는 게 보여 두 사람은 일어섰다.
“그동안 혹 접촉이 있었나 해서 은근히 걱정을 했었는데 이제 안심이 되오. 누가 찾아와 묻더라도 사실대로만 잘 이야기하시오. 그리고…….” 조 검사는 간호원이 가까이 다가온 탓인지 하려던 말을 중단하고 병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음성을 낮춰 말했다. “혹 그 사람을 내가 여기로 데려오게 될는지도 모르겠는데…… 하여튼 곧 한 번 또 들르죠.”
조 검사가 돌아간 후, 성훈은 어리벙벙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미처 묻지를 못했지만, 조 검사가 음성을 낮춰 방금 말한, 그 사람을 여기로 데려오게 될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우선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감정을 의뢰할 일이 아니라면 범죄인을 이곳에 데려올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허범민도 정신면에서 어떤 이상을 일으켰단 말인가.
병동으로 돌아와, 간호원이 갖다놓은 환자의 진찰카드를 훑어보면서도 성훈은 줄곧 자신이 환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허범민에 관한 환시와 환청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그가 아무리 큰 죄를 짓고 아무리 무거운 형을 받을 처지가 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성훈에게 어떤 큰 문젯거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종사촌이라는 대수롭지도 않은 친척붙이일 뿐 다른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다가 이제껏 몇 년 동안을 깨끗이 잊고도 살아왔던 사람. 물론 문득문득 생각나는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생각이 날 때도 오히려 잊어버리려고 애썼던 사람. 잊어버리려고 애썼다는 말이 얼른 이해가 안 갈지 모르나 거기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한마디로 그를 만난다거나 그에 관한 생각이 날 때면 이상하게 열패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거의 비슷한 날에 태어났고(같은 해 같은 달인데 날짜만 정확히 그가 사흘이 빠르다), 한동네에 산 데다가 친척이었기 때문에, 그리코 집안 환경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둘 다 아버지가 하급공무원으로 지방에서 일을 보았었다), 둘은 곧잘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교의 대상이 되어졌었는데 결과는 언제나 그쪽으로 기울어졌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말을 잘한다거나 노래를 잘한다거나 공부를 잘한다거나 심부름을 잘하는 등의, 또는 힘이 세다든가 마음씨가 곱다는 등의 상식적인 것 말고도 성훈에 비해 그에겐 분명히 유다른* 데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가령 사변 때 둘 다 아버지가 학살을 당했을 때도 그랬다. 그 동네에서의 학살은 대개의 다른 동네에서처럼 철사줄로 묶어 끌어다 산에 구덩이를 파놓고 쏘아 죽이거나 몽둥이 같은 걸로 때려 죽여 우물 같은 데에 처넣었던 게 아니었다. 아마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수복이 될 무렵이라 곧 쫓겨가게는 생겼고 붙잡아 심문하던 사람들을 그냥 살려둘 수는 없어서 그랬던 듯 50여 명 이나 되는 사람들을 그 동네 국민학교 창고에 가둬놓고 밖으로 문을 걸어 잠근 후 석유를 뿌려가며 불을 질러 죽였다. 불이 채 타기도 전에 그들은 철수했는데 그러나 가족들이 소식을 듣고 쫓아가 보았을 때는 이미 그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되어 있었다. 요즈음에도 큰 화재현장에서 더러 볼 수 있듯이 새까맣게 완전히 타버렸거나 그 일부가 탔더라도 대부분 얼굴이 문드러져 누가 누구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각기 어머니 손을 잡고 달려갔던 그와 성훈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늘어져 있는 시체들을 아무리 봐도 우선 사람들 같은 생각조차 들지를 않았다. 성훈은 언젠가 동네에서 백정의 손에 익숙하게 그을려지던 개를 문득 떠올렸는데 그 개보다도 훨씬 비참한 꼴들이 되어 있었다. 그중에 아무리 아버지가 끼여 있다 할지라도 그걸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를 않았고 확인을 해본다고 해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서지를 않았다. 그러나 결국 반실신을 한 어머니와 이모가 정신없이 이 시체 저 시체를 뒤집어 보기까지 하며 살피는 바람에 함께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코를 찌르던 냄새! 아니 그런 역한 냄새에도 아랑곳없이 부지런히 움직 이던 어머니와 이모의 모습을 성훈은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순간의 그 어머니나 이모 모습보다도 훨씬 더 선명히 기억되는 허범민의 거동이다. 흡사 시체를 뜯어먹는 무슨 짐승처럼 열심히 시체들을 뒤적거리던 어머니와 이모가 결과적으로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표정이 되자 허범민은 자기 나름대로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 듯 아까의 어머니나 이모보다도 더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갑자기 한 시체 앞에 꿇어앉으며 “아버지!”라고 부르짖었다. 그의 그런 뜻밖의 거동에 세 사람은 놀라서 내려다보자 “아버지예요. 이게 아버지라구요”라고 말하면서 그는 울먹거렸다. 그러나 성훈은 물론 어머니나 이모도 그가 가리키는 그 시체를 그의 아버지(이모부)로 믿기에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모양이었다. 입을 벌린 채 말들도 못 하고 서로의 얼굴만 돌아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체야말로 대부분의 다른 시체들보다도 오히려 더 그을려지고 문드러져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손가락, 발가락들조차 문둥병을 심히 앓고 난 사람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던 이모가 무얼 보았던지(무슨 생각, 무슨 느낌이 들었던지) 갑자기 찬찬히 그 시체를 살피다가 그 시체 앞에 고꾸라지며 통곡을 했다. 겉모습을 보아서는 도저히 알 수 없게 되어진 그 시체를 허범민이 어떻게 이모보다도 더 먼저 그의 아버지로 느낄 수 있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나 그렇다고 그 시체가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의심이 들지는 않는다. 그만큼 그나 이모의 그때 태도엔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느낌 ―가령 헤어졌다가 몇십 년 만에 만난 자식의 손을 잡았을 때 그 체온만으로도 그것이 진짜 자식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는 부모의 느낌같은 것 ― 에 의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그때의 자기한테는 왜 그런 느낌이 없었을까. 자기뿐만이 아니고 어머니도 끝내는 아버지를 못 찾아내어 결국 이모부는 찾고 아버지는 못 찾게 되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허범민에 대한 성훈의 열패감은 노골적으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느껴지기 시작해서 그랬는지는 볼라도 그 이후엔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자주 그런 느낌이 들어졌다. 아버지를 잃은 후에도 전쟁은 계속되어 그와 성훈은 이모와 어머니와 함께 피난민의 대열에 섞여 한 식구로 흘러 다녔다. 누구든 거의 다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당시의 그 지긋지긋함. 무엇보다도 배고픔에 대한 지긋지긋함은 지금도 생생한데 거짓말 전혀 보태지 않고 꼬박 사흘을 물만 먹고 버틴 적이 있었다. 노동 비슷한 걸 해서 조금씩 벌어들이던 이모와 어머니가 동시에 앓아눕게 되어 어쩔 수가 없었다. 악을 쓰며 사흘간을 견딘 성훈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거리에 나가 아무거나 주워 먹었다. 심지어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배추 찌꺼기조차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대로 계속 견디더니 성훈이 그러는 걸 알고 나서는 밖으로 나가 건빵이며 약 같은 걸 들여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역(驛)에 나가 손님을 모셔 여인숙에 안내해 주고 안내비를 받아 사 온 것이었다. 그리고 한 번은 또 그런 일이 있었다. 그 무렵 어쩌다가 성훈이 이모가 쓰는 반짇고리 안에 숨겨진, 요즈음으로 치자면 백 원짜리 정도나 되는 돈을 훔쳐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사 먹고 싶은 걸 사 먹은 적이 있었는데, 결국엔 범민의 소행으로 의심을 받아 그가 이모한테 매질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상하게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대들거나 매를 피해 도망가지 않고 이를 악물며 참았다. 심지어는 눈물까지 비질비질 흘리며 참다가 끝내는 이모로 하여금 스스로가 매질을 중단하고 함께 울게까지 만들었는데 그 일로 인해 성훈이 느꼈던 열패감은 아마 죽어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맞고 난 그가 성훈이와 둘이만 있는 자리에서 꽤 화를 내어 뜻밖의 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자식! 그것이 무슨 돈인 줄 알고 그 돈을 까먹어?” 그러니까 그는 그것이 성훈의 짓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참았던 것이다. 형이기 때문에 형으로서의 어떤 의식 때문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어린 나이에, 더욱이나 고작 사흘 먼저 난 주제에(하긴 오뉴월 하루 빛이 어디냐라는 속언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의젓할 수 있었다는 건 아무리 돌이켜봐도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범민(凡民)이라는 그의 이름과는 다르게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범속하지 않은 면을 보였다. 범속하지 않다는 말이 무슨 사람답지 않고 신다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정신면에있어서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른, 말하자면 상식적이거나 안일적이거나 타협적이 아니었다고 할까. 성훈으로선 마땅히 열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만큼 그는 그가 그리는 바의 세계(성훈에겐 환상적으로까지 보이는)를 향해 굽힘없이 밀고 나가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혼란스럽던 것들이 차차 수습이 되어가 각기 새로운 살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을 때 성훈의 어머니는 개가(改嫁)를 했고, 그 덕으로 성훈은 그가 가고 싶었던 중학·고등학교·대학은 물론 외국에 가 학위를 따 올 수 있을 만큼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다. 어머니가 돈 많고 자식 없는 어떤 늙은이의 후처가 되는 바람에 별로 큰 어려움 없이 그런 출세(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식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범민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그의 어머니가 성훈의 어머니와는 달리 개가를 하지 않고 끝까지 수절*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는 성훈의 경우처럼 그렇게 ‘적당히’ 살지도 않았고 따라서 출세도 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가 개가를 하지 않은 것도 그가 결사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개가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개가는 해도 좋지만 개가를 하는 어머니를 따라가 산다거나 또는 그 집의 도움으로 살지는 않겠다고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의 어머니는 한때는 회의하기도 했던 개가를 단념하고 그와 일생을 함께 살았는데 살면서의 고생이란 유행가로 흔히 읊어지는 식의 그런 고생과 별다를 게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삯바느질·날품팔이·식모·행상등이, 또는 그의 급사·신문 배달·청소부·가정교사·막노동 등이 그들로 하여금 그 어려운 세월을 가난하지만 떳떳하게 견딜 수 있게 한 수단이 되어졌으니 ‘유행가로 흔히 읊어지는 식의 그런 고생’ 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무모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운데서도 물론 그는 그의 고집대로 살아가는 데에 어떤 흔들림이나 굽힘 같은 걸 보이지는 않았다. 검정고시니 야간학교니 하는 등의 너절한 과정을 거쳐서까지 대학에 진학한 것만 해도 그렇고 세상을 알 만큼 알 나이가 되어서 보여줬던 대사회관(對社會觀) 같은 것도 그렇다. 가까운 예로 사월 의거가 일어나기 얼마 전 그는 대학 2학년에서 3학년이 되려던 해였는데(고학을 해왔던 관계로 도중에 쉬어서 성훈에 비해 1년이 늦었다) 그 무렵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고 기억된다. 과는 물론 학교도 다른 데다, 그는 가정교사 노릇을 했고 성훈은 하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더니 무슨 일인지 밤에 불쑥 하숙집으로 나타났다. 누구한테 쫓겨 온 듯 노크도 없이 문을 열더니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을 방 벽에 기대 세운 후 한참이나 가쁜 숨을 가라앉혔다. 하도 느닷없는 일이어서 의아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타월을 내주자 아무렇게나 쓱쓱, 머리칼이며 얼굴을 문질러 닦다가 “밖에 잠깐 나가 봐줄래?”라고 말했다. “왜? 무슨 일인데?” “나가서 대문간에 어떤 녀석이 기웃거리지 않나 살펴보라구.” 시키는대로 나가 보자, 비가 오는데다 밤조차 꽤 늦어서 그런지 동네 애들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문을 걸고(하숙집이므로 밤늦게까지 열어놓는 것이 보통이지만) 들어와 아무도 없다고 말해주자 그는 그래도 한참이나 서성이다가 비로소 비에 흠씬 젖은 노동자옷이나 비슷한 옷을 벗어 걸었다. 상의만 벗고 하의는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앉으려고 해 성훈이 자기 헌 즈봉*을 내주자 마저 갈아입더니 앉으며 말했다. “오랜만인데 이렇게 만나서 좀 어색하군. 어떤 녀석이 자꾸 쫓아다녀 귀찮아서…… 알다시피 나 애를 하나 맡아 가르쳐오지 않았나. 그런데 그 집까지 쫓아다녀 얼마 전에 거기도 그만뒀거든. 그리고 학교도 빠져가며 공사판에 다니면서 일을 해왔는데 이번엔 또 거기까지 왔지 않아? 집을 알고 있어 집도 못 들어가고 공사장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말이야.” “어떤 녀석 이라니?” 성훈의 물음에 그는 말을 할 듯하다가 곧 침묵했다. 성훈으로서도 물론 짐작이 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이 그렇게까지 노골화되어 있는 줄은 몰랐었다. 잠시 후에 그가 영화에서 본 일제시대 때 혁명운동을 하는 어떤 의혈학생과 비슷한 표정이 되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상태로 언제까지나 그냥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어? 무언가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무엇 때문이야?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렇게 개처럼 죽었던 게 무엇 때문이냐구? 그런데 갈수록 되어져가는 꼴이……정말 못 견디겠어. 더 이상은 도저히 그냥 지켜볼 수가 없을 것 같애. 그래서 만났지. 각 대학에서 몇 명씩이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했는데 어떻게 그걸 눈치 챈 거야.” 할 말을 잃은 채 성훈이 고개만 끄덕이자 그는 말을 계속했다. “무얼 따지려 든다거나 잡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쫓아만 다니는 거야. 사람을 바꿔가면서 계속 미행만 하는데 그러니까 더 미치겠더군. 잠은 말할 것도 없고 밥 한 번 제대로 먹을 수가 없는 거야.” “그럼 대들지 그랬어? 무엇 때문에 쫓아다니는 거냐고 말이야.” “다 알고 그러는 걸 대들어서 어쩌겠어?” “다 알아도 그렇지. 무슨 음모를 꾸몄던 것도 아닌데 죄가 될 게 있어야 말이지.” “누구는 죄가 있어서 당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행방불명 이 되고 공공연하게 반역죄로 몰려 처형을 당하는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러는 거냐구? 죄야 덮어씌우면 되는 거야. 이제껏 그래왔었으니까 말이야. 나로서도 신경 이 쓰이는 게 바로 그거야. 무슨 일이든 벌인 후에 당하는 건 상관없지만 벌이지도 못하고 당한다면 그것처럼 억울할 게 또 어디 있겠어?”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 이야?” “구체적인 계획이야 아직 못 세웠으니까 뭐라고 말할 순 없지. 하지만 무슨 일이든 곧 있긴 있을 거야. 그런데…… 그는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갑자기 기가 꺾인 얼굴로 말했다. “나는 아마 이것도 저것도 못하고 말게 될 거야. 신상을 조사해서 일부러 그런 건지 하필 이때 영장이 나왔거든.” “영장? 군대 말이야? 왜, 연기원을 안 냈던 모양이지?” “졸업하고 갔다 오면 문제될 게 더 많아질 것 같아 그냥 재학 중에 가겠다고 했는데 잘못한 것 같애.” “아니야, 차라리 잘된 건지도 알 수 없어. 한동안 군대로 도피를 했다 오게 되면 무언가 달라져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뭐, 도피?” “그렇지. 이런 땐 도피를 하는 수밖에 없지. 나야 의부(義父) 덕우로 군대로의 도피마저도 할 수 없게 됐지만 곧 다른 도피의 길이 생길 것 같애. 외국으로 가는 거야. 외국으로 가서 몇 년 있다 오면 달라지겠지.” 말을 하다가 성훈은 그의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가슴이 섬뜩해져 왔다. 이글이글 쏘아보는 그의 눈. 금방이라도 이쪽에 달려들어 목이라도 죄어올 것처럼 숨길조차 가빠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성훈은 그가 왜 그렇게 갑자기 배신과 분노에 찬 듯한 얼굴을 하는가를 얼른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군대에 가게 되는데 자기는 돈을 써서 군대에 가지도 않고 제대증을 받은 데에 대한 경멸감에서인가. 자격지심에서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다음 순간 성훈은 곧 그것 때문에서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쪽으로 하여금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그런 표정을 짓던 그가 한참 후에 숨을 가라앉히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군대에 간다거나 외국에 유학 가는 걸 도피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구. 그것이,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고 무엇이든 도피라고 생각된다면 그 짓을 해서는 안 되겠지.” 그러니까 그는 성훈이 무의식중에 말한 ‘도피’ 라는 낱말 하나 때문에 그렇게 순간적으로 흥분을 한 것이었다.
조 검사는 그렇게 다녀간 후 며칠 동안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각기 자기들대로의 지나치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또는 소름 끼치는 꿈속을 헤매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에 더욱 열중하면서 성훈은 가능한 한 범민의 일에 대해선 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잊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것은 더욱 잊히지 않고 달려들었다. 심지어는 수술을 하는 도중에까지도 달려들어 숨통을 죄어오는 바람에 자칫 수술을 그르칠 뻔하게까지 만들었다. 그래서 그날도 최후로 로보토미 (뇌의 전두엽* 백질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게 된 환자가 있는데도 뒤로 미루고 진찰실에서만 서성이다가 별안간 성훈은 흡사 범죄 신고라도 하는 사람처럼 서둘러 조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 조 검사는 마침 자리에 있었는데, 또 다른 전화를 받고 있는 중이어서 직접 통화가 되기까지는 잠시 기다려야 되었다.
“말씀하십시오. 나 조― ㅂ 니다.”
전화 속의 음성에선 칼빛이 더욱 예리하게 의식됐다. 자연스럽지 못한 음성을 채 진정시키지 못하고 성훈은 말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정신병원의 윤성훈입니다.”
“오,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하려던 참인데·…… 내 친구 찾아갔었죠?”
“아뇨, 아직…….”
“그래요? 내가 잘 이야기를 했으니까 닥터 윤한테야 별일은 없겠지만……하여튼 며칠 내로 내가 가죠.”
“면회는 아직도 안 됩니까?”
“아직은 안 되겠지만 곧 자연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될 거요.”
“풀려난다는 이야깁니까?”
“그게 아니고, 저쪽에서 닥터 윤을 불러 가든가 아니면 그 친구나 내가 허범민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게 될 거요.”
“왜요? 그 사람에게도 무슨 이상이 있습니까?”
“약간…… 그래서 아마 다른 병원 의사를 불러다가 진찰을 해보는 것 같던데, 확실한 거야 역시 닥터 윤이 봐야만 알지 않겠소?”
“어디가 어떤데요?”
“자세히는 모르겠고, 도무지 반응이 없는 모양입디다. 일부러 묵비권을 쓰는 게 아니라…… 하여튼 곧 만나게 될 테니 그때 이야기 합시다.”
“처자가 있다고 했죠?”
“누구? 허범민? 왜? 주소를 알고 싶소?”
“네, 좀…….”
“기다리시오.”
테이블의 메모첩이라도 뒤적이는지, 아니면 저쪽 친구한테 다른 전화로 물어보기라도 하는 것인지 한참 있다가, 받아쓰라고 말하더니 주소를 불러주었다. ‘경기도 시흥군 서면 효암리 1036의 28호 김춘걸 방’으로 되어 있는 걸 보아 자기 집을 갖지 못하고 셋방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은 후 성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다녀오는 데 다섯 시간쯤이 걸린다고 해도 어두워지기 전에 충분히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좀 늦어질 것이라고 간호원에게 말한 후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병원 차를 이용할 수도 있었으나 번거롭고 주체스러울* 것 같아서 였다.
택시에 오른 후 운전수한테 주소를 이야기하고, 가는 데 얼마쯤 걸리겠느냐고 하자, 넉넉잡고 한 시간 반 정도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비록 먼 곳은 아닐지라도, 항상 일에만 쫓기다가 오랜만에 서울시를 벗어나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우선 가슴을 들뜨게 했다. 그러나 차가 점점 속력을 낼수록 조금씩 초조해지면서, 지금 이 행위가 과연 잘하는 일일까에 대한 회의가 와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를 아직 만날 수 없어 그 대신 처자라도 만나보자는 생각에서 택한 일이긴 하지만 그를 만난다고 해도 아무런 힘이 되어줄 수 없는 이 마당에 그의 처자를 만나 도대체 무슨 힘이 되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자기가 지금 가는 것은, 그냥 하나의 예의에서이거나 아니면 그의 처자가 어떻게 생겼을까에 대한 한가한 궁금증에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졌다. 따지자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왠지 모르게 그가 결혼을 해서 애까지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언제 한 번이라도 그가 자기는 독신으로 지내겠다는 식의 이야기야 내비진 적조차 없지만,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평생을 혼자 살아가는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살아온 탓인지 한 여자한테 그런 불행을 안겨주는 남자가 되지 않으려는 데 대한 꿈틀거림 같은 건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일체의 여자관계를 병적 일 만큼 회피하려고 했다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실제로 그에겐 그런 면이 없지 않았다. 더러 그한테 관심을 보여오는 여자들이 있는 것 같았는데도 어쨌든 서른인가 서른한 살이 되던 그 무렵까지 그는 그런 면에 대한 관심 같은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성훈이 기억하기에 딱 한 번 있긴 있었으나, 그걸 가지고 ‘여자관계’ 운운한다면 너무나 과장된 것이 될 것이다. 성훈이 독일에 다녀와 병원에서 일을 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던 해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노동이며 외무사원이며 거리에서의 행상 같은 걸 하고 있었다. 다니다 만 학교는 성훈이 등록금까지 !대주려 했으나 끝내 거부해 중퇴가 되었고, 그는 그런 일을 해가며 그의 어머니와 변두리 산비탈에 셋방을 들어 살고 있었다. 그 무렵 겨울치고도 유난히 추웠던 겨울, 어느 해질녘에 성훈이 그 셋방을 찾아간 적이 있다. 자주는 아니고 어쩌다가 한 번씩 잊혀질 만하면 찾아가 그저 이야기나 하다가 오는 것이 보통이었는데(물질적으로의 어떤 도움은 지나칠 만큼 완강한 그의 거부로 몇 차례나 묵살된 적이 있기 때문에 아예 생각조차 말아야 했다) 그날도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 머리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냄새 나는 그 방으로 들어선 순간 성훈은 혹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밖에서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이모만이 있는 옆에 이제껏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어떤 젊은 여자가 난 지 며칠 안 될 것 같은 갓난애와 함께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이모 친구 또래나 되는 여자라면 몰라도 며느리 또래밖에 안 되는 저렇게 젊은 여자가 이모한테 놀러 왔을 리는 없을 테고, 그리고 놀러 왔다면 건방지게, 이모는 앉아 있는데 자기만이 누워 있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친척? 친척이 여기 와서 애를 낳은 것이 아닐까? 태(丹台) 냄새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걸 보면(이런 방에선 으레 나게 마련인 퀴퀴한 냄새만이 아니고 어쩐지 그런 냄새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친척이라도 그렇지 도대체 얼마나 못사는 친척이기에 하필 이런 집, 이런 방에 와서 해산을 한단 말인가? 그러다가 성훈은 퍼뜩 다소 엉뚱한 생각과 함께 흠칫 놀랐다. 그렇지, 그동안 혹 범민이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지, 결혼을 한 후 애까지 저렇게 낳아놓고 나한테는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지, 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난번에 왔을 때…… 지난번…… 그러니까 그때가 언제인가…… 아직 열 달이 못 되지 않는가, 열 달은커녕 다섯 달도 못 되는데 그 사이에 언제…… 그렇다면 그동안 관계를 맺으며 애까지 배어놓고 결혼은 않고 있다가 급해지자 갑자기 데려다놓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러나 이런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를 성훈은 곧 알게 되었다. 성훈이 궁금해하는 얼굴로 그 여자 쪽에 몇 차례 시선을 가져가자 이모가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낱낱이 해주었던 것이다. 며칠 전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저녁, 범민이 거리에서 신음하고 있는 저 여자를 데려왔다는 것이다. 만삭이 된 채 남의 집 대문간에서 진눈깨비를 맞으며 신음하고 있는 걸로 보아 일은 급한 것 같은데 부근에 병원은 없고, 여자더러 집이 어디냐고 물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자 들쳐 업고 집으로 온 것인데 와서 바로 그날 저녁에 해산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듣고 보니 처지가 참 딱하다고 했다. 시골에서 남의 집 일을 해주며 살다가 남자를 찾아 올라왔는데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도 아니고 그냥 사귀던 남자인데 자기 몸만 그렇게 망쳐놓고 몰래 혼자 서울로 올라간 후 소식은 없고, 배는 자꾸 불러오자 견디다 못해 올라왔으나 주소조차 알지 못하니 어떻게 찾겠는가. 누구로부턴가 이 동네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동네를 헤매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하나 이 동네에 한두 집이 살아야 말이지, 그리고 이 동네에 분명히 살고 있기나 한 것인지, 살고 있어 찾게 된다 해도 그 남자가 자기를 과연 받아줄 것인지 그것조차 모르니 앞으로도 참 막연하다고 했다. 잠이 들었다가 이모의 이야기소리에 깬 것인지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부스스 일어나 아직 부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에 미소와 함께 수줍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코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고 그저 순박하고, 애를 낳은 여자치고는 지나치게 앳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많지는 않으나 보일 듯 말듯 가뭇가뭇한 얼굴의 주근깨가 추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인상적으로 보였다. 범민이 집에 들어온 것은 밤이 꽤 늦어서였는데 범민은 그 여자한테 약간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언제까지나 눌러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거요? 이제 거동할 수 있을 테니 내일은 어디로든 떠나가주시오.” 그러면서도 그는 애가 먹을 우유통을 밖에서 들고온 꾸러미에서 꺼내어 여자 코앞에 내밀었다. 그런 밤이 있은 후 성훈이 그 집을 또 찾아간 건 역시 몇 달이 지나서였다. 그때 이모는 고질인 심장병으로 앓아누워 있으면서 그 여자에 대한 뒷소식을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다음 날이든가 다음다음 날이든가 몇 차례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떠나갔지. 갈 곳도 정해지지 않은 사람을 떠나보내려니까 참 안됐더밤. 그렇다고 우리가 사는 꼴이 이러니 함께 데리고 살 수도 없고…… 그런데 떠난 지 한 달이 좀 지나서 쇠고기를 한 근 사가지고 찾아왔더만. 남자는 끝내 못 찾고 어떤 집에 식모로 들어가 사는데 애가 있어서 그 일도 아마 쉽지가 않은 모양이야. 애를 등에 업고 왔는데 그 사이에도 애는 퍽 컸더만.”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성훈이 그 집을 다시 찾은 건 이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는데, 이모의 장례가 있은 후 또 한 번 다시 찾아갔을 때는 이미 범민은 그 집에 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주인집에 물어도 주인집 역시 어디로 이사 갔는지 전혀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이모의 장례식날 그를 본 것이 마지막이 된 셈인데, 하긴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까 그도 어지간히 변하긴 변했겠지. 아니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졌는지는 몰라도 감금이 되었다는 걸 보면 그가 그동안 너무나 변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건 어느 정도 다 상상이 가는데, 그가 어떤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을까에 대한 상상은 도무지 가지지 않는다. 그와 관련해서 생각되는 여자란 오직 그 여자뿐이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 도대체 그의 처는 어떤 여자이며 그의 아들은 어떤 애일까?
차는 고가도로를 타고 중심가를 벗어나 서울역 앞을 지나더니 한강 쪽으로 달렸다. 서울에 그렇게 오래 살아왔는데도 차창 밖을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이 갈수록 낯설게만 보였다. 한강대교를 지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달리더니 운전수가 좁은 길로 우회전을 하면서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안 좋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껏 달려왔던 길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스팔트가 안 되어 있는 건 물론 여기저기가 움푹움푹 패여 차가 사뭇 뒤뚱거렸다. 버스도 택시도 다니지 않았고 오직 낡은 마이크로버스만이 어쩌다가 한 대씩 지나쳤는데 그 외에는 모두가 다 자전거를 타고 있거나 아니면 그냥 걷고 있었다.
“여기부터가 경기도인 모양이죠? 이 근방 지리를 잘 압니까?”
“잘은 몰라도 대강은 알죠.”
“그 동네까지 곧장 들어갈 수 있겠죠?”
“들어갈 수는 있을 것이오만 아무래토 걸으시긴 좀 걸으셔야 될 겁니다.”
길의 양쪽엔 논들이 펼쳐져 있고 논 저쪽으론 야산이며 밭들이 보였다. 포도나무로 보이는 과수들이 줄지어 있는 게 쉽게 눈에 들어왔고, 얼른 보기에 무슨 저수지나 강 같은 비닐하우스들이 햇살을 받아 번쩍거리는 것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계속 뒤뚱거리며 가던 차가 멎은 곳은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는, 슬레이트와 블록으로 개수한* 집들이 태반인(간혹 초가도 한두 채 보이긴 했으나 그런 어벌쩡한* 집들이 거의 전부였다) 동네가 보이는 입구였다.
“저 동네니까 가셔서 물어보십 시오. 그리고 여기서는 교통이 좋지가 않은데 서울로 들어가실 때는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부탁을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만나보기만 하고 곧 나올 테니 좀 기다려주십시오.”
집을 찾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지나가는 노인한테 김춘걸 씨 집이 어디냐고 묻자 금방 알려주었다. 비탈을 약간 올라가서, 대문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을, 부서진 나무대문이 바람에 삐그덕거리고 있는 집이었다. 주인을 찾자 오십 대나 되어 보이는 검게 찌든 얼굴의 아낙네가 나왔다.
“허범민이라는 사람이 이 집에 삽니까?”
“살긴 살지만 지금은 집에 없는데요.”
“허범민 씨 말고 그 가족 되는 분을 좀 만나려고 하는데…….”
“어디서 오셨는데요?”
아낙네는 성훈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서울서 왔는데 친척 되는 사람입니다.”
“아, 그러세요? 부인도 지금은 집에 없는데 어떻게 하죠?”
“어디 멀리 나갔습니까?”
“시장으로 장사를 나다니는 통에 늘 늦게야 들어와요.”
“시장? 어느 시장인데요?”
“시흥시장인 데…… 가만있자…… 잠깐 기다려보세요.”
아낙네는 성훈을 세워둔 채 밖으로 나가더니 한참 있다가 국민학교에 갓 입학했을 것 같은 사내아이를 데리고 와 말했다.
“꼭 만나셔야 될 일이라면 이 애를 따라가시죠.”
“뭐 그럴 것까지야·…….”
“괜찮아요. 이 애 어머니니까…….”
“이 애 어머니라니 그럼 이 애가 허범민 씨 아들이란 말입니까?”
성훈이 놀라는 게 우습게 보였던지, 왜 그렇게 놀라느냐는 얼굴로 아낙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나 성훈으로서는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결혼을 언제 했기에 벌써 이렇게 큰 아들이 있단 말인가. 이모가 죽었을 그 무렵에 바로 했다면 혹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선 나이로 봐도 맞지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찬찬히 뜯어봐도 이 애에게서 범민의 일면이 엿보이지는 않았다. 생김새부터가 범민은 선이 뚜렷한 편인데 이 애는 흐릿했다. 이마도 좁았고 콧날도 오똑하지 못했다. 활달하게는 보였으나 그 활달함도 범민이 어렸을 때 보여줬던 활달함과는 어딘지 달랐다. 덤벙댈 것 같다고 할까 의젓하게 보이지를 않는다고 할까, 범민에게서는 어렸을 때 특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던 어린애로서의 어른스러움 같은 것이 이 애한테서는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성훈은 감개에 찬 표정으로 애의 손을 잡고 아낙네에게 인사를 건넨 후 밖으로 나와 대기해 있는 택시에 올랐다. 택시를 타본 일이 없는 듯 애는 처음엔 약간 겁먹은 얼굴로 택시 타는 걸 주저했으나 택시에 오른 후에는 금방 밝아지며 성훈이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했다. 이름은 허정식, 나이는 일곱 살, 올해 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공부하기가 재미있느냐고 묻자 재미있다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아버지 이름이 뭐지?”
“허범민.”
“뭐하시지, 아버진?”
“공장 직원.”
“직원?”
“샤쓰 만드는 공장 직원이었는데, 지금은 안 해요.”
“그래?”
의외의 사실에 성훈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애한테 꼬치꼬치 물을 수도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있자 애가 스스로 말했다.
“공장이라고 똥통공장이래요. 그래서 지금은 그만두고 돌아다니시며 장사 다니셔요.”
시흥시장까지 오는 데는 이십 분도 안 걸렸다. 택시에서 내려 성훈은 애가 앞장을 서는 대로 뒤를 따랐다. 많이 다녀본 듯 애는 이 근방 지리에 대해 훤했다. 질퍽거리는 골목길로 들어서서 왕대포집이며 지물포며 철물점이며 전기상회며 옷가게며 여러 가지 그릇 등속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는 시장 속으로 걸어갔다.
“어머니는 무슨 장사 하시지?”
“헤헤, 가 보시면 알아요.”
생선가게가 있고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만들어 파는 가게 옆에 부인들이 채소며 나물 같은 것들을 길가에 벌여놓고 파는 곳에 와서 애는 걸음을 멈추며 멋쩍은 듯 또 한 번 헤헤 웃더니 “엄마!”라고 불렀다. 순간 성훈은 아찔했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고야 말았다는 생각과 함께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기를 쓰며 찾아왔던가에 대해 새삼 후회했다. 몇 다발의 상추와 몇 다발의 쑥갓, 그리고 몇 다발의 바늘을 앞에 벌여놓고 앉아 있던 부인이 애의 부름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고 이쪽을 보는데 그 부인의 얼굴에 배어 있는 이 세월의 어려움. 살아가는 일에 대한 따뜻함 같은 걸 한창 만끽해야 할 나이로서는 그것은 너무나 비참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성훈의 아찔함은 비단 그것에만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분명히 낯이 익긴 익은 얼굴이라고 기억을 더듬다가 곧 그 기억 속의 얼굴을 되살려냈기 때문이었다. 틀림 없었다. 바로 그 여자였다. 칠 년 전 범민의 그 냄새 나는 방에서 보았던 그 여자, 그 집 그 방에서 만삭의 몸을 풀었다던 그 여자, 얼굴의 주근깨가 흉하지 않고 오히려 인상적이던 그 여자…… 어떻게 저 여자가……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성훈이 다가가 인사를 해도 부인은 성훈을 알아보지 못했다. 계속 눈을 깜박거리면서 옛날에 비해 많이 시든 얼굴에 허연 웃음만 지을 듯 말 듯했다.
“허범민 씨 이종사촌동생 되는 윤성훈입니다. 언젠가 겨울날 이모님이 살아 계실 때 형 집에서 잠깐 뵈었던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아, 아……”
기억이 나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러는 건지 부인은 신음소리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에 찾아뵈었어야 되는 건데 어디에 사시는지를 몰라서……”
“우리가 더 나쁘지라우. 우리 애 아부지도 성격이 모진 편은 못 되는디 왜 그런지 인연을 모두 끊고 살아와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여태까장 동생 되는 분이 있는지도 몰랐어라우. 얘기를 들응게로 이제 생각이 나긴 나는구먼이라우. 그때 난 애가 바로 이 애지라우.”
부인은 전라도 사투리를 아직도 거의 그대로 쓰고 있었다.
“어디로 잠깐 들어가시죠.”
“아, 내 정신 봐. 집으로 함께 가지라우.”
부인은 앞에 벌여놓고 있던 것들을 거둬치우려고 했으나, 성훈이 집엔 다녀 나오는 길이니까 다음에 가겠다고 말하자 “그러겠어라우?”라고, 정말로 그래도 되겠느냐는 표정을 짓더니, 치우려던 것들을 그대로 둔 채 옆 부인한테 보아달라고 부탁하고 앞장을 섰다. 부근엔 제과점이나 다방 같은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부인한테는 일상화가 되어버려서 그러는지 부인은 노변에 있는 싸구려 고기만두집으로 들어섰다. 성훈의 눈엔 세균이 득실거릴 것처럼만 보이는 만두를 부인은 아무렇지 않게 시킨 후 말했다.
“그런디 우리가 여기서 살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라우? 혹시 우리 애 아부지가 거기를 찾아간 건 아니라우?”
“네에? 그렇다면 아직……”
“무슨 소리라우?”
그랬었구나. 이 부인은 아직도 허범민이 갇혀 있는 줄을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차라리……
“아, 아닙니다. 형 친구 되는 분한테서 이곳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더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라우. 이번에는 왜 이렇게 오래까장 안 들어오시는지……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기 땜에 더러 며칠씩 안 들어오는 일도 있긴 있었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오래 안 들어온 일은 없었는디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 모르겠어라우. 얼마 전엔 애 아부지 친구라고 하면서 어떤 남자가 찾아와 여러 가지를 캐묻고 간 적이 있었는디 시방 생각항게로 그것도 이상한 것 같으라우.”
“캐묻다뇨?”
“평소에 무슨 이상하게 보이는 점이 없었느냐, 그전에 공장에 다닐 때 직공들이 들고일어나 회사 측과 싸운 적이 있었는디 그때 애 아부지가 앞장을 섰던 것이 아니냐, 언젠가 봉게로 가방 속에 폭발탄을 넣어가지고 댕기던디 그걸로 무얼 하겠다는 소리를 들어보지를 못 혔느냐…… 별별 소리를 다 묻길래 뭣 땜시 그러냐고 혀도 대답은 않고 자꾸 묻기만 하지 않겠어라우.”
“폭발탄이라뇨?”
“나도 잘 모르겠어라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부인은 무언가 숨기던 눈치더니 흘끗 이쪽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늘 들고 댕기는 가방이 있거더니라우. 파는 물건들을 넣어가지고 댕기는 가방인디 언젠가 변또*를 그 안에 넣어주려고 봉게 애들 공같이 생긴 무슨 요상헌 쇳덩이가 있도만이라우. 그려서 이것이 무엇인디 뭘라고 그런 건 가지고 댕기느냐고 항게 깜짝 놀라며 화를 내시지 않겠어라우. 당신은 알지 않아도 될 거라고…….”
무언가 섬뜩해져오는 게 있어 성훈은 그 일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부인이 조금이라도 배웠다든가 돌아가는 세상일에 얼마만큼이라도 민감하다면 결코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오직 먹고사는 일에만 급급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대답들은 오히려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도대체 그는 그걸 가지고 무얼 하려고 했던 것일까. 공장에서 스트라이크를 일으키며 그것으로 공장을 폭파라도 시키려 했단 말인가. 그러나 설령 그런 생각을 품었다 해도 실제로 한 건 아닌데 극형을……? 물론 극형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날 조 검사로부터 말을 들으며 느꼈던 건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그 정도의 사건이라면 그렇게 구체적인 내막을 숨기려고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가 공장에 어느 정도의 불만과 원한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공장을 상대로 그런 음모를 꾸밀 만큼 그렇게 생각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언가 분명히는 알 수 없지만 성훈은 또 한 번 공연히 스스로 섬뜩해짐을 느끼며 그런 생각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저러나 형수님은 어떻게 되어 형님과 결혼을 하시게 된 겁니까? 그전에 듣기에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던 것으로 아는데……?”
느닷없는 질문이 되어 그러는지 부인은 노골적으로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 일을 얘기하자면 길어지지라우. 알다시피 애 아부지가 어디 나 같은 여자하고 결혼을 할 사람이라우? 내가 붙들었지라우. 길바닥에서 얼어 죽게 생긴 나를 그렇게 구해주어서 잊을 수가 있어야지라우. 그려서 그 집을 가끔 찾아 댕겼었는디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에 찾아갔었을 때의 일이라우. 그분이 혼자 누워서 앓고 있지 않아라우. 벌써 며칠째나 그러고 있는 것 같아 그대로 두면 그냥 죽을 것 같았어라우. 그래 눌러 있으면서 간호를 해드렸지라우. 처음엔 화를 내며 돌아가라고 큰소리를 치곤 하던 그이도 내가 원채 정성껏 그렁게로 나중엔 수그러지도만이라우. 그것이 동기가 되어 결국 이렇게 사는디 물론 식 이야 둘이 냉수만 떠놓고 올렸지라우. 그리고 지금도 함께 사는 건지 뭔지 모르겠어라우. 이번에도 나를 진짜 여편네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까장 오래도록 혼자 있게 놓아두겠어라우? 그래도 어쨌든 나한테는 과남한* 분이지라우. 인정이 많아서 할 때는 아주 잘해라우. 그런디 어딘지 나로서는 좀 모를 디가 있긴 있는 분 같아라우. 정신이 살림하는 디보다 딴 디 있는 것처럼 밤나 들떠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라우.”
좀더 이야기하다가 성훈은 밖으로 나와 두 사람과 헤어지면서 애의 손에 학용품 사 쓰라고 5천 원짜리 한 장을 쥐어준 후 돌아오며 생각했다. 늘 자기 고집대로만 굽힘없이 살려고 애썼던 그가 결혼에 있어서는 왜 그렇게 쉽게 양보를 했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것은 다 양보하더라도 그것만은 결코 양보하려 들지 않는 것이 보통인 그 결혼을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성훈은 다시 고쳐서 생각했다. 아니 그것을 양보라고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는 없겠지. 그의 어머니와 같은 불행한 여자를 또다시 안 만들기 위해서는 결혼이라는 건 아주 안 해버리거나, 아니면 하게 될 경우, 더 이상 불행해지려야 불행해질 수 없을 만큼 이미 불행해진 그때의 그런 여자(지금의 이 여자)와 피차간에 부담 없이 맺어지는 것, 그것이 그가 바라던 결혼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조 검사가 그의 친구라는 사람과 함께 허범민을 데리고 병원에 나타난 것은 성훈이 시흥을 다녀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조 검사가 대강 들려줬던 얘기와는 다르게 허범민의 증상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의 동작, 표정, 눈의 움직임만으로도 성훈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수사기관의 과장이나 반장쯤 되는 사람인지 아니면 조 검사나 마찬가지의 신분인지 또는 사상 관계자들만을 전적으로 다루는 정보원 계통의 사람인지 그 신분을 분명히는 알 수 없는 조 검사 친구라는 사람은 자기 이름조차도 밝히지 않고 고개만 꾸뻑한 후 허범민을 턱으로 가리키며 대뜸 말했다. “이 작자가 계속 쑈를 하는데 말이오. 잘 진찰 좀 해보시오. 이 작자와 선생이 친척 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다고 쑈를 쑈가 아니라고 진찰할 선생은하닐 테니까.”
말의 내용도 그렇지만 말하는 자세부터가 불쾌하게 만들었으나 그래도 성훈은 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곳에 이끌려오는 범죄자들 중엔 조 검사 친구가 말하는 그 ‘쑈’라는 걸 하는 자가 더러 없는 바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도 창녀 노릇을 하다가 자기 기둥서방을 살해하고 붙들려 온 여자가 있었는데 성훈 앞에 서자마자 여자는 발작적으로 성훈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그래 이 새끼야, 나는 늬 말처럼 씹 팔아먹고 사는 년이다. 허지만 너는 뭐니? 씹 팔아먹고 사는 년한테 씹이나 달라고 하고 돈이나 달라고 하는 너는 뭐냐구? 그래서 민망해진 적이 있었는데, 그러나 알고 보니 여자가 정신이상을 일으켜서 그런 건 아니었다. 정신이상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쇼를 한 것이었다.
성훈은 말없이 허범민을 진찰하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정신적인 충격에 의해서 갑자기 일으켰을 테니까 심인성(心因性) 일 줄 알았더니 증상은 내인성(內因性) 으로 나타났다. 내인성이라도 조울증*보다는 분열증*에 가까웠다. 분열증 환자들의 주증상이라 할 수 있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든가 난폭한 짓을 한다든가 뜻 없이 흥분한다든가 계속 아무 말을 않는다든가 하는 등의 증상을 보였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증상이 심한 걸로 결과가 나왔다. 말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자극을 주어도 도무지 반응이 없었다. 걸어보게 한다든가 손가락을 오므렸다 펐다 하게 한다든가 웃어보게 한다든가 찌푸린 표정을 지어보게 한다든가 눈동자를 갖가지로 움직여보도록 해보아도 그 반응들이 아주 미약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인성일 경우는 대개 유전형질과 관계가 있는데, 그러면 허범민에게도 어떤 그런 형질이 약간은 있었단 말인가. 물론 심인성이면서도 내인성과 거의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예상했던 것과 다른 증상들을 보여 혼란을 가져왔다. 그러니까 심인성과 내인성이 겹쳤다고 일단 볼 수밖에 없는데 이쯤 되면 문제는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어 성훈은 정색을 하고 조 검사, 친구에게 물었다.
“그동안 혹 다른 증세는 없었습니까?” ,
“다른 증세가 없냐니, 그럼 쑈가 아니란 말이오?”
성훈이 쓴웃음을 짓자, 조 검사 친구는 의사의 진찰이 무슨 그따위냐는 듯한 표정으로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 정도의 진찰로 자세한 걸 알 수 있단 말이오?”
“같은 정신병이라도 어떤 형이냐, 즉 내인성이냐 외인성이냐 심인성이냐 하는 건 좀더 알아봐야겠지만, 이상을 일으킨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언할 수 있단 말이오?”
다시 쓴웃음을 짓자, 조 검사 친구는 자기의 성질을 주체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거리며 “그럴 리가 없는데……그럴 리가…… 그럴 리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성훈을 노려보며 힐책하듯 말했다. “멀쩡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이상해질 수 있단 말이오?”
“어떤 형태로든 충격을 받았겠죠.”
“충격? 그럼 내가 고문이라도 했단 말이오?”
“그런 뜻이 아니고 심리적으로 어떤…… 언제 어쩌다가 이렇게 됐습니까? 진찰 결과로는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형질을 약간은 타고 난데다가 갑자기 심리적인 충격을 받은, 할하자면 내인성과 심인성이 겹쳤다고 할 수 있는데…….”
“언제나마나…….” 조 검사 친구는 여전히 자기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고, 묻는 말에는 대답도 없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만약 거짓말을 할 경우에는 어떻게 된다는 걸 알지? 하는 식의 협박조가 섞인 어투로 말했다. “나를 속이는 건 아니겠죠?”
그러자 조 검사가 나서며 성훈을 옹호하는 편이 되어 친구에게 말했다. “이 사람아, 저쪽 의사도 결과가 같지 않던가.”
저쪽 의사란, 원래 범죄자들의 정신감정은 두 명의 의사에게 의뢰하도록 되어 있어 자연히 거치지 않을 수 없는 다른 병원의 또 한 의사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성훈한테 오기 전에 진찰 결과야 이미 다 알 만큼 알고 왔으면서도 그런 억지를 부리려는 것이었다. 억지를 부리려 한다기보다 모든 사람들의 말을 일단은 믿지 않으려고 드는 수사관이나 심문관으로서의 습성 이 몸에 진하게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친구는 아무 말이 없이 계속 못마땅한 얼굴로 범민과 성훈을 번갈아가며 노려보았고 조 검사가 “그럼 어떻게 한다?”라고 중얼거리더니 말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심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입원을 시켜야겠군?”
자기를 보며 이야기를 해도 계속 허범민과 성훈한테만 시선을 보내고 있던 친구는 한참 후에야 약간 수그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이야 제정신이 아니든 어떻든 사건현장에서는 멀쩡 했었으니까 달리 문제될 건 없지.”
“물론 그거야 그렇지만 이 상태에서 구속을 시키면 뭘 하겠나?”
설득이 된 듯 친구가 말이 없자 조 검사는 성훈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입원을 시킵시다. 입원을 시키면 어떻게 쉽게 회복은 될 수 있겠소?”
“그거야 두고 봐야겠죠.”
성훈의 말에 친구가 다시 음성을 높여 윽박지르듯 맡했다. “언제쯤 회복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오?”
“내인성일 경우는 특히 더 힘들어서…… 하지만 증상은 그러나, 일시적인 충격에 의해서였다면 어쩔지……”
“아니 그래 대략 짐작도 못한단 말이오?”
“글쎄요 영원히 불치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큰소리를 치고 싶어도 달리 할 도리가 없는 듯 “하, 참…….”이라고 친구가 혼잣소리를 하자, 조 검사가 부드럽게 성훈을 향해 물었다. “그래 치료를 하게 되면 방법은 어떤 방법을 쓰는 거요?”
“별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 없죠. 분열증 계통은 인슐린충격요법이 비교적 잘 듣는 편이나 너무 복잡하고 시일도 오래 걸리고 또 다른 문제들도 있어 요즈음엔 어디서나 거의들 쓰지 않고 있죠. 그래서 결국……”
“인술린이라니?”
“일종의 췌장호르몬 계통이죠. 그걸 일시에 대량 주사하면 혈당량이 갑자기 줄어들어 혼수상태에 빠지는데, 그런 상태를 반복시키면 사람에 따라선 쉽게 회복이 되기도 하죠.”
“그런데 그 방법은 쓸 수가 없단 말이죠?”
“쓸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가능한 한 다들 안 쓰고 있으니까 나로서도……”
“그럼 무슨 방법을 쓰는 거요?”
“우선 지속수면요법을 써보다가 안 들으면 전기충격요법을 써보는 수밖에 없죠.”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지속수면은 한 일주일쯤 계속 잠을 재워보는 거고, 전기충격은 말 그대로 전기로 충격을 시키는 거죠.”
“충격을 시키다니 전기를 몸에 통하게 한다는 이야기요?”
“70 내지 130볼트 정도를 0.1초 내지 0.5초 동안 통하게 하죠.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하게 되면 몇 차례 하지 않아 듣는 수가 있죠. 그런데 역시 이것도 요즈음엔 가능한 한 안 쓰려 하고 있고, 또 분열증보다는 조울증에 잘 듣는데…… 하여튼 최선은 다해 볼 테니까 염려 마십시오.”
“물론 최선이야 다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렇지 않아도 저쪽 병원에 맡길까 하다가 아무래도 닥터 윤이 나을 것 같아 이쪽에 맡기는 건데…… 환자가 친척이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닥터 윤의 의술을 더 믿는다는 이야기요. 알아듣겠소. 내 말?”
성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잘해보시도록 하고 우린 그만…….” 하면서 조 검사는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이대로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성훈은 말로 붙잡았다. “치료하는 데 참고로 몇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치료하는 데 꼭 도움이 되어서보다도 그냥 알고 싶어 물었다. “환자의 죄는 어떤 것이며 연제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치료를 하려면 우선 그걸 알아야 합니다.”
이 말에 대답을 한 건 조 검사가 아니라 친구였다. 허범민을 포함한 세 사람은 앉아 있는데 아까부터 혼자 서서 서성거리던 조 검사 친구는 성훈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렇게 꼭 알고 싶다면 알려주겠다는 어조로 필요 이상의 악센트를 주어 말했다. “죄는 암살 미수죄고…….”
“네에?”
“정부요인을 암살하려다 붙들렸소. 그리고 발작은 심문 도중에, 그러니까 보름쯤 전에 일어난 셈이오.”
“설마……”
“왜? 너무 뜻밖이라는 이야기요? 그렇겠죠. 그러나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오.”
“어떤 식으로 어떻게……?”
“국립대학교 졸업식장에서! 폭발물을 가지고! 뭐, 또 더 물어볼 게 있소?”
아닙니다.”
더 이상 묻고 싶은 거야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성훈은 그렇게 대답했다. 둥둥둥 가슴이 울리고 홰능홰눙 정신이 홰능거렸다. 무엇 때문에……? 무슨 힘으로……? 어떤 각오에서……? 어쩌려고……? 성훈은 옆에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초점 없는 시선을 벽이며 천장이며 바닥으로만 가끔 움직이고 있는 허범민을 다시 한 번 무슨 쇼윈도라도 들여다보듯이 자세히 바라보았다. 칠 년 전 그때나 비슷한 노동자 같은 복장, 헝클어진 머리, 꺼칠한 정도가 아니라 더부룩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자란 턱수염, 옛 성터의 벽돌빛에 가까운 살결, 거친 손, 언제 닦았는지 구두란 말이 민망할 정도의 구두…… 이 사람의 어디에 그런 끔찍함이 숨어 있었단 말인가. 정말이라면, 그런 끔찍함이 숨어 있었던 게 정말이라면…… 아, 그렇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지금은 저러고 있지만 처음엔 아주 웃깁디다. 쑈라도 보통 쑈가 아니라 완전히 원맨쑈를 하는 거요. 거, 왜 판토마임이라는 거 있지 않소? 그런 걸 하는 식으로 손짓·발짓·고갯짓·눈짓 등 갖가지 오만방정을 다 떨더니 나중엔 느닷없이 고함소리까지 지르지 않겠소? 무슨 소린지 혼자 호령을 하는 거요. 그 소리에 심문실 사람들이 기겁을 할 정도로 말이오. 그러더니 얼마 전부터는 계속 저러고만 있는 게 아니겠소? 그러니 어찌 쑈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소?”
성훈이 더 묻지 않아 오히려 답답했던지 그렇게 스스로 혼자 말한 후 조 검사 친구는 뒤에 일어나는 사고, 가령 도주에 대한 책임 같은 건 전적으로 성훈이 져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남기고 돌아갔다. 그들이 타고 왔던 지프의 엔진소리를 듣다가 성훈은 허범민이 무엇보다도 많이 피로해 있을 테니 어서 잠을, 죽음에 가까운 깊은 잠을 재워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입원실로 데리고 가 옷을 갈아입힌 후 소듐 아미탈로써 잠을 재웠다.
깨어나면 또 재우고 깨어나면 또 재우고(하루에 평균 15시간 정도) 하기를 꼭 일주일, 그렇게 재우면서 성훈은 자기가 심한 모순에 빠져 있음을 의식했다. 우선 적당히 타협적으로, 때로는 야비하고 비열하게까지 살아왔던 자기가, 설사 국가에 반역을 했다고 해도 자기 고집대로 정신이상을 일으키면서까지 굽힘없이 살려고 애써온 이 환자의 정신을 치료하겠다는 행위부터도 그렇지만, 또한 실컷 치료를 해보았자 회복이 된다고 해도 회복 뒤에 와지는 건 극형이나 아니면 거기에 가까운 중형뿐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우선 회복을 시키는 것이 자기 의무가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한편 이틀이 멀다 하고 전화로 경과를 물어오는 조 검사 친구의 성화에 있는 한의 열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지속수면으로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아 드디어 전기충격요법을 쓰려는 생각에서 하부 척추 X선 검사를 마쳤다. 전기충격요법을 쓸 때는 원칙적으로 가족의 승낙서가 있어야 되지만, 가족한테는 역시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또 자기도 친척이니까 가족을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망설임 없이 실시했다. 그러면서도 완전 회복에 대한 기대까지는 걸지 못했는데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일주일에 두 번씩 3주째 계속 120볼트짜리로 0.3초 동안씩 실시했는데 기적이나 같은 뜻밖의 차도가 생겼다. 6회째가 되던 날이었는데, 그날도 역시, 변소를 보게 하고 단단한 마룻바닥에 담요 한 장을 깐 치료대 위에 똑바로 뉜 후 눈을 감기고 이마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미리 소금물에 담가놓았던 전극을 그 자리에 고정시켰다. 입을 벌리게 하여 개구기(開口器)를 소독한 수건에 말아 어금니 사이에 꼭 물게 하고 아래턱을 단단히 받친 후 조수들에게 어깨·괄·골반·발목을 잡게 했다. 그런데 기계의 단추를 채 누르지도 않았는데 그가 이상하게 환자들이 회복기에 흔히 보이는 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여왔던 것이다. 그래서 실시하려던 전기충격요법을 즉시 그만두고 다른 침대에 옮겨 뉜 후 진정을 시켰더니 한참 후에 부스스 일어나, 이제껏 잃었던 자기 눈동자를 다시 찾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어떻게 된거지?”
거의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회복이 된 후에도 성훈은 물론 그에게 충격이 될 만한 어떤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질문을 해도 충격과는 상관이 없는 일들에 관한 질문을 했지, 암살이니 폭발물이니 가족이니 하는 등등의 최근의 일에 관해선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간혹 그런 것들에 대해 알고 싶어서 말을 꺼내려 해도 일부러 다른 말로 말의 방향을 바꾸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그가 이제 가보겠다고 완강히 나오는 바람에 모든 이야기는 오고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긴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심문을 받다가 뭐가 잘못되어 여기에 온 것 같은데 아주 끝내야지.”
“죄를 짓긴 진 모양이군?”
“죄를 짓고 안 짓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안 가게 되면 우선 네가 당할 테니까.”
“극형감이라고 하던데 극형을 받아도 좋아?”
“극형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형이라도 내린다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법이 엉터리가 아니라면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법이 엉터리가 아니라도 그렇지, 정부요인을 암살하려고 했다면서 그런 국가반역죄가 극형이 아닐 것 같애?”
“아니야. 그건 오해야.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오해? 그럼 폭발물을 가지고 국립대학교 졸업식장엔 뭣 하러 갔었어?”
“장사를 하러 간 거지.”
“장사? 폭발물 장사를 하러 갔단 말이야?”
“그게 아니고, 팔기야 다른 걸 팔았지만, 폭발물은…….”
“왜 말 못해?”:
“글쎄, 이런 말을 하면 납득이 갈지 모르지만, 폭발물은 내게 있어 넋을 지키는 하나의 마스코트 같은 것이었어. 왠지 모르게 그걸 가지고 다녀야만 제대로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마음이 든든했거든. 누가 나를 건드릴 때 그걸로 위협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왜 그런 거 있잖아? 그냥 가지고만 다녀도 든든한 거…….”
“핫핫 그런 말을 누가 곧이듣겠어? 세상에 무슨 마스코트가 없어 하필 폭발물로…….”
“물론 상식적으로야 이해가 안 가겠지. 그러나 세상엔 상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일도 얼마든지 있지 않어? 내가 실제로 그걸 터뜨렸다면 모르지만 그냥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만 있었던 건데 그걸 가지고 어떻게 꼭 암살 운운하느냐 말이야?”
“더 듣고 싶지 않아. 하여튼 심문 받으러는 가지 말고 그냥 이대로 있어. 저쪽 사람들은 아직 회복된 줄 모르고 있으니까. 아마 지금쯤은 영원히 회복이 안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날더러 계속 여기서 이렇게 미친 듯이 살고 있으란 말이야?”
“극형을 받는 것보다야 낫겠지.”
“아냐, 그럴 수는 없어. 극형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멀쩡해져가지고 미친 시늉을 하며 살겠어? 더러 있었지.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난세 때 이름 있는 인물 중에 더러 그런 사람이 있었지만 난 그렇게까지 하며 견디고 싶지는 않아. 상투적인 말이지만, 어차피 사는 것 자체가 형벌일 바에야…… 가겠어. 가서 그들이 내 진실을 이해할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부딪쳐보겠어.”
『문학과지성』 16호(1974년 여름); 『물을 수 없었던 물음들』 (문학과지성사 1977)
최 창 학
최창학(崔昌學) 194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8년 계간 『창작과비평』 에 중편소설 「창(槍)」을 발표하며 등단한 뒤 현대사회의 삶의 메커니즘과 정신병리적 현상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젊고 예민한 결핵환자의 자의식 과잉현상을 섬세하게 묘사한 등단작 「창」,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현대적 권력의 병폐를 정신병원에 비유해 우회적으로 비판한 「형(刑)」을 비롯해 「물을 수 없었던 물음들」 「가사자(假死者)의 꿈」 「바다 위를 나는 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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