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일본여행 [J여동] 원문보기 글쓴이: 바이칼1
대마도 여행1 - 부산에서 페리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 대마도 히타카츠항에 가다!
그동안 일본 여행은 수없이 했지만 부산에서 아주 가까이 있는 대마도 여행은 처음인데..... 큰딸네
부부와 손주 등 우리일행 7명 은 1년전 규슈 여행에 이어 두 번째로 대가족 여행 을 떠납니다.
2024년 1월 25일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 에 내려 평면 에스컬레이터 로 이동해
부산역 2층으로 올라가서 대기실에서 10번 창구 옆 도나츠 가게를 지나 밖으로
나가서는 덮개가 있는 구름다리 를 7~8분을 걸어서 부산 국제여객 터미널 로 갑니다.
부산에서 일본 대마도 (쓰시마) 까지는 고속 페리로 1시간 반 거리이니..... 먼저
인터넷에서 예약한 배표를 NINA 호 창구 에서 받은 후에 멀미약 을 먹습니다.
몇년 전에 울릉도 를 여행했을 때 포항 터미널에 도착하니 멀미약이 다 떨어지고 없는지라
키미테 를 사서 붙였는데, 하필 그날이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도 조금씩 내리는
날씨인지라 배멀미 때문에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배에서 바다로 뛰어 내리고 싶더라는....
이후 자료를 찾아보니 멀미약은 출항 30분에서 1시간 전에 먹어야 하고 키미테는 4시간 전에 붙이라고
했으니, 우린 30분 전에서야 키미테 를 붙인지라 실제로는 배말미약을 먹지도 않고 배를 탄 셈이라는.....
울릉도에서 후포항으로 돌아올 때는 멀미약에다가 키미테 까지 2개를 다 했는데 그날은 날씨도 따뜻하고
바람도 불지 않아 배멀미가 없었는데, 그렇다고 약과 키미테 2가지를 함께 복용할 필요는 없다 고 합니다.
부산 터미널에서 큰 딸 부부와 손주 셋을 만나서 일행 7명이 NINA 호 배 를 타니
직원은 “조건부 운행” 이라는데.... 다른 승객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날씨가 안좋고 바람이 불어 풍랑이 심하면 가다가 되돌아 올수도 있답니다.
이틀전 부터 제주도와 대마도에 눈이 많이 내린지라 어저께 부터 귀국할 배가 출항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지금 대마도에서 발이 묶인 한국인이 많다는 소리 에 그 승객은
얼굴이 노래지는 걸 보는데..... 내게는 만일을 대비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말로 들립니다?
배로 히타카츠(比田勝) 에 상륙해 호텔에 가방을 보관하고는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 을 구경하고
나기사노유(渚の湯) 에서 온천을 한후 돌아와 1박 하고는 다음날 렌터카로 남쪽으로
달려서 에보시타케 전망대 에 올라서는 쓰시마 북섬과 남섬 사이에 바다인 아소만을 내려다 봅니다.
그러고는 렌터카에 올라 와타즈미신사를 지나 만제키 운하 를 다리로 건너 가네다성터 에 오른후 면세점
다이렉스 미쓰시마 에 들른후 남섬의 이즈하라(嚴原) 에서 가네이시성과 최익현 순국비가 있는
슈젠지 절을 보고 1박후 다음날 히타카츠로 와서 아지로의 연흔을 보고는 귀국 페리를 탈 생각 입니다.
그러고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출국수속 후에 대마도행 NINA 호 페리 에 오르는데
이 배는 몇 년전에 여기 부산에서 규슈 후쿠오카의 하카타항으로 갈 때 탔던
비틀호 와 비슷한데 후쿠오카는 3시간 걸린데 비해 오늘은 그 절반인 1시간 반 입니다.
몇 년전만 해도 대마도(對馬) 로 가는 배편은 여러회사가 있었으나 코로나로 2020년
4월 중단되었다가 23년 2월 25일 운항이 재개 되었으며.... 5월 5일 부터는
매일 운행 한다는데, 현재는 쓰시마링크호 와 니나호 NINA 두 회사가 운행중 입니다.
쓰시마링크호 는 425석으로 예전에 대아고속이 운항하던 오션 플라워호를 오사카를 오가는
크루즈 선박 회사인 팬스타가 매입해 이름을 팬스타 쓰시마링크호라 바꾼 것이고,
니나호 는 440석으로 미래고속 코비의 자회사로 있다가 독립한 스타라인이 운영하는 배입니다.
팬스타 링크호 는 쓰시마(대마도) 북섬 히타카츠(比田勝) 까지 1시간 10분이 걸리고 니나호는 하타카츠
는 1시간 30분 그리고 남섬의 이즈하라 는 아직은 운행하지 않지만 예전에 2시간 30분 이
걸렸으며... 요금은 왕복 성인은 18만원이고 유류할증료, 터미널 이용료 및 일본 출국세가 약간 있습니다.
니나호 예약 홈페이지
팬스타 쓰시마링크호 예약 홈페이지
https://www.panstarcruise.com/daemado/booking_step1_schedule.html
항공편은 서울에서는 김포공항에서 대마도공항(야마네코공항) 으로 직항편이 잠시 운항 되었습니다만....
현재는 서울에서 대마도로 직접 가는 항공기는 없으며 계획중인 소형 비행기 회사는 있는 걸로 압니다.
항구에는 작년에 우리가 탔던 관부페리 도 보이는데 저 배는 저녁에 부산항을 출발해
다음날 아침에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항 에 도착하고 귀국편도 시모노세키
항을 밤에 출발 다음날 아침에 부산항에 도착하는데 큰 배라 멀미 걱정은 없습니다.
패스트트랙 이라고 일본에 빠른 입국수속을 원한다면 Visit Japan Web 에 접속해서 관련 내용을 입력한후
QR 코드를 휴대폰 에 받아가면 좋으며 귀찮다면 꼭 하지 않아도 되니 조금 시간이 더 걸리는 정도
이고 2023년 4월29일 이후 입국시 백신접종증명서 또는 출국전 검사증명서의 제시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VJW 는 비행기 로 갈때 일이고 배를 탈때는 필요가 없으며, 드디어 배에 오른후 자리에 앉았는데
이윽고 9시 10분이 되니 출항을 하니 부산항을 뒤로 하고 동남쪽으로 달려서는 30분이
지나니 바로 대마도섬 사북쪽 땅 이 보이기 시작하니..... 참으로 일의대수(一衣帶水) 라고 할 만도 합니다.
일의대수 (一衣帶水) 는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는 뜻으로, 좁은 강, 해협(海峽), 또는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해 있음을 이르는 말이며 또는 겨우 냇물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을 이르는 말입니다.
一 : 한 일(一), 衣 : 옷 의(衣), 帶 : 띠 대(巾), 水 : 물 수(水) 인데.... 강이 흐르는데 강의 폭이
옷을 묶어두는 띠와 같은 정도라면 좁은 것을 부풀려서 한 말이겠으니 강의
양쪽 마을은 그만큼 가까운 이웃 이 될 수도 있고 아주 사이 나쁜 경쟁자 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건 라틴어 에서 유래한 말로 라이벌은 같은 강을 둘러싸고 싸우는 사람들 이란 뜻이니....
라이벌까지는 아니더라도 강물을 당겨쓰려는 농경사회에서 대안 마을은 늘 경쟁
관계일 때가 많았으니 조선에서는 아전인수(我田引水) 라, 돌팔매질로 싸우기도 했습니다.
일의대수 (一衣帶水) 란 성어는 당(唐)의 이연수(李延壽) 가 편찬한 남사(南史)의 진후주기 (陳後主紀)
에 나오는데, 사마(司馬) 씨의 진(晉)이 망하고 중국은 남북조(南北朝) 시대가 되었으니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북방에선 오호십륙국(五胡十六國) 이, 남방에선 한족(漢族) 나라 가 들어서 대립합니다.
이런 5호 16국의 혼란기를 통일한 사람이 북주(北周)의 신하였다가 선양받아 수(隋)
나라의 문제(文帝)가 된 양견(楊堅) 이었으며, 반면에 양자강의 남조는
진(陳) 이었는데 왕은 주색에 골몰하여 정사에는 관심이 없었으니 망조가 든 것입니다.
수나라 문제는 "진왕(陳王) 은 무도하게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이제 백성의 어버이로서 어찌 한줄기
띠와 같은 좁은 강물 (一衣帶水, 장강: 양자강) 을 겁내어 그들을 내버려 둘 수가 있겠는가?"
수나라 문제의 명에 따른 52만의 수나라 대군은 양자강을 건너 진(陳)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 합니다.
진(陳) 나라 왕 후주는 궁중의 우물 속에 숨어 있다가 군사들에게 붙들리고 진(陳)나라
는 33년 만에 망하고 말았으니 동진(東晉) 이후 송- 제- 양- 진 으로 이어져온
남조가 망한 것이며.... 589년 수(隋)나라는 드디어 중국 전체를 통일한 대제국이 됩니다.
일의대수 (一衣帶水) 의 또 다른 예는..... 한비자 는 중국 전국시대 대표적 법가이니 그는
이웃국가의 중요성과 관련, 저서 ‘한비자’ 설림편(說林篇) 에서 이런 비유를 들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을 구하려고 먼 월(越 항주) 나라 에서 사람을 청한다면 월나라 사람이
아무리 헤엄을 잘 친다고 해도 이미 늦고, 또한 집에 불이 난 경우 발해(만주 입구) 와
같이 먼 바다에서 물을 가져와 끄려고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다 해도 역시 늦습니다.
이처럼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한다 (遠水不救近火)’ 고 했듯 노(魯)나라가 이웃의 제(濟)나라 의
공격을 받는다면 진(晉)나라와 형(邢)나라 가 강국이라 해도 노(魯) 나라의 위난을 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목공 은 항상 제나라의 침략 을 받아 불안해지자 자신의 아들들을 제(齊) 와
대치하고 있는 초(楚) 와 조· 위· 한나라 로 보내 유사시에 도움을 얻고자 했으니....
위의 말은 목공의 이런 계산을 알아 챈 이서 라는 신하가 간언한 말로 일상생활에서 이와
비슷하게 쓰이는게 ‘먼곳에 사는 친척은 가까이 사는 이웃만 못하다 (遠親不如近隣)’ 가 있습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이웃끼리 친밀하게 지내야 하니 동양에서는 이를 일의대수(一衣帶水), 옷의 띠만큼 좁은
강이라는 말로 가까운 이웃국가를 표현하는데, 중국에서 생긴 고사성어이지만 대한해협 또는 현해탄
바다를 사이에 둔 한국과 일본도 일의대수(一衣帶水) 로 비유되니 임진왜란과 한일 병합 이 그러합니다.
1592년 3월에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 가 명나라를 치러 가니 길을 빌려달라 는 서찰
(실제로는 조선이 앞장을 서라는 글을 대마도주가 부드럽게 고쳤다고 함?) 을
동래부사에게 건네고, 부산왜관에 거주하며 무역하던 수백명 일본인들이 급히
도주한 것을 본 부산진첨사 정발은 절영도에서 군사 훈련을 겸한(?) 사냥 을 실시합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날 절영도로 사냥 을 나갔다가 일본 선단이 대마도에서 접근한다는 보고를 들었지만
처음에는 세견선으로 오해하여 경계하지 않았는데, 음력 4월 13일 일본군이 육지에 근접해 조총을
쏘아대자 그제서야 외침임을 알아차리고 부산진성 으로 돌아와 전선 3척을 자침시키고 농성 에 돌입합니다.
1592년 4월 14일 새벽에 영도에서 출항한 일본군 선발대가 부산진성 앞에 상륙해 1차 공격을 가하며
방비의 허실을 살피고 또 본대의 상륙을 엄호 한후 두어시간이 지나 본대가 상륙해
본격적인 공격에 나서자 불과 2시간 만에 성이 함락 되니 600명 군사와 2천여명 백성들은 몰살당합니다.
서쪽의 다대포진 군사들도 첨사 윤흥신 의 지휘 아래 14일 ~ 15일 이틀에 걸쳐 싸우다가
전멸했으며, 동래성에는 4월 14일 경상 좌병사 이각과 양산 군수 조영규, 울산 군수
이언성의 병력이 집결했지만 좌병사 이각은 성에서 나가 도주 했으며..... 4월 15일
동래성은 부사 송상현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전투 개시 2시간만에 너무쉽게 함락 됩니다.
경상 좌수사 박홍 은 겁에 질려 단 한척의 배도 띄우지 못하고..... 동래성 북쪽 소산역에 진을 친
5백명 밀양부사 박진의 군사들에게 갔다가, 적이 오기도 전에 되돌아와서는 좌수영의 대포
를 바다에 쳐넣고 배에 불을 지르고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라 서울의 부모처자를 피난
시키기 위해 혼자 말을 타고 서울로 도주하다가 추풍령 에서 수비하던 조선군에게 제지당합니다.
좌병사 이각은 울산 본영을 버리고 혼자 도주 하니 장수를 잃은 좌군은 회야강 전투에서 바로 무느져서
달아났고, 밀양부사 박진은 패했으며 우병사 조대곤 은 김해를 구한답시고 모은 병사가 2백명에
불과하니 성에 접근조차 못하고 달아났고.... 대구에 모인 제승방략 5만 대군도 총사령관인 이일 이
3백명 병사를 구하지 못해 사흘간이나 서울에서 출발을 못하는 사이 왜군이 북상하자 흩어져 달아납니다.
그런데.... 7월 8일 한산도해전 에서 일본군은 대선인 아타케부네 37척중 35척이 침몰하고 중선인
세키부네 23척중 20척 그리고 소선 고바야부케 13척중 5척이 침몰하고 수천명이 죽은데
비해, 조선수군은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25척에 가북선 3척,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23척
원균의 경상 우수영 7척 중에서 침몰당하거나 파손된 배 는 없고 전사자도 단 3명 에 불과합니다?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 도 일본군은 세키부네등 133척중 31척이 침몰하고 수십척이 파손되었고 수천명이
죽은데 비해.... 조선수군은 배는 침몰되거나 파손된게 전혀 없이 전사자는 단 2명 에 불과하며 그후 적진
깊이 홀로 들어갔던 안위의 배가 왜군에 포위되었던지라 물에 빠져 죽은 병사가 몇명 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군은 배가 수십척이 부숴지고 수천명이 죽었는데도 조선군의 배는 피해 가 전혀 없고 전사자도
2~3명 에 불과한 것은....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160명이 타는 크고 튼튼하며 높은 배로
군함 인데 비해, 일본군의 세키부네는 70여명이 타는 작고 약하며 낮은 수송선 이기 때문 입니다.
또 아군 배는 피해가 전혀 없이 전사자가 적은 것은 일본 조총의 사정거리는 100미터 이지만 조선 대포는
600미터에서 천미터 이니 3~400미터 거리를 유지한채 대포를 쏘면 아군 배는 전혀 피해가 없고,
일본 배는 조선 배에 접근조차 못하고 부숴지는 것이니 명량해전 초기에 조선수군이 겁을 집이먹고
12척이 뒤로 쳐졌을 때, 이순신 장군의 배 한척이 홀로 2시간 가까이 적군을 상대할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조선수군의 군함인 판옥선의 경우 원균의 경상좌수영이 50~60척, 이순신의 전라좌수영이 25척, 이억기의 전라
우수영이 35척이니 부산 박홍의 경상 좌수영은 30척 은 될것으로 보는데, 박홍이 판옥선 10척이라도 부산진
바다에 일렬로 늘어세운 다음에 400미터 거리에서 병사와 무기를 가득실은 700척 일본 수송선에 포격 했다면....
일본 배는 병사와 말에 무기와 짐을 가득 실은 700척 이나 되니 밀집대형이라 조준조차 필요없이
적선은 포격으로 침몰하면서 배에 있는 화기로 인해서 불이 났을 것이고..... 바람에 의해
옮겨 붙으면 저 일본 배들은 거의 파손되어 전멸하면서 부산 상륙 자체가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은 기습이 아니고 사전에 예고 되었으니 누구나 전쟁이 일어날줄 알았는데, 부산왜관의 일본인
들이 달아나는지라 침공시기 도 알수 있었으니.... 박홍이 탐망선을 여기 대마도 해역 으로 보내
바다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수군 함대를 부산 앞바다에 정열시켜 함포사격 훈련 이라도 했더라면.....
그런데 경상 좌수사 박홍은 여기 보이는 저 대마도에 대한 정보수집활동 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배를 한군데 모은 훈련 조차 단 한번도 한 적이 없고, 배는 예하 14군데 진(鎭) 에 골고루
분산 배치해 두고 있었으니..... 본영인 부산 수영(해운대) 에는 10척 미만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누구는 당시 조선수군의 매뉴얼이 전쟁이 나면 해전은 피하고 대포는 바다에 쳐넣고 배는
불질러 침몰 시킨후 수군 병사들은 육전을 하기 육지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으니,
경상죄수영 박홍과 경상우수영 원균이 전쟁이 터지자 바로 이 매뉴얼에 따랐다고 하는데.....
이는 믿을수 없는 말이니 전쟁이 나면 스스로 침몰시킬 배를 위해 평소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수군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 경상 좌수영 군사들이 부산진성과 다대포성 전투후 육지에서 단 한명의 왜군이라도
죽인 전투 실적이 전무 한데다가.... 원균도 배를 몰아 남해로 후퇴 하면서 이순신에게 6차례나 구원을 요청
했으며 5월 7일 옥포해전에서 원균이 6척 배로 이순신과 함께 일본군과 해전에 참여한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새에 손주등 7명 우리 가족이 탄 니나호 는 쓰시마(대마도) 섬을 돌아서 대마도
북섬 동쪽 에 자리한 히타카츠(比田勝) 항 으로 입항하는지라 배에서 내려 입국수속을 밟습니다.
1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으나 부산항을 9시 10분에 출항해 20분이 연착되어 11시 경에 히타카츠 에 도착했는데
파도 때문에 롤링과 피칭 이 있었지만...... 좋은 날씨에 멀미약까지 먹었던지라 고생하지 않고 도착 했습니다.
이제 터미널 바로 앞에 위치한 호텔 대마도 히타카츠 에 가방을 넣고는 점심후 40분 을 걸어서 미우다
(三宇田) 해수욕장 을 구경하고는 그 옆에 자리한 나기사노유(渚の湯) 에서 온천 을 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