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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영적 장자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라!”
+ 본 문 : 시 편 23장 1절 - 6절 (구약성경 818쪽)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 “잘 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면 잘 됩니다.” “믿고 기도한 대로 됩니다.”
오늘 주일 이 시간은 우리가 잘 아는 시편 23편의 말씀이 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영적 장자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라!” 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나라의 여행지의 여관이나 호텔에 가서 서랍장을 열어보면, 성경과 불교경전이 있습니다.
제가 엉뚱한 생각을 잘 하는 것 잘 아시죠? “아, 서랍 안에 예수님과 부처님이 함께 계시는구나!”
그리고 한 번은 호기심에 불경을 펴서 서문을 보았습니다. 보통 책의 서문에는 핵심적인 내용이 있거든요.
거기에 대단히 인상적인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외에는 어느 누구나 무엇을 의지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부처님이 해결해야 한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인간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구경에서 부처는 자기가 의지할 곳은 자기 자신 뿐이라고 말했고, 아함경이라는 불경에서는 내 자신을 믿고,
다른 사람들을 믿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무량수경이라는 불경에서는 네 스스로를 알라고 말했습니다.
불교의 말대로 내게 깨달음이 왔습니다. “아, 불교는 철저히 인간이 주체를 확립할 것을 가르치고 있구나.
그래서 백팔번뇌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스스로 고행을 통해 무의 경지에 이르는 부처가 되라고 하는구나.”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제가 그렇게 깨닫고 나니 감동이 왔습니다. 왜 감동이 왔느냐구요?
불교 경전의 핵심을 알고 나니까, 제가 알고 있는 성경의 복음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사람이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철저하게 인본주의 종교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닥친 모든 위기를 돌파하는 힘은,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신이 되고, 부처가 될 수 없고, 우리 스스로도 우리의 위기를 돌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우리 인생에 몰아닥치는 수없이 많은 위기는, 오직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을 통해서만 돌파할 수 있고,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요청을 바라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은혜받기를 원하는 시편 23편은, 가장 잘 알려진 성경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시편 23편은 양을 치던 목동에서 한 나라의 왕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 다윗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언제 이 시를 기록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시를 잘 이해하려면 그의 생애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에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요즘 세상은 머니머니해도 돈이 최고인데, 최근에 이 돈 때문에 ‘위기’ 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금융가의 부실 경영으로 인한 재정위기와 유럽의 그리스를 시작으로 몇 나라의 재정위기,
바로 이 재정위기로 인해서, 개인의 가정 경제위기, 불황으로 인한 직장과 사업의 위기는 물론,
국내적으로는 부동산침체 위기와 남북관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경영의 중요한 부분으로 위기관리 crisis management를 다룹니다.
이처럼 위기를 잘 관리할 필요성은 기업만이 아니라, 작게는 한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절대 필요합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우리 인생은 위기의 연속이기에, 위기를 잘 관리하게 되면 성공하는 인생이 됩니다.
위기라는 말은 위태함과 기회가 합해진 단어입니다. 즉 위기는 위태함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위기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 crisis의 어원은 헬라어 크리네인(krinein)입니다.
더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 말은 ‘병이 회복되거나 죽음에 이르는 분기점을 가리키는 의학용어’ 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위기란? 병이 걸려서 죽을 수도 있고, 기적적으로 살 수도 있음을 다 포함한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인생의 위기를 죽음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아니면 살림을 받는 기회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불교의 경전이 말한 대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여러분! 전혀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닥친 위기탈출의 열쇠는, 우리 인간에게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위기를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주저앉지 말고, 도울 자를 찾아야 합니다.
진정한 도움은 우리의 능력 바깥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보다 더 크신 분이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통해 위태함이 아닌 기회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기서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우리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함을 평생토록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났을 때에 책임져 주십니다. 믿습니까?
오늘 본문의 다윗의 고백이 담긴 찬양을 들어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라는 이 고백을 뒤집어 읽으면 “나는 연약한 양과 같습니다.” 라는 뜻이 됩니다.
이미 양들을 키워본 다윗은 “내 삶을 돌아보니 마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양들과 같구나.”
자기 자신을 힘이 센 사자나 곰이 아닌 양에 비유합니다. 생존의 문제로 늘 고민하는 연약한 양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힘이 센 사자입니까, 연약한 양입니까?
세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라는 두 부류의 사람이 따로 존재합니다.
비난, 허세, 흥분, 폭력성은 강자의 표현이며, 굽신거림, 수치심, 강박관념, 우울증은 약자의 모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폴 트루니에는, 이 땅의 모든 인간은 다 연약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연약한 우리 인간은 그 누구나 죄에 빠져 있고, 언제 패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단지 똑같은 위기들을 접하게 될 때, 강한 반응과 약한 반응이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이처럼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주십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연약한자라고 고백하지만, 조금 여유가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사자와 곰이 되고 싶어 합니다.
상추농사로 100억대의 매출을 올리는 농장경영인 류근모 씨의 “상추 C E O”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농사를 통해 좀 성공했다는 농업인들이 망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농사를 통해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다들 농사가 아닌 다른 것에 정신을 팔려서 망하더란 것입니다.
정치를 하거나, 방송에 출연하거나, 도박이나 쾌락에 빠지거나, 일확천금을 얻으려다가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도 농사가 아닌 다른 일에 잠시 외도를 했다가 곧 깨닫고, 그가 이렇게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초심을 잃지 말자. 나는 농사꾼이다. 좀 성공했다고 방송하고 강의하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든 인생은 연약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약함을 고백합시다.
사울 왕을 보십시오. 그가 위기관리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넘보지 말아야 할 것을 넘보았고,
약한 자이기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로서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의지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왕으로서 제사장의 직분을 넘보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하므로 스스로 강한 체 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떠나니 악령이 그를 미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에, 그 삶의 위기를,
오히려 성공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연약한 자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책임지십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고 나는 양입니다.”
우리 모두 평생 이 고백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갑시다. 그리하면 우리 인생의 위기는 성공의 기회로 바뀝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이름에 생명을 거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위기는 성공의 기회가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과 3절에는,
왜 부족함이 없는지 이유가 나옵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왜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까?
시편 23편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솔직하게 고백한 다윗의 인생에, 두 가지 위기가 풀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배가 고픈 위기 때에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심으로” 경제적 위기가 해결되었기 때문이요.
그리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므로” 영적인 위기가 극복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의 위기는,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서 생겨난 것들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에게는,
진짜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마음과 정신적인 문제, 더 심각한 것은 영혼의 문제가 위기로 다가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사람은 몸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몸속에 영혼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고 나는 양입니다.” 하는 고백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했더니,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육간의 위기 가운데 있는 자신을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므로” 영육간의 모든 위기를 다 극복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의 삶은 평탄한 인생이 아니라, 참으로 험악한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악령이 든 사울 왕이 죽이려고 쫓아다니고, 그래서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고, 망명지에서는 미친 척도 했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군에게 쫓겨 도망가면서, 배고픔과 창칼의 위협, 영혼의 피폐함의 위기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의 고백처럼 다윗의 생애는 한마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의 고난의 인생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다윗을 보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의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기가 조금도 없다는 그의 고백은, 인생의 위기는 찾아오지만 결코 좌절과 포기는 없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위기 앞에서 다윗은 어떻게 “나는 부족함이 없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고 외칠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이 오늘 본문 3절의 뒷부분에 있습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수없이 많은 위기 가운데서도 다윗을 성공과 승리로 이끌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이었습니다.
그가 소년시절 경험한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을, 그는 평생 확신하며 의지하였습니다.
다윗이 어린 소년 시절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간 형들을 면회하러 갔다가 처참한 광경을 봅니다.
여기저기 시체들이 뒹굽니다. 하늘의 독수리는 시체를 뜯고 있습니다. 그때 적군의 거인장수가 나서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놀리면서 하나님까지 저주합니다. “이 피라미 같은 이스라엘 군사들아.
덤벼라. 맞짱을 뜨자.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겁내는 이 찌질이들아 덤벼라.”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골리앗이라는 장수 앞에서 완전히 쫄았습니다. 그때 소년 다윗이 비장한 각오로 “내가 나가리이다.” 나섭니다.
그러자 큰형님이 군밤을 주면서 “전쟁이 장난인 줄 아느냐?” 고 야단을 쳤지만, 다윗은 왕 앞에 섭니다.
갑옷과 창검으로 무장한 골리앗을 돌팔매를 가지고 맞서겠다는 다윗의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다윗은 승리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돌팔매질을 잘 해서요?
아닙니다. 싸움을 하기에 앞서 다윗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지금 삶의 위기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셨습니까?
좌절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도 마십시오.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위기를 맞서 싸우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약속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아멘! (요 14:14)
지금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한 상황입니까? 무엇이든 구하면 응답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 누구도 내 마음을 몰라줍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 이름에는 큰 능력과 이김이 있습니다.
내 인생을 가로막는 골리앗도 주님의 이름 앞에 쓰러집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풀립니다.
내 모든 삶의 위기가 성공과 승리로 바뀌게 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잘 되고 있습니다.
셋째로, 영원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위기는 새로운 창조적 기회로 바뀝니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세 번째 법칙! 영원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다윗은 오늘 본문 4절, 5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멘!
다윗이 이 시를 쓰면서 생각한 원수는 누구였을까요? 자신을 죽이려고 한 미치광이 사울 왕일까요?
사울은 임금인 자신보다 더 인기가 많은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대를 삼천 명이나 뽑고, 직접 인솔했습니다.
한번은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그렇게 추격하는 사울을 피해서 어느 광야의 굴 깊은 곳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극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추격에 지친 사울이 잠시 쉬려고 바로 그 굴속으로 혼자 들어온 것입니다.
다윗의 참모들이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수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닙니까?
결행하십시오.” 그러나 가만히 듣던 다윗은, 잠든 사울의 겉옷자락만 베고 물러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왕을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됨이니라.”(삼상 24:6) - 여러분! 이 말씀이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다윗은 왜 자신의 최악의 위기상황을 최고의 기회로 바꿀 수 있는데도 실행하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금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볼 때마다, 죄 앞에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한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그가 분명하게 꿰뚫어본 원수의 정체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이 아니라 바로 죄와 죽음의 세력이었습니다.
다윗은 죄와 죽음이야말로 진정 우리 인생의 원수임을 깨달았기에, 장차 오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미리 본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고, 왕권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행 2:29-33)
이처럼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이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용서와 화해를 선포하므로,
장차 남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 왕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위기를 멋진 창조적인 기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위기탈출의 모습입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원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에게 닥친 삶의 위기도 여러분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기회로 바뀌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윗이 노래한 원수 앞에서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차려주신 잔칫상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신약의 성도들인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이라는 원수 앞에 베풀어주신 잔칫상 앞에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십자가 고난을 앞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상을 베푸셨습니다.
“먹으라! 이 떡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마시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바로 원수 마귀 앞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잔칫상을 맛보는 날이 바로 오늘 주님의 날입니다.
이 주님의 날에 이렇게 주님의 임재 가운데 예배에 참예하여, 주님의 말씀 잔칫상에서 주님의 살과 피를,
심령의 문을 열고 나눠 먹음으로, 저와 여러분은 죄와 죽음을 이기는 승리의 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은 물론 매 예배에 참예하여 은혜 받고 외쳐야 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멘!
한신대 학장을 지내신 고 김정준 박사가 마산 결핵 요양소에서 폐결핵 4기로 죽어가던 자리에서,
"나는 주님의 것이외다." 라는 유명한 시를 남깁니다. 목사님께서 어느 봄날 결핵 병동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방안에 들어온 나비가 창문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나비와 같이 한번 들어오면 살아서 나가지 못한다는 요양소 4병동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목사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갈 수 없는 절망에 갇혀 있는 나비를 불쌍히 여겨,
두 손가락으로 잡아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날려 보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네 힘으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핵이라는 병으로 인해 죽음 앞에 서있는 나비와 같은 너의 존재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너는 살 수 있다. 영원히 살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멘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늘문이 열리고 이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네 힘으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해결되지 않는 죄와 죽음이라는 위기 앞에 서있는 나비와 같은 너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너는 살 수 있다. 영원히 살 수 있다.” 여러분! 이 하늘 소리가 들립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앞에 닥친 인생의 위기의 자리에서도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멘! 그리고 우리는 외쳐 선포해야 합니다.
“아멘 주님! 능치 못함이 없으신 전능하신 나의 주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의의 길로 인도하소서!”
절망과 두려움의 삶의 자리에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나는 사나 죽으나,
영원하신 주님의 것이라는, 심장 뜨겁게 외치며 선포하는 이 고백이 우리 인생의 위기를 승리로 바꿉니다.
그러므로 위기의 연속인 굴곡진 인생길에서, 우리가 결론적으로 고백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다윗은 또 다른 시편인 139편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멘입니까? 아멘! (시 139:7-10)
이사야 선지자도 선포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아멘!
예수님도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멘!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인생의 위기 앞에서 두려워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어디에 거하든지 평생토록 반드시 동행하시겠다는 하나님을 힘입어 승리하시겠습니까?
내 삶의 모든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원하신다면, 다윗의 결론을 여러분의 결론으로 작정하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