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라 하는 요한
사도행전 15:36-41
37절에 ‘마가라 하는 요한’이란 이름이 있습니다. ‘마가’와 ‘요한’은 두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 이름이 둘입니다. ‘요한’은 히브리말로 ‘은혜롭다’는 뜻의 이름이고 ‘마가’는 라틴어로 ‘큰 망치’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성경에는 ‘마가’로 또는 ‘요한’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마가라 하는 요한’이라고도 합니다.
마가의 어머니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도록 방을 내어 주었고 ‘최후의 만찬’을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다락방’에서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라고 말씀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리아의 다락방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백이십여 명이 힘쓰 기도하여 성령 강림하시고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행1:14-2:4).
믿음 좋은 어머니 마리아와 아들 마가의 집은 예루살렘에서 부유했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은 초대교회가 시작된 곳으로 20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어 순례자들이 방문합니다.
‘다락방’이라고 하면 그 집의 천장과 지붕 사이에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은 120여 명이 모여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단층의 넓은 방입니다.(성지순례)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甥姪)이며(골4:10) 바나바는 마가의 외삼촌으로서 바나바와 마가의 어머니는 남매간입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교회 집사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박해하므로 교인들은 흩어졌으며, 일부가 수리아 안디옥에 모였고,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보내 가르치므로 안디옥교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리고 와서 일 년간 함께 큰 무리를 가르쳐서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행11:26)
크게 흉년이 들었을 때 안디옥교회가 부조한 헌금을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주고 마가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마가는 안디옥교회를 도왔으며(행12:25), 바나바와 바울이 제1차 선교여행을 갈 때 마가를 데리고 갔습니다(13:5).
그런데 도중에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행13:13).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마가가 돌아가므로 해서 바울은 크게 실망한 것입니다.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은 사명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로부터 선교사로 파송 받은 사명감이 있었으나 마가는 사명감도 없이 바나바를 따랐을 뿐입니다.
마가는 스스로 결단하고 신앙고백을 하고 믿게 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랐고 예배에 동참했을 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소명 받지 않은 마가는 사도들을 따랐으며 자기 마음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사명감 없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드는 일은 열심히 하지만 어렵고 힘든 일은 하지 않습니다. 고난이나 핍박을 당하게 되면 견디지 못하고 떠나 버립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고 선교여행을 갈 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두 사도의 함께 선교역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따르는 것을 보고 재미있었습니다.
사도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귀신도 쫓아내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병든 자를 고치는 것도 보았습니다.
바보에서 로마 총독이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받고 따르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적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바울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을 보고 마가는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간다고 할 때 마가는 그들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후에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는 바나바에게 바울이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38) 라고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바나바와 바울은 심히 다투게 되었고 더디어 두 사도는 피차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형과 아우처럼 좋은 관계이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이 개종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사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울이 사도 된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나바가 그들에게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사도가 된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다메섹에 들어가서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한 것을 사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바울은 제자들과 함께 있게 되었고 예루살렘을 출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해서 형제들이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다소로 보내 피신을 하도록 했습니다(9:26-28).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가르치므로 크게 부흥하자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서 다소에 있는 바울을 데리고 와서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일 년간 가르쳤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교회사에 있어서 초대교회의 모범적인 사도요 훌륭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런데 마가를 데리고 자고자 하는 바나바를 바울은 거절하므로 해서 두 사도는 크게 다투게 되었고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다투며 나누어졌지만, 그 후에 다시 만났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15:39)라는 말씀을 끝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다가 어디에서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를 견고하게 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나바와 함께 길리기아로 떠난 마가가 바울과 함께 로마 옥에 갇혔다고 성경에 말씀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4:10에 바울은 ‘나와 함께 갇힌 바나바의 생질 마가를 보낼터이니 영접하라’라고 골로새 교회에 편지했습니다.
빌레몬서 1:23,24에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나의 동역자 마가가 문안한다’라고 빌레몬에게 말했습니다.
바울은 임종을 앞두고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바울은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로 AD 67년경에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때 바울은 자기 옆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가를 보고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마가로 인하여 바나바와 크게 다투다가 서로 나누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마가는 서로 화해하고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함께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다했습니다.
마가와 바울과의 관계는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닙니다. 바울이 마가를 보고 ‘나의 일에 유익하였다’라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벧전5:13)라고 할 만큼 베드로의 전도사역을 마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종 들며 따랐습니다.
복음서에서 마가가 가장 먼저 쓴 ‘마가복음’을 ‘베드로의 복음’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마가복음서에 베드로가 행하였던 일들을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으로 교회를 섬깁니다. 교회와 주의 종들에게 실망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이켜 서로 주의 종으로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나 고난도 성도들과 함께하여 오늘의 ‘마가라 하는 요한’이 됩시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형제자매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오시는 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마가라 하는 요한과 바나바와 바울도 함께 만나서 영생합시다.
첫댓글 💖사람은 살아 가면서 되돌릴수 없는
이미 흘러간 시간을 가장 아쉬워하고 연연해 하는 반면
가장 뜻 깊고 가장 중요한 지금이라는 시간을 무심하게 소홀히 하기 쉽다고 합니다.
지나온 시간보다 오늘 지금 현재를 더 소중히 생각하는 하루였으면 하네요.
오늘도 건강 잘 챙기시며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행복한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잠 25:28).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