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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강해] 제1계명 (출20:1-3)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오늘부터 십계명을 강해하겠습니다. 이 시간은 제1계명입니다.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하신 1계명을 모르신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십계명이 있지만 첫 계명은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첫 단추에서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못됩니다. 다른 종교 믿으면서 도둑질하지 않는다고 하나님 백성일까요? 천만에입니다. 그래서 1계명이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계명입니다. 그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3절) 하셨는데 다른 신이 무엇입니까?
1. 잡신이 다른 신입니다.
사44:6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고는 다른 신이 없고, 모두 잡신입니다.계1:8.17.
고대 바벨론에는 약 700만의 다른 신이 있었습니다. 앗수르에게도 다른 신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데아 우르도 다른 신이 있었습니다. 태양신 샤마쉬(Shamach), 폭풍신 아다드(Adad), 아다드의 부인신 닌갈(Ningal)은 대표적인 신입니다. . 애굽에도 모세의 열 재앙에서 나오듯 다른 신들이 많았습니다. 그리스에도 제우스를 비롯해 약 3만의 신이 있었습니다. 로마에도 쥬피터 같은 신이 있었습니다. 인도에는 3억 3천만의 다른 신이 있고, 일본에도 800만 가지 다른 신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다른 신이 많습니다. 성황당신, 헛간신, 장독신, 조상신, 처녀 신까지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까지 있었습니다.
2. 다른 종교가 다른 신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종교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를 비롯해서 수많은 종교들이 다른 신입니다. 불교는 신을 인정하지도 않고 우리와 가르침도 다르지만 부처를 숭배하든 하지 않든 자신들의 교리를 절대화하기 때문에 다른 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 역시 다른 신입니다. 이슬람교는 알라가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이슬람교의 표식이 초승달임을 볼 때 그들의 신은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에서 믿었던 그 달신이지, 아브라함이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온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살던 갈대아우르나 하란은 달(月神)을 극성스럽게 섬기는 곳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달’이란 뜻이며, 그의 부인 "사래"는 달신(月神)인 「쉰」(Shin)의 아내 ‘사라투’에서 왔고, 그의 동생 나홀의 부인 "밀가"는 달신 「쉰」의 딸 ‘말가투’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의 가정은 본래 달신을 숭배하는 집안의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옛날 섬기던 그 신은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의 경전인 꾸란은 아브라함 이후 2000년 후에 무함마드가 제 맘대로 쓴 경전으로 2000년 동안 어떤 연관성도 없고 내용으로 볼 때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전혀 다른 신입니다.
3. 다른 신은 나 자신도 포함됩니다.
합1:11에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신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위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강하고 능력이 있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나약한 사람들만이 신이 필요하다..” 이런 건방진 소리를 합니다.
행12:21-23에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사람들이 높여주니까 자기가 신처럼 행동하다 급사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2천 명쯤 된다고 합니다. 허경영이도 자기를 신이라면서 하늘궁을 지어놓고 하나님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다른 신입니다.
마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돈일 수도 있고, 명성이나 성공일 수도 있고, 돈이나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자식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습니다. 윗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윌지 추기경은 “만약 내가 왕을 섬기는 것의 반 정도만이라도 하나님을 섬겼더라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외롭게 만드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했습니다. 우리가 돈사랑, 자식사랑, 자기사랑의 반만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한다 해도 이렇게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못한다는 것입니다.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하셨는데 이 명령 속에 들어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의미입니다.
사45:5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신 여호와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을 사람들이 신으로 만든 것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2.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입니다.
여기 “나 외에는” 이 말은 히브리어로 “알파니아”, “나와 대립시켜서”라는 뜻입니다. 마음속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은 하나님과 대립시키는 것입니다. 성도가 건축기술을 가졌어도 다른 신전을 지으면 안 됩니다. 다른 신을 위하여 음식을 차리거나, 다른 신에게 기도해도 안 됩니다.
“나 외에는”이란 혼합주의를 피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었다면 온전히 돌아서야 합니다. 타종교와 교류한다고 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리면 안 됩니다. 성도들을 지옥으로 인도한 큰 죄입니다.
솔로몬이 망한 것도 하나님과 우상을 혼합하여 섬겼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한 때 마니교에 깊이 빠진 적이 있었는데 마니가 만든 마니교는 예수 공자 그리고 조로아스터를 섞어서 마니교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잡신들이 활개를 칠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사람이 차지하거나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이것이 배도입니다. 종교 다원주의의 하수 단체가 WCC입니다.
3.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모두 1인칭이거나 2인칭입니다. 하나님은 지구상에 수십 억이 살고 있지만 일대 일로 말씀하시고, 일대 일로 상대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만 섬겨야 할까요?
하나님은 제1계명을 말씀하실 때 전제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2-3)
이처럼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우리를 억만 죄악에서 구원해 주시고 천국까지 예배해 놓으셨으니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밖에는 없고 하나님만 경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앞에 다른 신을 두면 안 됩니다. 다른 것을 사랑해도 안 됩니다. 어리석은 자처럼 하나님이 없다 해도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충분히 존경과 영광을 받으실 만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하나님만 최고로 높이고 사랑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2계명 (출 20:4-6)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偶像)이란 어떤 형상을 만들어 신처럼 떠받들거나 하나님보다 더 위하는 그 무엇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보면 우상이라는 의미는 다른 신 그 이사응로 상당히 포괄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계명이 담고 있는 주요 내용은 무엇일까요?
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보이는 하나님을 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 위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있는 그 시점에 모세가 속히 돌아오지 않자 답답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방황하게 그냥 내버려 두지 말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우상을 만들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바친 금목걸이 귀걸이 등을 받아 금 송아지를 만들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면서 그 앞에서 절하고 제사하며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걸 보신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전히 멸하려고 하셨는데, 여기서 볼 때 비록 하나님의 형상일지라도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닐지라도 숭배하고자 하는 어떤 것을 다 포함합니다.
4-5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먼저 우상을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송아지가 아니라 다른 것일지라도 우상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여기 하늘에 있는 것은 해 달 별 천사나 용이나 영물 조류, 땅에 있는 것은 사람 짐승 산 바위 나무, 땅 아래 있는 것은 어류 고래 악어 등으로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송아지, 부적, 장수하게 하여 달라는 거북이 형상, 복 달라는 금으로 만든 돼지는 하나님이 금하시는 우상입니다. 마리아상, 바울상도 성인에게 기도하는 카톨릭의 관점에서 볼 때 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십자가 자체를 우상으로 보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교인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우상화할까봐 강단에 금지하는 교단도 있습니다.
자녀가 우상은 아니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이 됩니다. 이처럼 우상은 분별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학자들의 설명을 참고하면, 가령 십자가를 자동차에 둘 때 사고 나지 말라고 걸어 두는 것은 우상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기 위해서 목걸이를 하거나 자동차에 달아 두는 것은 우상이 아닙니다.
사업장에 예배실을 만들 때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만든 것은 우상이 아니지만 예배실을 만들면 하나님이 복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든다면 우상입니다. 교회 교패를 대문에 붙이면 복이 온다고 생각하고 붙이면 그건 부적이요 우상입니다.
혹은 우상에게 헌금하거나, 우상 노래를 따라 하거나, 우상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공부하거나, 우상 축제에 참석하거나, 죽은 사람이나 조상 제사에 절하거나, 사주팔자 토정비결 손금 관상 궁합 보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 아무 쓸데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부적이나 우상을 소지하는 것도 금해야 합니다. 관광지의 상품도 우상이 새겨져 있으니 함부로 사지 마세요. 성도가 그보다 훨씬 강한 건 사실이지만 소지해서 좋을 리는 없습니다. 이방 종교 전파 효과나 사탄의 참소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 의료 선교하던 선교사의 간증인데 선교하다가 아내가 병이 들었습니다. 병명이 나오지 않아 미국의 큰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병명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아내는 이왕 죽을 바에는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선교하다가 죽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왔는데, 그때 영적으로 깊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선교사 부인 팔목에 걸려 있는 장신구를 즉시 발견하더니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난 것이냐?
마을에 사는 마술사가 준 장신구였습니다.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마술사는 예수 믿는 이들을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이들에게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그것을 주고 날마다 믿는 자들을 저주해 왔습니다. 선교사 부인은 그 팔찌를 빼내 산산조각을 내버렸습니다. 그 후 병이 거짓말처럼 나았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미신처럼 느낄지 모르지만 내 몸에 주술의 팔찌를 차고 있으면서 행복하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5-6절에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습니다.
고전10:20에는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했고, 시16:4에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했습니다.
사44:9-11에 “우상을 만드는 자는 -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했고, 시97:7에는 “조각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긍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했습니다. 만드는 자도 섬기는 자도 수치를 당합니다.
그 예로 야곱의 아내 라헬을 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우상 드라빔을 훔쳐 간 라헬이 복을 받았을까요? 라헬은 그 우상을 품고 있다가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을 때도 그 험한 에브랏 길에서 산고가 나서 베냐민을 낳다가 베노니를 외치며 고통 중에 죽었습니다. 라헬이 지은 '베노니'는 '슬픔의 아들' 을 뜻하며, 그러나 야곱은 그의 이름을 '오른손의 아들' 이라는 의미의 '베냐민' 으로 바꾸었습니다.
3. 2계명은 형상을 만들지 않았어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골3:5에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씀합니다. W.H. 훠드(Ford) 박사는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이 7가지라고 말했습니다. 1. 자연 우상 2. 건강 우상 3. 스포츠 우상 4. 과학과 학문의 우상 5. 쾌락 우상 6. 인기 우상 7. 돈 우상입니다.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세 자녀를 두고 다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유능한 사업가였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잘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5년 전부터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서 사업이 완전히 파산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 하는 일마다 되지 않았습니다. 한 채 남은 집마저 날라가 버렸습니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이제 거지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때 우연히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까닭없는 저주는... 이르지 아니 하느니라”(잠 23;2) 부부는 집안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가증한 것이 집안에 있으면 가증한 것이 올무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집안에 우상이 있으면 그 가증한 것과 함께 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집안에 가증한 우상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가증한 물건을 없애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하는 데 침실에서 무엇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서 가보고 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몇 년 전에 할아버지가 멕시코를 여행하다가 길거리에서 90센티쯤 되는 걸인 모습 조각 품을 사다가 선물로 주었습니다. 아주 정교하고 잘 조각하여 비싼 조각품이라 침실에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잘 조각된 거지상이었습니다. 귀중하게 간직하여 두었었는 데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쓰러져 깨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부부는 그 깨진 걸인상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완전히 부수워 버렸습니다. 그 순간 궁핍의 저주도 깨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사업은 번성기를 맞았습니다. 그 동안 잃어 버렸던 재산도 다시 찾았습니다. 가증한 우상을 집안으로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 보십시오. 그리고 가증한 우상이 발견되면 아무리 비싼 것이라 할 지라도 버려야 합니다. 우상을 가지고 있으면 괴로움을 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카톨릭에서는 우상을 섬기려고 2계명을 고의적으로 없애 버렸습니다. 성인을 숭배합니다. 마리아를 경배합니다. 교황을 하나님처럼 받들고 있습니다. 유골이나 천사를 높입니다. 그래서 카톨릭은 은혜가 없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 어떤 것도 우상 삼지 말고 안 보이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보이는 것처럼 섬기며 사랑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3계명 (출 20:7)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제3계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일까요?
1. 하나님 이름을 오용(誤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잘못 사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라고 불러야지 “하느님”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데, 하늘이라는 의미의 “하느님”이라고 부르면 하나님을 격하시키는 것으로 망령되이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상제, 천주교에서는 천주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잘못 번역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하느님 개념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의미를 담지 못합니다. 단군 신화에 단군의 아버지가 환웅인데 환웅의 아버지가 환인인데 환인이 “하느님”입니다. 단군도 1,908세까지 살다가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는데 다 하느님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다신론이고, 범신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국가도 본래는 “하나님”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하나님이라고 고쳐서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을 수많은 하느님 중의 하나인 분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이름을 바로 불렀지만 잘못 사용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업에 이용하여 돈 벌려고 한다든지, 선교도 안 하면서 선교기업 안 됩니다. 선교기업이라고 하면 모든 수익을 선교에 쓰고 사장은 최소한의 월급만 받아야 합니다.
십자군 전쟁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를 앞세우고 전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실수하거나 당황할 때 “o! my God!" 하고 습관적으로 외치는데 그만큼 신앙의 바탕에서 산다고 볼 수 있지만 좋은 습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용입니다.
2. 하나님 이름을 남용(濫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중얼중얼하면서 무심코 하나님을 부르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휴지가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이름이 적혀 있는 데 쓰레기통에 들어가거나 밟힐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합니다. 물론 경건한 마음을 넘어 그걸 율법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는 것도 안 됩니다. 마5:34에 경고하셨듯 재판에서 이기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가 됩니다.
3. “하나님”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도 해당됩니다.
망령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솨우”(shau)입니다. 이는 헛되다, 거짓되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나 하나님을 같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만 부르는 것도 망령되게 하는 것의 범주에 듭니다. 그때는 최소한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4.“하나님” 이름 도용(盜用)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렘23:30에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렘23;30). 예를 들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자기라고 하고, 성경의 예수님을 자기라고 하는 사이비 이단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름을 도둑질하는 자들입니다.
혹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도용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주장하는 무신론,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는 진화론, 자기가 하나님의 대행자라고 외치는 교황론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 이름을 자기 유익을 위하여 이용(利用)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6. 하나님 이름 악용(惡用)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점치는 데 사용하거나, 마술하는 데 사용하거나, 문학작품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서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나님이 있다면 이럴 수가 있을까?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7. 하나님 이름 혼용(混用)하는 것도 금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신들 이름 중에 하나로 부르는 것이 혼용입니다. 예수님을 4대 성인 중에 하나로 보는 것도 혼용입니다.
8.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하여 영화, 유모어, 소설 등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제로 못된 농담하면 안 됩니다. 뉴우턴은 말하다가도 하나님이란 말을 하게 되던가 하나님이란 말이 들리게 되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들었다고 합니다.
구약 성도들은 성경을 쓰다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붓을 빨아서 새로 썼습니다. 혹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아도나이 “주”라고 대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의 이름은 존귀히 여겼습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에는 사람들이 죄 없는 줄로 함부로 쓰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누가 자기 부모의 이름을 가지고 웃음거리로 삼거나 비아냥거린다면 듣기 좋습니까? 손하의 사람이 함부로 존칭 없이 부모 이름을 부르면 좋던가요? 어디서 그따위 소리냐고 혼내겠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레24:16에 “주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모든 회중이 분명히 그를 돌로 칠지니라.”했습니다.
문학가 세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칼라반,Calaban)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에 한 노예가 주인에게 대들면서 말합니다. “주인님이 말을 가르쳐 주셔서 지금 나는 주인님을 어떻게 저주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주인이 말을 가르쳐 주었더니 그 말을 가지고 주인을 저주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괘씸한 일입니까?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어를 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주셨는데 이걸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컫는다면 큰 범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지으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해도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이름의 본질을 변질시키거나 격하하거나 조롱거리로 삼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4계명 (출 20: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영국 재상 디스레이라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중에서 최상의 선물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천국의 예표요 예수 안의 참된 평강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에는 안식이 없어요. 천국에만 있어요.
에덴동산은 평안한 안식이 있는 하나님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금단의 과실을 따 먹은 후 안식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불쌍히 보시고 마지막 아담이신 독생자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 안에 참된 안식이 있음을 알리시기 위하여 안식일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제4계명은 십계명중에서 가장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도 조금 더 깁니다. 4계명은 하나님을 위한 마지막 계명이면서, 또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접촉점이 되는 계명으로 중요한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1. 쉬면서 지켜야 합니다.
10절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다른 일군들은 일하는데 예수 믿는 집 머슴은 주인과 같이 깨끗한 차림으로 교회 간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면서도 세경은 세경대로 다 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창2:2에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대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이날은 하나님도 쉬신 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땅히 쉬어야 합니다.
소련에서 공산 혁명을 일으킬 때 주일을 없애고 10일 만에 하루씩 쉬게 했습니다. 그런데 능률이 오르지 않아서 다시 일주일에 하루씩 쉬게 했다고 합니다. 요즘 주 5일째, 그러나 이틀 쉬지 말고 하루는 무엇을 하든지 해야 합니다.
2. 복이라 생각하며 지켜야 합니다.
출20:11에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날은 복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복이십니다. “복”은 헬라어로 ‘마카리오스’로 성경의 용례를 보면 딤전1:11의 “복되신 하나님”, 딤전6:15에 “하나님은 복되시고” 했듯 하나님이 복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이 복으로 다가오십니다. 반면 주일성수하지 않으면 한 달도 가지 못해서 복되신 하나님은 떠나시고 사탄이 시험을 가지고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키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지켜 주었다.”
3.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출20:11에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여기 “거룩”은 ‘하기오스’인데 구약에만 380번 가량 나오는데 “불결한 곳에서 빼내어 하나님께 성스럽게 바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반 행사나 오락이나 그런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국가에서도 이날 시험을 친다든지 그래서도 안 됩니다. 주일에는 음식점에도 가지 말아야겠습니다.
사58:13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링컨은 말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남녀는 하나님께 성경과 교회와 안식일을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절대 없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것이 쇠퇴한다는 것은 국가의 힘이 쇠퇴한다는 징조입니다.”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4. 준비하며 지켜야 합니다.
출20:9에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 앞에는 6일간은 힘써 일하라는 말씀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준비하면서 지키라는 것입니다. 계획을 짜더라도 주일을 피해서 짜야 합니다.
제2차 대전 때 히틀러는 말했습니다. “너희는 예배드리는 시간에 대포알 하나라도 더 깎아야 살 수 있다.”면서 주일을 무시하다가 크게 망했습니다. 지금 현재 안식일을 지키는 나라 치고 강대국이 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반면 안식일이 없는 나라는 얻어 먹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5. 목숨처럼 생각하며 지켜야 합니다.
출31:14-15에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하는 것이 발견되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민15:35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찌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찌니라”(민 15:35)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현대에 적용하면 주일을 목숨처럼 귀히 여기라는 교훈과 아울러 주일성수하지 않으면 교인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6. 하나님 백성의 표로 알고 지켜야 합니다.
출31:16-17에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무지개가 홍수로 이 세상이 멸망되지 않을 것이라는 표징이듯,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표입니다.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표시가 됩니다. 그래서 주일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져 자동으로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게 됩니다.
7. 모두 함께 지켜야 합니다.
출20:10에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했습니다.
8. 참 안식을 누리면서 지켜야 합니다.
히4:9-11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찌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제7일 안식일은 예수 안에 영원한 안식이 있음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주시는 평강인 참 안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경건하게 은혜 생활하는 것이 진짜 안식일을 지키는 의미입니다.
8. 필수 인원은 봉사하면서 지켜야 합니다.
마12:8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 없는 안식일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예외가 있습니다. 마12:5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했듯이, 주일에는 목회자들이 더 열심히 봉사해야 합니다. 성도들도 교회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합니다.
만일 주일이라고 발전소가 쉬고, 휴전선을 지키는 군인들이 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안식일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일은 해도 됩니다. 그렇다고 예배를 안 드리면 안 되고 다른 시간을 택해서 드려야 합니다. 신약시대로 들어와서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문제에 대해서는 오늘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안의 안식을 누리는 것도 생명처럼 중요하고 주일성수도 생명처럼 중요합니다. 인간의 꾀 다 버리고 성경이 말씀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안의 참된 안식과 주일성수 잘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은혜와 복을 온전히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5계명 (출 20:12)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잘 아시는 대로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위한 계명입니다. 5계명부터는 사람을 위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위한 계명 중에서 첫째가 부모 공경의 계명입니다. 부모 공경의 계명이 첫째인 것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다른 계명도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왜 부모를 공경하여야 합니까?
그 이유는 천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맺어 주신 관계입니다. 다음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자식은 없습니다. 다음은 돌보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핏덩이 같은 내가 이렇게 장성한 것은 하나님 은혜지만 부모의 공로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부모를 돌볼 차례입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부모답고 답지 않고는 둘째입니다. 가문이 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효도해야 자녀도 효도합니다. 그리고 내가 잘되고 장수하기 위해서입니다.
2. 부모를 어떻게 공경하여야 합니까?
존경해야 합니다. 여기 “공경하라”란 원어로 “카바드”, 카바드라는 말은 “가장 존귀하게 생각하다”“존경하다”“명예를 얻다”라는 뜻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몸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간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몸의 장기가 천 냥이라면 간은 900냥이라. 간만큼 부모를 귀중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명예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카바드에는“명예를 얻다”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잘 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 때문에 애굽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요셉이 17살에 팔렸지만, 총리가 된 요셉은 17년간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랑한 만큼 아버지를 기쁘게 했습니다.
잠23:24-25에는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여러 방법 중에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올바로 자라서 의롭고 지혜로울 때라고 말씀합니다.
고대의 ‘은중경’이라는 책에 부모의 은혜가 무엇인지 적혀 있습니다. 나를 낳고 키워주신 은혜, 해산할 때 고통 당한 은혜,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서 먹이시는 은혜, 마른자리에 뉘우시고 자기는 젖은 곳에 눕는 은혜, 젖을 먹여 길러주시는 은혜, 깨끗하지 않은 것을 씻어 주시는 은혜, 자식이 멀리 나가면 걱정하여 주시는 은혜, 자식을 위하여 수고하는 은혜, 그리고 끝까지 염려하시는 은혜라 했습니다.
그리고 순종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골3:20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엡6:1에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했습니다.
3. 부모를 공경하면 어떤 복이 약속되어 있을까요?
1) 형통의 복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복과 같습니다. 신5:16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부모에게 잘하는 이가 나라의 왕에게도 잘할 수 있다고 여겨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할 때 효성을 보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축복받은 이중에 하나가 강철왕 카네기입니다. 그는 내의가 한 벌밖에 없었습니다. 밤늦게 돌아오면 어머니가 빨아서 밤새 말려서 다음 날 아침에 입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카네기는 그 어머니에게 최선의 효도를 다했습니다. 22살에 카네기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약속하였습니다.
“어머니! 제가 이제 성공하여 어머니에게 좋은 차를 사드리고 좋은 옷을 입혀 드리며 하인을 두어 어머니를 생전에 평안하게 하여 드릴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어머니가 이 땅에 살아 계신 한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효도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강철왕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큰 돈을 벌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50이 넘도록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결혼을 권하여도 듣지 않았습니다. 52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그는 52살에 결혼하였습니다.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효도하는 그를 하나님은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2) 장수의 복입니다.
본문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엡6:2-3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던 반역한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도망하다가 상수리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려 젊은 나이에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다가 가장 형통하고 평안하고 가장 장수한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의 향년은 180세였습니다(창35:28).
4. 거역하는 자녀가 받는 벌도 있습니다.
신27:16에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경홀히 여긴다는 것은 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잠28:24에는 부모의 물건을 훔치는 자도 도둑이라 했고, 잠30:17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했습니다.
부모를 모독하는 자에 대해서도 마15:4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신21:18-21에 보면 부모의 훈계를 듣지 아니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 겔22:4-7에는 부모를 경히 여기는 자는 조롱거리가 되리라, 레20:9에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 했습니다.
현대에 적용해 보면 출교시켜야 할 죄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은 말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녀는 괴물이다.” 우리가 생각도 못해 본 말이지만 그 말이 맞습니다. 그 사람은 분명 괴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신 가상칠언 중에 한 마디가 효도의 말이었습니다(요9:26-27). 그만큼 죽으시면서까지도 어머니를 사랑하셨습니다. 율법의 시대가 지나고 복음의 시대가 되었지만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은 그 율법의 정신입니다. 보이는 부모도 못 섬긴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어떻게 섬기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부모를 공경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6계명 (출 20:13)
13 살인하지 말라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지니라”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하루 평균 약 60명이 살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큰 나라이고 총기를 소지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하루 평균 2명 정도 살해되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우리도 모르게 무수한 살인죄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살인에는 다음과 같은 살인이 있습니다.
1. 고의적 살인과 비고의적 살인이 있습니다.
분노, 증오 때문에 계획적으로 살인하는 것을 고의적 살인이라고 합니다. 비고의적인 살인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서, 혹은 수술을 하다가 실수로, 혹은 도끼질을 하다가 도끼날이 빠져 옆 사람을 죽였다면 이것이 비고의적인 살인입니다. 이 경우 구약에는 도피성을 세워 구제해 주거나, 오늘날도 정상을 참작하여 형량을 줄여 주지만 하나님 앞에서 살인은 살인입니다.
2. 직접 살인과 간접 살인이 있습니다.
살인할 마음으로 흉기나 주먹으로 사람을 죽였다면 직접 살인입니다. 부정식품 제조, 마약 생산이나 판매, 위험한 것을 표시하지 않거나 차단하지 않아 사람이 죽은 것, 기업주가 복지에 신경을 쓰지 않아 사원들이 공해로 죽었다면 이것도 살인입니다. 폭탄을 연구하고 제조하는 것도 살인이고, 영화나 뉴스를 보면서 마음으로 살인에 가담했다면 살인입니다.
농산물을 생산 유통할 때 농약 잔류로 사람들이 서서히 병들어 죽는다면, 혹은 남의 돈을 떼어먹었더니 화가 난 그 사람이 홧병으로 죽었다면 그것도 간접 살인입니다. 미국에서 아이들이 장난삼아 도로의 진입금지판을 떼어 버렸다가 어떤 운전사가 진입하였다가 빠져 죽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살인죄로 기소되었고 중형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3. 금지된 살인과 허용된 살인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살인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허용된 살인도 있습니다. 전쟁하다 적을 죽인 경우입니다. 어거스틴은 전쟁을 의로운 전쟁과 불의의 전쟁으로 구별하면서 의로운 전쟁이란 적어도 자기방어를 위하여 적을 죽이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라 해도 민간인을 이유 없이 죽이면 안 됩니다. 이건 전쟁범죄에 들어갈 뿐 아니라 큰 죄악입니다.
다음은 사형수의 형을 집행하는 경우도 허용된 살인입니다. 사형제에 대한 토론이 분분하지만 율법에는 허용된 것이었습니다. 롬13:4에 보면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했듯이 신약에서도 하나님 공의의 실현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안락사는 살인인가?
안락사(安樂死,euthanasis)는 살 가망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편안한 죽음에 이르게 하여는 것이 안락사입니다. 다른 말로 “자비 살해(mercy killing)”라고 말하는데 과연 자비로운 살인일까?
요즘 버튼을 누르면 고통 없이 5분 안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 캡슐'이 스위스에서 사용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자살 캡슐 '사르코'(Sarco)는 자신이 버튼만 누르면 캡슐 내부에 질소를 주입해 산소 농도를 0.05%로 낮춰 사용자를 빠르게 사망에 이르게 하는 장치입니다. 이 때 사용자는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사망 전 약 5분 동안 무의식 상태에 머물다가 떠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생명을 스스로 끊을 권한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살인입니까?
1. 남을 죽이는 것이 살인입니다.
그리고 낙태도 살인입니다. 우리나라는 일 년에 60만 명이 태어나는데 낙태는 150만 명입니다. 어마어마한 살인입니다. 애굽에서 바로 왕은 이스라엘 아이들이 태어나면 죽이라고 하였지만 산파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출1:15-21).
2. 자살도 살인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지 자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가 자살했는데 이는 살인죄입니다. 3. 미움도 살인입니다. 요일3:15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인류 최초로 가인이 아벨을 죽였고(창4;8), 가인의 5대손 라멕도 살인자였습니다.
창4:23에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했듯이 자기 몸에 상처를 입혔다고 마구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마음의 상처로 인해 얼마나 마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살인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1. 손으로 살인합니다. 요압이 칼로 아마사를 죽였습니다(삼하 20;10). 2. 마음으로 살인합니다. 그러므로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3. 혀로 살인합니다. 혀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격려의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4. 붓으로 살인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일 때 죽이라는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삼하11;15).
5. 음모로 살인합니다. 가짜 증인을 만들어 모함해 죽이는 것입니다. 6. 독약으로 살인합니다. 7. 이방신이나 미신 등으로 살인합니다. 자기 신에게 예물로 바치기 위해 자녀를 죽입니다(신18:10-11).
8. 남을 죽이는 데 동의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 주변 사람들이 동의하여 같이 죽였습니다(행22:20) 9. 권세로 살인합니다. 10. 유도적인 살인도 있습니다. 이번에 조 바이든이 "트럼프를 과녁 중앙에 놓아야 할 때" 라는 살인을 유도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20세의 혈기방장한 청년이 연설하는 트럼프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살인하는 이유가 뭘까요?
욕심 때문에, 약4:2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했습니다. 복수하려고, 증오심 때문에, 혹은 무지하기 때문에 살인합니다. 무지하고 무식한 나의 잘못 때문에 나와 남이 죽는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육신의 살인만 말했지만 영혼을 죽이는 그 죄는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살인의 결과는 우엇일까요?
계21:8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살인이라도 있다면 회개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일본의 내촌감삼 선생은 말했습니다. “원수가 마음의 피스톨을 겨누면 너는 사랑의 대포를 쏘아라. 원수가 미움의 독배를 주면 너는 사랑의 홍수를 내려라.” 그러기 위하여 우리 모두 더 큰 은혜를 받아 마음으로든 간접으로든 살인하지 말고 예수님 마음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가장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계명 강해] 제7계명 (출 20:14)
14 간음하지 말라
십계명중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몸을 가졌기에 항상 조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인류 역사상 타락했다 하면 타락의 대명사가 바로 성적 타락이었습니다. 이처럼 타락의 중심에는 언제나 간음죄가 있었습니다.
눅17:26에 주님은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TV, 책, 신문, 인터넷등 온통 섹스에 대한 기사가 없으면 팔리지 않고 보지도 않는 시대가 되었고, 국회에서는 간통죄를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는 성적 타락이 더욱 심할 것이며, 그것 때문에 멸망할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간음입니까?
1.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것이 간음입니다.
레20:10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0;10) 했습니다. 이처럼 여자가 다른 남자와 관계하는 것이나 남자가 다른 여자와 관계하는 것이 간음입니다.
레위기 18장에는 가나안 사람들의 온갖 성적 범죄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동성연애, 근친상간, 짐승과 관계 등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경고하시는데 만약 가나안 원주민들처럼 너희도 타락하면 그들처럼 가나안에서 쫓겨나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2.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입니다.
마5:28에“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킬 뿐 아니라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포르노 비데오, 음란 서적, 음란 잡지, 영화, 만화, 연극, TV의 불량 프로 등을 가까이하지 않아야 합니다. 단정하지 못한 사진을 붙여 놓는 것도 간음입니다. 그런 것들이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간음을 피하는 법은 무엇일까요?
간음죄의 가장 문제는 인간의 본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젊으면 젊을수록 더 큰 시험이 됩니다. 그러므로 간음죄를 짓지 않으면 여러 방향에서 지혜가 고려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고전6:13에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몸으로 죄짓지 않고 주를 위해서 살면 하나님이 몸을 위해주시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두려워하시기를 바랍니다.
2. 기도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시51:10에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3. 범사에 지혜로워야 합니다. 고전7:1-3에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결혼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했습니다. 남녀가 가까이하다 보면 정이 들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부부가 서로 의무를 다하라는 것은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 적절히 다스려야 합니다.
음식도 지혜로워야 합니다. 아이들을 날마다 고단백으로 먹이고 조심하라고만 한다면 감당하기 어렵게 됩니다. 혹은 일에 몰두하거나 스포츠나 여가 선용, 취미생활 등으로 성적 억압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좋습니다. 다윗이 범죄했듯 집에 가만있으면 잘못된 생각이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음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1. 몸이 심판을 받습니다.
고전6:18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그래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치시고 그 생명까지도 불러버리십니다.
고전10:8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간음하다가 하루에 23,000명이 죽었다고 하면서 우리의 본으로 기록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히13:4에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했습니다.
계2:22-23에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고전3:17에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했습니다
2. 영혼이 망가집니다.
잠6:32에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삼손이 기생과 사랑에 빠졌다가 두 눈이 빠지고 나중에는 죽었는데 이처럼 세상 사랑하면 우리 신령한 눈도 어둡게 됩니다. 믿음도 다 털어버리고 맙니다. 우리 심령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잠5:3-6) 했습니다.
3. 가족이 망가집니다. 재산도 낭비됩니다. 잠6:26에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간음에 대한 해악 몇 가지를 보면 “마음을 흐리게 하여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한다. 사후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학업을 진취하게 행하지 못하게 한다. 낮잠을 즐기게 되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마음이 더러운 마귀의 처소로 전락한다.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했습니다.
고전6:9에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반면 주님을 위하여 참으면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귀한 상이 될 수 있습니다. 눅2:36-37에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딛2:11-13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늘 근신하여 깨여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는 거룩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계명 강해] 제8계명 (출 20:15)
15 도둑질하지 말라
십계명 중 제8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속담에도 도둑질에 관한 속담이 많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늦게 배운 도둑 날 샐 줄을 모른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 두둑 맞고 사립문 고친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놈이 없다. 본 놈이 도둑질한다.’ 는 등의 속담입니다. 도둑질에 관한 속담이 많은 것은 그만큼 도둑질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도둑질이 무엇일까요?
한문으로는 절도죄라고 합니다. ‘도둑질한다’를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가나브”(Ganab)입니다. 이 말은 ‘가져가려고 옆으로 밀어 놓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슬쩍으로든 공개적으로든 도둑은 도둑입니다.
재미 있는 건 탐심을 원어로 마음의 도둑질이라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마다”, 헬라어로 “에피뒤메일”이라고 하는데, 두 말 모두 남의 것을 불법적으로 바라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도둑질이 “탐심”입니다. 토마스 왓슨이라는 목사는 소유에는 하나님의 소유, 이웃의 소유, 그리고 자신의 소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관계를 함부로 침범하는 것이 도둑입니다.
도둑질이 무서운 것은 도둑질은 습관이 들면 고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 탐심인데 사탄이 이 탐심을 가만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아담과 하와에게 마귀가 선악과를 가지도록 유혹하였습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에도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사탄이 가득하여 성령을 속이고 감추었습니다. 도둑은 물건만 뺏는 것이 아니라 생명까지 노립니다. 요10:10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말씀하셨습니다. 여리고로 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다 빼앗기고 거반 죽게 된 것을 버리고 갔습니다.
도둑질에는 여러 종류의 도둑질이 있습니다.
물질의 도둑질이 있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도둑질이지만,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외상으로 물건을 사고 갚지 않거나 잊어버리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뇌물을 받는 것, 도박으로 돈이나 재산을 따는 것, 세금을 떼어먹는 것, 규정된 요금 이상을 요구하는 것, 바가지 씌우는 것, 부모 몰래 재산을 처분하는 것, 노동력을 착취 혹은 사주에게 지나친 요구도 도둑입니다.
시간의 도둑질이 있습니다. 주일성수하지 않는 것도 시간의 도둑질입니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것도 시간 도둑질입니다. 빈둥대며 노는 것도 시간 도둑질입니다. 지나친 적용 같지만 남의 시간을 빼앗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인도의 간디가 회의를 하는데 한 사람이 20분 늦었습니다. 이때 간디가 말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독립이 20분 늦어졌소” 그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미국 백악관에는 한 소녀가 보내온 돈과 편지가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 아저씨! 집에 온 편지 우표에 도장이 찍히지 않아 떼어 썼는데 양심의 가책이 되어 우표 값을 보냅니다.” 이것이 미국의 양심이라며 백악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명예 도둑질이 있습니다. 남의 명예를 이용하여 자기 이득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 도둑질이 있습니다. 표풀리즘(populism)이라 하죠 인기영합주의입니다. 나라가 어찌되든 돈을 나눠주어 백성들의 마음을 사는 것입니다. 삼하 15장을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추종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온갖 선심으로 도적질했다고 했습니다(삼하15:6).
사람 도둑질이 있습니다. 유괴하거나 인신매매도 도둑질입니다. 천국 가야 할 영혼을 불신과 세속과 이방종교와 이단으로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은 영혼 도둑질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도 영혼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도 있습니다. 헌금하지 않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말3:9에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다 하셨습니다. 십일조만이 아니라 나머지 9도 낭비하면 도둑입니다. 날 도둑질도 있습니다. 주일성수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도둑질도 있습니다. 렘23:30에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이라 하셨습니다. 교주들이 많이 쓰는 수법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말인 것처럼, 혹은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쓰는 수법으로 자기 말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하는 것도 말씀 도둑질입니다(겔13:16). 하나님의 성물을 도둑질하거나,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터로 만들어도 안 됩니다.
도둑질하면 어떤 결과를 있을까요?
렘2:26에 수치를 당한다 했습니다. 출22:1에는 몇 배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렘7:9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 수7:25에는 도둑질한 아간에게 그랬듯 반드시 형벌을 주십니다. 슥5:3에는 저주를 받는다. 출21:16에 사람을 납치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고전6:10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도둑질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족한 줄 알며 살아야 합니다. 딤전6:6-8에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자라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딤전6:9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야게의 아들 아굴의 기도와 같이 부하게도 마옵시고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필요한 양식으로 먹여달라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어느 재벌이 밤낮 돈 걱정하였습니다. 그걸 본 한 사람이 “나는 당신보다 훨씬 잘사는 사람입니다. 난 돈은 많지 않지만 돈 걱정도 하지 않고 늘 만족하면서 여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불의한 자와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잠1:10에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그랬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6:9), 물질 소유가 죄가 아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죄가 아니지만 탐심 이기심 교만 잘못 사용함 등이 죄입니다. 우리가 많이 가졌다면 복 받은 것이 아니라 사명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은 결코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메뉴는 다르지만, 하루 3끼 먹고 삽니다. 너무 부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굶어죽도록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떤 일이 있어도 소유의 한계를 넘어가지 말고 물질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멋있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계명 강해] 제9계명 (출 20:16)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십계명의 제9계명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촌사람이 서울역에 내렸는데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을 보고 놀라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얼 해 먹고 살아요?” 건물만 가득한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고기를 잡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의문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서로 서로 속여 먹고 살고 있지요.”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조사 대상자의 91%가 주기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5명 중 한 명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부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들이, 노인보다 젊은이들이, 백인보다 흑인이, 개신교인보다 카토릭 교인이, 직장인보다 실직자들이, 부자들보다 가난한 자들이 거짓말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거짓말을 연구해보니 모두 864가지였습니다. 그중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중상모략이 있습니다. 남의 인격이나 행위에 대하여 일부러 나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중상하는 것은 혀로 짓는 살인죄”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없이 사실만 말한다면서 잘한 것은 두고 못한 것만 이야기하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쑥덕공론이 있습니다. 사실에 대한 확인이 없이 남의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잠16:28에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잠18:8에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잠26:20에는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이런 남의 말 좋아하는 말쟁이가 있으면 큰일 납니다.
훌륭한 사람일수록 말하는 주제가 다릅니다. 옛말에 ‘큰 사람은 사상에 대해서 말하고, 보통 사람은 시사에 대해서 말하고, 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남의 험담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쑥덕공론은 함부로 이 사람을 죽입니다.
아첨도 거짓말입니다. 아첨이 듣기에만 좋을 뿐 독입니다. 그래서 잠29:5에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잠26:28에도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했습니다.
과장이나 축소도 거짓말입니다. 사실을 부풀려 말하는 것을 과장이라고 하고, 축소는 줄여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해요.” 이건 주관적인 자기 느낌이지 객관적인 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실망시키려고 부풀리기를 잘하니까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인상을 주는 교묘한 말도 거짓말입니다. 어느 선원이 선장에 대한 원한을 품고 보복하려고 선원일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선장은 오늘 깨어 있었다”, 이 보고를 받은 상부에서는 오늘 말고는 매일 자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선원은 그다음 날 일기에 “3월 16일 금요일. 오늘 선장은 금주” 이 말을 들은 상부에서는 선장이 매일 술만 마시다 오늘만 금주한 걸로 알았습니다.
말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침묵하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증거를 숨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관에 신고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영적인 거짓말도 있습니다. 거짓 예언도 거짓말입니다. 렘14:14에 “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하셨습니다. 잘못 가르치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요일2:22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거짓 환상도 있습니다. 겔13:8에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환상이라고 다 진리는 아닙니다. 그래서 겔22:28에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겔22;28) 했습니다.
거짓 꿈도 있습니다. 렘23:32에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그랬습니다. 거짓 기적도 있습니다. 살후2:9에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기적이 사실일지라도 사탄의 기적은 영혼을 속이려는 거짓된 것입니다.
거짓 믿음도 있습니다. 살후2:11에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딤전4:1-3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모든 교회 지도자들의 혼인을 금지시킨 것은 사탄의 시험입니다.
거짓 경고도 있습니다(애2;14), 거짓 형제도 있습니다(고후11;26, 갈2;4). 거짓 맹세도 있습니다(호10;4). 거짓 그리스도도 있습니다. 막13:6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거짓 선지자도 있습니다. 요일4:1에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즘에는 일부 방송들이 거짓선지자 노릇을 합니다. 사실에다 거짓말을 섞거나 세속적인 풍조를 조작합니다.
거짓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때 가인은 뻔뻔하게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하며 하나님을 속일 때 하나님과 가인과의 관계는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악의적인 거짓말이 탄로되면 모든 좋은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맙니다. 옛날 아덴에서는 거짓말하는 사람은 시민권을 빼앗아 버렸다고 합니다.
자신과 자신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맬퀼퀸 박사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신용, 그의 인격 자체가 단 하나의 거짓말로 송두리째 무너지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입이 막히게 됩니다.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시 63;11), 아무리 교묘하게 거짓말을 해도 어디에서 탄로가 나더라도 난다는 말씀입니다.
거짓말하는 입술과 혀는 그 거짓이 드러날 날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시123), 그래서 계21:27에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계21:8에는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다윗은 시편15:1~4에서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말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랬습니다. 특히 법정에서 증인으로서 거짓을 말한다면 그것은 큰 죄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탄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면 사탄의 자식입니다. 마13:36~37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입술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진실을 말하고 진리를 말하는 참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계명 강해] 제10계명 (출 20:17)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오늘은 십계명 마지막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출20:17)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세부적으로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열 번째 탐심의 계명은 마지막이면서도 어쩌면 가장 어려운 계명입니다. 탐심은 죄악의 근원으로서 사람이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질문하는 부자 청년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은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눅18;22)
그런데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여기에 대해서 눅18:24-25에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셨습니다. 즉 그는 나머지는 다 지킬 수 있었지만 이 마지막 계명에 속하는 탐심의 문제에 걸려 주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W.H. 훠드(Ford) 는 그의 “십계명 강해”에서 탐심은 모든 계명을 파계하는 근본 원인이라 하였습니다. 1계명부터 10계명까지 탐심이 들어가면 다 파괴됩니다. 인간의 타락도 탐심 때문에 왔고, 다른신 우상 안식일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거도 다 욕심 때문에 범합니다. 그만큼 제10계명은 중요한 계명입니다.
1. 탐심을 버려야 할 이유는?
이익이 아니라 자신을 해하기 때문입니다. 딤전6:9-10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했습니다. 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하셨는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탐욕에 붙들려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구약에 아합도 궁중 앞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어서 왕후 이세벨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나봇에게 씌워 죽이고 그 포도원을 몰수하여 자기 소유를 삼았습니다. 그 결과 아합은 물론 그의 오므리 왕조가 예후의 칼날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2. 탐심을 가지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시험과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신7:25이나 딤전6:9을 보면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우리나라가 여러 문화를 함부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큰 올무가 될 것입니다. 가령 이 나라가 이슬람화되면 5.000만 영혼은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또 탐심을 가지면 인색해집니다. 신15:9에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인색한 것도 죄입니다.
다음은 불순종하게 됩니다. 삼상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다음은 도둑질하게 됩니다. 수 7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아간이 탐심으로 훔치다 아이 성 전쟁에서 지게 되었고 범인으로 색출 당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혹은 살인하게 됩니다(왕상21:15). 혹은 거짓말하게 됩니다(왕하5:25). 혹은 배반하게 됩니다(시10:3). 하나님을 시험하게 됩니다(시 78:18). 생명을 잃게 됩니다(잠1:19). 자기 집을 해롭게 합니다(잠15:27). 장수하지 못합니다(잠28:16). 혹은 다투게 됩니다(잠28:25).
혹은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렘17:11에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자고새는 알을 많이 낳아서 품는 습성이 있는데 심지어 남의 알까지 훔쳐 품는다는 당시의 속설을 예레미야가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자들을 자고새에 비유하였습니다. 탐심으로 얻은 것은 헛 것이라는 말입니다.
혹은 심판을 받습니다(렘6:12-13). 인신매매까지 합니다(암2:6). 장기적출하여 판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사형을 당합니다. 혹은 탐심 때문에 타락합니다. 미3:11에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친”고 했습니다. 이처럼 탐심이 지배하는 사회는 타락한 사회입니다.
혹은 조롱받게 됩니다(합2:6). 혹은 말씀의 결심을 맺지 못하게 됩니다. 막4:19에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혹은 믿음에서 떠나고(딤전6:10), 파멸과 멸망으로 간다고 말씀합니다(딤전6:9). 탐심이 인간을 저주와 멸망으로 끌고 가는 지옥의 사슬입니다.
3. 그럼 탐욕을 어떻게 버리는 걸까요?
전5:10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했습니다. 돈으로는 마음을 채울 수 없음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4:4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했고, 눅12:15에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셨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돈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약1:17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 온다 하셨는데 다른 곳에서 오는 줄 착각하고 슬쩍하면 안 됩니다. 순리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다음은 선한 청지기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딤전6:18-19에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상은 우리 마음의 양식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믿고 성령의 은혜를 크게 받는 것입니다. 은혜를 적게 받으면 안 됩니다. 크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다니엘을 가리켜 은혜를 크게 받은 자라 했습니다. 그랬기에 다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모셔야 할 자리에 탐심이 있다면 진실로 버리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하라 하셨는데 우리 마음의 성전에 무엇이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버리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더욱 말씀과 기도로 탐심을 버리고 복의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고 살아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