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떤 것을 낯설게 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무언가에 기여하고 결과를 확실하게 낼 수 있을 소재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그런 생산적인 고뇌는 살아가며 지긋지긋할 정도로 하게 될 테니 낯선철학하기의 과제물에서만큼은 정확한 답은 낼 수 없지만 늘 궁금했던 것에 대해 서술해보려 한다.
1446년 10월, 우리나라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날인 훈민정음 반포일. 어리석은 자라도 열흘이면 깨칠 수 있다는 과학적이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자인 한글이 가장 초기의 형태로 공개된 날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특별한 내용이 없더라도 그냥 한글을 읽는 것이 좋았고 지금도 좋아하는데, 어느 정도냐면 지금 내 방의 벽지 반 정도를 훈민정음으로 도배해놨다.
침대에 누워 벽지를 응시하고 있으면 대충 아는 한자를 때려맞추어 각 글자의 발생 원리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 기역, 모르는 한자, 그리고 그 밑에 어금니 아. 어디선가 기역을 발음할 때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떠 'ㄱ'이라는 문자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을 떠올린다. 그렇게 머리를 좀 쥐어짜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가고는 한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우리는 우리 고유의 문자 발명 전에도 의사소통을 했다는 것. 한글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때에도 사람들은 시장에서 흥정하고, 의견을 나누고, 길을 물으며, 욕도 했다. 이 모든 발화 상황에는 일정한 양식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서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패턴을 보였을 것이다. 물론 한글의 발명 전에는 한자가 있었다. 그것으로 글을 써 의사소통을 했다지만, 옛날 사람들이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구두로 할 때, '아애니'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그보다 더 이전에는 '우가우가' 정도였을까. 그런데 이 '우가우가'라는 표현조차 훗날 어림짐작으로 붙였을 뿐 당시 어떤 언어로 의사소통을 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돌이나 동굴 벽의 흔적으로 유추해볼 뿐이다. 우리는 기록된 것으로 과거를 그린다. 당시 그들이 정말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모습과 같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정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한글이 창제됨으로써 늘 하던 대화를 문자로 옮겨 적을 수 있게 되기 전, 그 문자화되기 전의 언어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우리가 지금 조선시대 말이라고 생각하는 그것 이전의 대화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문자로 옮길 수 없던 시절의 문법이라는 건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일까, 아니면 머리좋은 누군가가 나서서 문법 체계를 만들고 흐름을 선도했을까. 물론 언어학을 공부하지 않은 나는 그 답을 알 수 없다. 그저 닿을 수 없는 과거를 그리며 끊임없이 궁금해할 뿐이다.
가장 먼저 '안녕'이라는 말로 인사를 전하기 시작한 사람은 알았을까, 먼 훗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나아가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까지 '안녕' 하고 인사할 거라는 것을. 어쩌면 정말 공신력 있는 누군가가 나서서 '오늘부터 우리는 안녕이라고 인사할 겁니다' 했을 수도 있다. 그럼 더 전에는? 토기에 곡식을 담고 돌로 땅을 갈아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발전하고 발전해 훗날 이렇게나 체계적으로 정리될 것을 알았을까?
답을 내릴 수 없는 과거의 질문은 오늘날의 가능성을 낳는다. 언어의 시작은 아마 당장 눈앞에 거대 괴수가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사냥하거나 후퇴할 수 있을까,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고민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혹은 몸집을 불린 후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통솔해야 할지 고민한 산물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비범한 누군가가 어느날 자다가 번개를 맞고 신의 계시를 받아 시작한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일상의 작은 불편감과 그에 대한 고민,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 그 작은 의지와 활동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이를 계승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오늘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오늘의 나도 그런 걸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의 내가 무의식적으로, 당장 눈앞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시작한 일이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또 어떤 형태로 당연한 것처럼 자리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치과에 가는 게 무서워서 미루다가 눈 딱 감고 다녀온 구강검진이 6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것, 그리고 모르는 새 살이 쪄있는 게 싫어서 딱 한 달만 해보자 하고 시작한 헬스가 3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것. 어쩌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를 습관들은 전부 작은 불편감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당장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자, 하는 마음을 먹고 어느날 갑자기 원주율의 끝을 발견한다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제출 버튼을 누른 후부터 깔끔하게 잊고 원래의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 옛날의 누군가가 시작한 단어의 약속과 사용이 길고긴 시간을 거쳐 오늘날 이렇게 글을 쓰고 소통할 수 있는 것에 다다른 것처럼, 오늘의 내가 받은 작은 영향으로 인한 훗날의 가능성은 속단할 수 없다. 제주대학교에서 수학할 것을 선택하는 것, 남는 시간에 카페가 아니라 도서관에 가기를 선택하는 것, 수많은 강의들 중 낯선철학하기를 선택하는 것 등의 작은 변화들이 앞으로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렇게 자라난 나는 어떤 분야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어쩌면 언어의 출발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 하나가 품은, 무수히 많은 길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란 참 재밌지 않은가.
첫댓글 익숙한 언어를 낯설게 바라보는 감각이 아주 잘 살아 있습니다. 한글, 언어의 시작, 문법의 형성, 그리고 개인의 작은 습관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면서도 주제가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문자화되기 전의 언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가장 먼저 안녕이라고 인사한 사람은 알았을까” 같은 질문은 독자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 훈민정음, 구강검진, 헬스, 제주대학교 같은 개인적 경험이 들어가 있어서 글이 추상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문체도 개성이 강하다. 진지한 질문 사이에 “우가우가”, “원주율의 끝을 발견한다거나” 같은 표현이 들어가면서 너무 무겁지 않게 읽힙니다. 이런 점은 글의 생동감을 살려 주기도 합니다. 다만 비유와 상상이 많아서 매력적이지만, 핵심 문장을 더 분명하게 세워서 글의 중심을 잡으면 좋겠습니다. 한글의 역사적 의의와 개인의 가능성이라는 두 축이 모두 좋지만, 둘 사이의 연결을 한 번 더 정리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