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9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이제 올 해도 3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찌 그리 세월이 빠른지요.
남은 날을 잘 계수할 수 있도록 나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소서.
주님의 십자가와 무덤에 연합하여 함께 행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내 육신으로 원하는 것은 끊으시고 이 하루도 하늘에 소망을 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오늘은 아내가 베트남에 다니러 오는 날입니다.
아침에 하노이 공항으로 픽업을 갑니다.
가고 오는 모든 길 위에 성령께서 함께 하여 주소서.
주님께서 사랑하는 이들이 그들의 입술로 주를 찬양하되 단물과 쓴물을 동시에 내는 거짓된 입술이 되지 않도록 늘 지켜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전 10:12-20
제목 :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12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13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14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15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16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17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18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19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 나의 묵상
코헬렛 곧 전도자는 인생에 대한 지혜를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가르치는 지혜자이다.
특히 그는 자기가 깨달은 바를 금언형식으로 만들어 백성들을 가르친다.
12-15절은 어리석은 자의 수다를 경고한다.
지혜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은혜롭지만 어리석은 자의 말은 그 자신을 멸망시킨다.
어리석은 자의 입이 말하는 것의 시작은 어리석음이요 그 끝은 심히 미친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는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
그가 죽고 난 후에 일어난 일을 누가 그에게 말해주겠는가?
어리석은 자는 말하는 일에 지쳐 자기 동네에 들어가는 길도 찾지 못해서 허둥댄다.
무엇보다 인간은 미래, 특히 사후의 일을 알지 못한다.
그런 인간이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결국 어리석고 공허한 말로 드러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사람은 땅에 있으니 사람은 모름지기 말이 적어야 한다.
(전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16-17절은 통치자 및 그의 신하들로 인한 재앙과 복에 대한 경구이다.
어린아이가 왕이 되고 그 대신들이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에 재앙이 미친다.
그러나 고귀한 자가 왕이 되고 그 대신들이 적절할 때에 먹는 나라는 복되다.
모든 나라마다 정치는 불가피하나 재앙과 복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달려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주어진 특권을 자신이 누리거나 아침 일찍부터 주연을 베푸는데 남용하지 않고 고귀한 규율을 정해놓고 정해진 때에 식사하는데 이용하는 나라는 복되다.
18절은 게으름을, 19절은 축제를, 20절은 저주의 말에 대한 경구이다.
양손이 게으른 곳에서 들보가 가라앉고 양손이 가라앉은 곳에서 지붕이 떨어진다.
사람은 즐기려고 식사를 마련하며 술은 인생을 즐겁게 하며 돈은 모든 것을 보증해준다.
마음으로도 왕을 저주하지 말고 침상에서 부자를 저주하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공중의 새가 저주의 말을 전하고 날짐승이 그 말을 전파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격언에도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전도자 또한 20절에서 마음으로도 왕을 저주하지 말 것이며 침실에서조차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는 공중의 새가 저주의 말을 전하고 날짐승이 그 말을 전파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말에 대한 금언으로 14절에서는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해도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는데 그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릴 수 있겠느냐고 한다.
여기서 전도자는 우매자의 특징으로 많은 말을 통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특별히 이러한 우매자의 구체적인 말의 내용 중에 전도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장래 일에 대해서 함부로 속단하는 것을 지적한다.
이런 내용을 좀더 확대 해석하면 미래의 일만 아니라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경솔히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선을 넘어서기를 금하지 않는다.
자기가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님에도 대충 넘겨 짚어서 무엇인가를 판단하기도 하고 그것이 마치 확실한 것인 양 말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그 진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함부로 말을 내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그러뜨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깊은 오해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정말 어리석은 것임과 동시에 나아가 악하기까지 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말이며 행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나는 과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입을 잘 절제하는 자인가?
혀는 겨우 세 치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지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치 혀가 온 몸을 불사르게 할 정도로 큰 힘을 가지고 있음을 성경은 증거한다.
(약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얼마나 많이 큰 것을 자랑하는가?
작은 불이 큰 산의 나무를 다 태우듯이 말이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 그리고 벌레 등 생물들은 사람에 의해서 길들여져 왔지만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이러한 혀는 쉬지 않는 악이며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한다.
(약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러한 혀를 가진 입은 어떤 때는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저주를 내뱉기도 한다.
이는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이런 자였다.
남들을 험담하는 일을 어찌나 즐겨하는지 뒷담화나 험담을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성적으로는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내 속에서는 근질근질한 입을 참지 못하고 급기야 하고 만다.
그럴 때 결국 사달이 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내 입술의 문을 지켜달라고 기도한다.
(시 141:3) 여호와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그 어떤 파수꾼보다 중요한 파수꾼이 입술의 문을 지키는 파수꾼임을 알기 때문에 이것이 매일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수시로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이것이 나의 자아요 정체성임을 인정하며 나아가 나의 할 수 없음을 주님께 고백하면서 도우심을 구한다.
나는 아벨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없음’임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없음으로 살기를 원한다.
이것을 마음으로는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여 매번 넘어지는 이유다.
그래서 주님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도 모르게 넘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조금은 뻔뻔스럽게 그리고 담대함으로 파레시아를 행하며 살 것이다.
그것이 나의 연약함을 폭로하며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임하며 폭로된 그 자리가 바로 나의 무덤이 되어 우리 주님의 장사됨에 연합할 수 있음을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참으로 연약한 자입니다.
순간순간 나를 드러내고자 입을 열어 나를 주장하는 자입니다.
이런 나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입술의 문을 지켜주옵소서.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나를 드러내려 하면서 아는 것처럼 거짓을 말하는 자가 아닙니까?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거짓을 말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던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 순간은 모면할지 모르지만 그런 나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나를 책망하시는 그 책망에 마음 둘 곳을 잃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런 나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나의 정체가 어떠한지 온전히 폭로되게 하시고 내 속에 예수의 심령으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우리 주님을 닮은 자, 아니 내 안에 작은 예수가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나의 연약함을 오히려 자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