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골
박소란
누가 두고 간 것인지 모른다
신기하기도 하지, 아주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것처럼
사랑은 오직 이 속에만 담긴 것처럼
유리로 된 상자를 조심스레 열자
사람이 있었다
사람,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가느다란 팔을 뻗어 서로를 껴안은 채
웃고 울고 만나고 헤어지고 있었다
또다시 만나면서
거리를 두라는 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승강기의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안내 방송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늘 까닭 없이 슬퍼
품에 안고 잠이 들었다
누가 두고 간 것인지 모를 꿈을 꾸면서
춤도 노래도 영영 멈추지 않는
수상한 악몽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
상자를 집어 던지자 그만,
이런 게 아니었다고
마음의 투명한 커튼을 펼쳐 보이면 금세 마음을 구기는
찢는
사람이 있었다
상자는 부서지지 않았다
찢어진 마음으로 마음의 찢어진 자리를 친친 동여매주는
사람이 있었다
상자를 닫으면 더 잘 보이는 사람
―일상시화 『빌딩과 시』 2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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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 / 2009년 《문학수첩》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 『수옥』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