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 최문자
80이라는
느린 물
눈물처럼 둥글었다
색깔이 없고
무게가 없고
소리가 안나도
사랑이 있다
끝이 긴 팔처럼
안 쪽으로
안 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느린 물에
배를 대고
나는 무작정 떠있다
느린 물로도
충분히 즐거워지네
느린 물로 쌀을 씻고
커피도 내리고
달빛 아래서
한 남자의 느리게 피는 꽃무더기가 되기도 한다
보고 싶다는 건 늘 수상했다
여전히 입 다문 고통들이 따라다녔다
이 사랑은 어떻게 끝날까
내일은 안 오고
누가 무표정으로
"전부 녹았어" 라고 말할까
80이라는
느린 물
너무 많은 nathing들
눈물처럼 둥글었다
한 남자
위험한 가스관 위를 마구 뛰어다닌다
생나무 타는 소리가 났다
ㅡ월간 《현대문학》 202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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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자 시인
1943년 서울 출생. 성신여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
198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사과 사이 사이 새』 『파의 목소리』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등.
시선집 『닿고 싶은 곳』
산문집 『사랑은 왜 밖에 서있을까』 등.
박두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신석초문학상, 한국서정시문학상, 2022년 이형기문학상 수상.
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및 동 대학교 총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