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여 들었던 안동 도산서원 모습 그림이다.
퇴계이황선생(1501~1570)
- 대표적인 퇴계학파 -
| 퇴계이황 | ------ | 기대승, | 이황 |
| | |
| | | |
| 근기(近畿)학파 | | 영남학파 | | |
| | | | | | | |
| 허목 | | 정구 | 김성일 | 유성룡 | |
|
| | | | | | | | | |
| 이익 | | | 장흥효 | 정경세 | |
| | | | | | | | |
| 안정복 | | | 이현일 | | |
| | | | | | | | |
| 황덕길 | | | 남한조 | | |
| | | | | | | | |
| 허전 | | | 유치명 | | |
퇴계 제자의 숫자는 기록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李熙大에 의하면 權斗經(1654-1725)의『溪門諸子錄』에 나타난 제자의 수는 310명이지만
鄭澈, 李山海, 南師古등 누락된 인물을 포함하면 320여명이 된다고 한다.
퇴계선생의 문도300여명은 안동을 중심으로 한 문도가 많었다.
호남출신의 문도도 문헌에 밝혀진 것만 해도 14명이나 되는데 전북이3명이고 전남이11명이다.
열악한 당시의 교통사정을 감안한다면 적지 않은 숫자라 할 수 있다.
호남의제자들은 도산까지 와서 가르침을 받은 제자도 있지만 퇴계선생이 서울에 계시는 동안 가르침을 받은 제자도 많다.
이들 가운데 도산서당으로 와서 배운 제자는 풍암 문위세(楓庵 文緯世) 산천제 이함형(山天薺 李咸亨) 죽천 박광전(竹川 朴光前) 석정 윤강중(石井 尹剛中) 석문 윤흠중(石門 尹欽中) 석천 윤단중(石泉尹端中) 등 6명이고
서울에서 만난제자는 고봉기대승(高峰 奇大升)미암 류희춘(眉巖 柳希春)사암 박순(思庵 朴淳)운강 김계(雲江金啓)(호암 변성온(壺巖 卞成溫)인천 변성진(仁川 卞成振)고암 양자징(鼓巖 梁子澂)정곡 조대중(鼎谷 曺大中)등8명이다.
<평가 횟수별 제자 분포>
30회 이상 기대승(奇大升)(32회) 1명
20회 이상 이준(李寯)(21회) 1명
10회 이상 조목(趙穆)(17회), 정유일(鄭惟一)(15회), 이안도(李安道)(14회), 황준량(黃俊良)(12회) 4명
5회 이상 금란수(琴蘭秀)(9회), 김취려(金就礪)(8회), 이함형(李咸亨)(6회), 김성일(金誠一)·홍반(洪)(5회) 5명
4회 권호문(權好文), 김부륜(金富倫), 이숙량(李叔樑) 3명
3회 금응협(琴應夾), 우성전(禹性傳), 이이(李珥), 이정(李楨), 정지운(鄭之雲) 5명
2회 김명원(金命元), 김부필(金富弼), 박운(朴雲), 유중엄(柳仲淹), 이덕홍(李德弘), 정구(鄭逑), 허엽(許曄) 7명
1회 구봉령(具鳳齡), 김기보(金箕報), 남언경(南彦經), 박순(朴淳), 박점(朴漸), 박지화(朴枝華), 신옥(申沃), 20명
여세윤(呂世潤), 오건(吳健), 유성룡(柳成龍), 유운룡(柳雲龍), 윤근수(尹根壽), 이양원(李陽遠),
이원승(李元承), 정윤희(丁胤禧), 정탁(鄭琢), 최응룡(崔應龍), 한수(韓脩), 홍인지(洪仁祉), 홍인우(洪仁祐)
계 46명
1910년 만주로 망명하기 전에 찍은 사진
맨 뒤줄 양복입은 김동삼, 중간줄 왼쪽 끝이 유인식 - 안동 협동학교 교사이다.
1916년 이전 사진, 왼쪽에 우뚝 솟은 기와 건물이 태사묘이며 조흥은행 건물이 없는 것으로 보아 1916년 이전의 것으로 추측 됨.
1911년 안동 협동학교 1회 졸업식 - 김형식,유인식 등의 독립지사 얼굴이 보인다.
1916년 10월. 안동 도산보통학교 설립 - 벌써 일본인들이 많이 보인다.
1916년 안동협동학교 3회 졸업식날 학생과 교사들이 함께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20년 안동 풍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 수학여행
1929년 풍남보통학교 9회 졸업생 - 뒤에 일장기가 보인다.
1920년대말 같은 동네 출신 고등학생 - 예안면 광산김씨 문중의 학생들
1920년대 일제강점기의 안동시내 - 차는 보이지 않고 짐꾼만이 힘겹게 수레를 끌고 간다.
1930년대 지산서당 신축 상량식
1931년 이전 도산서당 퇴계의 교육사상이 정리된 서당 / 1557년 시작-1561년 완공
1934년 안동 예안보통학교 아침 조회
1937년 여학생들이 예쁜 옷을 입고 율동하는 모습 - 안동 녹전국민학교 가을 운동회
1938년(소화13년) 일제시대 안동공립보통학교(안동중앙국민학교, 안동초등학교 전신) 앨범이다.
오른쪽 德山淑姬 라고 쓴 일본식 이름이 보인다. 스켄을 뜨지 않고 그냥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1938년(소화13년) 일제시대 안동공립보통학교 , 지금의 안동초등학교(중앙국민학교) 전신이다.
1938년(소화13년) 일제시대 안동공립보통학교 - 치마에 라인도 넣은 교복을 입고 조선인만 다니는 학교였다.-
1938년(소화13년) 일제시대 안동공립보통학교 - 당시의 선생님들, 해방 후 학교 체계가 잡힌 듯 하다.
1938년(소화13년) 일제시대 안동공립보통학교 - 가을 운동회 여학생 마스게임, 치마에 흰줄을 넣은 옷을 모두 입고 있다.
1938년(소화13년) 일제시대 안동공립보통학교 - 그 옛날에도 학예회를 하였다.
1938년(소화13년) 일제시대 안동공립보통학교 - 여학생들은 일본인 학교에 가기를 꺼려하며 한국인 학교에만 입학하였다.
1938년(소화13년) 일제시대 안동공립보통학교 - 졸업앨범 여학생들 명단이다.
1939년 풍남국민학교 졸업 사진
1940 풍남소학교 졸업생 중등교육수험생
1942년 안동여중고 기숙사 생들 - 일본 기모노 옷을 입은 학생들도 보인다.
1943년 봄에 말 탄 농림학교 학생(옷은 일본군 제복이다)
1943 예안출신 학생들 친목회
1946년 안동여고 음악시간 풍금이 보인다.
1946 안동 예안공립학교 교사와 학생 - 무릅꿇고, 선생님은 의자에 한복 입은 남학생
1947 예안공립보통학교 - 머리 길게 땋은 학생(남녀공학)
1940년대 병산중학교 풍산종고 운동장에서
안동사범학교 신축모습. 뒤에 보이는 민둥산이 영남산 지금의 안동시청 자리이다.
1950년 안동여중 학생이 책가방을 메고 찍은 사진이다.
1950년도 안동시가지
1951년 안동여고생들의 도산서원 졸업 소풍이다.
1952년.6.25 전쟁으로 파괴된 안동시내 모습
1952년 6.25 전쟁에 모집된 고향의 학도병 열병식
제57회 안동중앙국민학교(안동초등전신) 앨범
1952년 폭격으로 파괴된 안동농림학교 모습
1952년 10-29. 안동농림고등학교 벼를 탈곡하는 장면이다.
1953년 6-25 직후 안동여고4회 교복 - 긴소매 한복을 입은 모습이 특이하다.
1955 대동국민학교 4회졸업
첫댓글 https://youtu.be/NyBNEpuV9oE
PLAY
귀중한 자료 잘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