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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희망의 문턱을 넘어 원문보기 글쓴이: Swan
축일:4월 4일 성 이시도로 주교 학자 St. ISIDORE of Seville Sant’ Isidoro di Siviglia Vescovo e dottore della Chiesa Born:c.560 at Cartagena, Spain Died:4 April 636 at Seville, Spain Proclaimed Doctor of the Church by Pope Benedict XIV in 1722, and became the leading candidate for patron of computer users and the Internet in 1999. Patronage:computer technicians, computer users, computers, the Internet, schoolchildren, students Isidoro = dono di Iside, dal greco = gift of Iside, from the Greek
Isidorus (560?-636) 성인. 세빌랴의 대주교. 교회학자. 축일은 4월 4일. 이시도로의 초기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트족이 카르타제나에 침입해 왔을 때 가족들은 세빌랴로 이주, 그는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뒤에 세빌랴의 대주교가 된 형 성 린더(축일:2월27일)의 감독하에 수도원에서 교육받았다.
이 동안에 백과전서적인 지식의 기초를 확립, 아리아리즘에 대항하여 가톨릭 수도원에 들어갔고, 600년경 형의 뒤를 이어 세빌랴의 대주교가 되어 학교와 수도원을 세우고 유태교인들의 개종을 위해 일하는 등 스페인 교회와 학문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주요한 스페인의 교회회의(Councils)를 주관했는데, 톨레도(Toledo) 4차회의(633년)는 특히 유명하다. 1598년 시성되었고 1722년 교회 학자의 칭호가 주어졌다.
그의 저서는 중세기 많은 저술가들이 인용하는 지식의 보고가 되었다. 특히 《Etymologiae》 는 당시의 교회와 신학적 문제는 물론 문법, 수사학, 수학, 의학, 역사 전반에 걸친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Sententiarum》는 그리스도교 교의에 관한 편람서이며,《De ecclesiasticis officiis》는 수도원의 권리와 의무, 전례에 관한 것이다. 《Synonyma》,《Chronica Majora》,《Historia de Regibus Gothorum, Vandalorum et Suevorum》등이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560년경 스페인의 세빌리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형님인 레안드로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세빌리아의 주교로 임명된 그는 해박한 많은 저서를 남겼고 스페인에서 많은 공의회를 소집하고 주관했으며, 그 공의회들은 훌륭한 규율들을 만들었다. 636년에 세상을 떠났다.
성 이시도로 주교의 [명제집]에서 (Lib. 3,8-10: PL 83,679-682)
하늘 나라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
우리는 기도로써 정화되고 독서로써 교훈을 얻습니다. 할 수 있다면 이 두 가지를 다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할 수는 없다면, 독서하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누가 하느님과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자주 기도하고 또 자주 독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느님 자신과 함께 말하게 되며 독서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말씀하시게 됩니다. 모든 영적 진보는 독서와 묵상에서 비롯됩니다. 독서로써 우리는 모르고 있던 바를 배우고 묵상으로써 이미 배운 것을 보존합니다. 성경 독서는 이중의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첫째로 지성을 비추어 주고, 둘째로 인간을 세상의 헛된 것들에서 이끌어 내어 하느님의 사랑에로 인도해 줍니다.
독서에서도 이중의 목적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로 성경말씀의 뜻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며, 둘째로 그 말씀들을 효과적으로 또 합당하게 전하도록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읽는 사람은 무엇보다 읽는 것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 배운것을 다른 이들에게 최상의 방법으로 전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잘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 읽는 것보다는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합니다. 알고 싶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고민입니다. 우리가 독서를 통하여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배운 후에는 우리가 배운 모든 좋은 것을 실천하고자 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다음의 말씀처럼 성경을 자주 읽어 친숙해지는 일입니다. "지혜를 단단히 붙들어라. 그 지혜가 너를 높여 줄 것이다. 슬기를 품속에 간직하여라.그 슬기가 너를 존귀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가 성경 독서를 더 자주 하면 할수록 더 풍부한 이해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마치 땅을 더 잘 경작하면 할수록 더 풍요한 추수를 거둘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수한 지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독서를 게을리 하여 독서로써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그 게으름으로 인해 경시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지식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있지만 느린 이해력 때문에 장애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꾸준한 독서로써 더 우수한 지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얻지 못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느린 이해력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독서에 대한 대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우수한 지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게을리 하는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은혜를 경시하고 또 그 지력을 무익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죄인으로 단죄받게 됩니다.
은총의 도움 없이 두 귀에 주입되는 독서의 가르침은 결코 마음에까지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밖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지만 결코 내부에다 이익을 주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정신의 내부에 닿고 작용하여 이해력을 줄 때에, 비로소 귀로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 마음의 심층에 이르게 됩니다. (가톨릭홈에서)
근 76년간에 걸친 이시도로의 생애는 스페인 교회가 갈등과 성장을 겪는 시기였다. 서고트족이 이시도로가 태어나기 바로 1세기 반 전에 침입해 그들의 도시를 세웠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그리스도교의 이단인 아리안파였다. 그래서 스페인은 둘로 분열되어 한쪽 백성(로마 가톨릭)이 다른 백성(아리안파인 고트족)과 투쟁하게 되었다.
이시도로는 스페인을 재통일하여 그곳을 문화와 학문의 중심으로 만들고, 그들의 문화가 야만족의 침입으로 위협받고 있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안내자가 되고 스승이 되게 하였다. 그의 집안에는 그 외에 다른 3명의 성인들이 있다. 이시도로는 카르타헤나에서 태어나 형으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았는데, 바로 이 형으로부터 세빌리아의 주교직을 이어받았다.
매우 풍부한 학식을 지닌 그는 ’중세기의 스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가 쓴 백과 사전이 9세기 동안이나 교과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교구에 신학교를 세우도록 했고 수도원 규칙을 만들었으며,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들을 세웠다. 이시도로는 수많은 책을 썼는데 그 중에는 사전과 백과 사전 외에도 고트족의 역사, 창조로부터 시작한 세계의 역사 등이 있다. 그는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모자라빅 전례를 완성하기도 했다.
그는 거의 80세가 될 때까지도 쉴새없이 계속 일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6개월 동안에 그는 애덕을 더욱 발휘하여 그의 집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전국에서 몰려든 가난한 사람들로 큰 혼잡을 이루었다.
혼란한 지금의 우리 세계에서도 학문과 성덕을 겸비한 이시도로의 정신을 훌륭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학문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은 분열된 백성을 치유하여 다시 합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시도로 시대의 스페인의 침략자들과 같은 야만인들이 아니다. 그러나 풍요로 살이 찌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압도된 백성은 서로를 위한 사랑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많은 것을 상실할 수 있다.
이시도로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이시도로보다 약 20세나 많은 형 레안드로는 그의 스승으로서 요구가 대단히 많았다. 어느 날, 이시도로가 빈둥거리며 숲에 혼자 앉아 있을 때, 그는 몇 방울의 물이 바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방울져 떨어지는 물이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파놓았다는 것을! 그는 자기도 작은 물방울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조금씩 조금씩 거기에 몰입함으로써 그는 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또한 그 이상도 할 수 있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이시도로의 가문은 스페인 왕실과 친척관계에 있고, 특히 수명의 성인을 배출함으써 더욱 유명해졌다. 이시도로의 아버지는 카르타지나(Carthaginis)주의 총독이었고, 어머니는 테오리히 왕의 후예였다. 이러한 부모에게 태어난 4남매, 즉 레안드로(Leandro), 풀젠시오(Fulgentio), 이시도로 그리고 플로렌디나가 모두 성인품에 올랐고, 먼저 세 사람은 주교가 되고 막내인 여동생 플로렌디나는 수녀가 되어 많은 수도원을 보살피게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맏형 레안드로는 우선 수사가 되었고, 그 뒤 세빌리아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자신이 세운 학교에서 친히 막내동생 이시도로를 교육했는데, 거의 과도할 만큼 엄격한 태도로 임했다. 그는 종종 이시도로를 몹시 꾸짖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시도로에게는 아무 효험이 없었다. 이시도로는 부지런했지만 어려서는 학업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몰라도 그 당시에는 머리가 아둔한 이 소년이 장차 유명한 대 학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의 일이다. 호되게 꾸중을 들은 이시도로는 학교에서 도망해 마을밖에까지 달아났으나 아주 피곤해져서 우물가에 주저앉았다. 얼핏 보니 한 바위 구석에 움푹 파진 데가 있었다. 그는 그 원인을 생각해도 좀처럼 알 길이 없었다. 얼마 뒤 물 길러 온 한 여인에게 물어보니 "오랜 세월 물방울이 떨어져 그와 같이 파졌지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를 듣고 그는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즉 재주가 없는 자기로서도 꾸준히 노력만 한다면 반드시 학문으로 성공하는 때가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학교로 돌아가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 눈에 띄게 학문이 진보하게 되었고 수년 후에는 당시의 모든 학문을 다 배울수가 있었다.
이때에 왕위에 있던 레오질도는 이시도로의 한 자매인 테오도라와 결혼하고 헤르메네질도와 리타르도라는 두 왕자를 낳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리우스의 이단에 빠져 교회를 배반했다. 그 후 곧 세빌리아의 주교가 된 이시도로의 형 레안드로는 과감하게 그 이단과 싸웠으므로 이에 왕의 비위를 크게 거슬려 마침내 국외로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그를 가련히 생각한 이는 왕자 헤르메네질도였는데, 백부인 주교를 콘스탄니노플의 황제에게 추천해 준 덕분에 레안드로는 그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그가 성 (대)그레고리오와 서로 우정을 교환한 것도 결국 이 시절의 일이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축일:9월3일.게시판1346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St. LEANDER of Seville. 세빌리아의 성 레안드로 축일:2월27일
그러던 중 그의 동생 이시도로가 추방된 형 대신 주교위에 올랐다. 그리고 형과 같이 언변과 문필로써 눈부신 활동을 했다. 조카인 헤르메네질도는 이시도로에 대해서 많은 원조를 해 주었다. 레오질도 왕은 지은 죄를 뉘우치고 586년 레안드로 주교를 소황하고 나서 곧 서거했으며 그의 아들 리카르도가 그의 뒤를 이었다. 이 새로운 왕은 회개하여 다시 교회와 화목했다. 그래서 이시도로는 형 레안드로에게 주교직을 양도하고 자신은 고요한 곳에 물러가서 오로지 기도와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를 탐지한 사제들이나 백성들은 물론 국왕까지 그가 마을에 머물러 있기를 간청했지만, 이시도로는 형인 주교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거처에서 나온 때가 없었다.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 조용한 생활을 하게 된 그는 무한히 행복스러웠다. 기도로 혹은 묵상으로 마음껏 영신의 수양을 할 수 도 있었고,학문의 연구에 아무 거리낌없이 골몰할 수 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어디까지나 그런 생활을 계속하고자 돌아가신 형의 후임 주교로서 취임해 줄것을 원하는 국왕, 백성, 사제들 뜻마저 사양하려 했으나, 마지못해 드디어 그는 사람들의 의사를 하느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소원대로 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이시도로는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눈부신 활동을 시작했다. 하느님께서도 이를 어여삐 보시고 풍부한 강복을 내려 주셨다. 그의 심원한 학식, 숭고한 덕성은 형 레안드로 주교가 착수한 사업을 완성시키게 했을 뿐아니라, 아리우스파의 이단을 박멸시켰다. 그는 수차 회의를 열어 현명한 규칙을 정하고 교회의 전례나 학교교육을 위해서도 진력했다. 또한 그는 저술에도 능숙해 그의 저작은 후세에까지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시도로는 그리스어, 히브리어의 연구를 활발하게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장려했다. 그는 실제로 교회의 학자라는 이름에 합당한 인물이었지만, 그보다 더 성인이라 부르기에 합당했다. 그는 박학했지만 그 일면에 겸손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덕에 더욱 출중해 가난한 이에게 자선, 희사하는 것을 즐겼다.
601년, 그는 용무를 위해 로마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르본느에 들르니, 때마침 매우 가물어 곤궁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성인에게 비를 주실것을 하느님께 빌어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과 함께 기도를 바치니까 즉시에 비가 듬뿍 와서 바야흐로 말라죽으려 하던 곡식이 푸릇푸릇 생기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이시도로는 미리부터 자기의 임종 날짜를 예언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6개월 전부터 임종 준비를 시작했으며 그 날이 닥쳐오자 성당에 가서 죄의 용서을 청하고 자신의 재산 전부를 빈민에게 나누어 주도록 부탁하고 고요히 눈을 감았다. 때는 636년 4월 4일 이었다. 그는 1722년에 교회박사로 선언되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집중
시간 관리에 관한 책들은 같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는 방법과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아이디어들은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예를 들어 발로는 실내용 자전거 페달을 밟고, 눈으로는 자전거 손잡이 위에 올려 놓은 책을 읽고, 귀로는 최신 음악을 들으면서, 틈틈이 틀어 놓은 텔레비전의 뉴스를 본다는 식이다.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퍽 효율적으로 생각되지만 막상 그렇게 해 보면 결국 탈진해서 쓰러져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몸 안의 에너지란 에너지는 다 소진되어서 정작 집중해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세비야의 성 이시도로는 당대에 가장 뛰어난 주교 학자요, 작가요, 주목받는 교사였지만 젊은 시절에는 학교 공부를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 된 돌우물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로 인해 돌 벽에 가늘고 긴 홈이 새겨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물방울이 단단한 돌을 패이게 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시도로는 그때부터 자신의 모든 관심을 공부에 쏟았고 마침내 학자로 성공하였다. 성공하고 싶다면 성 이시도로가 발견한 물방울의 위력을 마음에 새겨 보자. 한꺼번에 많은 일을 처리하려고 하면 결국에는 아무 일도 제대로 하지 못 하게 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관심을 쏟아라. 그렇게 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노력한 만큼 성취하고 있는가? 너무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쏟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겠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