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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카페 게시글
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사과벌레의 여행 외 / 황상순
동산 추천 0 조회 62 09.05.28 11: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사과벌레의 여행 / 황상순

 



부석사를 찾아 떠난 길가
순한 시골 아줌마가 깎아 건네는
꿀 배긴 사과를 먹는다
우직우직 베어먹는 흰 살 속에
따슨 햇볕 가득 녹아든 사과
뒤 트렁크에 한 상자 싣고 떠나니
나도, 마누라도, 자동차도
사과벌레 되어 꿀 속을 여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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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내놓아라 달 내놓아라 / 황상순  
 



소나기 그친 뒤
장독대 빈 독에 달이 들었다
찰랑찰랑 달 하나 가득한 독
어디 숨어있다 떼지어 나온 개구리
달 내놓아라 달 내놓아라
밤새 아우성이다

 

 

 

 

 

 

 

 

Maasai Women

 

  

 

 

환생 / 황상순 



마른 잔디에 불을 놓다
제 몸을 활활 태우는 바다
며칠 후 비 내린 날 아침이면
출렁이는 물결로 다시 태어나리라

이 맑은 하늘 아래
나는 무엇을 태워 푸른 잎으로 환생할 것인가

 

 

 

 

 

 

  

 

 

싸리꽃 / 황상순

  


산을 오르다가
한 무더기 가득 피어 오른 싸리꽃을 만납니다
햇빛 자잘이 부서져 내려
눈을 감아도
날선 빛 한 움큼 아프게 눈을 찌릅니다

어린 누이
차마 흙을 덮지 못하고
청솔 가지를 꺾어 얹었습니다
엄니는 맨발로 온 산을 헤매다
싸리꽃 한 다발 치마폭에 안고 와
애총 위에 쓰러졌지요

산을 내려가다 뒤돌아보니
비끼는 햇살 머리에 인 누이
하얗게 웃으며 서 있습니다

 

 




 

 

 

 

 

 

파꽃 / 황상순  

 

 

할머니는 싸리 울타리 옆에
손처럼 닳아진 호미로 파밭을 일구었다
할머니, 하고 찾으면 언제나
치마폭 만한 파밭에서
작은 등이 곰실곰실 답했다
봄이 다하기 전 할머니는
마당 한켠에 작은 솥단지를 걸었다

 

우박 섞인 소나기 퍼붓던 날
파밭의 할머니 흰 저고리
지붕 위에 얹혀지고
동네 사람들은 호상(好喪) 이라고,
할머니가 걸어둔 검은 솥에
뚝뚝 파를 뜯어 넣고 국밥을 끓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상여꾼들은
파밭을 뭉개고 지나갔다
파꽃은 흐트러져 꽃상여를 이루었다

 

 

 

 

 

 

 

 

 

  

 


옥수수를 기다리며 / 황상순 

 

 

 

옥수수를 딸 때면 미안하다
잘 업고 기른 아이
포대기에서 훔쳐 빼내 오듯
조심스레 살며시 당겨도
삐이꺽 대문 여는 소리가 난다

 

옷을 벗길 때면 죄스럽다
겹겹이 싸맨 저고리를 열듯
얼얼 낯이 뜨거워진다
눈을 찌르는 하이얀 젖가슴에
콱, 막혀오는 숨
머릿속이 눈발 어지러운 벌판이 된다

 

나이 자신 옥수수
수염을 뜯을 때면 송구스럽다
곱게 기르고 잘 빗질한 수염
이 노옴! 어디다 손을
손길이 멈칫해 진다

 

고향집 대청마루에 앉아
솥에 든 옥수수를 기다리는 저녁
한참 꾸중을 든 아이처럼 잠이 쏟아진다
노오랗게 잘 익은 옥수수
꿈속에서도 배가 따뜻하여, 웃는다

 

 

 

 

 

 

 

 

 

Untitled

 

 

 

 

흔적 1 / 황상순

 


 

네거리 횡단보도 아스팔트 위에
한 사내가 모로 누워 있다
(실은 여자였는지도 몰라)
아니다, 누워 있는 것은
흰 페인트로 그린 그의 윤곽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탈피를 하였던 것일까
비 마악 그친 뒤 햇빛 쏟아져내릴 때
맞아, 저 빌딩 창에 반사되어 날을 세운 빛이
그의 비상을 재촉하였을 거야
비에 젖은 옷 훌훌 벗어버리고
그는 여기서 처음 날개를 폈던 게지
탈피의 고통으로 군데군데 핏자국이 번져 있다
나비 되어 날기 위해서는
몇 개의 허물을 더 벗어야 하는 것일까
몰려나온 개미들이 걸음을 멈추고
사내가 남겨놓은 껍질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그가 걸어온 세상의 모든 길이
물결치는 차량들 위에서 잠시 일렁거렸다

  

 

 

 

 

 

 

 

Rejoice

 

 

  

 

삼류시인 / 황상순

 

 

 

애야, 생순아 이 실 좀 꿰어다오
햇살 한 올 길게 손에 들고 계신 할머니
이 바늘은 귀가 깨졌잖아요!
세상에나, 헛것을 들고 여태 씨름하였네
낙타가 배꼽을 잡고 웃겠구나
할머니 앉으셨던 마루 끝, 사막을 마악 건너온
낙타 한 마리 서성이고 있다
 

생순아, 네가 깎고 있는 바늘
귓구멍은 뚫어 놓았느냐
바람 휑한 네 고쟁이나  제대로 깁을 수 있겠느냐
부엌바닥 부지깽이보다 못한 詩
 

낙타가 하늘 보며 웃고 지나갈
와지끈 허리 부러진 詩라도
버려져 삭아지는 생선가시 따위가 아니라
눈 먼 바늘, 귀 떨어진 詩라도
누군가 새하얀 실을 손에 들고
지긋이 눈을 감고 한 번 겨누어만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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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토마토 / 황상순 

 


 
쥐방울만한 것이, 저도 과일이라고
한 대접 수북 씻겨 내왔다
한 입에 툭 넣기 미안해 반쯤 깨무니
찔끔 토마토 냄새가 난다
어쭈 요것 봐라,
기특하여 손이 계속 나간다

깔보지 마라
작다고 토마토 아니냐, 저도 태어날 땐
가슴에 온 세상을 다 품었으리라
저 낳은 어민 뿌듯한 마음으로
삼칠일을 다 채워 조신하였으리
너는 언제 네 힘으로
작은 생명 하나 키워 본적 있느냐

설령 네 지금 모습이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마음이야 바다처럼 커도 상관없지 않겠니

생각하다가 그만
하나하나
작은 목숨 한 대접을 다 비운다

 

 

 

 

 

 

 

Plonk plink

 

 

 



가정식 백반 / 황상순



얼마만의 푸짐한 식사인가
노숙자 박씨가 오후 늦게 가정식 백반집에서
가정식 백반을 혼자 먹는다
한 상에 이천오백 냥, 소주까지 곁들였다
달걀 프라이 접시 손에 들고 후르륵 짭짭

밑바닥까지 싹싹 핥는다
게눈 감추듯 하나 둘 비어지는 접시들
기어이 밑창까지 뚫려버린 예금 통장
아껴 둔 꽁치구이 일랑 통째로 씹어 삼키려다
커-억, 가시처럼 목에 걸려오는
오글오글 젖을 파는 새끼돼지들 그림
네 '가화만사성'은 어느 벽에 걸려 있느냐
네 어린 돼지들은 어디 가고 없느냐
그만 물에 만 밥알이 되어 둥둥 뜨고 마는 박씨
눈물 찔끔 나게 목구멍이 아파서
숟가락 내던지고 다급히 소주를 들이킨다
쯧쯔, 박씨 그 소주로는 안 되겠소
밥 한 덩이 김치에 싸 꿀꺽 삼켜 보소, 채근하지만
목에 박힌 가시, 너무 깊고 크다
'가정식 백반' 유리문에 서성거리던 저녁 해가
홀 가득히 왈칵 피를 토해낸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곧 불을 켜야 하리라

 

 

 

 

 

 

 

 

wine glass of love

 

 

 


어름치 사랑 / 황상순
 



동강(東江) 어름치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맑고 시린 거센 물살에
쌓아올린 돌탑
나 언제 그대 빈 가슴에
목숨 한 조각 얹은 적 있었던가
혼자 달아오르고
혼자 허물지 않았던가

사랑한 다음엔
미련 없이 죽으리라
흰 배 드러내고 물위로 떠올라
반짝이며 흐르다가
비오리의 한끼 먹이가 되리

내 혼은 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굽이굽이 강물 위를 날으리라
기화천 계곡 깊은 언저리
늦은 눈발로 날려가
바람꽃 한 송이로 피어나도 좋으리

동강 어름치처럼
목숨 다하여 사랑한 후엔

 

 

 

 

 

 

 

 

wet ladybird

 

  

 

 

고생금 할망 고백기 / 황상순 

 

 

 

그러니 어쩌겄냐,

나이 서른둘에 혼자된 몸

아침 한나절 물질에 쭈글해진 손으로

중산간 묵정밭을 갈 때

소같은 힘으로 모난 돌 치워주던 윗동네 박씨

고맙고도 감사해서 -

볕이 너무 좋았던가 배 들어차 놓은 것이 둘째다

게민 셋째는 어떵허난 나온거우꽈

너도 알지 안햄시냐 사변 전에

한낮에는 토벌대가 진을 치고

밤에는 보도연맹이 부엌바닥에서 잠을 잤지

마을 사람 몬딱 굴비두름 엮여져

송악산, 모슬포로 끌려갈 때

유채 섶 가운데 몰래 숨겨 주었던 얼금뱅이 순경

아궁지 속에서 끌려나와 죽은 위원장인지

정말 나도 모르켜

춘삼월 유채꽃 하영 흐드러지면 지금도

뱃속에 애 든 것처럼 헛구역질이 올라와야

경허난 어떵허크냐, 나 홀말 다 되어시난

이 어멍 죽거들랑

네 아방 하르방 다 데꼬간 바당에나 던져다오

(곡기를 끊은 사흘 뒤 고생금 할망은 기어코 바닷속

깊이 자맥질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여싸나 이어도사나.

 

 

 

 

 

 

 

 

  

 

 

 

昇天 / 황상순


작은 산사를 향해 올라가는 산길엔
늦가을 흐린 하늘에 바람까지 일어
낙엽송 마른 잎들이
첫 눈인 양 부슬부슬 날려왔다

아직 난로를 놓지 않은 법당 안에서
온 몸 떨며 시리게 앉아있던 나는
활활 타오르는 유품 앞에 쪼그려 앉아
얼굴과 손바닥을 비벼 댔다

첫 산달이 가까운 사촌 누이는
태워야 할 옷가지와 부른 배를 부여안고
산비둘기 울음을 울었다
채 입지도 않으신 잘 다려진 한복이며 속 내의들
막내가 사다 드린 나이키 운동화가
좁은 골짜기에 연기를 올리며 오래도록 타올랐다

남기고 가믄 안된다 싹싹 비우고 가야제
요사채 방에 모여 제상 위 음식들을 나눠먹고
누군가 건네는 음복 소주 몇 잔에 취해 밖을 나서자
바라춤에 맞춰 울리던 목탁소리, 운판소리 언제인양
풍경 홀로 남겨진 절간 마당,
지상에 내려 누워있던 수많은 낙엽들이
날갯짓하며 일제히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작은 아버지의 사십구제에

 

 

 

 

 

 

 

 

Wise men...?

 

  

 

 

장터에서 / 황상순


어느 동네서 왔을까, 저 할마시
아침을 등에 지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싸전 옆 나물 함지 빽빽한 곳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디밀고 앉는다
대광주리 속 뭉쳐진 다섯 개 털복숭이
낯선 햇빛에 놀라 얼굴을 파묻는다
허리춤 뒤적이는 할머니에게 불을 켜드리며
이걸 팔아 어디 쓰시려구요 여쭈어도
애잔한 것들 앞에 두고
또다시 기다리는 일만 남은 할머니는
쪼그라진 입으로 호물호물 담배만 빠신다

종재기의 깻잎장아찌는 몇 장 남았을라나
후 - 내뱉는 담배연기에
또 다른 강아지가 눈에 아슴하여
즈 에미 떠난 뒤 마른 젖을 물리던 가슴이
중천 햇빛에 스물스물 바스라진다

젖먹이를 팽개치고 내빼는 건 인간밖에 없지라
신명나게 짤각거리는 엿 장사 가위소리
목덜미 벗겨지던 어미 개 울음소리로 귓가에 쟁쟁거려
오냐오냐 그래그래, 내가 몹쓸 할망구지
남은 두 마리 얼른 보자기 씌워
진종일 굽은 다리를 펴 휘정휘정 일어설 때에
채 여미지 못한 홑겹 저고리 안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위태로운
저 까만 건포도 두 알

 

 

 

 

 

 

 

 

Scene from Rural Life II

 

 

 

 

풀잎에 눕다 / 황상순


서랍을 정리하다가 생각한다
얼마만큼을 비워야 깨끗해지는 것이냐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그냥 두어야 하느냐
왈그랑 달그랑 방안 가득 끄집어내어도
온갖 발자국 손때 묻은 잡동사니 줄지를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 밑바닥은 또 얼마나 많은 부스러기들 떨어져 있어
손끝을 멈칫거리게 할 것인지
오늘 비우고 또 내일 모레 버려도 버려도 못 비울 것들
뙤놈 속고쟁이처럼 주야장창 껴입고 있던
닳아진 솔기마다 노릿노릿 땟국물 배인
무쇠 화로 마냥 사타구니에 줄창 끼고 있었던 이것들 저것들
한가득 질펀히 게워낸 방바닥에 앉아 생각한다

얼마나 비워야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이냐
얼마만큼을 더 버려야 나비처럼
풀잎에 누워서 사뿐 잠들 수 있는 것이냐

 

 


 

 

 

 

radio listeners club

 

 

 

 

오디 / 황상순

 


뽕나무에 올라
까아만 오디를 따먹을 때
보리밭 이랑에 숨어 쉬야를 하던
고 계집애 하얀 엉덩이

낮 달 뜨는 날은
입술 푸르게 오디 맛이 그리워라
 

 

 

 

 

 

 

 

 

 

**********************************************************

 

황상순 시인

 

1954년 강원 평창 봉평 출생 

1999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어름치 사랑』『사과벌레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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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순은 이 시대의 위기와 불안과 좌절과 고통을 사랑의 열정으로

해결하려는 시인이다. 그래서 씨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사랑으로

승화시켜서 천지창조의 질서에 가 닿으려 한다.

씨는 현실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미래의 긍정적인 해결 방식에 더

치중한다. 곧, 이 땅의 어두운 요소들이 사랑을 통해 긍정적으로 변화

될 것이라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다. 씨에 의하면 모든 생명체가 다

귀한 것이고,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영속성이 있다.

씨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신념은, '정신적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이동한다'는 C.G 융의 등량의 원리나 엔트로피의 원리와도 통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씨의 생명 사상은 출발한다.

/ 평론가 정신재의 해설 중에서


황상순 시인은 강원도 냄새가 물씬하다. 바다를 보면 오히려 답답하고

산을 마주하여야 가슴이 시원스레 트인다는 역설적인 그는 영락없는

촌놈이다. 오대산 자락의 아늑함과 신비로운 운무와 경쾌한 물소리와

동강의 어름치까지 소년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언어는 맑기만

하다. 서울이라는 이 혼탁한 강물에서 어름치마냥 유유히 헤엄치는

그를 기대에 찬 눈으로 숨죽이며 지켜본다.
/ 朴政元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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