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の와 한글
나는 이 の자를 볼 때마다 아버지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 아버지는 1922년생이고 일제 시대에 학교를 다니셨다. 한글을 빼앗긴 채 일본어를 강요로 배운 세대다. 한글 수난의 시기였다. 공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일어책을 사서 보아야 했다. 아버지 방에는 일어로 된 책이 많았다. 서가엔 거의 일본어와 한자가 섞인 전문 서적이었고, 한글로 된 책도 있었는데, 한자가 많이 있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난 그때, 만화에 빠져 만화방에 들러붙어 살았다. 볼거리라고는 만화밖에 없었다. 난 좋아하는 만화만 모았다. 나중에 보니까 80킬로그램짜리 쌀 포대로 두 포대나 되었다. 당시 만화는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정판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보고 싶어도 누군가가 가져가 볼 수가 없고, 중고 서점에서도 구할 수가 없다. 그 귀한 만화로 딱지/떼기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교과서 책을 째서 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의 근사한 일본 책을 찢어 딱지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내가 만들어 온 딱지를 좋아했다. 한번 따먹으면 내어놓지 않았다. 종이가 얇으면서도 감촉이 부드러워 아이들 눈에도 질이 좋은 종이인 것을 알았었다. 딱지치기할 때마다 아버지 몰래 향 좋은 종이로 된 일본어책을 찢어야 했다. 어느 땐가 찢겨나간 쪽수를 보시곤, “허, 이런!”, 하시며 허탈해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책 사러 중고 서점을 들락거리는 지금에서야 아버지 심정에 이해가 간다.
그때 많은 딱지를 접으면서 일본 글자를 자주 보았지만, 그중에서도 이상하게 생긴 글자가 눈에 띄었다. 바로 の자였다. ‘뭐 이런 글자가 다 있을까’ 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이것이 “~의”, “~가”란 뜻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인들의 の자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딱지를 접을 때마다 느꼈다. 책에서 이 の자가 한 문장에 3개에서 4개까지 들어 있는 걸 봤다. 가히 약방의 감초처럼 쓰이는 の자였다. 생김새가 이상한 の자 때문에 일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어책을 사서 봐도 친숙한 の자만 눈에 들어왔다. の자 때문에 시작한 일본어 공부가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어순은 우리 글과 닮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혼자 끙끙거리며 기초를 간신히 뗐다. 이상하게도 일본어를 보면 볼수록 우리 한글이 돋보였다. 글자 모양이나 발음이나 어느 모로 보아도 한글이 더없이 탁월했다. 그때마다 거룩하신 세종대왕님은 하늘이 낸 위대한 분인 걸 알았다.
글을 보다 보면 일본어 냄새가 나는 한글이 더러 보였다. 한글 같지 않은 한글이 한글 행세를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와의, ~과의”과 같은 말이다. 이런 글을 보거나 말씀을 듣게 되면 신경이 되게 쓰인다. 일본어 토씨, “~(と+の)를 흉내 낸 것이, 무슨 고급스러운 것 인양 마구 쓴다. 이건 기형적인 쓰임이다. “범죄와의 전쟁, 선진국과의 격차, 대통령과의 대화” 등은 마땅히, “범죄와 전쟁, 선진국과 격차, 대통령과 대화”로 바르게 써야 한다. 2026.10.9.금.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