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마곡사 대광보전에 대한 설명입니다.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해탈문·천왕문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로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불에 타버렸던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5칸에는 3짝씩 문을 달았는데 문살은 꽃 모양을 섞은 조각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 용 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고, 불단은 서쪽으로 마련하였는데 불단 위에는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닫집을 정교하게 꾸며 달았다. 문화재청/사진포함

차를 타고 들어가다 보니 산문은 그냥 지나쳤네요. 옛글에 보면은 무성산 마곡사였는데, 언제부터인지 태화산 마곡사가 되었습니다.

마곡사 사천왕의 지물에는 특이한 점이 있네요. 과일바구니를 들고 계시다니... 이유를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 부처님 전에 올리는 공양은 6가지가 있는데, 보통 육법공양이라고 불리웁니다. 향, 초, 차, 쌀, 등, 꽃, 과일의 6가지 인데요. 공양비천상이 있듯이, 공양사천왕상인가요.
아니면, 과(菓)자하고 통하는 과(果)자로 보아서 인과의 과인가요. 사천왕들은 제석천의 명을 받아서 세상을 감찰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느니,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인과를 보여주시는 것인지...

머리에 쓴 관도 상당히 화려합니다. 어떻게 보면은 불상 위에 있는 닫집을 연상하게 하지요. 용이 날고 천인들도 보이고, 꽃과 구름도 보이는 것이...

전각의 이름이 특이하지요. 흥성루라 다른 데서는 보지 못한 이름이네요. 성인들이 많이 나오라는 뜻이겠지요. 절을 일컬어 다른 말로 선불도량 즉 부처를 뽑는 수행처라고 했으니, 이 흥성루도 이런 뜻과 일치 하지요.

흥성루에서 명부전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이 잘 안다녀서 한적하면서도 운치가 있습니다.

마곡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요. 본전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사천왕문, 흥성루, 영산전, 명부전 등이 따로 이 한 구역을 이루고, 다리를 건너서 대광보전, 대웅보전, 조사전, 청련당 등이 다른 구역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영산전 현판도 세조 어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영산전에는 보통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십대제자와 오백아라한을 모시고 있는데, 이곳은 좀 특히한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칠불과 협시를 앞에 모셨네요.

명부전의 이 동자상도 과일을 들고 있지요. 역시 잘잘못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곳이라서 그런가요. 이곳에는 아주 잘 생긴 동자상들이 참 많이 모셔져 있어요.

드디어 마곡사의 본전인 대광보전과 대웅보전 영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심검당이라는 현판이 보이네요. 불교 쪽에서도 특히 선종 계열에서는 비유를 많이 사용하지요. 머리카락을 무명초라고 하듯이 번뇌를 끊어 내는 지혜는 칼로 비유를 하곤 합니다. 번뇌를 끊어 내는 지혜의 칼을 찾는 집 이 정도로 해석이 되려나요.

해강 김규진 선생은 불교집안과 인연이 아주 많습니다. 전국의 대찰에 많은 현판을 쓰셨지요. 옆에 대나무와 난초를 그린 사람은 죽농 안순환 선생입니다.

마곡사를 대표하는 유물 중의 하나가 이 탑이지요. 고려말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탑이라서 조금 특이한 모양을 보여줍니다. 위 쪽의 청동 상륜부가 달라보이지요. 라마사원에 보면은 실제로 상륜분 모양의 탑들이 많이 있습니다.

상륜부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지요. 아래쪽 기단이 보던 모양이지요. 경천사지석탑이나 원각사지 석탑의 기단부가 이런 형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국의 사례로는 보루부드루사원의 기단이 이런 모양이지요.

탑신부에는 사방으로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모양를 보니 동방 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이신 모양입니다.

마곡사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백범 김구 선생과의 인연이야기 입니다. 명성왕후를 시해한 일본의 낭인을 죽이고, 도망와서 바로 이곳에서 스님으로 생활 하셨다는 이야기 이지요. 후에 마곡사를 찾아 기념식수한 것이 바로 이 나무입니다.

조사당에는 여러 조사님들의 진영을 모셔놓았는데 그중 조계종 중천주이신 보조국사 진영입니다. 외에도 범일국사, 도선스님, 근대의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더군요.

마곡사는 조선시대에 유명한 화승들을 배출한 3곳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림이건 글씨건 불상이건 상당히 수준이 높은 편입니다. 이 글씨는 표암 강세황 선생의 글씨입니다.

대광보전의 외부 벽에 그려진 벽화 중 신중도입니다. 아주 기백이 살아 있는 모습들이지요.

옛 절들을 보면은 불상의 뒤쪽으로 약간의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에 보통은 괘불함을 모시고 있지요. 그리고 뒷면 벽에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경우가 많지요. 마곡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앉은뱅이가 이 대광보전에 들어와 기도를 하면서 삳자리를 짜기 시작해서, 백일 만에 다 짜고 걸어서 나갔다는 전설이 있지요. 지금은 위에 카페트가 깔려 있는데, 아래를 살펴보니 삳자리가 남아 있네요.

또 하나 유명한 것이 바로 기둥입니다. 싸리나무로 만든 기둥을 안고 돌면은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반들반들 하지요. 사실 싸리나무는 이렇게 크게 자라지를 않습니다. 아마도 사리나무 즉 사리를 모시는 함을 만들 때 쓰는 아주 귀한 나무 정도의 의미겠지요.

대광보전과 위에 대웅보전이 보이지요. 좀 특이한 구조입니다. 청양의 장곡사도 상대웅전, 하댕웅전의 구조가 특이하지만 이곳도 그렇습니다.
또 아래의 대광보전의 비로자나부처님도 우측을 보고 앉아 계신 것이 특이한 모양입니다. 태백산 부석사의 아미타부처님도 우측을 보고 계시는데, 서방 극락정토에 계신 분이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마곡사의 비로자나 부처님은 어찌 해석을 하여야 할지..

대광보전의 내부 벽에는 여러가지 벽화들이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왼쪽의 그림은 하마선인 유해라는 분입니다. 아래의 세발달린 두꺼비는 그를 세상의 어느 곳이든 데려다 줄 수 있다고 하는데, 가끔 우물로 도망을 치면 이렇게 돈이 달린 끈으로 달아 올렸다고 합니다.

대웅보전 이 편액은 신라의 명필인 김생의 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요사이의 연구 성과로는 그렇게 보기가 어렵다고 하네요. 머리가 큰 부분하며 조선전기에 유행하였던 설암체의 대자 편액들과 일치 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좀 더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 까 하네요.

대웅보전의 주불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청련당으로 가는 길 옆으로 있는 이 창고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굉장히 특이하여 눈에 띄네요.
이층에는 창살 사이로 보기에 목판들이 세워져 있네요.
청련당의 마루에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며, 바라본 전경입니다.

저녁 예불시간에 템플스테이를 들어 온 어린이들과 스님이 같이 범종을 울리는 군요. 잊지 못할 큰 추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에 같이 사찰문화해설팀에서 연수를 한 7명의 1차 합격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드디어 첫번째 면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마곡사 포교국장이신 상초스님과 옆에는 대전, 충청포교사단 단장이 배석하였습니다. 1차 합격자 전원이 포교사가 되어서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훌륭한 일꾼들이 되어 주시길 기원하는 마음 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