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통 검찰 소환 당시 대검찰청 사무실에서 노통을 내려다 보는 모습.- 완전 짜증 !!
박연차 사건의 수사검사들중 정작 중요한 대검 중수부장인 이인규의 역활을 모르시는것같아 글을 올립니다 ( 일요신문의 6월7일자 보도내용 입니다 )
명바기는 98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11월에 도피하듯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의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빈둥거리며 골프나 치러다니며 시간을 때우면서
그때 당시 주미대사관에 근무하던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있었으며 주미대사관 근무자들도 재력있고
딴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명바기에게 혹시나 하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온갖 편의를 제공 했는데 그당시에 주미대사관에 근무및 언론사 들의 워싱턴 특파원으로파견되어
있엇던 사람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명환-주미공사 (현,외교통상부 장관 재직중)
김영호-주미대사관 근무 (현,행정안전부 차관 재직중)
김성환-주미대사관 근무 (현,외교통상부 차관 재직중)
이인규-주미대사 법무협력관 근무 (현,대검찰청 중수부장 재직중)
신재민-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현, 문화관광체육부 제1차관 재직중)
김상협-매일경제 워싱턴 특파원 (현,청와대 미래비전 비서관 재직중)
상기와 같이 명바기가 미국에 있는동안 기자들및 공무원들과 함께 골프를
치고 다녔으며 라운딩이 끝난후엔 함께 토론을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였는데
이들중 주미대사 법무협력관인 이인규와는 상당히 절친했다는걸 교민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시절 한인회의 임원이었던 한교민은 명바기가 워싱턴에 왔을때 이회창도
함께왔으며 이인규 중수부장은 이회창 과는 이전부터 잘알고있는 사이로
기억하고 있으며 명바기와 이회창이 골프라운딩을 하는 자리에서 이인규를
소개해 주엇으며 이후 두사람은 절친한 사이가 된걸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명바기처럼 전과가 많은것들은 검사들과 친분을 맺는걸 아^주 아^주좋아함)
1999년말 명바기는 자기 고향인 오사카도 안들르고 한국으로 입국하였으며
이인규는 1999년 중순경 법무부 차장검사로 돌아왔다
이인규는 명바기가 정권을 잡은뒤 검찰인사가 처음 이뤄진 2008년3월 대전
고등검찰청 차장검사에서 대검 기획부장으로 영전하더만 2009년 1월에는
서울 중앙지검장과 함께 검찰내 요직 빅4로 꼽히는 대검 중앙수사부장에
임명되는 파격적인 진급을 하였으며 명바기 임기내에 검찰총장까지 눈앞에
두게 되었다
이인규는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되자 박연차 게이트의 수사를 진두지휘 하면서
노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연관된 인사들을 거침없이 몰아치면서
노 전대통령의 소환까지 이끌어 냈는데 노 전대통령의 서거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으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으며 전전긍긍 하고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노 전대통령의 수사에대해 지나치게 이인규 중수부장의 뜻대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으며
이인규가 명바기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너무 나선다며 우려를 표명한 검사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인규는 수사과정에서 임채진 총장의 말도 잘안먹히고 자신의 뜻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보고도 제대로
하지않아 임채진 청장이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하엿으며 이러한 불만들이 퇴임 기자회견에서
수사지휘를 많이 받았다며폭탄 발언을 하게된 배경인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봤을때 박연차 리스트 수사의 총괄적 개요를 살펴보면
명바기 한상률 국세청장에게 세무조사 지시--세무조사후 명바기에게 보고--
명바기 이인규 중수부장 임명--명바기 법무부장관에게 수사지시--법무부장관 검찰총장에 수사지시
--검찰총장 중수부장 이인규에게 수사배당및 지시--이인규 홍만표에게 아주 아작을 내버려라 지시---
이인규 수사상황 법무부장관 및 명바기에게 수시로 보고 및 수사 지시받음-- (노 전대통령 사망)--
보고라인에서 제외되고 지시를해도 먹히지않은 임채진총장 열받아서 폭탄선언및 사퇴
제 개인적인 수사 진행상황을 추측해 본것입니다
내말은 주어가 없으니 맞으면 좋고 틀려도 어쩔수 없는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