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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화독명약火毒名藥☆]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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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독명약火毒名藥]
유수화 시집 / 문학아카데미시선 297 / 문학아카데미(2019.07.15)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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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독명약火毒名藥
- 산수유주
눈 오는 날에는 산수유빛 붉은 청주를 권합니다
여러 날 그대가 있는 산자락을 오가며 따온 열매
산수유 300그램을 물 2되에 넣고 팔팔 끓여요
시루에 앉힌 고두밥은 뿌연 김을 올리고
술방의 열기는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알알이 식은 고두밥에 차디찬 밑술이 뼛속까지 시리게
버무리고 치대는, 뜨거움을 삭히기가 참 오래 걸리네요
하긴, 마음의 화독도 고질이라 쉽사리 걷어지지 않던데요
시간이 약이라는 처방대로 기다리며
휘감은 눈발이 툭툭 창틀에 쌓이는 곳으로
손을 내어봅니다
시린 손을 마주잡던 사람
그 불장난 같은 떨림의 뜨거움
눈발처럼 내 손안에서 녹아내립니다
쥐면 녹고, 잡으면 사라지는 그대
그대 아직도 사랑의 열독에서 발효 중이신가요
화중지병畵中之餠
- 아카시아술
그 숲 가시나무 덤불과 엉겅퀴 길 사이로
아카시아꽃을 따는 저녁입니다
엉겅퀴빛 노을이
아카시아 화주에 취하는 술방의 저녁입니다
아카시아 꽃송이에 취한 노을의 육향
누룩에 버무리는 술방의 저녁입니다
달이 오면 달그림자로
별이 가면 그 뒷모습으로
벗 삼아 사는 묵언의 하루가
황혼녘에 빚어 밤을 재운 화주로 익고
툭, 어깨를 치는 이백의 술잔 같은 노을이
술잔을 기울이자마자
넘어가 버리는 저 노을의 추기
늙는가 보다
봄, 너를 소환한다
- 솔잎주
삼월 중순 채취한 솔잎을 깔고 백설기 주모를 찐다
섣부르게 열어볼 수 없는 설익은 시간
소주방으로 뿌연 솔향의 김이 넘치는 시간
설왕설래하던 그대에게 가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이리저리 앉았다 날았다
아주 가까이 마음으로 날아오는 듯하다가도
눈길에서 멀어져 버린
접었다 폈다 날개짓하던 나비가 된다
이제, 그대의 눈으로 날았던 솔길의 두근대던 뜨거움도
하나 둘 마음에 봉인되어 접어둔 시간도
소나무 둔덕으로 날아가는 흰나비의 길로 보인다
다시 그대의 봄이다
항아의 노래
- 계화주
오월의 윤달, 19일에 답주로 보낼 계수나무꽃 계화주
꽃잎 하나하나에 손길을 담아서 여러 날 찌고 말린 계화
85도 온수로 2시간을 우려내고 있어요
계화 꽃물이 노란 물 번짐으로 만들어 가는 시간
그대는 지금 안녕하신지, 답글을 써내려갑니다
소소한 근황부터 속 깊은 이야기들로 채워온 마음마저
계화 꽃물로 노랗게 우려내는 밤입니다
술방으로 오는 그대의 그림자
사내의 가슴을 흔들어놓은 항아姮娥의 노래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불로不老의 사랑노래 한자락을 취하려고 합니다
잠시 잠깐 달빛도 눈을 감아주시길
계화주, 부끄러움에 취하여 밤을 새우는
홀로 사랑하는 마음을 숨길 수 있는
삼라만상이 눈을 감는 윤달에 술을 빚고 있답니다
부부의 등
- 朱雀酒
늘보리바람이 길을 그려가는 오월
늘보리 2되 5홉으로 고두밥을 지어
구기자 300그램을 달인물 3되에 날물 3되를 더해
고루 버무린 뒤 밑술과 함께 술독에 담아 안치는
주작주朱雀酒를 빚네요
휘휘 저어지는 술항아리 출렁이는 소리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그림자를 내어주고 걷던
어찔한 구름을 안고 걸어가던 보리이랑의 시간
초로初老의 그대가 맞춤인 술
보릿대 바람의 그대 전설이
보름 동안 익어가고 있어요
주작주 술항아리에 늘보리 풍미가
그대인 양 오는데요
후텁한 그녀의 바람은 저녁나절 오월 끝자락에 앉아서
늙은 사내의 등줄기만 바라보네요
은밀하게
- 두견주
석 달 열흘 봉해진 두견주 술독을 연다
술독 입까지 무명지로 막아둔 술의 시간을 거른다
침묵의 골짜기에 얼음장 쨍쨍 깨어지는 소리
소리의 바람을 꽃망울로 틔운 참꽃은 독을 품고 있다
꽃잎 속 수술과 암술의 내밀한 이야기를 뽑아내야 한다
묵언의 비책이다
마음에 출렁 봄바람으로 돛을 올리는
그대 영혼까지 흔들림을 주체할 수 없는 풍미
오늘 밤, 취取하지 말아야 할
저 죄, 불콰하게 참꽃향 울타리가 될 때까지
그대의 고백성사용 두견주를 보낸다
치명적 유혹
- 뽕잎술
뽕나무 잎을 펼쳐놓은 술방
6월 늦바람이 분다
별들이 서로의 바람길에서 합궁하고
달빛이 바람 흔들리는 품으로 들어가고
산까치며 노루발까지 짝을 찾아 가는
바람 이야기 말아놓은 뽕잎을 쩌서 술을 빚자
진한 향기와 함께 감칠맛의 풍미가 짙어지고
뿌리치지 못하는 술향의 유혹
아무리 주의하라 하여도 외면할 수 없는
대취한 그대가 일러준 주독을 풀 길 없는
백방이 무효인 술
그대의 유혹에는 속수무책이구나
자야오가
- 연잎 백화주
밑술의 풍미는 빗소리에 농후해지고, 술방은 온통 연꽃밭이 된다 연잎 속에 가는 허리 구부려 연꽃으로 소매깃을 적시는 서시의 분내, 서시의 눈빛
가을볕에 법제하듯이 화들짝, 미처 뒷걸음도 못 칠 즈음 너무 오래도 너무 빨리도 아니게 스승의 비책대로 품은 마음에 덧술을 담는 거다
바닥까지 끓어오르던 술밥의 숨결이 한소끔 가라앉은 곳
팔팔 끓여 식힌 탕수를 붓고 고루 버무린 후 술독에 연잎을 깔고 밑술을 놓은 다음 다시 연잎을 덮는다 뿌리에 돌돌 말아놓은 시간의 향취도, 백화가 만발할 때 바람에 닿았던 기억의 한 자락도 몸속에 말아놓고 산 그녀의 이야기가 발효중이다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처방, 최고의 술맛 내는 비법인데
가을밤 저 빗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이제, 자야오가子夜吳歌의 이백을 불러야겠다 서시의 노래로 더한층 달디단 연잎 백화주, 홀로 밤을 보내는 사내의 정에 달빛 가득 넘치게 부며 권주가라도 불러야겠다
화火를 화花로 다스리다
- 이화주
화가 차올라 새벽잠을 잇지 못하는 지금
배꽃향이 나는 이화주梨花酒를 빚어요
백미를 작말하여 쪄낸 백설기
더울 때 더운물로 잘 풀어가야 합니다
희뿌연 김에 풀풀 제 몸속 무게를 벗어내기 버거운 곳
그 사이로 끓인 탕수를 붓고 저어주고 또 부어요
거슬거슬한 마음알갱이 풀어주듯이
저어주고 으깨지요
훅훅 더운 내음이 안으로 치받쳐 오는 고된 시간
그대의 상처, 그대 이야기의 여릭가 덧나듯 피어나고
송송 맺히는 땀방울 훔치며
백설기를 배꽃빛으로 풀어갑니다
이제, 기다려야 합니다
겨우내 가슴으로 둥글게 품어 안은 푸른곰팡이
그 흔적까지도
돌절구에 찧어지고 빵아져 곱디고운 이화국
뽀얗게 살아 있는 분말이
첫날밤 손길로 버무려지는 시간
화를 삭히도록 기다려주던 그대 마음이 되어
뜨거움에 풀어진 살속 뼛속
혼의 열이 내리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술방이 온통 이화주 배꽃향 세상이 되어도
달디단 향내를 맘껏 풍기도록 두어야겠어요
이화주, 기다림의 풍미로 그대에게 갑니다
고백하지 못한 죄
- 감국주
동의보감에서
감국을 술로 빚어 마시면 눈이 밝아진다기에
상주 산골 진영대 시인 황톳집 언덕빼기에서 감국을 땄다
꽃잎이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랑
이미 흐드러지게 피어서
고개 떨군 것까지 남김없이 소쿠리에 담았다
무리져 노란 울타리를 만든 세상이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감국주를 거르는 날
감국의 꽃잎들이 무리져 떠 있다
술방 가득
감국향 울타리가 겹겹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고백하지 못한 죄까지 불콰하게 감국향 울타리가 된다
저 속까지 다 보인다
아버지 집
- 청강주
아버지 집이다
층층이 쌓아놓은 상자의 먼지를 쓸어내자
상자 안, 눅눅히 습기찬 아버지의 일기장
빛바랜 글자들이 오종종 줄 안에 들어가 있다
아버지 시간의 퍼즐 조각에
헐렁하게 빼곡하게
남자의 이름자로 살아가는 것을 접어놓은
소소한 아버지의 그림자가 있다
일 년을 더 살자고 집을 팔 수는 없다는
췌장암 수술을 완강하게 거절해
자식들 마음에 억장의 안타까움을 주던
아버지 눈빛은 집이 되어 있다
오늘 아버지 집에 위패 앞에
알콜도수가 높다고 즐기시던 청강주를 올린다
달맞이 꽃등
그대 집으로 가는 길
달맞이꽃 위로 소낙비 내리고
가슴속 불의 잎으로 심지를 돋은
달맞이 꽃등을 들고 서서
달맞이 그림자가 되어 흔들립니다
노란 너울을 감고 마음까지 흔드는
맨발의 무희랍니다
오늘은 잠시
그대 걸음을 저에게 주세요
후두둑 달맞이 마른 가지
불을 끄지 마세요
그대의 소낙비를 이겨낼 수 없는 오늘
그대에게 가는 길을 지우지 못해
온몸이 비가 되어 춤을 춥니다
그대에게 가는 길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내게도 비상구 같은 섬이 있을까
수평선에 맞춘 렌즈
바위들 앞섶을 조금 풀며 포즈를 취한 강릉 해안 도로
12월의 파도 속에
그대, 독하게 살아야 한다는 술잔의 브라보
시인의 노랫가락으로 파도치는 시간의 기억을 지나
주문진의 손짓도 정동진의 소나무도 뿌리치고
너울파도 경계에 뒷걸음질 없이 밤을 달려
상처의 속을 풀던 너에게 간다
내 안의 섬에서
아직, 방전 중
지금, 그대의 답을 꿈꾸고 있다
드라이플라워
마른 꽃잎을 본다
낙타의 등줄기를 닮은 뿌리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에 닿았을 물, 뿌리의 끝이 없다
물줄기로 가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신을 부르던 종소리, 신의 발소리에 귀를 대고
첫 꽃잎을
모래바람에 흔들리게 한 찰나로
꽃잎의 솜털이 흔들린
수천 길로 겹친 모래의 계곡으로
낙타의 방울소리
누군가, 나에게 오고 있다
돌돌 말리고 말린
마르고 비틀어진 꽃잎의 물줄기를 지나고 있다
꽃받침에서 시작된 길을 찾아서 오고 있다
부처의 봄, 나의 봄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초승달에 걸린 바람 소리 삐그덕 삐그덕 창을 치는 밤
산벚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눈을 맞추어 본다
가난한 달빛 사이로
하얀 낯빛의 벚꽃들이 서로의 속내를 날리고 있다
이리로 저리로 눈길을 주기도 하고
손을 마주 잡기도 하고
가슴으로 안기기도 입술을 맞추기도 하는 춘풍 놀이다
문득, 윤회의 고리를 걸어 열흘의 생이라 마음잡고
상처로 돌돌 감아놓은 우듬지 뿌리부터 눈을 틔워야겠다
그대의 마음을 읽어보지 못한 채 태워버린
시간으로 가야겠다
뿌리쳤던 손도 잡고
마음으로만 품고 살은 눈빛
밀쳐냈던 곁을 내어주기도 하는
산벚나무 들려주는 사랑가에 맞추어 보자
그리 사는 것, 후생에 걸어둔 봄밤의 춘몽이다
중독된 사랑
원추리를 아시는지요
아직 꽃대가 오르지 않은 어린잎을
한 잎 따서
피리를 불듯 불어보았어요
혀에 감기는 달달한 풋내에 취해 보았어요
불타던 가슴이 환해졌어요
봄볕이 온몸에 퍼졌어요
봄볕을 찾아 나온 원추리마다 칼끝을 넣었어요
뿌리 안으로 깊이 싹을 도려내었어요
이 세상살이 시름을 도려내었어요
온몸의 창자가 조여 오는 고통이 있더라도
그리운 마음을 잊고자 원추리 잎
한 입
한 잎, 가슴 가득 우려냈었어요
바보, 봄을 놓치다
통영에서, 그가 급속 냉동된 붉은 도미를 보냈다
그의 손을 잡듯 덥석 꼬리를 잡자
스르르 미끄러져 빠져나갔다
놓친 손이 시리다
붉은 도미의 머리를 다시 힘주어 쥐고
딱 달라붙은 지느러미에 칼끝을 세워 넣었다
너무 힘을 주어선가
지느러미로 들어가야 할 칼끝이 어긋났다
단단한 살점 밖으로, 칼이 다시 튀어나갔다
도마 위에서 빙그르 도는 붉은 도미의 눈처럼
내 손에서 흘러나오는 핏방울도 선홍색이었다
잠시 두고 기다릴걸
눈 깜짝할 새에
성질대로 칼질을 하다가
붉은 도미의 바다. 그의 바다를 놓쳤다
그 지느러미 비늘 속 바다가 온전히 풀리어
내게로 되돌아오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열일곱 살 눈이 온다면 응답하라
가난한 눈발이 11월에 내리는 날에는
열일곱 내가 되어본다
춘향이보다 이쁜 나이, 이쁜 마음자리가 된다
그 사거리에서 버스를 내리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학생 몇몇이 같이 걷다가
이윽고 헤어져 각자 가는
그 얼굴, 그 눈빛들
새벽부터 첫눈 같은 눈발이 날리던 날
습기로 눅눅한 버스 안은
등교 학생들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날따라 참고서를 넣은 책가방으로
어깨가 견디지를 못하고 기울어지고
그만 도시락 가방을 놓쳐버렸다
정거장에 내린 나는 그냥 학교로 갔다
눈물범벅으로 걸어가는 성모 언덕이 너무나 멀었다
그런데 도시락이 나보다 먼저 학교에 왔다
누군가, 남학생이 갖다 놓았다는 거다
나는 더 이상 그 시간대의 버스를 타지 않았다
눈이 저렇게 내리는 날에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성모 언덕을 걸었을
그날의 그대가 궁금하다
곡우, 제비꽃 언덕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
내 별이라 이름 짓고 부르던 제비꽃 언덕, 산 7번지
봄이랑 어깨 걸고 기억의 상자를 열며 오는 곳
눅눅하게 번지는 제비꽃 편지의 얼룩진 길의 갈레로
다시 갈 수 있을까?
제비꽃 꽃술 같은 첫 키스로
벼락 맞은 듯 제비꽃 언덕을 굴렀다는 그녀의 연애사도
제비꽃빛 별이 되어 수런거리는 그곳에
기억이 오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초록의 가슴떨림
초하룻날 아침, 벽에 걸어둔 액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액자 속 글자들이 폭삭 엎어졌다
유리 파편들을 털고 살살 한쪽을 잡아 기대어 놓고 보니
풀기도 없이 헤진 공간에는 얼룩들이 살고 있다
둥글게 넓게 크게 길쭉하게 점점이 터를 짓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모습 앞에, 내가 있었다
축 결혼 9월 14일
먹물의 첫길과 흘림의 마침길에도 내가 있었다
묵향은 시간 속으로 걸어갔는지
이제 내 것은 아니지만
내 첫 먹물을 찍어 놓은 순간이
초록의 가슴떨림이
봄날같이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새삼, 날 놀라게 한다
사랑을 놓치다
논병아리들이 떼를 지어 짝짓기합니다
암컷의 주위를 빙빙 도는 놈
날개를 차르르 펼쳐 수면을 가르고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며
위세를 떨치는 놈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갓 물어온 물풀을 연신 나르는 놈
눈치 없이 사랑에 빠진 암컷에게
재주 부리다 부리를 쪼이는 놈
수컷들의 봄이 익는 낙동강 하구 둑방에서
나도 한 마리 논병아리가 된다
그것도 죄냐
저들에게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쳐 물어보자
후두두둑 무리지어 날아가 버리는
봄을 놓치는, 봄날이 저만치 가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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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첫 만남은 설렘이라고 한다
두 번째도 마음까지 울렁이는 만남이다
참 오랫동안 돌고 돌아서 시와 포옹한다
시,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지만
여기까지다
그대의 상처를 함께 바라봐준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시를 보냅니다
2019년 어느 마음 넉넉한 날
유수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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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화 詩集 [※화독명약火毒名藥※]
[ 유수화 시인의 시작노트 ] -
카타르시즘의 돛대, 희망항해
유수화
나는 2001년 등단한 이후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무엇을 쓸 것인가’에 매달리면서부터 그동안 배워왔던 전통주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문헌에 의하면 전통주는 삼한시대부터 이미 기록이 나오기 시작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를 비롯해 고대문헌에는 ‘신라주’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우리 술의 명성이 높았다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통주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 꽃과 과일, 그리고 곡물과 누룩이 결합하면서 지역에 따라 집집마다 다양하기 그지없는 종류가 만들어져 왔다. 이 때문에 흉년이 들거나 식량이 부족할 때는 제일 먼저 ‘금주’라는 철퇴를 맞고, ‘밀주’라는 이름으로 숨어지내야 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전통주는 체계적인 질서를 잡지 못한 채 집집마다 그 제조법이 다른 각양각색의 가양주로 명맥이 이어져 왔다.
따라서 내가 작품에 제시한 가양주는 시대의 운명에서 소용돌이치고 소멸되는 이 시대 소시민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필요가치가 소멸되면 언제든지 존재 자체가 무용지물 되는 시대의 불안과 처절한 상실의 상처로 살아가는 독자에게 많은 공감대를 줄 수 있는 모티브인 것이다. 누군가 고단한 삶에 의문점을 가지고 무거운 짐에 휘청거릴 때 이 몇 줄의 언어 속에서 어깨를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위안의 동지를 찾길 바라는 따뜻한 감성을 선물로 보내고 싶었다.
나의 시적 갈증과 방황의 길목에서 마난 ‘가양주 술 빚기’의 행위는 나의 곡석진 ‘삶’에서 구비지고 엉킨 굴곡을 지나 직선이 출발되는 정점을 찾아 정착되는 ‘삶’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와 식량사정으로 인한 가양주 금지정책과 밀주단속으로 말미암아 그 맥이 끊긴 채 옛 문헌과 구전으로만 전해져온 전통 가양주는 우리 역사와 더불어 우리의 전통 식문화 전반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문학에서도 가장 밀접한 소재가 되었다. 내가 이처럼 소실되고 외면되어 사라져가는 전통 가양주 문화에 대해서 애정과 관심을 갖고 ‘물아일체’의 모티브로 시 창작에 도달한 것은 아마도 시대의 소용돌이에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언어 같은 전통주의 명맥에 동질감의 정서적 감흥이 일치되었을 거로 스스로 맥을 짚어본다.
이번 소시집에 발표한 「은밀하게」「화독 명약」「희망의 별」「참동무」 「배꼽 육향(艾酒)」의 5편도 내 시쓰기 여정의 모티브에서 생성된 편편의 모습들이다.
제목은 가양주를 소재로 한 시와 모티브의 속성을 이미지화 하는 시작법을 병행하여서 직접적인 모티브의 호명과 주제적 의미를 표현하였다.
작품의 서두는 소재의 특수성에 의한 낯설음으로 인해서 독자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겠다는 관점에서 소재 자체의 정보를 활용하고 제시하는 방향으로 집필하였다. 소재의 전개부분은 현실적 사물은 시인의 시적 자아와 합일치되면서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되므로 서술적 정보전달이 아닌 동화와 투시의 시작법으로 독자와의 소통에 문을 열었다.
주제의 공감대를 극대화하는 창작 기법을 활용한 마지막 연에는 시정적 감동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시의 창작 관점으로 전지적 경험을 리얼리즘으로 서술하는 데 치중하지 않고 모티브의 정보를 활용하고 반영하는 시의 ‘성실성’, 즉 사물과의 감정 이입에 충실한 시적 ‘진실성’에 가치기준을 두었다.
술 빚기가 단순한 식문화가 아니라 몸과 마음의 수양과 정이라고 본 관점에서 그 맛과 풍미 그리고 술의 의미에 제대로 된 술을 빚는 것은 곧 자신에게 솔직하고 성실하게 술빚기에 임해야 한다고 훈계하고 있는 주방문의 비법뿐만 아니라 통과의례에서 ‘주도’의 예가 갖추어진 전통주와 가양주를 재현하고 찾아가는 과정은 내 삶의 시적 행로와 같은 행위이다.
루카치의 리얼리즘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행동하는 생활 속에서, 객관적인 발전적 상태로 사회에 대해 장기적인 영향을 끼치는 지속적 요인을 찾는다고 하였다. 즉 리얼리즘관에서 미학적 예술성을 표현한 시가 사회의 모순에서 발생되는 인간의 갈등에 대해서 카타르시스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작품을 창시하는 것은 시인 개인적 성향이지만 생성된 이후는 미래를 향한 삶을 지향한다고 본다. 즉 문화의 효용적 가치의 최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모티브로 각기 독특한 개성의 이름을 가진 가양주와 전통주로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서적 파동을 느끼게 하는 시이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시적 화법인 의인화와 은유로 존재의 무가치를 가치 있게 해 주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주는 시안을 실현하고자 정진하고 있다.
이런 나의 시창작 목적에서 전통 가양주의 연작 모티브인 물질적 ‘술’은 시인의 ‘술’로 의미 구조를 확장하고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중, 즉 핵심을 ‘술’이 소유한 특성을 통해서 독자의 이해를 도와 소통을 시도하고자 한다.
즉 문학의 효용적 측면에서 모티브의 정보를 언어로 조합하고 다듬어서 시적 완결성을 높이고 있는 과정의 궁극적 목적은 작품을 읽는 독자의 내면 속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카타르시즘에 두고 있다.
이처럼 내 시창작의 모티브는 전통문화의 정신과 미적가치의 재탐구를 주제로 한 것이며, 시인의 경험 가운데서 전지적, 심리적인 근거를 문학적 허구로 제시하는 미적 추구이다. 나의 사유 과정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뛰어난 과학적 누림의 시대에 완전체를 지향하는 시대적 급류와 상실된 인간의 자존감, 공간의 이탈이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 모형화된 긴장의 릴레이 삶을 사는 독자에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의 통로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란 존재의 절대적 필요성에 가치관을 둔 시작활동이다.
시인의 시작 활동에 대해서 T.S엘리어트는 “시인의 정신은 작업이 완전히 준비됐을 때 이들 경험들이 이미 새로운 통일된 모습으로 구축되어 가고 있는 것”라고 하였다.
내 작품의 시작법은 경험적 사유에 의해서 ‘술’의 모티브가 의인화되기도 하고 은유로 다시 생성되면서 언어적 긴장성이 긍정적 상승의 고결성을 팽창시키고 일상적 말의 의미를 뛰어넘는 픽션으로 만들어진 완전체로 시적 상승도를 높였다. 즉 연작 모티브로 물질적 ‘술’에서 시인의 사유과정의 내적 사상을 ‘술’이라는 유한 존재에 부여함으로 해서 의미 구조를 확장하였다. 무한 존재의 의미로 도달코자 하는 과정은 광의적 의미로 독자에게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교훈이 되기도 하고 한 줄 가슴에 새기는 삶의 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또한 술을 빚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맛과 향기가 달라지는 경험적 과정이 이미지화되면서 독자의 희노애락 감정과 고양된 인간적 갈등을 소통해서 카타르시스 작용을 하는 시적 성취과정을 추구한 시이다.
전통 가양주를 모티브로 하는 시 창작 작업이 사람의 소리가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공간이 곧 ‘희망’이라는 주제적 의도를 확장하여서, 독자에게 내일로 가는 길에서 어제의 공간이 살아온 시간의 존재라는 ‘희망’ 여행의 의미를 되짚어보도록 하려고 한다.(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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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화 詩集 [※화독명약火毒名藥※]
[ 유수화 시인의 시세계 ] -
술빚기로 치유하는 시정신
박남주
1. 내면적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카타르시즘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하는 3월 어느 봄날, 종로에서 유수화 시인을 만났다. 권현수 시인이 주선한 명상 강좌에 함께 참여하고 부근 전통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수화 시인에게 두 번째 시집의 시적 모티브는 무엇인지, 또한 시적 경향이나 특성에 대해 시인의 견해를 직접 들어보았다.
유 시인은 2001년 등단한 이후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의 방향에서 이제 ‘무엇을 쓸 것인가’에 정착하면서 경험적 모티브인 전통주와 가양주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창작 활동에 정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창작 작업은 시적 갈증과 방황의 길목에서 만난 ‘술 빚기’의 행위가 시인 자신의 곡선진 ‘삶’에서 구비지고 엉킨 굴곡을 지나 직선인 정점을 찾아 정착되는 ‘삶’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와 식량사정으로 인한 가양주 금지정책과 밀주단속으로 말미암아 그 맥이 끊긴 채 옛 문헌과 구전으로만 전해져온 전통 가양주는 우리 역사와 더불어 우리의 전통 식문화 전반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문학에서도 가장 밀접한 소재가 되고 있다는 점에 시적 모티브로 매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제가 제시한 경험적 모티브인 전통 가양주는 시대의 운명에서 소용돌이치고 소멸되는 이 시대 소시민의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필요가치가 소멸되면 언제든지 존재 자체가 무용지물 되는 시대의 불안과 처절한 상실의 상처로 살아가는 독자에게 많은 공감대를 줄 수 있는 모티브인 셈이지요. 누군가 고단한 삶에 의문점을 가지고 무거운 짐에 휘청거릴 때 이 몇 줄의 언어 속에서 어깨를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위안의 동지를 찾길 바라는 따뜻한 감성을 선물로 보내고 싶었습니다.
기존 작가들의 시 창작 모티브와는 다르게 전통 가양주를 모티브로 하는 시 창작 작업이 사람의 소리가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공간이 곧 ‘희망’이라는 주체적 의도를 확장하여서, 독자에게 내일로 가는 길에서 어제의 공간이 살아온 시간의 존재라는 ‘희망’여행의 의미를 되짚어보도록 하려고 합니다. 즉 문학의 효용적 측면에서 모티브의 정보를 언어로 조합하고 다듬어서 시적 완결성을 높이고 있는 일련의 궁극적 목적은 작품을 읽는 독자의 내면적 상처를 들어내고 치유하는 카타르시즘입니다.
유수화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 2007년에 나왔으니, 만12년 만에 상재되는 두 번째 시집은 발효주를 모티브로 한 색다른 주제라 특히 관심이 모아진다.
유수화 시인은 목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는데 어떤 계기로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김영순 교수의 ‘전통주와 발효이야기’의 강좌를 수강하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궁금하였다.
3월 어느 날 동국대학교 교정에서 김수목 시인과 약속이 있었습니다. 김 시인을 기다리던 중, 활기찬 학생들의 모습에서 그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던 내가 되살아나며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겼어요. 그래서 주저 없이 전통주를 빚는 모임이라는 말에 유년 시적 외조모의 술 빚는 모습이 떠올랐던 거죠.
술빚기를 배우면서 ‘누룩’이라는 미생물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 시공간의 순환과 윤회과정, ‘술의 이름 하나하나가 삶이고, 술의 과정 하나하나가 우주 만물 생성의 근원과 일치한다’. ‘거칠고 험한 과정의 한순간도 버릴 것이 없으며, 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술을 빚을 수록 깊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지요.
유수화 시인의 독자들도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내면의 상처를 함께 치유받았으면 하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공유하기 바라며 시인의 시「화독 명약」,「아버지의 술, 과하주」를 음미해 본다.
눈 오는 날에는/산수유빛 붉은 청주를 권합니다//여러 날 그대가 있는 산자락을 오가며 따온 열배/산수유 300그램을 물 2되에 넣고 팔팔 끓여요/시루에 앉힌 고두밥은 뿌연 김을 올리고/술방의 열기는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알알이 식은 고두밥에 차디찬 밑술이 뼛속까지 시리게/버무리고 치대어야 하는/뜨거움을 삭히기가 참 오래 걸리네요//하긴, 마음의 화독도 고질병처럼 쉽사리 걷어지지 않던데요/시간이 약이라는 처방대로 기다리며/휘감은 눈발이 툭툭 창틀에 쌓이는 곳으로 손을 내어봅니다//시린 손을 마주잡던 사람/그 불장난 같은 떨림의 뜨거움/눈발처럼 내 손안에서 녹아내립니다/쥐면 녹고, 잡으면 사라지는 그대//그대 아직도 사랑의 열독에서 발효 중이신가요(「화독 명약」 전문)
시「화독 명약」을 읽으면서, 김종길 시인의「성탄제」가 떠올라 가슴이 아려온다. 또한 “산수유빛 붉은 청주”에서는 어떤 술맛이 날까? “뼛속까지 시리게/버무리고 치대는” 우리네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지만, “뜨거움을 삭히기가 참 오래 걸리”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처방대로 기다리며” 살다보면 산수유빛 기쁨도 만나고 행복도 찾아오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시 「아버지의 술, 과하주」가 보여주는 시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그리움에 동화되었다.
안개에 젖어 있는 시간도 물길에 설레던 시간도/무엇하나 내 것으로 정하지 않으시던 그가/오롯이 당신만의 과하주를 채주하십니다//뜨거운 증류를 식히듯 무제치 늪으로/시큼한 바람이 부는 8월 한낮/아버지가 떠난 무제치늪에는 여전히/물자라가 물그림자로 하루를 지나가고 있어요/문득, 낯설지 않은/저 등에서 불콰한 아버지를 봅니다(「아버지의 술, 과하주」 부분)
2. 시인의 환경과 시적 모티브의 메시지
시인은 대구에서 출생했는데, 허약체질로 태어난 데다 동생과 연년생 터울이 지어 강보에 싸인 채 외가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한의사 외조부의 치료와 외조모의 지극정성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저는……사천 양반가 딸로 태어나 사서삼경을 익히고 일본에서 신학문을 배운 외조모는 밤마다 논어, 맹자 이야기를 옛날이야기로 풀어 들려주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신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훗날 박사과정에서 「신여성」잡지를 연구하던 중 외조모가 들려주신 옛날이야기가 실존 인물인 걸 알았습니다.”
“또한 한의원에서 늘 풍기던 탕약 냄새며, 장녀이신 어머니 아래로 네 분의 독특한 성품을 지닌 이모들의 맘보바지와 불 파마, 연애사, 외삼촌의 월남전 이야기 등 이모와 삼촌들의 사춘기 틈바구니에서 투영된 환경이 훗날 시로 형상화도지 않았나 생각됩니다.”라고 유시인의 성장기의 환경을 듣게 되었다.
유수화 시인은 성모여고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신 이선희 시인의 권유로 ‘냇글’이란 문예반을 만들어 제1회 ‘냇글’동인으로 활동하고, 대학 재학 시절에는, 학보사 기자와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미술대학을 중도에 포기한 이유로 부모님께 학비 지원을 받지 못해서 학보사 기자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준다는 입학조건에 끌려,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였다. 고 홍희표 교수와 인연을 맺어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였지만 장학금을 받는 처지라서 아쉽게도 적극적인 문학 활동은 접어야 했다고 한다.
시인의 첫 시집 『쏨뱅이의 사랑』(2007. 문학아카데미)을 다시 읽어보았다. 시「비오는 날에는 마티스를 만난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물 가까이 다가가 푸른 물방울 하나 자작나무 그늘 하나하나 점점이 그려낸 맑고 투명한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미술을 전공한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 상상력에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녔다. 박제천 선생님의 단평과 함께 읽어보자.
마티스의 「숲이 있는 풍경」그림에는/자작나무 숲의 그늘이 푸르게 번져 있다/물방울무늬로 번진 그늘 가까이 다가서니/자작나무 숲길이/푸른 물방울 그늘에 젖어 보이지 않는다//초점을 멈춰야만/자작나무숲길이 보인다고 한다/그림에서 눈길을 떼지 말아본다/단 몇 초간이라도 한눈을 팔면/길을 찾을 수 없다기에/뚫어져라 바라본다/자작나무 그늘인지 길의 길인지 매직 화면 같은/그림 속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보이지 않는 자작나무 숲길을 보려는 마음/접지 못하고 있다/점점 자작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갈 뿐이다/처음부터 눈길이 닿지 말아야 했다/나에게 자작나무 풍경으로 서 있는/그에게 가는 길처럼, 다가서지 말아야 했다//다가갈수록 마티스의 그림속/푸른 물방울이/ 내 안으로 번져 들어와 자작나무 숲의 그늘이 된다/여름비는 언제 멈출지 모르고/미술관에서 그에게 가는 길은/자작나무 숲으로만 이어진다(「비오는 날에는 마티스를 만난다」 전문)
이 시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편의 하나인 「비오는 날에는 마티스를 만난다」는 시인의 개안이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실마리라 할 수 있다. 유수화 시인은 이미 자연과 언어의 구분이 불필요한, 상상력의 점화장치를 확보하였기 때문이다.(박제천 해설)
3. 몸과 마음의 수양과정
시인의 작품세계, 작품의 성향 또는 사물에 대한 시각은 유수화 시인의 제19회「한국시문학상」수상 인터뷰 내용으로 살펴본다.
제가 전통주라는 문화를 시 창작 작업에 모티브로 활용하고 이를 시적 성취도로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 도달점이 바로 독자와의 소통적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고, 이것이 제 작품만이 지닌 개성입니다.
T,S엘리어트는 “시인의 정신은 작업이 완전히 준비됐을 때 이들 경험들이 이미 새로운 통일된 모습으로 구축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듯이 저의 술 빚기가 단순한 식문화가 아니라 몸과 마음의 수양과정이고 술을 빚는 것은 곧 자신에게 솔직하고 성실하게 술 빚기에 임해야 하는 과정으로 저의 시적 창작 행로입니다.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시적 방향은 구체적이고 사실적 모티브를 활용한 이미지 묘사로 독자와의 정서적 공감대를 직접적으로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즉 연작 모티브로 물질적 ‘술’에서 시인의 사유 과정의 내적 사상을 ‘술’이라는 유한 존재에 부여함으로써 의미구조를 확장하였습니다. 또한 술이 빚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맛과 향기가 달라지는 경험적 과정이 이미지화되면서 독자의 희로애락 감정과 고양 된 인간적 갈등을 소통시키면서 카타르시스 작용을 하는 시적 성취과정을 추구하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인 유수화는 술을 모티브로 “나를 알아가는, 나를 이해하는, 나를 안아주는” 이 시의 작업을, 이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시인의 시 작업이 어느 시점까지 시정신을 함양시켜 가는지 바라보는 즐거움에 박수를 친다. 독자들도 시인의 시세계에 동참하여 많은 위로와 정서의 교류를 통한 카타르시즘을 얻길 바란다.
유수화 시인은,『문학과 창작』신인상(2001년)으로 등단하여「숲속의 시인상」을 2005년, 2015년 2회에 걸쳐 연속 수상했으며,『쏨뱅이의 사랑』(2007, 문학아카데미)을 상재했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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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술빚기로 마음의 상처 치료
술의 미학, 힐링의 시학
술빚기를 배우면서 ‘누룩’이라는 미생물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 시공간의 순환과 윤회 과정, ‘술의 이름 하나하나가 삶이고, 술의 과정 하나하나가 우주 만물 생성의 근원과 일치한다.’ ‘거칠고 험한 과정과 한순간도 버릴 것이 없으며, 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술을 빚을수록 깊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어요.
- 유수화. 시인
술을 마시면 ‘배꼽에 출렁 봄바람으로 흔들리는, 짜릿한 전율’이 일어난다. 술의 시인 유수화씨는 술이 곧 ‘화독(火毒)명약(名藥)’이라고 단언한다. ‘이별에도 시간이 필요할 때’, ‘그대에게 가는 길에 브레이크가 없을 때’, 시인은 ‘화(火)를 화(花)로 다스린다.’ 산수유, 두견, 매화, 아카시아, 찔레꽃, 목련꽃, 연꽃은 물론 쑥이며 솔잎까지 여기 소개하는 30종의 전통가양주를 비롯해 자연이 생산하는 모든 화훼는 술이 된다. 열일곱 살 눈이 와도, 초록의 가슴이 떨려도 술을 마시면 기억력이 좋아진다. 술독은 술로 푸는 술의 힐링, 한국의 가양주는 최고의 민속 비법이다. 술 한 잔에 시 한편, 유수화 시인의 새시집은 술과 시를 빚어 만든 멋드러진 콜로보레이션이다. 술의 미학, 힐리의 시학이다.
-박제천. 시인, 문학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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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화 시인∥
∙ 목원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 2001년《문학과 창작》등단
∙ 시집『쏨뱅이의 사랑』
∙ 2005년 숲속의 시인상. 2011년 숲속의 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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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orn Birds Theme - Henry Mancini / 가시나무새(TV) The Thorn Birds(1983)
제작 1983년 (Mini), 미국 // 감독: Daryl Duke // 음악 : 헨리 맨시니 (Henry Mancini)
#출처: 관악산의 추억( http://cafe.daum.net/e8853/MVDb/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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