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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영적 장자여! 하나님과 싸이클을 맞추라!”
+ 본 문 : 열왕기하 3장 13절 - 20절 (구약성경 818쪽)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16 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1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2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아멘!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침에 조깅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비실비실 웃습니다.
아버지가 나올 때 급하게 나오느라 신발을 짝재기로 신고 나온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집에 들어가서 아빠 신발 좀 가지고 나올래?” “예!” 하고서 집으로 뛰어갔던 아들이 돌아 왔는데,
빈손이었습니다. “왜 안 가져왔느냐?” 하고 묻자,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집에 있는 신발도 짝재기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단추가 잘못될 수밖에 없듯이, 한 짝 잘못 신으면 다른 신발도 짝재기가 됩니다.
열왕기하 4장을 본문으로, 오늘 설교제목이 “영적 장자여! 하나님과 싸이클을 맞추라!” 입니다.
오른 발 왼 발의 신발이 잘 맞아야 하듯이, 영적 장자인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잘 맞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F. B. 마이어라는 성서학자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 이란 책에서 예인선을 탔던 경험을 말합니다.
마침 그가 탄 자그마한 예인선이 커다란 원양 어선을 좁은 항구로 예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예인선이 잘못 인도하기라도 한다면, 그 큰 원양어선이 부두에 부딪히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마이어는 안개 낀 밤 조마조마하게 앞뒤를 살피고 있는데, 선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노련하게 항구로 인도합니다.
마이어가 물었습니다. “선장님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이런 밤에, 어떻게 저 큰 배를 인도하십니까?”
선장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선생님!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기 앞에 불빛들이 보이지요?
저기 세 개의 불빛이 일렬로 정렬이 되면 ‘아 내가 올바로 가고 있구나.’ 생각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만약 저 세 불빛 중에 하나라도 삐뚤어지면, 빨리 그 각도를 맞춰야 올바로 갈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나 말이 올바른 것인가를 판단하는데도, 세 개의 불빛 싸이클이 맞아야 합니다.
첫째는, 성경적 확신입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내 안에 기쁨과 평안, 그리고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내 안에 확신이 있어도 교회와 공동체내의 사람들에게도 기쁨과 확신 그리고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성경적 근거와 교회 공동체의 유익은 물론,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개의 영적 불빛이 나란히 맞춰질 때,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님께 싸이클이 잘 맞추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삶의 싸이클이 하나님의 불빛에 잘 맞춰져 있습니까?
자신의 삶의 싸이클을 세상에 고정해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연히 세상의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말할 것도 없이 세상이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삶은 세상적인 삶, 육체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반면 하나님께 자신의 영성의 사이클을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삶은 성령 충만한 삶, 영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영성은 당연히 하나님께 모든 싸이클을 맞추고, 영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성도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한때 샘터사 편집부장이었던 작가 정채봉 님의 「첫 마음」이란 글이 있습니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며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 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무슨 뜻입니까? 잘 맞춰진 첫 싸이클을 흐트러뜨리지 말라는, 의미 있는 말입니다.
영성훈련, 그리고 말씀 양육과 훈련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싸이클을 하나님께 잘 맞추는 훈련입니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사랑 많으신 우리 하나님께 내 인생의 사이클을 고정해 놓고 그분이 기뻐하는 것,
나도 기뻐하고, 그분이 좋아하는 것 나도 좋아하고, 그분이 싫어하는 것 나도 싫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정신에 나의 싸이클을 조율해 놓고, 주님이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주님이 쉴 때 나도 쉬고,
주님이 죽는 곳에서 나도 죽고, 주님이 사는 자리에서 나도 살아가는 것이 영성훈련이요. 양육과 훈련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는 말을 나도 하고, 주님이 침묵할 때, 나도 침묵하는 것이 영성훈련이요. 양육과 훈련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성령님에게 싸이클을 맞추고 살아갈 때, 주님의 능력과 비전이 나의 능력과 비전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내 인생을 잘 조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잘 조율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도 잘 조율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신앙도 제대로 조율이 되어 있습니까? 지금 나의 기도생활, 신앙생활을 잘 조율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습니다.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연합하여,
모압이라는 나라와 전쟁하기 위하여, 에돔 광야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일주일 쯤 지나갔을까요?
마실 물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골짜기는 바짝 말라 있습니다. 땅은 메말랐고, 물의 근원도 말랐습니다.
그렇다고 비가 올 징조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뜨거운 태양만 작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메마른 골짜기와 광야에서 엘리사 선지자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한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서 쩔쩔맬 때가 있습니다.
내가 만난 문제가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고, 영혼까지도 쇠하여져 울며 부르짖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에 보면,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을 겪고 있었을 때에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하며,
깊은 절망에 빠져 버립니다.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유다 여호사밧 왕은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가 아니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같은 왕이면서도 이스라엘 왕은 문제 앞에서 불평하고, 유다 왕은 이때야 말로 기도할 때라고 말합니다.
가끔 우리가 문제에 부딪혀 보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게 낙심이요. 절망입니다.
그러나 낙심하고 절망해서 문제를 해결 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불평하여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찾아다녀 봅니다. 이 사람과 의논해 보고 저 사람을 붙들고 애원도 해 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문제 해결의 길이 없습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은 천지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천하에 주인이시며, 역사의 운행자요.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병사가 말합니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이 말을 듣고 유다 왕과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방문합니다. 신하를 시켜서 방문할 수도 있었지만, 신하를 시킨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갔습니다.
두 왕의 내방을 받은 엘리사 선지자가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그 대답이 오늘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자를 불러 오소서.” 거문고 탈자를 불러오랍니다. 거문고는 현악기의 일종입니다.
줄을 퉁김으로 소리가 나는 악기입니다. 거문고는 줄이 생명입니다. 줄이 끊어지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왜 이스라엘에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까? 하나님과 백성들과 관계의 줄이 끊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 파가니니가 사교계의 권위자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연주가 막 시작되었을 때, 줄이 툭하고 터졌습니다. 그래도 한참 연주를 하고 있는데 줄이 툭 끊어집니다.
그렇게 계속 연주가 절정에 다다라 올랐을까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줄 하나가 툭하고 또 터졌습니다.
잠시 후, 파가니니는 그의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
그 줄을 가지고 남은 곡을 멋지게 연주해, 마쳤습니다. 수많은 청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줄들이 하나씩 터져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믿었는데 그 사람이 내게 배신합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줄이 터집니다. 사업의 줄이 터집니다.
물질의 줄이 터집니다. 사랑의 줄이 터집니다. 건강의 줄이 터집니다. 이런저런 줄이 다 줄줄이 터집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줄이 다 터져도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한 줄만 있으면, 우리의 연주는 계속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사랑의 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줄,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소망의 줄만 우리에게 남아 있으면, 우리는 인생을 멋지게 연주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인생을 멋지게 연주해 가려면, 조율을 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거문고는 현악기이기 때문에, 조율을 제대로 해야 바른 연주를 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과의 조율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줄이 풀어져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잘못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영성의 줄이 느슨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게으르고 나태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줄이 헝클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모압과의 전쟁 이전에 이스라엘 왕의 문제요. 종교지도자들의 문제요. 백성들의 영성 문제였습니다.
세상에 문제가 많고 많아 보이지만, 사실은 한 가지 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인생을 연주할 거문고 줄은 잘 조율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바른 위치에 서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행복하십니까?
찬송의 줄, 기도의 줄, 말씀의 줄은 잘 조율되어 있습니까? 사역을 위한 사랑과 섬김의 줄은 어떻습니까?
행복한 신앙과 삶의 연주를 해야 할 나의 인생의 거문고는, 잘 조율이 되어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거문고의 조율을 마친 엘리사는 거문고 타는 사람에게 찬송을 연주하게 합니다.
이에 엘리사 자신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던 이스라엘 왕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자던 여호사밧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군대의 모든 장수들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성령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율이 끝났으면 연주를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참으로 깊고 신령한 하나님의 뜻이 숨어있습니다.
메마른 에돔 골짜기에 샘이 터지기 전에, 먼저 선지자와 왕과 백성들의 가슴에 은혜의 샘이 터져야 합니다.
내 모든 삶의 골짜기에 샘이 터지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의 골짜기, 내 믿음의 골짜기에 샘이 터져야 합니다.
내 기도의 샘이 터지고, 내 눈물의 샘이 터지고, 감사와 행복의 샘이 터져야 인생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삶의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 모든 신앙생활에서도, 확실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세상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넋두리하지 마십시오. 내가 변하면 세상은 변화되어 집니다.
내 가정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먼저 내 마음에 샘이 터지면, 내 가정은 저절로 행복해 집니다.
옛날에 나무꾼들이 있었는데 미련한 나무꾼은 무딘 도끼를 가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찍습니다.
펑펑 소리만 나지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손바닥에 물집만 생기고, 마침내 지쳐서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나무꾼은 아침마다 도끼날을 갈고 갈아서 산에 오릅니다. 힘들이지 않고 나무가 쓰러집니다.
기도 영성의 날이 서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찬송의 능력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내 능력의 기도도끼, 말씀도끼, 찬송의 도끼를 날카롭게 벼루어서, 삶의 현장에 나가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성령님이 도와주시니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잘 됩니다. 그래서 삶이 너무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지금 한없이 연약해진 내 믿음의 조율이 급하고,
풀어진 내 영성의 악기를 다듬는 일이 급하고, 환경의 변화보다도 내 마음의 변화가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내 가슴에 은혜의 샘이 터지고, 내 마음의 골짜기, 내 믿음의 골짜기에 샘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내 기도의 샘이 터지고, 내 눈물의 샘이 터지고, 감사와 행복의 샘이 샘솟듯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저와 여러분 모두가 기적의 사람들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에 참여할 수가 있게 됩니다.
자, 이제 거문고 줄이 조율되었습니다. 악기가 연주되기 시작했습니다. 찬송이 울려 퍼집니다.
성령님의 감동동과 함께 역사합니다. 찬송을 듣는 모든 심령들에 샘솟듯 은혜의 샘물이 터져 나옵니다.
그때 엘리사 선지자가 뭐라고 말씀합니까? 오늘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그 골짜기가 어떤 골짜기였습니까? 시냇물과 샘이 말라버린, 그래서 아무 쓸모없는 절망의 골짜기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을 주지 못하는 광야가 되었고, 사막이 되어 버린 절망의 골짜기는 그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제 아무리 훌륭한 학력과 가정과 배경과 비전을 가졌다할지라도,
아무리 그럴듯한 신앙의 체험과 직분을 가졌다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의 영혼 속에 생명의 샘, 은혜의 샘,
구원의 샘이 흐르지 않으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의미 없는 인생, 메마른 절망의 골짜기 인생일 뿐입니다.
교회가 교회 구실을 못하면 메마른 절망의 골짜기 교회이며, 성도가 성도 구실을 못하면 메마른 성도입니다.
이 땅에서 방황하는 불신자들에게 구원의 물을 줄 수 없고, 내 이웃들에게 행복과 기쁨의 물을 줄 수 없는,
우리 해남중앙교회와 성도 여러분이라면, 메마른 절망의 골짜기일 뿐입니다. 거기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강권하여 말씀하십니다. “많이 파라! 많이 파라!”
아멘입니까? 한두 번 삽질하고 곡괭이질 해보다가 물이 안 나온다고 포기하지 말고, 많이 파라하십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밭, 돌 짝 밭과 같은 마음 밭, 가시나무 우거진 마음의 밭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 계십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정말 감사하고, 감동과 감격에 울며 행복해야 될 여러분의 삶이 지금 헝클어져 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스럽게 쓰임 받아야 될 여러분의 삶이, 지금 거친 모래 벌에 먼지바람이 일고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강권하여 말씀하십니다. “많이 파라! 물이 고이도록 많이 파라!”
“너희가 믿고 많이 파면 샘 솟는 기적을 보리라! 그러므로 큰 꿈을 꾸고 큰 역사를 이루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사업이 지금 어렵습니까? 믿음의 조율이 끝났으면 이제 괜찮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렸습니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신앙의 조율, 영혼의 조율이 끝났으면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어리고 어린 초신자입니까? 괜찮습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조율되어졌으면, 여러분은 신앙의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지금까지 교회생활 가운데에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믿음생활 하면서 상처 입은 분 계십니까?
메마른 시대, 메마른 골짜기라고 낙심만 하고 있지 마십시다. 샘을 파십시오. 크게 믿고 깊이 기도하세요.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위대한 비전의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개천을 많이 파라하십니다.
이어 오늘 본문 17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 믿고 샘을 파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셨습니까? 도전하십시오. 믿음이 생겼습니까? 새로운 도전을 하십시오.
인생조율이 끝났습니까? 믿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과 불신앙은 모든 것을 망칩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길은 무조건 두 손 들고 “주여 믿습니다.” 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인 양 넋두리하지 마십시오. 좌절하지도 마십시오.
인생조율 끝났으면 반드시 새로운 역사, 기적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잘 조율된 악기는 준비된 곡을 연주하게 됩니다. 잘 조율된 악기는 멋진 승리를 연주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어게인」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정성일이라는 분이 기록한 간증의 글을 담은 책입니다.
그는 젊은 사업가로서 촉망받던 시절, 어느 날 교통사고로 하반신마비 척수장애 1급 판정을 받게 됩니다.
삶의 절망과 포기 가운데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났고,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도 한때는 교회를 다닌 사람이었는데, 교회보다는 자꾸만 세상의 즐거움이 좋아 보였습니다.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져 가면서, 교회생활, 신앙생활은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사업을 핑계로 늘 자정까지 술에 만취되어 쾌락을 탐닉했고, 오직 세상 성공만을 위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던 그가 친구와 영동고속도로를 고속질주하며 추월하다가 죽음의 위기를 맞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이후 병실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다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면서,
“어게인 - 다시” 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지금 그는 건설업체인 홀리랜드 종합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건설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그는 책의 서문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건강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과 인생을 즐길 줄도 알았습니다. 술집에 가면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밤이 새는 줄도 모른 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방탕생활을 합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니, 내 맘껏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게 불현듯 찾아온 교통사고, 그리고 1급 척수장애 판정은 제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하반신마비, 대소변조절 불가,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가항력적 통증들...
저는 이런 장애와 고통 앞에 인생을 저주했습니다. ‘인생이여, 죽어버려라!’라고 침을 뱉고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를 찾아오셔서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하심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알려 주셨습니다.
이 책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건강한 이들이 이 책을 읽고 건강할 때에, 행복을 누릴 때에,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며, 그분께서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려운 시절에 비록 벼랑 끝에 선 절망을 만났다 할지라도 사지를 움직일 수만 있다면,
우린 얼마든지 하나님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 다시 시작합시다.”
오늘 본문의 순종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지막 본문 20절 말씀입니다.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아멘! 믿습니까?
아침 소제 드릴 때가 언제입니까? 온 백성이 아침에 일어나 다함께 기도하는 시간, 예배드리는 시간입니다.
우리로 하면 온 성도들이 이렇게 모여 예배드리는 주일예배시간이요, 특별히 새벽기도회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시간에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새 일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아멘입니까?
여러분! 문제 있다고, 그 문제 해결해 보겠다고 보따리 싸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가 모인 이 예배의 자리가 하나님이 임재하고, 성령님이 임재 하는 자리인 줄로 믿습니다.
새벽마다 우리가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자리가, 하나님이 성령님이 임재 하는 자리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역사하는 자리입니다. 온갖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자리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이른 아침 골짜기에 흘러 넘쳐나는 물에 아침 해가 비취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선한 아침이었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었습니다. 물 한 방울 없던 메마른 골짜기에,
물이 흘러넘치고, 거기에 아침햇살이 강하게 비치니 물이 빛이 나기를 새빨간 붉은 빛을 띠게 됩니다.
이것을 본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 연합군끼리 자중지란을 일으켜 서로 죽이고 죽여 피를 흘렸구나.”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쳐들어 왔다가, 연합군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다 도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이 험한 삶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려고 찾아왔던 악한 사탄마귀도 물러가고,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문제도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자를 불러 오소서.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많이 파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이 마시리라.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기적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