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놀이 /주요한(朱耀翰)
개설
우리나라 자유시의 효시로서 1919년 2월『창조 創造』 창간호에 발표되었고, 1925년 첫 시집 『아름다운 새벽』에도 수록되었다. 작자는 「불놀이」의 창작동기에 대하여 “서양의 현대시 중 베를레느(Verlaine,P.)·폴 포레(Foret,P.)·보들레르(Boudelaire,C.) 등 소위 상징주의 작품이 마음에 들고 충격적이어서 우리말로 그런 종류의 시를 써보고 싶어 처음으로 시험한 것 중 하나가 불놀이가 되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내용
전체 5연 35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배경은 음력 4월 초파일에 대동강에서 벌어진 불놀이 장면이다. 화자인 젊은이는 이 불놀이를 바라보면서 흥겹게 노는 군중에서 떨어져 앉아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며 애상에 젖는다. 그리고 자신의 슬픔에 공감하지 않는 사물과 사람들 때문에 괴로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혼자만의 슬픔과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 이율배반적인 갈등을 일으키다가 마지막에는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는 명령적인 단정을 내림으로써 삶의 의지를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즉, 대동강 불놀이의 서경과 화자의 주관교차를 통해 시대적인 아픔과 압박받는 현실에 대한 민족적인 비애 및 우울한 심금을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불놀이」의 상징적 수법은 프랑스 상징시의 퇴폐적 분위기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기는 하였으나, 상징주의를 이 땅에 전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또한, 상징시의 영향 아래 다른 시들이 가지는 리듬의 단조로움과 영상의 단일성을 깨뜨리고 다양하고 복잡한 가락을 넣어서 종래의 우리 시가 갖는 형식이나 기본 율조를 거부하고 있다.
이 시는 언뜻 보기에는 산문의 형태를 취한 듯하지만, 좀 더 자세히 율독하면 3·4음절을 율격 단위로 한 3음보의 자유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시 형태면에서 보여준 자유스러운 형식과 표현의 상징적 수법과 대담성 때문에 근대시의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에 근대시의 특징을 갖춘 시는 「불놀이」 이전에도 수편이 발표되었다는 주장에 따라 「불놀이」에 주어진 최초의 자유시로서의 문학사적 의의는 재고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대표시평설(韓國代表詩評說)』(정한모·김재홍 편,문학세계사,1983)
『한국근대시사(韓國近代詩史)』(김용직,새문사,1982)
『한국현대시작품론(韓國現代詩作品論)』(김용직·박철희 편,문장사,1981)
『신문학사조사(新文學思潮史)』(백철,민중서관,1962)
「기독교문예」11·12합병호(조광사,1970)
집필자
집필 (1995년)
손광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불놀이)]
주요한 : 시 <불놀이> [출처 : 재봉틀의 국어방님 네이버 블로그]
<불놀이>
【시 전문】 - 주요한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江)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 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精神)을 차리니 우구우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强烈)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苦痛)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사월(四月)달 따스한 바람이 강(江)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불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박히고, 물결치는 뱃슭에는 졸음 오는 니즘의 형상(形象)이 오락가락―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여린 기생의 노래, 뜻 밖에 정욕(情慾)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잔한잔 또 한잔 끝없는 술도 이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밑창에 맥없이 누우며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없는 장고소리에 겨운 남자(男子)들은 때때로 불 이는 욕심(慾心)에 못 견디어 번뜩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大同江)을 저어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靑年)의 어두운 가슴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確實)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 [창조](1919. 2) -
【해설】
주요한(朱耀翰)의 산문시(散文詩). 1919년 [창조(創造)]지 창간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1924년 첫 시집 <아름다운 새벽>에 수록되어 있으며, 한국 최초의 3연으로 된 자유시이다. 최남선(崔南善)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보다 일반적인 사회성을 띠고 그 표현도 다분히 계몽적이고 설교적인 데 반해 이 <불놀이>에서는 개인의 주관적 감정이 객관적인 사물까지를 변형시키고 있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서정시다운 최초의 서정시라고 일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우에 슬어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문다.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서곡에 해당하는 이 첫 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월초파일 밤, 모든 사람이 대동강의 불놀이를 구경하려고 흥성거리는 가운데 시인 홀로 고독과 슬픔에 잠긴 애절한 서정을 읽을 수 있다.
종래의 3ㆍ4조, 4ㆍ4조, 7ㆍ5조의 외재율에 의한 정형시의 고정 관념을 깨고 자유자재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제목 '불놀이'가 강한 상징성을 띠고 있는데, 일제 치하의 나라 잃은 민족의 비분과 갈등을 응축한 몸부림을 자조적(自嘲的)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신체시의 계몽성이나 목적성을 배제하고 시 자체의 미감과 예술성을 추구하였다.
【개관】
▶갈래 : 자유시, 서정시, 낭만시, 상징시, 순수시
▶성격 : 낭만적, 상징적, 감상적, 격정적, 영탄적
▶의의 :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
▶운율 : 내재율. 한국시는 대개 4음보를 밟고 있는데, 그 4음보는 사대부(士大夫)의 장중한 거동과 크게 어울린다. 그 4음보가 사설시조에 의해 점차로 파괴되는데, 그 파괴는 <불놀이>의 구어(口語) 자유시, 곧 산문시 운동에 의해 그 이론적 배경을 얻는다.
▶표현상의 특징 : 산문적, 반복적 리듬, 대립적 심상의 어휘, 영탄법
▶시상전개 : 현재 → 과거회상 → 현재
▶제재 : 연등일의 불놀이
▶주제
- 조국을 잃은 젊은이의 슬픔과 고뇌
- 조국 상실의 비애와 국권 회복을 위한 열정
- 임을 잃은 슬픔과 한
▶출전 : [창조] 창간호(1919. 2월호)
【어조의 특색】
(1) 재래시의 정형성을 과감히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운 형식으로 되어 있다.
(2) 행을 구분하지 않고, 단락으로 구분된 시형으로 어떤 면에서는 자유시보다 한 단계 앞선 산문시로 볼 수 있다.
(3) 생경한 한문투의 시어를 버리고 가능한 한 새롭고 순수한 우리말을 쓰고자 새로운 언어를 발굴하여 구사했다.
(4) 신체시에서 보이던 계몽적 입장이나 사회의식이 배제되고 시 자체의 미와 예술적 목적으로 시가 쓰여졌다.
(5) 일본을 통해 도입된 프랑스 상징주의에서 유래된 상징적 수법과 대담한 표현이 내용면의 특색이다.
(6) 비탄하는 절망과 격정의 대비가 극적 효과를 거주고 있고, 밤의 어둠과 불꽃의 대조로 대립적 의미 구조를 형상화했다.
【구성】
▶제1연 : 시인이 처한 상황 제시(주로 배경을 통해 '고독함'을 제시)
- 불꽃놀이의 흥성(興盛)스러움 ↔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나
▶제2연 : 죽음에 대한 충동과 삶에 대한 의욕의 교차(주제연, 대립 구조)
- 죽음에의 유혹(물) ↔ 삶에의 열정(불)
▶제3연 : 격정 뒤의 허탈감 - 불놀이가 끝남
▶제4연 : 자신의 무력감(無力感)에 대한 자조(自嘲)
- 강물(삐걱거리는 배) ↔ 배(화자의 무력감)
▶제5연 : 새로운 생명에의 의욕(의지)
- 어둡고 애처롭던 시의 분위기가 급전됨
- '너의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 : 지향점
- '너의 애인이∼뱃머리를 돌리라.' : 화자의 의지 강조
【문학사적 의의】
이 시는 전통적인 시의 정형성에서 완전히 탈피한 자유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행을 분명하게 가르지 않았지만, 이 시를 산문시로 규정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또한 한문투, 문어체에서 벗어난 순수한 우리말로 시를 쓴 점이나, 계몽성. 교훈성에서 탈피하여 시인이 내면적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대(前代)에 비해 진일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를 최초의 자유시라고 보는 견해는 수정될 수 있다. 오히려 이 시는 꾸준한 자유시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작품의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불놀이>가 최초의 자유시라는 주장에 대하여 <불놀이>가 최초의 자유시가 아니라는 주장이 정한모ㆍ김윤식 두 교수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 근거는,
① <불놀이> 이전에 발표된 자유시 형태의 시가 있었다는 점이다. 황석우의 <봄>(1919), 김억의 <밤과 나>(1915) 등의 몇 작품이나, 주요한 자신의 <에튜우드>라는 제목의 5편의 시(1919년 1월 ‘학우’ 창간호) 등이 이미 자유시형을 시험하고 있다.
② <불놀이>의 자유시형이 자각적이고 목적 의식적인 산문이 아니라 우연히 모방의 결과라는 점이다. 따라서 '최초'니 '효시'니 하는 말은 조심해서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놀이>가 지닌 근대 자유시로서의 질적인 수준을 고려할 때, 그 작품의 가치와 비중은 인정된다고 하겠다.
【이 시의 리듬 분석】
주요한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구어 자유시(口語自由詩) 운동은, 자기 감정의 자유로운 토로를 통해 사회와 절연된 인간의 소외감을 노래한다.
불놀이의 리듬은 '변사조'라는 특색이 있다. 변사조의 과장, 생략 등이 <불놀이>에는 완벽하게 구사되어 있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삽입음, '피었더라마는', '이 물 속에 그러면...', '....할 적에' 등등의 연결 수법, '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의 과장은 절절한 명변사의 애소를 듣는 듯하다. 이 변사조의 리듬은 감정의 해방을 표시하는 리듬인데, <불놀이>의 교묘한 모순은 그 감정의 해방이 미래로 열려있지 아니하고, 과거 지향적인 부정적 젊음 위에 세워져 있다는 데에 있다.
무려 10개의 감탄사와 8회의 '.....'를 써서 과잉된 감정의 혼란과 범람을 보여준다. 운율적 혼돈과 파탄에 빠져 있다. 시적 상황이 내포한 분열과 파탄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새로운 질서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불놀이>는 모든 운율상의 제약을 떠나 자유롭게 감정을 토로하였으나, 근대적인 시민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참된 의미의 근대시에는 이르지 못했다. 내적 고민, 갈등, 회의 등의 표현이 없는 근대시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휘ㆍ시어 풀이】
<파일날> : 석가의 탄생일. 음력 4월 5일
<매화포> : 종이로 만든 딱총의 하나. 불똥이 튀는 모양이 매화 떨어지는 것과 비슷함.
<모란봉> : 평양 북부에 있는 작은 산. 대동강에 임하여 절벽을 이루며 평양의 절경임.
<능라도> : 평양 대동강 가운데 있는 경치 좋은 섬.
<꽃, 봄> : 소생, 부활의 심상
<아아, 춤을 춘다∼불덩이가 춤을 춘다> : 초파일날 불놀이하는 모습. 여기서 '불'은 삶에의 욕구를 상징하는 것으로, 강연한 색채와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욕구의 강연함을 암시.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 : '밤' 은 강렬한 삶에의 욕구가 부정되는 현실을, '횃불'은 시적 자아의 의지가 투영된 대상물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깨무는 행위는 그러한 현실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시적 자아의 몸부림을 암시한다.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 '가신 임'을 단순히 '잃어버린 조국'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견해이다. 오히려 '가신 임'은 '시적 자아가 지향해야 할 의미 있는 일체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거기 너의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 이 '언덕'은 불교에서 말하는 피안(彼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생사(生死)의 거리를 뛰어넘어 '가신 임'을 만날 상상의 공간이 그 '언덕'인 셈이다. 따라서, '배'를 젖는 행위는 이 생사의 거리를 뛰어넘으려는 시적 자아의 실천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 삶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함께 싸안으려는 시적 자아의 깨달음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니즘'> : 3연의 '니즘'이 '리듬'이냐 '잊음'이냐. '니즘'은 '리듬(rhythm)'으로 통용되어 왔으나 '잊음'의 평북 사투리식 발음이다. 조창환 교수는 '이즘(-ism)'은 문맥상 도저히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 김학동 교수는 물결의 흔들림 속에서 되살아나는 '망각'의 형상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상】
찰나적 감정의 용솟음에 자신을 내맡겨 절규하며 노래한 작품으로, 식민지 상황하의 한 시인의 정서적 불안과 분열을 노출하고 있다.
<불놀이>는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정에서 최초의 본격적 자유시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식민지 상황에 놓인 한 시인의 정서적 불안과 분열을 노출하고 있다. 또한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둠, 현실과 상황, 기쁨과 슬픔의 대립적 의미 구조로 짜여 있으며, 이는 당시의 국권 상실의 비애와 국권 회복을 향한 열정의 양면성을 나타내며, 표현면에서는 관념적이고 환상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 구인환 : <현대문학>(금성교과서.1987) -
이 작품은 흔히 `최초의 본격적인 근대 자유시'로 일컬어져 왔다. 나중에 발견된 새로운 자료들에 의하여 이러한 평가는 더 이상 고집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그렇다 해도 위의 작품이 우리 근대시의 형성, 전개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초기작의 하나임을 인정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일련의 대립적 요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과 삶의 대립이다. 둘째 연의 중간 부분을 보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작중 화자는 그의 사랑하는 님을 잃고 홀로 살아 있으면서 괴로워한다. 그런데 작품 속의 상황은 사월 초파일, 많은 사람들이 흥겹게 즐기는 중이다.
강물 위에서는 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며 요란한 불놀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처럼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주위 사람들의 흥겨운 놀이로 표현된 삶의 사이에 있다. 한 편에서는 죽은 이로 인한 괴로움이 그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산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향락의 활기가 그를 자극하고 유혹한다.
이처럼 서로 대립하는 사물과 욕구의 사이에서 주인공은 극도의 내부적 갈등을 겪고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을 택할까 생각하기도 하고, `아아 좀더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고 정반대의 소망을 말하기도 한다. 주위는 어둡고 불놀이가 벌어지는 대동강의 분위기는 소란스러우며, 이 속에서 그는 죽음과 삶, 어둠과 밝음의 사이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상반되는 욕망이 서로 다투기 때문에 이 작품의 시상은 단순하지 않고, 때로는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 속에서 그는 마침내 삶의 길을 택한다. 그는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이라고 말하면서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라고 외친다.
이와 같은 태도는 극도의 갈등 속에서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난폭한 감정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앞서 말한 비애와 절망적 태도가 아직 숨어 있다. 마지막 구절에서 이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이라고 부르짖는데, 이 때 무엇을 불사른다는 행위는 격렬한 도취의 행위이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어떤 파괴적 충동을 암시한다. 그것은 아마도 죽음과 삶의 사이에서 괴로워했던 한 젊은이의 가장 절박한 순간의 모습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식민지 지배 하의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불분명한 가운데 방황했던 한 청년 지식인의 고뇌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 김흥규: <한국의 현대시>(대한교과서.1996) -
'불놀이'는 우리 근대시의 형성, 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의 하나이다. 이전의 시들이 내용으로 하는 교훈성이나 계몽성을 벗어나 개인적인 서정을 노래했다는 점, 일체의 운율적 제약을 벗어나 감정의 자유로운 유출에 합당한 산문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최초의 본격적인 자유시'로 평가되어 왔다.
식민지 상황에 놓인 한 젊은이가 정서적 불안과 분열을 노출하는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움직이는 기본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에는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은 '그림자'와 '밝음'이 하나의 실체를 이루는 양면임을 뜻한다.
현실이 '나'에게 어둠(그림자)으로 느껴지는 것은 임이 죽었기 때문이다.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라는 말은 오직 임만이 나의 존재 이유라는 뜻이다. 사월 초파일 날, 한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는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을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매화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수 놓는 시뻘건 불덩이를 보며 그는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물'이 죽음이라면 '불'은 삶의 표상이다. 이와 같이 어둠과 밝음, 물과 불, 죽음과 삶이 갈등하는 가운데 이 시는 전개된다. 서로 대립하는 사물과 욕구 사이에서 주인공은 극도의 내부적 갈등을 겪고 있는 바, 넷째 연의 '괴상한 웃음'이라는 표현은 갈등 속에 일그러진 비정상적인 심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전대의 교훈성이나 계몽성을 탈피하고 개인적 서정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 일체의 운율적 제약을 벗어나 감정의 자유로운 유출(流出)에 합당한 자유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대담한 상징적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한문투를 최대한 배제한 순우리말 표현 - '외로운 강물', '스러져 가는 저녁놀' 등은 당시로 보아 대단히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 자아는 죽음과 삶, 즉 임을 잃고 갖게 된 죽음에 대한 유혹과 사월 초파일의 흥겨운 불꽃놀이로 나타난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죽음과 삶의 대립은 어둠과 밝음, 물과 불의 대립으로 이어져 전편을 격정적이고 불안한 분위기로 이끌고 있다. 다시 말해,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 밤 이 물 속에 …… '라는 구절로 나타나는 죽음과 '아아, 좀더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에 표출되는 삶의 욕구 사이에서 번민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 '물'과 '불'이라는 두 원형적(原型的) 상징은 죽음과 삶, 어둠과 밝음, 슬픔과 기쁨, 삶의 고뇌와 비상(飛翔) 등으로 표상되는 대립적 요소이다. 그러나 외견상 화합할 수 없어 보이는 이러한 대립은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이라는 구절에서 역설적 논리로써 통합됨으로써 극한적 자학 상태에 빠진 시적 자아를 극적으로 소생시켜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부활의 언덕을 향해 배를 저을 수 있는 생명의 원동력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그가 겪어 오던 죽음과 삶, 어둠과 밝음, 물과 불이 결국 동일한 것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시적 자아는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며 더욱 강열한 삶의 욕구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에서 보이는 파괴적 충동과 격렬한 도취의 행위는 아직도 절망적 태도와 비애의 감정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대립된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격한 감정으로 표출됨으로써, 때로는 시상(詩想)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여 산만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감정의 지나친 유출로 인한 감정의 허세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애상적 정조는 아마도 일제 치하를 살았던 청년 시인 주요한의 고뇌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감상적(感傷的), 영탄적 정조의 세기말적 징후는 서구 상징주의 문학의 유입과 함께 당시 젊은 지식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박종화, 홍사용, 이상화로 대표되는 <백조> 동인의 경우 3․1 운동의 좌절로 인한 암담한 절망감과 결부되어 퇴폐적이고 애상적인 분위기는 더욱 증폭되게 되었다.
이 작품의 시사적(詩史的) 위치는 막중하다. 재래의 정형성을 벗어나서 그 스타일이 새롭다. 7ㆍ5조나 4ㆍ4조의 제한을 대담하게 탈피하고 있으며, 자유시로서의 상징성과 함축성이 내재된 발랄한 시상을 포착하였다. 첫째로, 순수한 우리말로 시를 쓰고자 한 경향이다. 지금까지의 생경한 한문투가 최대한으로 배제되었고, 지금까지 활용되지 못하던 동사를 대담하게 구사하여 리듬을 이루며, 당시로 보아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우리말의 발굴을 보이고 있다.
둘째로는, 육당이나 춘원의 시에 나타난 계몽적 입장, 목적의식이 과감히 배제되고, 예술적 차원으로 육박했다는 점이다. 본래 서구에서의 근대시는 시가 시 이외의 목적이나 이념에 봉사해서는 안 된다는 시 자체의 미학에서 출발하였다. 시를 어떤 목적이나 이념의 도구로 구사할 때 시의 미학은 압살된다는 것이 의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 작품으로서 한국 시사(詩史)의 신기원, 새 장(章)이 마련되었다는 평가는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시는 산문시 형식에다 주관적 서정을 상징적 수법에 의해 표현한, 한국 최초의 본격적 자유시라는 시사적(詩史的) 평가를 받은 시이다. 반론도 있다. 사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튼 190년대 초기로 우리 자신을 가져다 놓고, 그 시대적 배경을 생각할 때 이 시는 확실히 획기적인 시였다.
사월 초파일, 해 질녘 사람들은 불놀이를 구경하러 길이 메게 몰려가고 있다. 이 광경을 성문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라는 한 청년, 그는 실연에 가슴 아픈 사람이라 해도 좋고, 우국청년(憂國靑年)이라 해도 좋다.
횃불은 춤추고, 청년은 울분에 몸을 떤다. 저 따드는 사람들, 저 흥청대는 놀이가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이 절망의 시기에 저럴 것이 아닌데,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지만, 저기 저 사람들의 현실을 잊은 흥청댐을 볼 때 오히려 횃불처럼 뜨겁게 살고 싶어진다.
그때 어떤 아시이듯이 배를 젓는 노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 앞으로 나아가야지, 뜨겁게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행해 달려가야지, 눈물도, 눈동자도, 빨간 횃불처럼 사르며 살아야지.
이 시에서 작자는 현실을 부정했다가 다시 긍정하고, 확실한 의미를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외치고 있다. 한편, 이 시는 그 시대로서는 놀라울 만큼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언어 구사를 통해 절망과 오뇌와 애수와 동경을 숨 가쁘게 공감케 하는 바가 있다.
- 권웅 : <한국의 명시해설>(보성출판사.1990) -
【불놀이에 대한 지은이의 말】
“그 당시 나는 일본에서 요즘으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 정도의 학생이었는데, 그 무렵 서양의 문학을 일역(日譯)으로 많이 읽었죠. 그 무렵만 해도 우리 나라 문학이란 것은, 순전히 한문문학이라 할 정도의 것과, 국문으로는 국초(菊初) 이인직(李人稙)의 소설 정도가 있었을 뿐인데, 대체로 윤리적인 목적의식 같은 것에 얽매인 것들이었습니다. 육당의 신서 <해에게서 소년에게>만 해도 그런 범주에서 별로 못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걸 벗어나서,
① 한문의 영향을 뿌리치고 우리말의 시를 하자.
② 윤리적, 교육적 목적 없이 순수예술이란 걸 담아 봐야겠다.
이런 정신으로 시도한 것이 곧 ‘불놀이’란 그것이죠.”
- [문학사상](1972. 12월호) -
---------------------------------------------
주요한(朱耀翰)의 <불노리>
[창조)(創造)] 창간호에 발표된 단편 <약한 자의 슬픔>에 대해 작자 김동인(金東仁)은 ‘남은말’에서,
[아직까지 세계상(世界上)에 이슨 모든투 니야기(作品) ― 리알리즘, 로만티시즘, 심볼니즘, 들의 니야기 ― 와는 조사법(措寫法)과 작법(作法)에 다른 점이 잇는 거슬 알니이다,]
라고 대단한 포부를 밝히고 있지만, 그의 제 모습은 <배따라기>(창조 9호)가 나오는 2년 뒤에야 보게 되며, [창조]의 문학적 첫 성과는 오히려 최초의 근대시(近代詩)로 불리는 <불노리>의 주요한(朱耀翰)에 의해 이루어진다.
신체시(新體詩) 운동을 일으킨 육당(六堂) 최남선이 <한양가(漢陽歌)> <경부선철도가(京釜線鐵道歌)> 등 창가류(唱歌類)로 후퇴할 즈음, 장두철(張斗澈)이 발행한 문예주간지(文藝週刊誌)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상징주의시(象徵主義詩)와 투르게네프의 산문시(散文詩)들이 번역, 서구(西歐) 및 일본문단의 소식과 함께 소개되고 있었고, 이때 이런 외국시(外國詩) 틈에 끼여 조금씩 근대적인 자유시(自由詩)의 시작(試作)이 발표되었다.
『가득한 놀의 저녁하늘
찬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드는데
하로길을 마춘 피곤(疲困)한 해볏
금색(金色)을 노흐며 고요히 넘는다.』
는 김억(金億)의 <겨울의 황혼(黃昏)> (태서문예신보 13호ㆍ1918년)이나,
『겨울 가고 결백 풀어져 봄이오다.
나무에 바람은 연한 피리불다.
실가지에 날감고 밤감아
꽃밭에 매여 한바람, 한바람씩 탕기다.』
의 황석우(黃錫禹)의 <봄>(태서문예신보 18호) 같은 것이 그런 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소품적(小品的)인 시들은 1년 후 주요한의 다음과 같은 격정적(激情的)인 산문시(散文詩)에 거의 가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江)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 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불노리> 첫 연)
<새벽꿈> <하이얀 안개> <산물>과 함께 발표된 <불노리>는 이미 당시부터 문제작으로 꼽혀, 전영택(田榮澤)은 ‘다분히 상징적이요, 함축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알아볼 수 없는, 알 수 없는 시’라는 평이었다고 소개했고, 김동인도 ‘봄날 안개와 같이 시람의 심현(心絃)을 울리는 시’라고 감탄했으며,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도 후에 ‘7ㆍ5조나 4ㆍ4조 드으이 제한을 받지 않고 우리의 말로 옮기어 놓거나, 또는 제작(制作)할지라도 그곳에는 훌륭한 리듬이 약동하고 멜로디가 조화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대전(大戰) 후 문예사조>)고 시사적(詩史的)인 위치를 높이 평가했다.
주요한은 초창기 문단의 누구보다도 근대시를 익히기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1900년 10월 평양(平壤)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주공삼(朱孔三) 목사가 동경유학생 교회(敎會) 선교사로 부임함에 따라 12세에 일본으로 갔고, 명치학원(明治學院) 중등부에 진학, 1년 늦게 도일(渡日)한 김동인보다 여러 가지로 선배였다. 자존심이 강한 동인(東仁) 스스로 주요한을 통해 문학에 눈떴다고 고백할 만큼 그는 조숙해 있었다.
13세 때 <기다하라의 회상(回想)> <산호집(珊瑚集)> 등 일역시집(日譯詩集)을 탐독했다는 주요한은 깨알 같은 활자로 인쇄한 <세계문학전집> 12권을 독파하느라고 눈을 버렸으며, 가와지(川路柳虹), 미키(三木露風)의 시에 빠지고 있었다. 특히 가와지의 사랑을 받아 그의 문하(門下)에서 시 공부를 한 그는 18세 [청춘(靑春)]의 현상모집에 단편 <마을집>으로 응모, 2등 당선하는 한편, [학우(學友)]지에 습작시(習作詩)를 발표했다.
“동인(東仁)과 동인지(同人誌)를 내기로 합심하고 <불노리>를 쓸 때, 일본의 산문시)(散文詩)와 비슷한 시를 흉내내 보았지만, 구상 당시부터 그 시가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란 생각이 뚜렷이 들어 있었어요.”
동인(東仁)이 자기 신혼(新婚) 때 대동강(大同江)의 관등선(觀燈船)에서 본 초파일 관등놀이를 말해 주어 <불노리>의 주제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에 대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주요한은 “어렸을 때 구경했던 평양(平壤) 관등놀이를 회상해서 프랑스 상징주의(象徵主義)의 작법(作法)에 따라 써 본 것”이라고 희미한 기억을 더듬었다.
- 김병익(金炳翼) : <한국문단사(韓國文壇史)>(일지사.1974) -
박현수 교수의 자료더미속에서 시 읽기 [출처 : 경북매일 2011.1.12.]
(2) 주요한 `불놀이`
축제의 날, 그의 가슴에 흐르는 눈물…
백석의 `국수`에 나타난 흥겨운 축제의 세계를 떠난 근대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그를 주요한의 `불놀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 속에서 많은 사람들로 흥성거리는 축제일에 `왜 나만 눈물을 참을 수 없는가?` 하고 묻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지금 어떤 축제를 보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축제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큰 길을 물밀듯이 몰려가는 걸까. 그것은 평양 대동강 가에서 펼쳐지는 사월 초파일날의 `불놀이` 축제다.
이 불놀이는 폭죽을 터트리는 그런 놀이라기보다, 강 언덕과 강물 위의 배에 수많은 등불을 달아놓고 보고 즐기는 놀이다. 특히 배에서는 횃불을 피워 강 가운데서 불꽃놀이 하듯이 던지며 논다. 물론 시에 나오듯 `매화포`라는 폭죽을 터트리는 불꽃놀이가 있지만, 중심은 관등놀이인 것이다.
`불놀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풍경에 대해 시인 김억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까만 밤중에 여러 수십 척 여러 수백 척의 배를 강물에 띄우지요. 20만 시민은 집을 모다 비우고 나와선 더러는 배 타고 더러는 강가나 철교 위에서 구경하고, 배라니 그것은 지붕을 씌운 집배(屋船)인데, 볏짚으로 화톳불을 하여서 강 가운데 이르렀을 때 하늘 공중 높이 뿌리기도 하고 강물 우에 던지기도 하고…, 그러니까 여러 억십만 별들이 하늘에 날듯이 까만 밤중에 불꽃이 요란스럽게 호화찬란하게 날지요.”
20만 시민이 집을 비우고 모두 나와 강가에 자리 잡고 강 위에서 벌어지는 찬란한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 그리고 배에서 던지는 횃불의 불티들이 밤하늘에 흩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 축제의 규모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동인은 그의 소설 `눈을 겨우 뜰 때`에 이 축제의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강 좌우편 언덕에 달아놓은 불, 배에서 빛나는 수천의 불, 지걱거리며 오르내리는 수없는 배, 배 틈으로 조금씩 보이는 물에서 반짝이는 푸른 불, 언덕과 배에서 지껄거리는 사람의 떼, 그 지껄거림을 누르고 때때로 크게 울리는 기생의 노래, 그것을 모두 싼 어두운 대기에 반사하는 빛, 강렬한 사람의 내음새, 연화(煙火) …. 유명한 평양 사월 파일 불놀이의 경치를 순서 없이 벌려 놓으면 대개 이것이다.”
이 묘사가 `불놀이`라는 작품의 배경을 잘 보여준다. 김동인은 이때 동원되는 배가 5, 6백 척이 된다고 쓰고 있다. 그 많은 배들에 달린 등과 횃불의 불빛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강가 풍경을 생각해보면, 이 축제의 분위기를 충분하게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찬란하고도 흥겨운 축제를 아무 흥미 없이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의 문제(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리고 매화포 소리에 깜짝 놀라 새로운 다짐을 하지만, 그것은 축제와 아무 상관없는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는 교훈일 뿐이다.
`불놀이`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근대사상과 문예`라는 글에 이런 근대인을 지적하고 있다. 그 글은 근대인의 특징을 `개인주의적 방관적 태도`에서 찾고, 이런 태도는 “잔치 자리에서 남들은 모두 재미있게 떠드는데도 자기 홀로는 술잔을 손에 잡지 아니하고 싸늘한 비꼬는 안목으로 흘금흘금 둘러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근대인이 바로 `불놀이`에 나오는 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따스한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는 축제의 세계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근대인의 전형이다. 이제 축제를 떠나 고립된 채로 모든 것을 헤치고 나가야 할 근대인인 것이다.
지금의 수많은 축제도 신성함과 공동체 정신이 사라지고, 상업성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전의 신성한 축제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 어쩔 수 없는 근대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