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보내는 한이 참척이라
흐느껴 울수 조차 없는이는 애비라
더 서러운 밤,,,
베어문 그리움이 꾸역 꾸역
애비는 미쳐가고
등블조차 애닯은 빈소
조문의 말 조차 건내지
못하는 이의 슬픔이 더하여 애처러운 시간
삼가 추모조차 서럽고
아픔조차 민망함이여 .......
천사가 된 너를
우리네 부모는 추모하리니
서러워 서러워도 하지말어라
천사는 아프지도, 울지도 않는 것이 란다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오래간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가 어지간하게 들어서 하는 인사란 건강이 어떠냐 아이들은 잘 사냐, 손주들은 몇이냐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친구는 어릴때 한 동네에서 살았고 많은 인생의 시간을 할애한 죽마고우였다. 전화를받는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반갑다는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친구를 바꿔주는 것이다. 친구는 내 전화를 받자 울먹이는 소리로 야, 우리 아들 죽었다.한달전에 갔어.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냐.대답좀 해봐라!
하면서 말을 끊었다. 사람이 그렇게 약해질 수가 없었다.젊은 시절 그는 강력계 형사로서 많은 범죄자들을 잡았다.그리고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그러다 보니 정년퇴직을 해서도 지하철도 제대로 타지 못했다.혹시나 얼굴을아는 과거의 전과자들에게 험한 꼴을 당할까봐였다. 그래서 그는 서울의 교외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농사를 지으면서 소일했다.딸 둘에 아들 하나, 딸 둘은 시집을 가서 그에게 외손주를 안겨주었고 막내인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 직장에 나가면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5대 독지인 친구는 아들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착한 며느리가 들어와서 손주들을 낳고 그 손주들과 어린이 놀이터같은 곳에 가서 놀면서 재롱을 보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다.서른 살을 넘긴 그 아들이...
그것도 사고가 아니라 병명도 없이 돌연사로,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몸이 굳어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왜 죽엇느냐 장례는 잘 치루었냐, 너무 슬퍼하지말라 하는 등의 이야기는 오히려 그에게 힘든 부담이 될 것같아서 알겠다면서 그냥 전화를 놓았다.정말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친구의 불행이 남의 일같지 않아서 그냥 멍하니 천정만 쳐다 보았다. 신이 있다면 절대 그렇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불행을 안겨줄 일이란 거의 없었다. 평생을 남을 위해 일했고 부정이란 손톱만치도 없는 강직한 친구였다. 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요한(세자)이란 이름을 주었다. 세례명과 속명을 같이 쓰라고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아들이나 딸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참척이라고했다. 참척이란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반갑지 않은 나쁜 선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제 먹을 것 제가 갖고 태어난다고 아이들을 많이 낳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백일까지 살아나는 아이들이 드물었다. 각종 질병들이 많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료시설이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의료시설은 많이 생겻지만 워낙 아이들을 많이 낳지를 않아서 형제와 자매가 없는 외아들이 많은 것이다.그 아들이나 딸이 부모보다 먼저 가면 부모는 사는동안 한을 안고 살게 된다.우울증이 생기고 삶의 의욕이 없어지고 건강을 상실해서 제 수명대로 살기가 여간 힘들지가 않다.생각해 보라.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경우라고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내가 아는 많은 알려진 사람들, 송해 선생의 아들, 코미디언 이주일 씨의 아들, 박원숙 탤런트의 아들,박영규의 아들 등 많은 분들의 자기 생명처럼 소중했던 아들들이 먼저 부모곁을 떠났을 때 그 상실감이란 상상도 못할 것이다.그러나 이 세상이란 사바세계이고 사바세계는 극복하는 세계라고 했듯이 산 사람은 남은 여생까지 또 살아야만 한다.부모가 먼저 가고 자식이 뒤를 잇는 것이 순서이지만 신은 가끔씩 이런 질서를 잊는 것같다.
친구야, 빈말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생명이 있는 동안 열심히 살아보자. 그렇게 이야기할 말밖에 더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상투적으로 들릴런지 모르지만 하느님이 자네 아들이 너부 이뻐서 먼저 곁으로 데려갔다고 믿어보라.그렇게라도 살아야지 어쩌겠냐.
나중에 다 만난다고 생각해....
첫댓글 그 부모의 마음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질듯이 아프겠습니다.
자식이 집을 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사는 부모에겐
오히려 "어딘가에 살아 있겠거니" 싶어
덜 슬프다고 할 수도 있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