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
고린도전서 16:15-18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권면한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면서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너희는 그들을 알아 주라’고 결론적으로 말씀했습니다.
고린도는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가 교류하는 항구도시로서 물질적으로 부유했으나 음란을 비롯한 온갖 미신과 우상숭배가 성행한 멸망할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시는 줄로 알고 바울은 즉시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행16:6-10).
마게도냐의 첫 성읍인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를 거쳐서 베뢰아와 아덴을 지나 고린도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A.D 51경), 1년 6개월간 사역하였습니다(행18:18-23).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3-4년을 경과 하는 동안 고린도 교회는 거짓 사도의 가르침으로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난 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사실을 알고 직접 가서 그들의 잘못을 시정 하고자 했으나 갈 수 없게 되자 편지를 쓰서 디모데에게 맡겨 보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초대 교회 중에 가장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너희의 부족한 것’(17)이라고 말한 것은 구원과 영생을 얻기에 부족했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이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와서 교회의 부족한 것을 채워 주었기 때문에 바울과 교인들은 기뻤습니다.
바울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오지 않을 때는 바울이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마음이 시원하지 못하고 무겁고 답답했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그들의 마음은 답답했으나 세 사람이 와서 그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줌으로 해서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들어서면 마음이 시원한 교회가 있는가 하면 마음이 무겁고 답답한 교회도 있습니다.
드럼과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큰 소리로 찬양하는 소리가 은혜스럽지 못하고 도리어 시끄럽게 여겨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드럼도 없고 연주하는 악기가 없어도 성도들이 조용하게 부르는 찬송이 은혜가 되는 교회도 있습니다.
설교가 성도들에게 먹히지 않는 막히는 것을 느껴지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속으로 빨려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교회도 있습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당시 고린도 교회는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교회가 되지 못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하며 성도들이 분열되었습니다(고전1:12).
하물며 고린도 교회를 전도하여 세운 바울을 사도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9:1-3).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성찬도 분쟁이 있었습니다(11:17-34).
심지어 죽은 자가 어찌하여 살아나느냐고 하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15:12).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바울과 교인들은 마음이 시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와서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세 사람 중에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성경에서 여기에만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15)’라고 말했습니다. ‘스데바나의 집’은 건물(house)이 아니고 가족(family)을 의미합니다.
스데바나의 가족들이 아가야 지방에서 가장 먼저 복음을 영접했으며 그리스도를 영접한 최초의 신자였습니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세 사람이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해서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는지를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첫째로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것은 그들이 성도 섬기기를 작정한 것입니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15).
‘스데바나의 가족’은 아가야의 첫 열매로서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스데바나의 가족은 예수를 믿고 먼저 성도들을 스스로 돌보아 주는 것을 결심했습니다.
무명의 일꾼 스데바나가 조용하게 자신의 주위에 있는 어려운 자, 가난한 자들을 성심껏 도와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스데바나의 가족이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한 것을 다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가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므로 그에게 순종하며, 그를 도우라고 권면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예수님)을 ‘섬기는 자’입니다. ‘섬김’은 낮은 자에게 베푸는 ‘은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25:4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소외받고 연약한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아 주는 것은 곧 예수님(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집 대문에 굶주리고 병들어 죽게 된 거지 나사로가 있었다는 것은 부자에게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그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거지 나사로를 섬기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음에도 섬기지 않았음으로 부자는 음부에 던져져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영원히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를 섬기지 않음으로 해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스데바나 집 사람들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고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15). ‘작정’했다는 말은 스데바나의 가족이 자발적이고도 헌신적으로 봉사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마20:2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스데바나와 보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하고 섬김으로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성도 섬기기를 작정하고 섬기는 자가 있을 때 그 교회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는 ‘함께 일하는 자’입니다(16).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은 함께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함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자’란 성도들이 함께 일했다는 말입니다. ‘함께’란 서로 나누어진 두 마음이 아닌 ‘동심동체(同心同體)’를 의미합니다. 함께 일하였다는 말은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다투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교회도 시데바나의 집처럼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함께 일할 때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게 됩니다.
스데바나의 가족은 함께 스스로 순종을 본받아 자신들을 낮추고 성도를 섬기기를 힘썼습니다. 그리고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도 함께 섬겼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처럼 아무리 쉽고 가벼운 일이라도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힘을 합치면 즐겁고 훨씬 수월하고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교회를 섬기는 형제 자매입니다. 모두 다 함께 힘을 합쳐 교회와 성도를 섬기며 즐깁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개역; 복종)하라’고 말했습니다. ‘복종’의 헬라어는 자신을 상대의 밑에 두는 것을 뜻입니다.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복종)’하는 것은 함께 일하는 모두에게 힘을 내도록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게 됩니다.
세 번째로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은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입니다(17).
‘부족한 것을 채워 주는 것’은 ‘물질적인 궁핍’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부족함’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의 나눔과 같은 신앙적인 부족을 가르쳐 줍니다.
‘부족함’이란 구원받고 영생하는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는 물질적인 부족함을 채워주는 곳이 아닙니다. 죄인의 속죄함과 구원받고 영생을 얻도록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아닌 그 어느 곳도 속죄함과 구원과 영생을 얻도록 해 주지 못하는 것은 속죄할 수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흘리신 피로 세운 교회만이 죄인들의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합니다.
부족함으로 죄인의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할 수 없다는 것은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고린도 교회에 와서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줌으로 바울과 교인들이 기뻐하였습니다.
오늘의 교회에도 고린도 교회처럼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속사적으로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오늘의 스데바나와 보드나도와 아가이고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교회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18) 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사람들을 알아주는 것은 피차의 마음에 오해와 불신을 제거하고 평안과 위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도 섬기기를 작정하고 함께 일하며 교회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어서 모든 성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자가 됩시다.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음’이란 말은 계속 진행형으로서 지상에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시원한 마음으로 영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 지상 교회를 섬김으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줍시다. 그리고 주님 오시는 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마음을 시원하게 영생합시다.
첫댓글 💖움켜쥐는 인연보다 나누는 인연으로 살고
각박한 인연보다 넉넉한 인연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 기다리는 인연보다는 찾아가는 인연으로 살고
변덕스런 인연보다 한결같은 인연으로 살며
짐이 되는 인연보다 힘이 되는 인연으로 살아 갈수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 하루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행복과 행운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 31:30).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