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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부면 수녀님 재산이 엄청날것
같지만 사실 이해인 수녀는 무일푼이다
모든 인세는 모두 수녀회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수도자는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어서다. 거기다 저작권을 친족에게
상속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
3년마다 공증을 받는다.
1년에 한 번 수녀회 경리가 회원들 앞에서 살림살이 보고를 하며 ‘이해인 수녀 인세는 이만큼이다’ 알려주는데 1억이 넘게 들어올 때도 있고, 몇천만원 수준일 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해인 수녀는
한 번도 본인 통장을 본 적이 없다.
평생 카드도 딱 두 장 가져봤다고 한다.
그것도 신용카드가 아니라 주민등록증과
경로우대 교통카드가 그것이다.
아래 내용은 이해인 수녀가 글쓰기가
어려운 이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식당에서 조갯국이 나온 날에
국 속 조개껍질을 다 떼어 흩어놓고
다시 제 짝을 찾아보라
그 과정에서 느낀 사랑과 우정의 개념을
정의하는 글을 써 보라.
시계, 십자가 등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소지품에게 편지를 써보라.
모든 이들의 내면에는 글 쓰는 능력이
있다. 그 잠재력을 깨닫고 발휘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표현력은 어떻게 키우는 게
좋을까?
다른 사람이 쓴 글에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표현을 필사하면 도움이 된다.
베끼라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라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꽃 이름이나 나무 이름처럼
모르는 것이 나오면 사전뿐 아니라 도감을 찾아서라도 끝까지 찾아내며 연구해야
한다. ‘공부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건이다.
‘이름 없는 꽃’ ‘이름 없는 새’ 같은 구절이 있는 글은 성의가 없어 보인다.
그녀의 진정한 무소유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2.
26세의 청년 기술자 안성수씨가 개발한 ‘롤링 저감 자동팽창식 1인용 구명 뗏목’
해양수산부가 선정하는 ‘해양수산 신기술’ 중 하나로 지정됐다.
1인용 구명 뗏목은 4kg 남짓한 무게에 170cm 길이로 펼치면 한 사람이 탈 수
있는 크기다.
평소엔 납작하게 접혀 있어 구명조끼
뒤에 장착하거나 가방에 싸서 들고
다닐 수 있다. 바다에 빠졌을 때 꺼내면
20초 만에 자동으로 팽창한다.
줄사다리가 달려 있어 거친 파도에도
쉽게 탑승할 수 있다. 1인용 구명 뗏목에 타게 되면 구명조끼와 달리 몸이 물속에
잠겨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수난사고의 대부분이 저체온증 때문인걸
알고 개발했다고 한다.
젊은 발명가의 의지에 응원을 보낸다.
3.
전 세계 여러 나라에 불교가 있지만
여신도를 ‘보살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 불교밖에 없다.
사전에서는 ‘보살’을
‘부처가 전생에서 수행하던 시절,
수기를 받은 이후의 몸’
‘위로 보리(진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하는,대승불교의 이상적
수행자상’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보살과 같은 뜻이다.
남성 신도는 ‘처사님’ ‘거사님’이라고
부른다. ‘처사(處士)’의 사전적 설명은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던
선비’이고 ‘거사(居士)’ 역시 ‘숨어 살며
벼슬을 하지 않던 선비’다.
즉 불교에서는 여성을 남성보다
더 존귀하게 대한다는 뜻이다.
조계종 종정이신 성파 스님은
한국 불교가 여성 신도를 ‘보살님’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을 조선시대부터라고
설명한다.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여성을 우군(友軍)으로
삼기 위한 방편의 하나가 ‘보살님’
호칭이라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주둥이가 보살인분들이 계신다
그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4.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술을 마시는 내용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육지에 발 붙이지 못하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 많다.
술을 마신 후 방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대청마루에서 쪽잠을 잤다는 이야기,
술을 먹다 탈이 나서 독한 위장약을
먹어야 했던 기억,
주사를 부리는 부하들에 대한
언짢은 감정 등이 가감 없이 담겨있다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와 리더로서의 일상적인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생생한 글이 바로 난중일기다.
아울러 최고 지휘관이 전쟁 중
매일 쓴 일기가 후대에 전해지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고 한다.
장군께서도 그러 하셨는데
내가 술을 끊을수 있는 방법이 없다....
5.
이게 군급식이라고?
어제 초복날 육군학생군사학교
용사식당에서 배식된 군급식이다
배식된 해신탕에는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다.
참고로 후식은 수박화채였다고 한다.
우리 집 막내의 어제 식단도 삼계탕이었다 그것도 전복 삼계탕
다시 갈까?
6.
1926년 메리 가브리엘라 뮬헤린 수녀가 조선에 첫발을 디뎠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출신의
스물여섯 살 젊은 수녀가 도착한 평안도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시골 곳곳을 다니며 일제에 시달리던 가난한 농민을 도왔다. 하지만
10년 넘게 이어진 봉사는 일본의 추방
명령으로 중단해야 했다.
극한으로 치달은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였다.
그녀는 발음이 어려운 가브리엘라 대신
‘가별 수녀’라고 자신을 부르던 조선의
아이들을 잊지 못했다.
1952년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 땅을 다시 찾았다.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전쟁미망인 등
피난민을 돕는 일을 했다.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것으론 부족했다.
전후 한국엔 돈이 모자랐고,
금융 시스템이랄 것도 없었다. 고리대금에 시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수녀가 되기 전 전 허드슨 탄광회사에서
일했던 가브리엘라 수녀는
회계 전문가로서의 특기를 발휘했다.
1930년대 캐나다를 경제 대공황에서
건져낸 신용협동조합 ‘안티고니시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가브리엘라 수녀는
1960년 5월 국내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인 ‘성가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재건국민운동본부와
전국을 다니며 협동조합 지도자 강습회도 열었다. 강습회에 참여한 청년들이
마을로 돌아가 금고 설립에 나섰다.
1963년 5월과 6월 사이 경남 하둔·월곡·정암·외시·마산 5곳에 마을금고가
세워졌다. ‘근검·절약해 저축하고
상부상조하면서 잘살아 보자’.
소박하지만 절실한 구호는 통했다.
불과 1년 후인 1964년 5월 말까지
경남에서만 169개 마을금고가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새마을금고의 시작이다.
새마을금고 출생의 비밀을 처음 알게됐다.
7.
[그림이 있는 오늘]
박수근
'귀로'(1953). 26×34cm.
종이에 유채. 개인 소장.
8.
[詩가 있는 오늘]
모르는 사람의 손이 더 따뜻하리라
이기철
내일 이 땅에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화성엔 가지 않을 거야
거기엔 내 좋아하는 참깨와 녹두콩을
심지 못하므로
오늘 핀 도라지꽃 그릴
한 다스 색연필이 없으므로
일기책 태운 온기에 손 쬐며 쓴 시를
최초의 목소리로 읽어 줄 사람 없으므로
지구 아니면 어느 책상에 앉아
아름다운 글을 쓰겠니?
노래가 깨끗이 청소해 놓은 길
어느 방향으로 책상에 놓아
내일 아침의 왼쪽 가슴에 달아 줄
이름표를 만들겠니?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세상 한쪽이
더워진다고 쓴 말을
어디에 보관해야 정오까지 빛나겠니?
샘물이 솟는 곳에서 살고 싶다던 사람을
서서 기다리면
나무에 남은 온기가 절반은 식어도
모르는 사람의 손이 따뜻하리라
9.
오늘의 날씨입니다
10.
재미로 보는 오늘의 운세입니다
복날 군급식처럼 푸짐한
오늘 되십시오
오늘 신문은 여기까지 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