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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오순절의 4대 은혜/ 사도행전 2:1-13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s92pHPyqE9U
제게 소원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시간에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강령한 임재가 재현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 가에 있는 기도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을 때 거듭났습니다. 이것이 ‘올더스게이트의 회심’이라 하며 감리교에서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요한 웨슬리는 그로부터 6개월 후에 페터레인이란 곳에서 철야기도를 하다가 다시 한 번 성령체험을 합니다. 1739년 1월 1일자 웨슬리의 일기입니다. “미스터 홀, 킨친, 잉함, 휫필드, 허친스, 그리고 나의 동생 찰스가 우리의 형제(모라비안) 60여 명과 함께 페터레인 애찬회에 참석하였다. 끊임없이 기도하기를 새벽 3시까지 계속하였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강하게 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기쁨으로 소리쳤다. 많은 사람들이 땅에 엎드러졌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현존에 경외와 놀라움으로 사로잡힌 우리는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오 당신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이런 일이 우리의 예배 가운데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0일이 지난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임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을 쓰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오순절 아침이었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유대인의 절기를 맞이하여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최소한 15곳 이상의 지역에서 온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 몸을 성전 삼고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감동하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보호하시고, 책망하시고 교훈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성령님은 창조주이시며 보혜사이십니다.
성령님은 어떤 분이라고 한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을 보다 잘 표현하기 위하여 은유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본문에도 성령님을 몇 가지 은유적인 방법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성령님께서 초대교회에 임하실 때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과 그때 모여든 사람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 “오순절의 4대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바람 같은 은혜
세상에 바람의 종류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것을 설명할 때 바람을 사용합니다. 기혼자가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과 이성적인 교제를 하면 바람났다고 합니다. 춤바람 났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 시련의 바람이 분다. 이런 바람은 좋지 않은 바람입니다. 반면에 성령바람은 좋은 바람입니다. 2절에 보니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성령님을 바람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①성령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지구상에 바람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바람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교회에도 계시고 집에도 계십니다. 학교에도 계시고 여러분의 직장에도 계십니다. 어디든지 계시는 성령님을 항상 인정하며 사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②성령님은 자신의 임의대로 역사 하십니다. 요 3:8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님은 임의대로 역사하신다는 말은 성령님께서는 자신이 의지대로, 자신의 마음대로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바람의 방향을 사람이 조정할 수 없습니다. 선풍기 바람 같은 작은 바람은 방향을 조정할 수 있지만 태풍처럼 큰바람의 방향을 인간이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령님을 바람으로 묘사한 것은 성령님께서는 인간에 의해서 조정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임의대로 움직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성령께서 이스라엘에만 머물러 계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바울과 같은 사람들을 세우시고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민들레 씨가 바람을 타고 움직일 때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이끄는 대로 가듯이 복음은 성령의 바람을 타고 이스라엘을 넘어서 이방 세계로 퍼졌습니다.
미국에는 강력한 바람인 토네이도가 있습니다. 토네이도를 나무판자로 막을 수 없듯이 성령의 바람은 임의로 불며 우리가 조정할 수 없습니다. 돛단배는 돛을 바람에 맞기고 바람을 타야 합니다. 우리도 성령의 바람을 타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대로 자신을 맡기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십시오. 그러면 성령님은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항구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③성령님은 보이지 않지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바람을 볼 수 없지만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는 있습니다. 나무 가지가 흔들리면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성령님도 보이지 않지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셔야만 믿음을 갖게 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셔야만 진짜 신자가 됩니다. 어느 목사님 집에 스님이 시주하러 왔습니다. 목사님의 아버지가 “스님, 우리는 시주하지 않으니 헛수고 마시고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르신네, 왜 시주를 안 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나도 10년간 예수를 믿었습니다. 나도 모세도 알고 아담도 압니다.”하며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이 뛰어나가서 붙잡고 이야기를 하다가 “성령을 받으셨나요?”라고 물었더니 스님이 “내가 성령을 받았으면 이러고 다니겠소?”라고 하더니 도망치듯 갔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회를 10년을 다녔어도 성령을 받지 못하면 언제든지 교회를 떠날 수 있고 주님과 상관없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받아야 합니다.
④성령님은 생명을 주십니다. 창 2:7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지만 사람은 마네킹처럼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어 살아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하나님의 숨으로 성령님을 말합니다. 마네킹처럼 죽어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바람, 성령님을 받으니 살아났습니다. 진짜 신앙생활은 성령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성령 없는 사람은 살았다는 모양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중국에서 사역했던 허드슨 테일러선교사님에게 한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교회를 들락거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세례도 받고 정식으로 믿고 싶습니다. 성경을 몇 번 읽어야 됩니까?” 허드슨 테일러가 청년에 게 되물었습니다. “촛불이 언제부터 빛이 나나?”, “심지에 불을 붙여야 빛이 나죠.”, “마찬가지네. 성령이 자네의 마음속에 역사하실 때, 그때부터 온전한 교인이 되는 것이네.” 참 옳은 말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신자가 아닙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셔야 예수님이 믿어지고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컵에 공기가 가득합니다. 컵에서 공기를 빼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컵을 뒤집으면 되나요? 컵을 막 돌리면 공기가 빠져나가나요? 아닙니다. 물을 채우면 물이 채워진 만큼 공기는 빠져나갑니다. 사람의 마음에 염려와 근심, 시기와 질투, 분노와 마음의 상처로 인한 아픔 그리고 우울함과 어둠이 가득할 때, 어떻게 그런 것들을 없앴을 수 있나요? 컵에 물이 들어오는 만큼 공기가 빠져나가듯이 성령으로 충만해진 만큼 그런 것들이 마음에서 빠져나갑니다.
영적으로 무기력한 이유는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건전지의 힘으로 힘차게 움직이던 장난감이 멈추었습니다.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건전지의 수명이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장난감 때문도 아니고 환경 때문도 아닙니다. 장난감에 생기를 주던 건전지의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무기력한 원인은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을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영적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⑤성령님은 능력이 충만하십니다. 바람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바람의 능력이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어떤 경우에는 피해를 줍니다. 태풍의 강력한 바람 앞에 농작물은 피해를 입지만 바다는 살아나는 것처럼 성령님의 능력도 사람에 따라서 다른 각도로 나타납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에게는 유익이 되는 능력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심판하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도움을 받기 위하여 종교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말 못하는 우상에게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선교사님이 어떤 우상 숭배자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아무리 전해도 그 우상 숭배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선교사님이 그 우상 숭배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섬기는 신상을 강아지와 함께 강물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강아지는 헤엄쳐서 올라와도 당신이 섬기는 우상은 올라오지도 못합니다. 물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우상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고 복을 준단 말입니까?” 그 말에 우상 숭배자가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우상도, 금으로 만든 우상도 넘어뜨리면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강아지보다 못한 것이 우상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능력이 충만하십니다.
2. 불 같은 은혜
3절에 보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습니다. 성령님이 불 같이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역사를 불로 보여주신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①불은 뜨겁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면 사람이 뜨거워집니다. 기도가 뜨거워지고 찬양이 뜨거워집니다. 그의 신앙생활이 뜨거워집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그의 가슴에 불을 붙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체온이 1도 떨어지면 면역력이 30% 떨어집니다. 대사량은 12% 떨어집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체온을 올려야 합니다. 체온이 올라가면 면역력이 올라가고 면역력이 올라가면 건강해집니다. 영적인 온도도 올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불로 충만하면 영적인 면역력이 올라가고 죄의 바이러스가 침범하지 못합니다. 죄와 싸우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②불은 보호합니다. 추운 겨울에 불은 추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줍니다. 광야는 낮에는 40도가 넘습니다.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지만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태양을 가려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뎁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과 불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주셨습니다.
오래 전 경산에서 열차 사고가 났을 때의 일입니다. 모 권사님이 딸네 집에 다녀오시면서 손녀를 데리고 기차에 타셨는데, 손녀가 갑자기 칭얼대며 “할머니, 할머니. 앞으로 가요.”라고 했습니다. 권사님이 “얘야, 여기가 우리 자리다.”라고 하는데도 손녀가 막무가내로 권사님을 끌고 앞으로 갔습니다. 아이에게 못 이겨 앞차로 옮기자마자 열차가 탈선하여 처박혔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앞 칸으로 옮긴 덕분에 무사했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압니까? 하나님께서 아이를 통하여 그 권사님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합니다. 기도도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③불은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물이 불을 만나면 끓고, 얼음이 불을 만나면 녹습니다. 쇠도 불을 만나면 녹습니다. 불은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람이 변합니다. 교회 다녀도 변화되지 않는 것은 성령님을 받지 못했든지 성령님을 소멸해서 그렇습니다.
‘긍정의 힘’이란 책을 쓴 ‘조엘 오스틴’의 아버지는 존 오스틴 목사님입니다. 그는 목사안수를 받았지만, 목회를 그만두고 보험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하루는 상사가 전화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5분정도 전화를 하는데,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상스러운 욕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그 상사에게 교회에 다닐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교회에 다닌다는 거예요. 한 만찬모임에서 그 사람이 식사기도를 하는데 엄청 은혜롭게 기도하더랍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왜 신앙인이 이 모양 이 꼴일까? 도대체 문제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현대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형식과 습관은 있지만 성령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 중심적인 목회를 해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세운 교회가 바로 ‘레이크 우드’교회입니다. 사람이 성령의 불을 받으면 변화됩니다. 사울이 바울 되듯이 변화됩니다.
④불은 태웁니다. 성령은 믿는 자에게는 성결의 불입니다. 불은 물질을 태우듯이 성령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사물에 묻어 있던 세균이 불을 만나면 타서 죽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죄악을 태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 죄악의 세균은 불같은 성령님의 역사로 소멸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거룩해지게 됩니다.
⑤불은 동력입니다. 성령은 신자의 동력입니다. 화력발전소는 연료를 태워서 나온 열로 물을 끓이고 끓는 물에서 나오는 증기로 터빈을 돌려서 터빈에 연결된 발전기로 전기를 만듭니다. 그 전기로 기계도 돌릴 수 있고, 전구도 켤 수 있고, 전기자동차도 움직이게도 합니다. 성령은 믿는 자들에게 영적 동력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⑥불은 빛을 발합니다. 빛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참 많습니다. 캄캄한 곳에서 어디가 길인지 몰라 헤매던 사람에게 빛이 비춰지면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길이 아닌지 알게 됩니다. 성령님 없이 사는 사람은 빛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길을 바로 찾아갈 수 없습니다. 성령의 빛이 비춰지면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저도 성령을 체험하기 전에는 제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몰라서 헤맸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빛이 저에게 비춰지자 제가 가야 할 길을 보게 되고 그 길을 걸어왔으며 지금도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분별력이 참 중요합니다. 분별력이 부족해서 속는 경우도 있고, 분별을 잘해서 낭패를 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령님을 친구로 삼고 그분을 인정하며 함께 살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오감을 초월한 성령이 주시는 영감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게 됩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가다보면 계단이나 돌부리를 잘 보지 못해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있으면 그런 것들을 보기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빛 없이 살다보면 자주 넘어집니다. 그런데 성령의 빛이 비춰지면 잘 보이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나 환경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사단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령의 빛이 비춰지면 달라집니다. 자신을 넘어뜨리기 위해 기다리는 돌부리들도 보이고 사단이 파놓은 함정도 보이기 때문에 넘어질 일이 줄어듭니다.
최낙중 목사님은 1969년 군대생활할 때 폐결핵과 우울증, 불면증, 만성위염, 신장염, 십이지장궤양을 앓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몸무게가 48kg 밖에 안 될 만큼 허약했습니다. 앉아 있다가 갑자기 졸도할 때도 있었습니다. 수술 중 죽기를 소원했으나 몸이 너무 약해서 수술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할 수 없이 기도하다 죽겠다는 각오로 기도를 시작했는데 37일만에 성령충만을 받았고 병든 몸이 치유 되었습니다. 최목사님은 “나는 성령의 불을 받아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목사가 됐다.”고 간증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3. 말하는 은혜
4절에 보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말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성령 받으면 입술이 변화됩니다. 막 16:17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절까지 보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다섯 가지가 나옵니다. 그 중에 두 번째가 새 방언의 표적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 받으면 언어가 변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입을 변화시켜 어떤 말을 하는 은혜를 주실까요?
➀복음을 전하는 입이 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각기 다른 언어를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모인 사람들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자기 난 곳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에 관하여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은 복음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주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전도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입이 됩니다.
➁기도하는 입이 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기도하는 입이 됩니다. 기도는 교제의 기도가 있고 사역의 기도가 있습니다. 사역의 기도를 잘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사역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교제의 기도를 잘하면 하나님과 친해집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께 더 사랑을 받게 됩니다. 성령충만하면 사역의 기도도 잘하게 되고 교제의 기도도 잘하게 됩니다.
➂찬송하는 입이 됩니다. 사 43:21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찬송을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명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송을 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 중에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시 22:3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하나님이 임하십니다. 성령 받으면 찬송하는 입이 됩니다.
➃믿음의 고백을 하는 입이 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믿음의 고백을 잘합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시 18:1-2을 보겠습니다. “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힘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구원으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의 시를 보면 그는 끊임이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특별히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듯이 성령충만면 하나님께 신앙도 사랑도 믿음도 고백을 잘하게 됩니다.
⑤방언기도를 하는 입이 됩니다. 방언기도는 성령님의 은사입니다. 은사는 선물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선물은 좋은 것입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통하는 통신수단입니다. 그래서 많이 해야 합니다. 사 28:11입니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하나님은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방언기도는 하는 기도이며 듣는 기도입니다.
고전 14:26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옛날 초대교회에는 예배를 보면 찬송가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도 있고 하나님의 계시도 받아서 증거 했고 방언기도도 하고 또 방언통역도 했습니다. 예배에 반드시 방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 전통을 잃어버리고 방언하는 사람과 교회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성경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고전 14:18절입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교회는 방언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교회의 모든 교인들보다 방언기도를 더 많이 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감사거리였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신령하고 똑똑한 사람입니까? 그런 바울이 방언 기도를 많이 했다면 방언기도가 좋기 때문이지요. 방언기도가 좋은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바울이 방언기도를 많이 했겠습니까? 성령 받으면 말하는 은혜가 임합니다.
4. 듣는 은혜
2절에 보니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초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영음을 들은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그때 모인 사람들은 성령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성령님을 받으면 영적인 귀가 열립니다. 그 이유는 죽었던 영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살아있으면 청각이 살아있습니다. 육체가 죽으면 청각도 죽습니다. 영적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이 죽었을 때는 영적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각이 없습니다. 성령을 받고 영이 살아나면 영적인 청각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성령 받으면 말씀을 듣게 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 듣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①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성경 읽기를 사모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②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설교를 사모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설교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둘 중에 하나입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든지, 듣는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③내면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믿는 자 속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마 10:19,20입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우리가 신앙적인 이유로 권세자들 앞에 섰을 때에 어떤 말 할 것인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Jesus Christ Superstar’라는 제목의 뮤지컬이 있습니다. 그 뮤지컬의 내용을 보면, 성경에는 없는 내용인데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믿지 못해 배반했던 가룟 유다가 뒤늦게 후회하며 울부짖는 대사가 나옵니다. 성경적인 것은 아닌데, 죽었던 가룟 유다의 혼령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고 구슬피 울며 말합니다. “Why didn't you tell me?” 계속해서 “Why didn't you tell me?”라고 슬피 울면서 노래를 합니다. 이 말을 좀 길게 풀어보면 “왜 당신은 죽은 다음에 부활할 것이라고 나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말씀하셨더라면 내가 미쳤다고 예수님을 팔았겠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진짜 가룟유다가 그렇게 말했다면 가룟유다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이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여섯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듣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의 시작입니다. 신 28:1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명기 28장에 보면 1-14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조건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입니다. 먼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힘도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설교로, 내적인 음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오순절의 4대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께서 임하시며 4대 은혜를 주셨습니다. 1. 바람 같은 은혜입니다. 2. 불 같은 은혜입니다. 3. 말하는 은혜입니다. 4. 듣는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