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대상과 선정 이유
내 삶은 대체로 모방의 연속이었다.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언제나 이상향, 소위 말해 롤 모델이 있었고, 그것은 꽤 자주 바뀌기도 했으며, 그게 부재한 시기에는 완전히 정체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적고 싶은 이름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전부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딱 하나, 가장 먼저 생각났던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을 떠올려보자면, 그것은 나의 스승. 바로 지난해 나를 가르친 고등학교 생명과학 선생님을 소개하고 싶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담임을 하셨던 교사는 따로 계신데도 나는 '선생님'이라는 단어에 이 분을 먼저 떠올렸다. 그 이유를 되짚어 보자면 그 시기 수험생들이 뻔히 할만한 사유다. 나의 입시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준 사람. 한 학년이 반 하나를 겨우 채우는 자그마한 시골학교에서 고작 1년, 그러나 가장 강렬히 추억할 한 해를 남겨준 선생님이시기에 선정하게 되었다.
성공 사례
실은, 공부가 힘들다는 건 전부 엄살이었다.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당장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고 책표지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나조차도 알 수 없었고, 나를 돕지 않는 주변 상황에 힘입어 모든 걸 내려놓고 지친 적을 했다. 그러다 새 학기에, 일주일에 세 시간 듣는 과목의 선생님에게서 해보자는 말을 들었다. 같이 해보자. 어째서 그 말이 이토록 가슴에 남는지, 빛이 지구를 일곱 바퀴하고도 반을 돌 동안 끝나는 그 짧은 한마디가 왜 나를 다시금 일으켰는지 사실 잘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로 해보고 싶었다. 무척이나 해내고 싶었다. 같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인간 마냥, 눈앞이 핑핑 돌고 심장이 목에 걸려 뛰는 것 같았다. 머리꼭지에 벼락을 맞는다면 이런 느낌이겠지,라고 유난을 떨면서. 가능하다면 이다음에 전부 선생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같은 말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은 1년 내내 그 '같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으셨다. 방과후 수업을 열어 매주 목요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았고 여름방학 보충 반이 만들어져 방학 동안에도 학교에 나가 선생님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1년을 꼬박 달렸고, 그 결과가 오늘이다.
자신의 의견
나이는 스무 살이나 먹었지만 아직도 꿈이 없다. 과학이 좋아서 지금 여기까지 왔지 뭐 해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다 문득 나는 또, 교사가 되어볼까 생각을 한다. 가르치는 일에 재능도 흥미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한다. 나머지 18년 인생이 작년 그 한 해에 모두 잡아먹힌 마냥 그렇다. 하지만 이런 치기 어린 생각을 하면서, 교사가 되어 그 시절 나의 선생님과 같은 세상을 보고, 누군가에게 같은 것을 베풀게 되면 좋겠다는 꿈이 자라나는 걸 막을 수는 없어서.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하는 동요 한자락에 공감을 내뱉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