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1일(토)
* 시작 기도
주님...
2022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자나온 한 해를 돌아보건대 참 회한과 애달픔이 마음속에 깊이도 서려 있습니다.
땅 위, 해 아래 곧 만물 안에 마음을 두고 거기서 무언가를 얻으려 했던 나의 윤리 도덕적 신앙 기준을 버리지 못하고 거기에 매여 스스로 감옥을 자처했던 나의 삶의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럼에도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신
주님께 다시 한 번 나의 마음을 두며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는 파레시아 곧 담대함으로 일어서오니 나를 받아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시고 이 하루도 주님과 친밀함으로 사귐을 갖기를 원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전 12:1-14
제목 : 하나님의 지혜, 곧 그리스도로 나타내시다.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6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 나의 묵상
코헬렛 곧 전도자는 지혜의 교사이다.
그는 마음을 다하여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연구하고 살폈다.
이 일은 괴로운 것이지만 하나님이 모든 인생들에게 주신 수고와 짐이다.
전도자가 묻고 또 물은 인생의 의미는 실상 모든 사람 안에 실재하는 궁극적 질문이다.
이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으로, 다름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하나님을 찾게 하는 질문이다.
네 젊음의 날, 곧 곤고한 날이 닥치기 전,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
인생은 밝고 활기찬 젊음의 몫 뒤에 어둡고 무력한 늙음의 몫이 따라온다.
인생의 늙음은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둡고 비 뒤에 다시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이는 팔레스틴의 기후에 대한 경험을 근거로 인생의 늙음을 겨울로 표현한다.
팔레스틴에서는 겨울에도 낮의 해가 어둡고 밤의 달과 별들이 어둡다.
겨울에는 맑은 계절과는 달리, 소나기가 온 후에 하늘에 구름이 그대로 있어서 다시 비를 몰고 온다.
3-4절은 몸의 늙음을 비유적으로 묘사한다.
집을 지키는 자들은 떨 것인데, 인간의 팔은 나이가 들면 떠는 법이다.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지는데, 발은 늙으면 구부러진다.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어지는데, 치아는 늙으면 빠지게 된다.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인데, 두 눈은 늙으면 흐려진다.
길거리 문들이 닫혀지는데, 늙으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맷돌 소리가 적어지는데, 늙으면 음성이 낮아진다.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데, 늙으면 얕은 잠을 잔다.
음악하는 여자들이 쇠하여지는데, 늙으면 목소리가 가늘어진다.
언덕에 오르는 것이 두렵고 거리에 나서는 것도 두렵다.
살구나무에 꽃이 피듯이 머리가 희어지며 메뚜기가 다리를 질질 끌 듯 걷는 것도 힘겹다.
그 때가 되면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그를 위한 조문객이 거리를 왕래한다.
6절은 죽음의 사건을 생생히 묘사한다.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진다.
물동이가 샘 곁에서 깨지고 물을 길어 올리는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진다.
은줄은 값비싼 등불의 표상이며 금그릇은 등대 위에 놓여 있는 장식물이다.
고대 사회에서 등불과 물동이는 일상생활의 두 가지 영역이며 비유적인 언어로써 ‘삶’을 나타낸다.
이것들이 산산조각 나서 깨어지는 것은 죽음의 사건을 생생히 묘사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말한다.
인간의 지혜는 헛되고 헛된 것으로 끝나고 말 인생을 위한 것이다.
그 안에 사업, 즐거움, 재물, 소유, 유산, 부지런함, 젊음이 들어 있으나 그 마지막은 덧없음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삶이라도 한계를 맞이하며 갑작스런 재앙을 만난다.
이것이 해 아래에서 사는 인생의 모순이며 괴로움이다.
그런데 이 모순과 괴로움을 정하신 분은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분은 해 아래에 계시지 않으며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코헬렛 곧 전도자가 말하는 ‘모든 것을 정해진 때에 좋게 만드셨다’(3:11), ‘시간과 심판’(8:6)은 모든 헛됨과 구별된 비밀스런 질서로서 모든 사람에게 임하며 이는 하나님께 속한다.
‘해 아래에서’ ‘만물 안에서’ 그리고 ‘그의 헛된 삶의 제한된 날’ 등은 인간의 일과 수고와 즐거움은 다 헛되다.
코헬렛에게 지혜를 묻게 하고 지혜를 주신 분은 한 목자 되신 하나님이시다.
코헬렛은 지혜를 힘써 탐구하였고 그 결과 해 아래에서의 모든 인생은 헛되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은 그에게 지혜를 주신 목자 되신 하나님의 결론이다.
그러면 해 아래, 만물 안에 속한 인간에게 참 지혜란 무엇인가?
그것은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을 아는 지혜이다.
이 지혜는 은밀한 데 감추어져 있는 지혜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창세전에 미리 감추어두신 것이다.
이 지혜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이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지혜이다.
이로써 하나님이 창세전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 아들의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아들이 생명을 얻은 자, 아들이 복종하여 아버지 안에 거하듯, 아들에게 복종하여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한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여 온전하게 되는 것이며, 삼위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는 영생 얻은 자들의 자기가 있는 곳에 자기와 함께 있어, 창세전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여 주신 영광을 보는 것을 원하신다.
이 때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뜻이 이루어진다.
오늘은 12월 31일이며 전도서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나는 헛되고 헛된 인생, 그것을 위해 인간의 지혜나 일상적인 지혜를 구하던 자였다.
그것으로 만물 안에서 보란듯하고 성공하여 윤택함을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사는 자였다.
신앙생활과 목회를 하면서도 땅의 일에 매진하였으며 그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었다.
입술로는 십자가를 외치지만 실상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였음을 고백한다.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공의로 심판하셨다.
그리고 땅에 속한 것들을 물리치시고 무너뜨리셨다.
이는 창세전 하나님이 정하신 지혜이다.
그 지혜는 낮고 비천하고 멸시받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였다.
그 무덤의 자리에 하늘로부터 오신 참 지혜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여 예비하신 지혜, 이것을 알게 하신 것이다.
만물 안에 속한 일로 잠깐 근심한 나를 보니 심히도 부끄럽다.
생과 사를 주관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산 인생이 그저 수치스러울 뿐이다.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이 모습 이대로 십자가로 나아간다.
십자가를 통해서 열어놓으신 아버지 집 곧 영원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나의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의 뒤를 따라오시는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맡긴다.
육신으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오늘 전도자의 금언과 같이 팔과 다리도 힘이 없다.
눈도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귀도 어두워져 옆에서 하는 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뭐? 뭐라고?를 외친다.
진짜 어제는 하롱베이를 여행하는데 높은 언덕에 오르기가 무서워 포기하였다.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저질 체력이 되어 좀 무리하게 움직이면 나의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나고 만다.
어차피 만물 안에서는 올 것들이다.
하지만 이 시간 나의 영은 영원의 하나님만 바라본다.
거기에 나의 온전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육신은 연약하지만 나의 영은 잘 박힌 못과 같이 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의 품에 안길 뿐이다.
오늘 남은 한 날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품안에서 안식을 누리기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세상을 접하기 전에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대하게 하시고 이 말씀이 나를 이끌어 주의 나라로 나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만물 안에 속하여 땅의 것으로 근심하는 것을 일상으로 하며 살던 자가 여기 있습니다.
만물 안 곧 이 땅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며 온갖 부조리와 불의가 난무합니다.
정치를 비롯하여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어느 곳 하나라도 온전한 곳이 없는 것은 이 땅은 아담의 군상들이 자기들의 유익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곳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자들 중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비록 이 세상이 부조리하고 불의할지라도 거기에 좌고우면 하지 않고 나를 십자가에 내어주며 그리스도의 피로 연합하여 살아갈 뿐입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이들이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자기중심적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수용하며 복종하는 자들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곳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영생으로 누리는 주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