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사건이 되려면 그만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렇습니다. 사실 내가 범인이라고 말해서 범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는 별난 일들도 있어서 좋은 일이 아니라 나쁜 일로도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만큼 유명한 사람을 걸고 넘어져야 합니다. 유명인사가 갑자기 죽음을 당했다고 가정해봅니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됩니다. 그런데 그 유명인을 살해한 범인이 나타납니다. 덩달아 관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노리는 것이지요. 하기야 밥 벌어먹기 힘든 세상이니 어찌 보면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이 굶지 않고 사는 길이기도 합니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별난 일이 있지만 별난 사람도 있고 또 별난 직업도 있는 줄 압니다. 추천할 만한 직업은 아니지만 ‘청부살인’이라는 직업도 있습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겠지요. 대부분 이해관계로 인한 득실 문제에 기인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원한관계로 인하여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본인이 수행하기 어려우니 의뢰를 합니다. 그만한 재력이 있어야 가능하겠지요. 사람을 해치는 일인데 법적인 제제가 따를 것입니다. 죄의 대가까지 치러야 합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일이지만 분명한 살인이니까요. 그런데 자기 인생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런 직업을 가져야 하는가, 질문을 해봅니다.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는데 어쩌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살인청부로 인하여 사람을 해하였는데 그것을, 그 사건을 사고로 위장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완전범죄가 될 수 있겠지요. 살인과 사고사는 분명 다릅니다. 재판이 필요 없는 일입니다. 범죄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의뢰자도 살인자도 모두 이득(?)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건을 사고로 위장해줄 수 있는 직업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참, 세상 요지경이지요. 그런데 누가 그것을 부탁할까요? 청부살인을 의뢰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살인사건을 발생하면 직접 살인한 범죄자도 잡으려 수사하겠지만 그를 체포하고 나서는 동기를 추적하게 됩니다. 그 때 의뢰자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도 당연히 처벌 받습니다.
살인자와 그 살인을 청부한 사람 모두가 처벌을 받습니다. 그 모두를 피하고 싶다면 이 살인사건을 사건이 아니라 사고로 바꾸면 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고도의 설계도가 작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청부살인자가 어디서 어떻게 일을 벌일지 미리 알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에 따른 설계가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상호 교통이 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아무리 궁리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소위 ‘청소부’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그 실제 인물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건이 생각과 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니 그냥 짐작해보는 것입니다. 본인도 의아해 합니다.
자신이 설계하여 진행된 사고(?)입니다. 그런데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살해(?)당합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구나 싶습니다. 그가 남긴 말이 실마리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심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더구나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잃습니다. 나아가 자신도 위기에 봉착합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자신의 설계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따져봅니다. 문제는 자신의 동료들이 차례로 희생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가까운 사람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주고받은 말을 되짚어봅니다. 자칫 모두가 들통 나고 엉망진창 되기 십상입니다. 아니 그보다 희생이 커질 수 있습니다.
경찰까지 조사를 하게 됩니다. 보안요원. 하기는 요즘 보안업체도 하나의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의심 살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하는 눈빛은 좀 남다릅니다. 무엇인가 자꾸 조여 오는 기분입니다. 동료들까지 희생당하고 있는 마당에 더 미루기도 어려워집니다. 과연 청소부가 따로 있는가? 확신을 할 수 없다 해도 발생한 일을 추론하건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지경입니다.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 자기 일에 껴들어 이중으로 방어 장치를 하고 있는 것일까? 노련한 자라면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철저히 가려야 하니까요. 그래서 결심합니다. 자수하자.
문제는 그것입니다. 내가 자수한다고 곧장 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형사가 말해줍니다. 사고가 사건이 되려면 그에 합당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태 사건 은폐를 위해 설계한 사람이 증거를 남겨두었겠습니까? 참으로 희한한 일이지요. 자수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유명해보고자 하는 건달들이 꽤 있다고 주의까지 줍니다. 형사가 말해줍니다. 그런 일까지 도맡아 할 시간이 없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소한 것까지 뒤지고 다닐 여유가 없습니다. 진실과 거짓이 혼합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영화 ‘설계자’(The Plot)를 보았습니다. 다소 어렵네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신나라제이우 좋은날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