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보리타작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도리깨로 두드려 패서 곡식알을 털어내니 타작(打作)이라
는 말이 나왔을 터이지만 경험해본 사람만 그 힘든 것을 안다. 초여름 뙤약볕 아래서 도리깨질을 하
면 덥기도 하고 보리 까끄레이(까끄라기)가 등더리(등)에 한번 앵겨 붙으면 내려올 생각은 않고 자꾸
만 기어 올라가 짜증스럽다.
타작은 노련한 도리깨질이 몸에 밴 프로급 장골이 측면에 서고 나머지 초자 일군들이 일렬로 서
서 앞에선 프로가 도리깨로 쳐서 넘겨주면 나머지 초자들이 두드려서 마무리한다. 프로급처럼 도
리깨질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 나도 초자 일군들 틈에서 도리깨질을 하곤 했다. 간간히 욕심을 내
서 내 키보다 더 컸던 도리깨로 돌려치기를 해보다가 도리깨한테서 뒤통수를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
다. 하지만 보리타작의 묘미는 정작 다른 데 있었던 것 같다.
중참 때쯤 되면 어김없이 멸치 구루마가 한길에 나타난다. 철뚝에서 잡은 멸치를 잔뜩 실은 구루마에
서 “멸치사려! 싱싱한 멸치!” 라고 외치면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멸치는 동이 나고 만
다. 우리도 뒤질세라 아버지는 상이아재를 시켜 한 하꼬를 사오도록 한다. 때맞추어 어머니는 집
에 담가놓았던 농주와 양념장을 소반에 이고 와서 타작마당 옆 샘가에서 멸치 내장을 발라낸 뒤 즉
석 멸치회를 장만한다. 도리깨질에 기진맥진한 일군들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잡는다. 보릿짚 동
을 묶어 임시로 만든 그늘에 때 아닌 멸치회 잔치가 펼쳐진다. 흐르던 땀도, 등더리에 붙었던 까끄레
이도 걸쭉한 막걸리 한잔과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나면 일군들 도리깨질은 더
욱 신이 난다. 지금도 보리타작하면 멸치회가 연상되는 것은 이 유년의 추억 때문이다. 그때 먹었
던 부드럽고 달콤·새콤하던 봄날 멸치회는 최고의 별미였다.
요즘은 보리농사를 짓지 않으니 타작할 일도 없어졌다. 간혹 보리농사를 짓는다 해도 모든 것이 기계
화된 영농이라 예전의 그 보리타작은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덩달아 보리타작 마당에서 만끽하
던 멸치회 맛도 이젠 신화가 되고 만 셈이다. 아쉽다. 친구들, 이 봄이 가기 전에 고향 철뚝 멸치회
를 공수해서 옛 맛 한번 추억해 볼 생각은 없는가!
첫댓글 보리 까끄레기는 숫놈이다 치마안에붙으며는 흔들면 흔들소록 자꾸위로 올라간다
꾸울꺽!
아침부터 군침 돌게 만드네요.ㅎㅎㅎㅎㅎ
멸치회도 맛 있지만 봄에 나는 멍게도 맛 있는데^^ 향긋한 멍게회 먹고 싶어지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