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가 이건희
“기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니컬러스 버틀러’가 말했다. 혁신은 대부분 국가에서 국가가 아닌 기업에서 이뤄냈다. 기업은 인류에게 밥과 일자리와 미래를 제공해온 중요한 사회제도다. 오늘날 국력의 수준도 군함이나 병력 숫자보다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기업에 몇 개나 있는지다. 2020년 10월 25일 78세로 죽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이라는 초일류 기업을 일궈내 변방의 대한민국을 글로벌 무대에 주류로 서게 한 분이다. 제조업이 지배하던 20세기에 디지털 모바일로 상징되는 첨단 산업이 지배하는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 IT 기업으로 일구었다. 그는 6년 넘게 투병한 것은 요즘 같은 고령화 시대에 허무감을 느끼게 한다.
1987년 12월 1알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취임하여 1993년 7월 3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의 임원과 유럽 주재원을 모아놓고 한 강연을 MBC에서 임시 프로그램으로 방영했다. 이건희는 “나는 완벽한 사람이 절대 아니고, 실수도 잦지만, 51년간 보고 들은 게 많다. 식민지도, 전쟁도, 국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여기저기 살아봤다. 우리나라 개인소득이 50$에서 7,000$이 된 시간을 살았다. 할아버지가 500마지기, 아버지가 200마지기로 시작해서 내 개인 자산이 1조인지 모르지만 한국도, 삼성도 컸으니 이제 이 시점에서 이런 식으로 가야 일류가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말을 시작한다.
“나는 삼성에 빚이 없다. 도덕적, 인간적으로 약점도 없다. 앞으로 5년간 안 바뀌면 회장직을 그만두겠다.”라는 것으로 말을 시작한다. “내가 내 재산 늘리려고 밤잠 안 자고 떠드는 것 절대 아니다. 재산 10배 늘려야 나한테 아무 의미가 없다. 내 재산의 이자의 이자로도 몇 대는 살 수 있다. 부귀영화를 누리자는 것 아니다. 명예 때문이다. 성취감 때문이다. 여러분, 삼성, 우리나라가 잘되게 하는 것이다. 내 개인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고 싶다.”
“삼성전자는 3만 명이 만든 물건을 6천 명이 하루 2만 번씩 고치고 다닌다. 쓸데없이 자원을 낭비하고 공기를 나쁘게 하고 나쁜 물건을 만들어 나쁜 이미지를 갖게 한다. 이런 낭비적 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 누구도 못 고친다. 삼성은 전체가 중병에 걸려있다.” 당시 이 회장은 부친 이병철 회장과 형 창희 씨를 암으로 잃은 상태였다. 일본 제품과 삼성 제품을 비교하면 삼성은 이대로 문을 닫아야 한다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삼성의 불량률을 줄이는 것은 이익을 더 내는 차원이 아니라 생존과 양심의 문제다.
“세계는 국경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과거 선대가 경영하던 상황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과거 50년의 변화보다 향후 10년에 있을 변화의 양과 질이 더 많고 클 것이다. 기업 조직, 생산 방식, 연구소, 사고의 틀이 모두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전 세계가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중국 같은 후발업체가 추격해오고 있다.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성공한 대표적 나라가 한국이었다. 옛날에는 몇 가지 개선하면 팔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 국민, 재계 다 합쳐도 될동말동 어려운 상황을 우습게 보고 있다. 조금 정신을 차리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다. 삼성은 물론, 나라 전체가 이 시점에서 정신 안 차리면 인도네시아처럼 삼류 국으로 떨어진다. 난 이것이 눈에 보인다.” 말을 했다.
이 회장은 삼성부터 살리는 게 급했다. 삼성은 금성사와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을 벌이고 삼성전자는 가전, 정보통신, 컴퓨터, 반도체 4개 분야로 구성되었다. 이 중 가전은 우루과이 라운드로 유통시장이 개방되어 위기에 봉착했다. 소니 등 일본 가전업체들이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만든 저가품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해 오고 있었다. 현대는 자동차로 부상했고, 대우는 세계경영이란 기치를 내걸고 치고 나왔다. 그러니 삼성은 내심으로 ‘삼성이 점점 내려간다. 이 문화와 체질로는 안 된다. 바꿔야 한다’라고 고심했다.
비전은 매크로 하게, 지시는 마이크로 하게 이건희 회장은 미국에서 삼성 제품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매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가전제품을 누구 한 사람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을 보았다. 즉시 사장단을 LA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삼성은 10년간 놀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계열사 사장단 46명을 도쿄로 불러 전 세계 시장의 메카로 불린 아키하바라를 누비며 일본의 경쟁력을 연구하라고 지시한다. 제2의 창업을 선언한 지 딱 5년 되는 날이었다. 흔히 기업이란 사주가 개혁을 주문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사주와 월급쟁이의 시간의 차이는 크기 때문이다. 사주는 10년 뒤를 내다보라지만 임원의 주어진 시간은 길어봐야 3년이다. 그러니 10년을 내다보는 거창한 계획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사장단의 의중을 모아 비서실장은 ‘질도 중요하지만, 양도 중요합니다’라고 했다고 혼나고 경질된다. 전혀 삼성 맨이 아닌 감사원 공무원 출신으로 교체했다. 회장은 비서실장에게 삼성의 문제가 뭐냐 물으니, ‘감사원보다 더 관료적이다.’ 답을 한다. 그리고 1993년만 정기인사에서 대표이사로 12명이 승진했는데 7명을 이공계 출신으로 채운다, 바야흐로 제조업 중심이라는 구체제의 낡은 질서를 정리하고 기술이 주도하는 신경영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구축한다. 신경영은 문화혁명이었다. 새집을 짓는 것이 헌 집을 고치는 것보다 쉽다. 신경영은 그로부터 5년 뒤 1998년 IMF 외환위기란 미증유의 강펀치를 맞았을 때 빛을 발휘한다.
“성공적인 변화의 세 가지 공통점은 첫째 모든 변화는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준비되었으니 너부터 먼저 변해보라‘ 하는 태도나, ’나는 열심히 뛰는데 너는 편히 쉬느냐‘ 남을 탓하는 태도, ’나는 쉬는데 너만 혼자 뛰기냐‘며 질시하는 태도는 변화의 장애물이다. 둘째 변화의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는 한꺼번에 모든 변화를 이루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변화란 쉬운 일, 간단한 일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야 한다. 작은 변화라도 지속해서 실천하여 변화가 가져다주는 좋은 맛을 느껴보고,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이건희 회장은 말한다.
몸이 바뀌어야 정신이 바뀐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실천으로 쏘아 올린 신호탄은 전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 조정인 ‘7.4에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시작 했다. 비서실까지 난색을 보인 7.4제는 회장께 신중하게 검토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이건희는 밀고 나갔다. 윗사람 눈치 보기를 깨라는 권위주의 타파에 대한 주문, 자기 계발에 힘쓰지 않으면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진다는 인재 중심 경영에 대한 의지, 가정이 안정돼야 일도 잘할 수 있다는 가정 중시 경영 의지가 읽히는 메시지다. 인재 유형은 I자형과 T자형이 있다. I자형은 한 가지 분야에만 정통하고 다른 분야는 모르지만, T자형은 다른 분야까지 폭넓게 알고 있는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갖춘 유형이다. 산업이 융·복합되는 시대에는 T자형이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밀고 나간 것이다.
이병철 회장의 호암자서전은 본인이 쓰신 글이다. 경제가상가 이건희는 동아일보사 기자 출신의 허문평이 쓴 글이다. 전체적으로 기업에서 월급쟁이를 했던 나로서는 기업문화의 이해가 쉽고 회장을 만나거나 대하기는 하느님 보는 그것만큼이나 어려운지라, 그의 임직원을 대하는 태도를 비서실 출신의 부회장이나 대표이사들의 얘기로 보면 ,인간미나 앞을 내다보는 리더로의 혜안은 대단한 분으로 생각된다. 그냥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벌린 반도체를 오늘날 한국 대표 상품으로 만드는 데, 삼성의 두뇌들의 공인 줄 알았는데, 이 글을 보면 회장의 말도 최초 5년은 명령 침투가 안 되고 감사원 공무원보다 더 경직된 삼성의 관리자형 기업문화에 고전한 모양이다. 상당히 감명 깊게 399쪽을 하루에 독파하고 댓글을 남긴다.
2022.10.07.
경제사상가 이건희
허문평 지음
동아일보사 발행
첫댓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사암 님
반갑습니다 이건희 회장님
역시 선각자입니다.
진지한 내용에
감사합니다.
namgye12님
또 격려 말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