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몇 번씩 지방에 강연을 간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강연장에 가는 것은 지방 강연을 다니는 프리랜서에게 숨 쉬듯 익숙한 일이다. 작년 11월의 어느 날도 그랬다. 지방의 한 도서관에 강연이 잡혀 있었던 터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문제는 없었다. KTX 예매에 실패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하여 이날은 고속버스를 예매했고, 버스 터미널을 향해 익숙하지 않은 출근길에 나선 참이었다.
일찍 출발하느라 아침 식사를 걸렀다. 익숙하지 않은 교통수단이라 긴장하기도 했고, KTX나 비행기와는 달리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버스 시간표에 따르면 강연 시작 한 시간 쯤 전에는 도착할 예정이었으니 도착해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할 요량이었다. 탑승구 숫자를 몇 번씩 확인하고, 광주 버스 터미널 근처 식당을 검색하며 버스에 올랐다. 시간표에는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와 있었지만, 3시간 30분 후에야 나는 알게 됐다. 도착하려면 1시간은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을. 결국 강연 거의 직전에 터미널에 도착해 허겁지겁 택시를 탔다.
강연에 갈 때마다 첫 인사를 어떻게 건넬지 고민한다.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부드러운 시작이 필요하다. 대개 그날 강연장에 가는 길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은 여기 오는 길에 무슨무슨 책을 읽었는데요, 그 책에서 ….' '오늘은 여기 오는 열차를 놓칠 뻔했는데요, 왜냐면 제가 ….'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면 조용한 분위기에 긴장했던 사람들도 긴장을 푼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하루 종일 쫄쫄 굶은 이야기였다.
"제가 오늘 버스를 타느라 아침을 못 먹었는데, 버스가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해서 점심도 못 먹었지 뭐예요? 제가 오늘 말을 하다가 조금씩 멈춰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렇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마자 사람들의 눈썹 끝이 하나같이 아래로 쳐졌다. "아이고, 어떡해."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김밥이라도 드시면서 하세요." 하고 누군가 소리쳐서 조금 웃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강연의 내용은 조금씩 바뀌지만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몸에 평생 갇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나요. 책은 당신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줍니다. 책을 정보 취득의 도구가 아닌, 나와 다른 몸의 경험으로 옮겨 가는 문으로 생각해 보세요. 제가 책에서 만난 세계는 다양합니다. 코끼리, 고래, 문어의 세계를 보세요. 나무, 곰팡이, 미생물의 세계와, 내가 가진 적 없는 직업, 가 볼 일 없는 행성, 체험할 수 없는 몸의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책을 통과하는 그 과정 동안 당신이 다른 몸을 입고 무엇을 경험하는지 잘 살펴보세요."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고, 열렬한 박수를 보내 줬다.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과 한 명씩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사람들은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나를 위로했다. 어떤 독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견과류를 한 봉지 건네주었고 어떤 독자는 작은 과자 같은 것을 쥐어 줬다. "배도 고프실 텐데 너무 고생하셨어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독자들에게 괜찮다고, 잘 들어 주신 덕분에 저도 힘이 났다고 답했다. 정말로 그렇기도 했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는 시간 동안만큼은 어느새 배고픔을 잊었던 것이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역으로 향하는 택시를 불렀다. 길가에서 5분 뒤에 도착한다는 택시를 기다리는데, 중년의 여성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 강연을 듣고 더 큰 세상을 찾은 것 같다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들어 주셔서 제가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분은 남편이 지금 만두를 사 오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가는 길에 이거라도 먹으라고 했다. 택시 도착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난처해하는 나를 두고 그분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도착 상황을 물었다. "거의 다 왔대요!" 그리고 기적적으로, 그 남편분의 차는 내가 탈 택시 바로 앞 차로 도착했다. 여성분은 급하게 비닐봉지를 받아 나에게 안겨 주었고, 나는 그 뜨끈한 왕만두 봉지를 품에 안고 택시에 탔다. 김이 올라오는 왕만두 여덟 개가 꽉 들어차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내내 비닐봉지의 온기 앞에서 생각했다. 이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초면인 작가를 위해 남편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 만두를 안겨 주는 마음은? 당신의 말이 자신의 세계를 넓혀 주었다며 한참 어린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마음은? 나는 그 만두 봉지에서 한 권의 책만큼이나 큰 세계를 읽었다. 그것은 공감과 호의, 겸손과 환대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글 김겨울(작가)
김겨울 님은 책을 읽고 쓰고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유튜브 <겨울서점>을 운영하고 MBC 표준FM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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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감사합니다 ~
희망 가득한 새봄을 맞아
늘 건승하심과 행운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
반갑습니다 ~
사랑천사 님 !
고운 걸음주셔서
감사합니다 ~
새봄과 함께
다가온 환절기에
감기 유의하셔서
늘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