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일 것 / 최 설
우유를 사고 달걀을 사고
프라이팬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고
수저와 나이프와 포크
물을 끓일 수 있는 작은 냄비 하나
자르고 볶고 뒤집은 뒤에
뭐든 담을 커다란 그릇도 필요해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마시고픈
물도 하나 물잔도 하나
사과와 오렌지와 바나나의 이름으로
그렇게 달큼하고 침이 고이고
당근과 양파와 피망을 고르며
쌉싸름한 입술을 문지른다
연필과 의자와 책상도 넣고
어제까지 움켜쥐던 이불과 베개
오래된 사진들과 방문 앞 그림자
거울을 닦으며 돋아나는 손자국
입속을 채우는 이들과 매일의 머리칼
자라고 흩어지고 다시 차오른다
이름도 하나 글씨도 하나
그렇게 가슴이 딱딱해지고
불투명한 마카다미아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담는다
당신을 담는다
바구니는 자꾸만 무거워지고
— 계간 《시산맥》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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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설 시인
1980년 대전 출생.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15년 《현대시》 등단.
시집 『윤동주 시 함께 걷기』 『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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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일 것 / 최 설
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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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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