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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체 게바라님의 플래닛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체 게바라
“따뜻한 가슴과 연대만이 희망이다”
7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한 서울대 출신자 모임 관악민주포럼(회장:박석운)은 2002년 4월19일 창립 1주년 기념강연회를 열었다. 강사는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신영복 교수. 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관계론적 사고의 중요성과 사회운동의 올바른 방향, 지식인의 사명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다양하고 풍부한 사례를 통해 설득력있게 풀어놓았다. 녹취 후 정리한 것을 신 교수의 감수를 거쳐 게재한다.…편집자
저는 여러분이 말하는 식으로 대학입학 연도를 따지면 59학번입니다. 대학교 2학년 때 4.19, 3학년 때 5.16을 겪었지요. 신동엽 시인은 4?19에서부터 그 이듬해 5.16까지의 시절을 ‘잠시 푸른 하늘을 보았던 시절’로 묘사하였지요. 정말 그 시구처럼 저도 그 시절에 잠시 보았던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기억은 그 이후에 제가 겪었던 긴 세월 동안에 정말 푸른 하늘처럼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해준 하늘이기도 합니다. 그 시와 관련해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습니다. 4.19혁명이란 사실은 총알이 모자를 뚫고 지나간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총알이 이마를 뚫고 지나간 ‘혁명’으로 착각하였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젊음을 불태운 소위 80년의 투쟁과 87년의 6월 항쟁도 4.19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총알이 이마를 뚫고 지나가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고 잠시 푸른 하늘을 보여줬다가는 사라진, 그리고 지금은 다 잊혀진 과거가 되었다는 점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바쳐 현장으로 감옥으로 뛰어들었던 그때의 열정도 식어버리고 사람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이제는 저마다 엉뚱한 일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래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전공분야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독서도 체계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책을 통한 공부보다는 오히려 인간을 통한 공부를 더 많이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옥이라는 특수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사회와 역사를 읽으려고 고민한 셈입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건 아무래도 학교의 선후배 교수들과 우리 대학의 사회교육원에 오시는 분들입니다. 주로 교육운동이나 노동운동 분야에 몸담고 계신 분들입니다. 저는 그분들과 만나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에 사회를 바꾸어내는 역량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은 상황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어렵다는 것은 이를테면 운동의 상황이 어렵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정부가 보여주는 한계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충격 때문이겠죠. 사실입니다. 사회변혁에 관한 근본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재의 객관적 상황을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87년 당시의 열정과 헌신을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이고 민주화투쟁에 투신했던 많은 사람들이 주변화되고 흩어지고 서서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처럼 주체적 역량도 취약하고 객관적 조건도 열악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방향으로 우리 고민을 모아가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관한 평소의 제 생각을 몇 가지 말씀드릴까 합니다.
사회변혁 문제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우선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체적 역량의 문제이고 둘째는 객관적 조건의 문제입니다.
주체적 역량의 문제는 크게 양적(量的)측면과 질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양적 측면은 차지하고 우선 질적인 문제에 관해서 논의해보지요. 이른바 질적 측면에서 접근한다는 것은 역량의 조직, 즉 조직적 역량을 중심에 두고 본다는 뜻입니다. 사회변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적 역량입니다. 그것도 조직적 역량, 조직화된 역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적 역량을 보는 관점이 너무 피상적이고 형식적이지 않은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물론 대규모 집회가 많이 열리고 큰 목소리를 내고, 그러한 고양된 분위기가 중요하기도 합니다만 사실 중요한 건 역량의 질적 측면입니다. 저는 사회 변혁의 주체적 역량이 지금처럼 분산, 소멸 내지는 개량된 이유는 민주화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민주화에 대한 인식의 한계에 결정적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불철저한 인식의 공유에 기초한 역량 결집이었다면 그것은 동시에 민주화운동의 토대 그 자체의 한계 이기도 하지요.
저는 전주교도소에서 6월 항쟁 소식을 들었습니다. 담 넘어 들어오는 소식은 굉장히 부풀려 있어서 거의 80년 광주 때와 같은 상황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6.29선언으로 일단락 됩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전주교도소 담 너머로 보이는 완산 칠봉이었어요. 동학혁명군과 관군의 공방전이 치열했던 곳이지요. 이 싸움은 결국 전주화약(全州和約)으로 마무리되고 맙니다. 6.29와 전주화약이라는 두 사건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감옥에 앉아 있는 저로서는 6월 항쟁을 이끈 지도부가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여러 루트를 통해서 알아봤지요. 역시 6.29라는 그런 형태로 일단락 지을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도부의 성격이 중요하니까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당시를 회상하면서 문민화, 민주화 이후의 미온적이고 기만적인 전개과정에 대하여 울분을 토로합니다. 투쟁의 성과를 빼앗겼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잡혀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감옥에 구속되고 그야말로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던 많은 사람들이 그 이후의 과정에서 소외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전선의 소총소대가 아닙니다. 누가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는가, 그것이 운동의 성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6?29 이후에 전개된 일련의 과정은 이미 그때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당시 설정했던 민주화의 목표,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수준, 이것이야말로 그 후의 전개과정을 결정하는 것이며 결국 오늘의 문제들을 배태한 원인인 것입니다. 배신도 아니고 변질도 아닌 것입니다. 당시 지도부를 구성했던 계층이 그 후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런 의미에서 냉혹합니다. 비약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혁명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극명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민주화운동의 토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성급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기회주의와 졸속주의입니다. 저는 당시에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에 확인되는 바에 따르면 민주화 과정에 헌신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중앙으로 집결하느라 바빴더군요. 민중과의 접촉면을 유지하고 강화하거나 새로이 조직하는 노력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서둘러 중앙으로 결집했다가 또다시 서둘러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죠. 여러분이 더 잘 아는 일입니다.
기회주의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민주화운동 과정에 확대된 사회적 공간, 확대된 운동공간을 놓고 보여준 기회주의적 편향성입니다. 전체 역량의 합의를 거쳐서 그 귀중한 공간에 공동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파가 먼저 가서 깃발을 꽂고 선점하려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참담한 실패로 이어졌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패를 평가하는 시각입니다. 아직은 진보주의가 시기상조라는 평가입니다. 나는 이러한 평가가 별 논의 없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잘 납득이 안 됩니다. 이러한 평가는 특정 그룹의 실패가 그 기회주의적 편향성을 반성하기보다는 서둘러서 전체 역량을 매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에 이어서 보여준 것이 바로 개량화입니다. 제도권으로 옮겨가거나 시민운동 형태로 물러서거나 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지요. 생각해보면 이러한 것들은 어쩌면 우리가 감정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적이라는 것은 인간적 배신감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만 크게 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기본적 한계이며 취약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민주화에 대한 이해 수준 입니다. 그리고 민주화 문제를 국내정치 지형에서 사고하는 것도 문제지요.
민주화 문제를 국내정치 더 나아가서는 제도정치, 더 나아가서는 의견수렴 과정이라는 형식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구조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매우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주체적이고 종속적인 구조에 대한 사고가 없다는 것이예요.
따져보면 기회주의와 졸속주의는 피상적이고 허약한 현실인식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야 간의 비방이나, 또 이념논쟁이나, 사회계층간의 이해충돌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만, 솔직히 저는 이러한 비주체적이고 종속적인 구조에서는 누가 한들 어쩔 도리가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형태의 사회운동도 결국 비슷한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원천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종속적 구조에서는 경제든 정치든 문화든 무엇 하나 제자리를 잡기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합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까지 포함하여 민주화에 대한 인식의 불철저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주체역량의 관점에서 논의하자고 했습니다만 문제는 이 역량이 고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다시 말해서 세대간에도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 더 절망적입니다. 역량의 후속부대를 이뤄야 할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말입니다.
젊은 세대의 사고와 행동패턴은 물론 민주화운동의 역량이란 관점에서도 문제이지만 한마디로 세계경제의 중하위권에 편입되어 있는 한국 자본주의의 재생산 구조를 절감하게 합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은 이전과 완벽하게 달라졌어요. 우리 학교 여러 선생님들이 저한테 1학년 교실을 좀 잡으라고 짐을 지우지만, 잡기는 어떻게 잡아요. 도리어 내가 잡힐 지경입니다. 완고한 벽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 사회의 종속구조가, 교육과 문화에서도 그 재생산구조가 이제 완벽하게 구축됐구나, 그런 걸 실감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우리나라의 사회성격 논쟁은 더 이상 여지가 없다고 봐요. 확실하게 상품생산 사회, 자본주의 사회로 구조가 완비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토플준비와 영어공부가 관심의 전부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신세대들은 스스로 개성세대라고 개성을 공격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그 개성이란 기본적으로는 상품문화에 매몰돼 있는 것에 지나지 않지요. 개성표현에 인간적인 내용은 전혀 없어요. 머리카락을 무슨 색으로 물들일 건가, 어떤 배낭을 짊어질 건가, 그런 수준을 넘지 못하지요. 인간의 개성이 어떠한 고뇌와 방황과 실천과정의 결과로서 경작되는가와는 한 점 상관도 없이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무엇으로 형식을 삼을 것인가에서 얘기가 끝나 버려요. 상품미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지요. 한마디로 인텔리 충원 구조 내지 교육문화의 재생산구조도 완벽하게 자본주의 화한 실정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변혁역량의 충원구조가 와해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전제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논리와 세계화논리가 막강한 포섭력을 갖게 되고 세계화와 식민의식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담론 자체가 아예 사라지고 없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바로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 노정된 인식의 불철저성에 관하여 언급하였습니다만 사상이란 현실에 대한 압축적 인식입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투쟁은 사상투쟁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사상투쟁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자본주의 문화로부터 일정기간 격리돼 있었으니까 그러한 자본주의적 의식에 좀 덜 물들어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KBS 촬영 팀과 같이 우크라이나에 갔다가 키예프에 세워진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탑을 보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선 제가 보기에 그것은 아무래도 전승기념탑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전승기념탑이라고 하면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이 점령한 고지에 성조기는 아니더라도 일단 깃발을 세우는 그런 형태의 조형물을 떠올리잖아요. 미국의 전쟁기념관에 있는 전승탑이지요. 그러나 키예프의 드네프르강 언덕에는 여인상이 하나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팔을 벌리고 높은 동산에 서 있는 형상이지요. 의아해하는 저한테 누군가 설명을 하더군요. 전쟁이 끝난 뒤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아들들을 맞이하기 위해 팔 벌리고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 바로 그걸 형상화한 거라고요.
나는 충격 받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전쟁과 평화에 대해, 아니 진정한 승리에 대하여 얼마나 천박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침통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모스크바에서도 비슷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모스크바 지하철에서는 젊은이들이 노인을 깍듯이 예우합니다. 노인이 타면 얼른 일어나 자리로 안내하고, 노인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어쩌다 미처 노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가는 그 자리에서 꾸중을 듣는다고 합니다. 의아해하는 내가 들은 답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어요.
“이 지하철을 저 노인들이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한 젊은이한테 물어봤죠. 이 지하철을 만든 이가 바로 저 노인들인데 왜 비키지 않느냐고요. 그들의 답변 또한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월급 받으려고 만들었지 우리를 위해 만든 건 아니잖아요.”
도대체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저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다른 체제가 아닌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상품구조가 갖는 엄청난 규정력, 이게 얼마나 우리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느냐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는 어떠한 전망도, 어떠한 운동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한 반성과 더불어 우리의 사상을 튼튼하게 꾸려 나가려는 노력 없이는 과거의 답습은 물론 또 한 번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판단입니다. 민주화에 대한 것이든 우리 사회의 구조에 대한 것이든 어쨌건 철저한 반성이 없는 한 운동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 인식을 토대로 하여 운동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만, 이 경우 실천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운동성을 생활에서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생활기반이 이미 황폐해졌다는 사실이에요. 사회역량을 결집한다는 것은 여러 부문에서 고립적으로 형성된 사회역량들이 어떤 형태의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 역량의 경우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량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역량이란 그 개인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 사람들간의 관계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봐요. 아주 절망적인 현실입니다. 사회라는 것은 그 뼈대가 인간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의 지속성이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 수준이 사회의 질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는 사회가 구성될 수 없잖아요.
지속성이 있어야 부끄러움이 있는 것입니다. 지속성이 전제될 때 삼갈 줄도 알게 되고,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도 부정부패 이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인간관계와 그 지속성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농담 삼아 하는 얘기지만, 감옥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죄명을 알아맞히는 일에서부터 그 사람의 성깔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보고 대강 알게 되거든요. 그런 ‘능력’을 자주 사용하는 데가 지하철이에요. 저는 꼭 앉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앉을 수 있어요. 누가 어디서 내릴 건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거든요. 거짓말 같지요?
저는 대체로 앉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날은 몹시 피곤하기도 하고 2시간 강의를 앞두고 있어서 전철에서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신도림 역에서 내릴 사람을 골라 그 앞에 섰습니다. 정확하게 신도림 역에서 그 사람이 일어나더군요. 그래서 앉으려는데 문제가 생겼어요. 그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재빨리 그 자리로 옮겨 앉고 자기 자리에는 자기 앞에 서 있던 친구를 끌어다 앉히는 거였어요. 거기까지는 저도 정말 몰랐던 거지요. 저는 실력 (?)이 있기 때문에 엇스듬히 두 사람 걸치기도 하는 법이 없습니다. 확실한 연고권을 주변에 선언(?)해 두었던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가. 결론은 분명합니다. 그 여성과 저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기 때문이에요. 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거지요.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사회를 구성하기에는 그 지속성이 너무 짧아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상품교환이라는 형태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체제적 한계를 갖기 때문입니다.
제가 책에도 썼습니다만,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 선왕(宣王)이 제물(祭物)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는 그걸 제물로 쓰지 말고 대신 양(羊)을 쓰라고 신하들에게 명했답니다. 사람들은, 큰 걸 작은 것으로 바꾸라 했다며 인색한 왕이라는 비난을 했습니다. 하지만 맹자는 달랐어요.
“소를 양으로 바꾼 건, 소는 봤으나 양은 못 봤기 때문이다. 벌벌 떨면서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모습을 직접 본 소가 죽는 걸 차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어요.
바로 이 참지 못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참지 못하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야말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속성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회에서는 ‘차마 못할 짓’이 얼마든지 자행될 수 있는 것이지요.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 상품교환관계가 인간관계의 기본인 사회가 곧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온갖 사회적 비극의 원인은 바로 인간관계가 황폐해지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새로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 취해야 할 기본적인 방법론은 바로 인간을 그 중심에 놓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함은 물론이요,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가 관계하고 있는 관계망에 대한 사고를 길러 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관계론적 사고를 키워가기가 무척 힘듭니다. 관계론적 사고를 운동 론에 적용하면 그것이 곧 연대론(連帶論)이지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운동론적 관점 또한 자본주의적 패러다임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모든 사회단체들은 자기 자신을 키우려는 의지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더 강한 단체를 만들고, 더 영향력 있는 단체로 키워가려는 의지 말입니다. 자기 존재를 강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소위 ‘존재론’적인 관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를 강력한 존재로 키워가려는 근대사회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런 점에서 존재론적인 사회이며 자본주의 200년 역사는 강철의 역사라고 저는 봅니다. 자기를 더 큰 것으로, 더 경쟁력 있는 것으로, 강한 것으로 키워내려는 욕망에 충실하지요. 제국주의든 세계화든 패러다임은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존재론적 패러다임이 이제 우리 사회 운동진영에까지 깊숙이 들어와 사회 전체 역량의 조직형태를 아주 저급한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겁니다.
-계속-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쉽게 만 말씀하시는 신영복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포스가 느껴지는 글을 읽으니 마치 권투에서 카운터펀치를 맞은 느낌입니다. '사회변혁에 관한 근본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재의 객관적 상황을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선생은 말씀하시지만, 사회변혁을 꿈꾸지 않더라도 현재의 상황은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사회변혁을 꿈꾸지 않습니다. 다만 부자들이 조금 더 노블리스 오블리제 하고, 평등개념을 조금 더 도입하는, 그리고 사람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사회를 꿈꿀뿐입니다.
그리고 상식이 통하고, 야만이 아닌 문명과 휴머니즘이 사회의 이념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 저에게도 지금의 현실은 모든 사람을 경쟁속에 몰아놓고, 경쟁을 뚫어낸 몇 몇에게만 인간의 권리를 부여하는 야만스런 행동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으면 좀 더 잘 읽힐 것 같은 글이네요. ^^ 잘 봤습니다. / “자기가 월급 받으려고 만들었지 우리를 위해 만든 건 아니잖아요.” -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뭘 꿈꾸며, 뭘 원해서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남보다 폼나게, 편하게 돈을 벌기 위해서 학생때부터 서로 박터지게 경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인식으로 인해 일 - 노동이라는 것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위와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솔직히 저는 목숨이 위험한 병에 걸렸다가 어렵게 살아남았습니다. 그 뒤로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렇습니다. 맑스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라는 노동에 대한 진단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른 텍스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체제 인프라 측면에서 교육과 의료, 그리고 노후에 대한 문제만 국가, 사회적인 안전망을 갖출수만 있다면..이라고 상상해 본다면,,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일까요?
하지만 저는 위에 적힌 말과 똑같은 말을 했지요. ^^;; 저는 그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머니에게도 당당하죠. 왜냐하면, 말씀하신대로 - 이 사회에서 이미 자본주의의 규정력에 의해 모든 노동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돈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걸 - 저는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의사는 의과대학생들을 이끌고 병실을 회진하죠. 하지만 의사는 수 십명의 환자를 돌아봐야 하기 때문에 환자와 대화할 시간도 없습니다. 학생들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는 동안 의사는 차트를 읽어 보고 간단한 질문 한두 개나 던지고 사라지죠. 이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치료용 로봇과 병든 개의 관계죠. ㅎㅎ /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일터에서 발휘할 수 있다면.. 생산성이 떨어져서 퇴출당할까요? ^^;; 하지만 그런 비생산적인 일로 사람이란 존재가 채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일테면 신 선생님의 '개성'에 대한 풀이와 정답 - 기본적으로 상품문화에 매몰되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든가, '인간의 개성이 어떠한 고뇌와 방황과 실천과정의 결과로써 경작되는가'와는 한 점 상관없이 무엇을 소비로 할 것인가, 무엇을 형식으로 삼을 것인가에서 얘기가 끝나버리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에 철저하게 매몰되어버린 사람들(그는 학생들을 예로 들었지만..), 그리하여 우리 사회가 상품교환이라는 형태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체제적 한계라든가.. 절로 무릅을 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