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명, 여가 26-3, 3.5mm 단자의 비밀
“고장이 났어요. 이어폰 꺼내요.”
복도 저 끝에서 정석명 씨가 말합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들리면 돌아보는, 근래 가장 귀 기울이는 목소리입니다.
마침, 동료 한 사람이 그 앞에 있었습니다. 다른 일로 지나는 길이었나 봅니다.
돕겠다고 해서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옷장에 보관 중이라고 하니,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했습니다.
정석명 씨를 오래 알고 도운 덕인가 했습니다.
이대로 해결인 줄 알았습니다. 전종범 선생님이 돌아오기 전까지는요.
여분이라면 어제만 해도 세 개나 준비해 놓았는데, 이어폰이 없어서는 아닐 테고
무슨 이유일까 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신대요. 직접 보고 안 하신다고 해서 왔어요.”
없어서도 고장 나서도 아니고 마음에 안 든다니 난감했습니다.
안 한다고 했다니 당신 결정이지만,
해결되지 않았다면 오래지 않아 다시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퇴근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늘 수월하게 퇴근할지 몰라도
내일 출근할 때까지 지원하는 동료는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정석명 씨 집을 찾았습니다.
“석명 씨, 이어폰이 안 된다고 들었어요.”
“고장이 났어요. 버려요.”
“다른 것도 마음에 안 드신다고요? 다 새건데 한번 보세요.”
정석명 씨가 하나하나 다시 살핍니다.
글을 읽는 것 같기도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어라 말해 주지 않아서 추측할 뿐이지만 유심히 보았습니다.
이대로 넘어가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합격 여부를 기다렸습니다.
“안 해요. 버려요.”
아…! 탈락입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이어폰을 망연히 바라보았습니다.
“다이소 가서 사요.”, “수요일에 산에 가요.”
“지금 갈래요? 다이소 가요.”
“가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섭니다.
금방이라도 출발할 것 같습니다.
매일 운동하러 가는 감악산 물맞이길은 오전에 이미 다녀왔습니다.
때마다 권하지만 다시 외출하는 일은 드물다고,
그대로 정석명 씨 일이면 꼭 묻는다고 이야기한 전임자 임우석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도 이따금 가겠다며 나설 때가 있다고 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봅니다.
반가운 발걸음에 동행했습니다.
양말 신고 외투 입는 걸 거들었습니다.
근래 운동할 때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가지 않는데,
거기에 꽂아서 사용할 이어폰이라 혹시 모르니 챙겨 가자 했습니다.
“안 가요.”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봐요. 제가 사 올 수도 있는데, 그랬다가 또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해요?
이어폰은 저 앞에 있으니까 직접 보고 골라 주세요. 갔다가 마음에 안 들면 돌아와도 돼요.”
갖가지 이어폰 앞에서 진중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고르는 손길이 거침없나 싶으면서도 하나하나 유심히 살피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기준을 세워 비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주 자세히 알고 싶은데, 물어도 말해 주지 않으니
그 마음 가까이 다가서서 비슷하게나마 추측할 뿐입니다.
정석명 씨는 세 가지 이어폰을 골랐습니다.
색깔도 모양도 다른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휴대전화에 연결하는 단자가 충전기와 같은 USB-C가 아니라 동그랗게 생긴 3.5mm입니다.
그랬습니다.
짐작하기로는 정석명 씨는 충전하면서 동시에 유튜브도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휴대전화에는 USB-C를 하나만 끼울 수 있는데, 그러려면 충전기와 이어폰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귀에 넣는 부분에 고무가 없는 오픈형을 선호한다는 것만 기억하고 고른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어렴풋이 임우석 선생님이 일러 주었던 게 기억났습니다.
어제는 다이소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한 번은 정석명 씨와 동행해서 혼자 내렸고, 또 한 번은 혼자 다녀왔습니다.
충전기 어댑터와 케이블을 샀는데, 그 둘이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
처음 갔을 때 어댑터는 USB-A용으로, 케이블은 USB-C만 있는 것으로 샀습니다.
차에 있겠다던 정석명 씨가 오래 기다리지 않게 얼른 골라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른 탓이었습니다.
어제오늘 세 번 방문한 다이소에서 헛발을 거듭하며 깨닫고 정리했습니다.
‘이어폰은 3.5mm 단자를 우선으로, 그다음 오픈형인지 아닌지 고려한다.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게 없다면 단자가 우선이다.’,
‘어댑터와 케이블은 규격을 확인한다. 이왕 산다면 색깔을 통일하자.’
“붕어빵 사요.”
어제 다이소에 왔을 때, 붕어빵 천막을 보고 정석명 씨가 말했습니다.
슥 지나친 것 같은데 언제 보았는지 놀랍습니다.
먼저 제안하는 말이 반가워서 얼른 그러려고 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천막만 있고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직 문 열기 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붕어빵 살까요? 먹을래요?”
“붕어빵 사요.”
어제 그 말을 기억하고 먼저 물었습니다.
쇼핑 마치고 나와서 천막을 찾았습니다.
한 마리에 얼마인지 묻는데, 정석명 씨가 오뎅을 먹습니다.
언제 보고 언제 집었는지, 사장님도 몰랐을 겁니다.
오뎅 하나에 붕어빵 세 마리 값으로 삼천 원을 냈습니다.
혹시라도 줄까 싶어 물끄러미 보았는데 여지가 없네요.
‘언제 얻어먹을 날이 있겠지.’ 하며 시동을 걸었습니다.
뜨거운 팥을 호호 불어 가며 먹는 정석명 씨가 부럽습니다.
조만간 아주 맛있는 붕어빵을 사 먹어야겠다고 침 삼키며 다짐했습니다.
2026년 1월 20일 화요일, 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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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 얻어먹을 날이 있겠지.’ 하며 시동을 걸었습니다. 뜨거운 팥을 호호 불어 가며 먹는 정석명 씨가 부럽습니다. 조만간 아주 맛있는 붕어빵을 사 먹어야겠다고 침 삼키며 다짐했습니다.
정석명 씨가 붕어빵을 먹는 모습은 다른 이로 하여금 침샘을 돌게 하죠. 정석명 씨가 휴대폰 충전기와 이어폰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 기록을 통해 본인만의 기준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 기준을 알면 잘 도와줄 수 있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