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문제 해소의 문화적 접근을 위해
김호림
기호일보 2024.05.31.
왜가리라는 새가 있다. 늘 혼자서 날아다니며, 개천에서 먹이를 찾는다. 그 외로운 새를 볼 때마다 이 나라의 젊은 세대가 떠오른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개인 성향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그리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산책길에서 가끔 마주치는 풍경은 반려견과 함께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외로워서일까? 유모차에는 아이보다 흔히 강아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이전과 달라진 풍속도다. 이처럼 젊은이들이 이 땅을 살아가기 무척 힘든 모양이다.
이러한 선택의 결과로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급격한 인구감소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느 경제학자는 ‘인구절벽’이라고 불렀다. 이런 비관적인 현상에서 선택지는 두 개다. 즉 우리가 절벽 앞에 서게 됐을 때 더 전진하게 되면 계곡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여기서 절벽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비관적인 모습은 더 나열할 필요가 없다. 정부나 보통 시민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낯익은 문제들이다.
지난 20년간 15~49세 가임기 여성 1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산율인, 우리의 합계출산율은 2004년 1.2명 미만, 2012년 1.3명에서 2023년은 0.72명으로 급속히 떨어졌다. 더욱이 2024년 3월의 인구 동향 발표에 따르면 3월 출생아가 2만 명 미만이어서 올 3분기부터 0.6명으로 급격한 감소가 예상된다. 이는 2021년 OECD 평균인 1.58명에 비하면 가장 낮은 출산율이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은 놀랍게도 3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출산이 국가 생존과 안보를 위한 투쟁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은 주위 아랍국가들에 둘러싸여 살아남으려면 적정한 인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치밀한 계획으로 냉동 배아 시스템을 가동해 자녀 2명을 낳을 때까지 국가가 체외수정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 비용은 연간 1억5천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또 평균 취업률이 70%로 높은 여성의 유급 출산 휴가와 육아휴가를 적극 지원한다는 것이다. 한편 유럽과 일본도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재정금융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프랑스의 경우 아랍 이민자의 출산을 제외하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유입되는 이민자 수 증가에 따라 감소 현상을 타개해 간다.
여기서 왜 이스라엘 국민과 여성들이 국가의 출산장려정책을 따르는 것인지를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는 조상의 신앙인 유대교의 전통과 대가족제도 문화가 수천 년에 걸쳐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모세 5경의 도입 부분인 구약의 창세기에는 문화명령이 나온다. 창조주가 인간을 만든 후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이자 명령이 바로 그것이다.
선민(選民)사상이 강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이 문화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곧 그들의 존재 목적이자 정체성을 유지하는 길임을 충분히 인식하기 때문에 국가의 출산장려정책을 개인의 성향을 이유로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즉 그들에게는,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가치와 자녀 양육의 소중함을 종교·문화적 전통과 배경으로 오랫동안 익혀 왔기에 결혼과 출산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와는 달리 서구에서는 상대주의를 지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상과 기존의 가치와 체제를 거부하는 해체주의 등장으로 전통적 사회의 도덕 감정이 흔들리게 됐다. 즉 이들은 문화적 다양성과 차이를 새롭게 인식하게 함으로써 환경, 인권, 여성, 문화운동에 급진적 이론을 제공했다. 그리하여 최근 미국에서는 공교육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와 미국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혁명적 가치를 주입하려는 해체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젠더(Gender)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아이들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선택할 권한이 있음과 동성·양성과의 관계와 성전환 등 다양한 성적 지향을 정상적인 성관계로 그릇 가르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란 사회적 운동을 통해 전통적 가족의 가치, 성(젠더) 정체성, 올바른 성관계, 공동체 사랑, 종교적 전통 보존을 해체하고 있다.
이처럼 인구절벽 현상 문제는 인간이 본래 모습인 본성을 회복하지 않고는 어떤 유인책을 사용하더라도 서구의 현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쉽게 해소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는 정신과 문화의 문제이고 영역이어서 단기간에 이뤄질 사안도 아니다. 따라서 정부와 국민 모두 인구문제에 관한 ‘국가적 합의’를 형성해 가정·학교·직장·사회에서 우호적인 출산문화 환경조성과 함께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지원책을 젊은이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불안한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쉽지 않지만, 포기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라"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를 젊은이들이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