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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뜰] 건강하게 사는 비결, 섭생(攝生)
관리자2023. 6. 16. 05:01
평소 건강관리 잘하는 게 섭생
인생에서 돈·명예보다 더 중요
편하게 살고 많이 가지려 애써
삶에 대한 과한 집착이 화 불러
흙 만지고 거친 밥·채소 먹으며
내 몸 섭섭하게 대해야 잘 살아
초보 농사꾼이 무리했는지 그분이 오셨다. 감기(感氣) 선생이다. 목이 따끔거리고, 콧물이 나고, 머리에 미열이 느껴진다. 코로나19를 용케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복병을 만났다. 이제 할 일은 그분이 잘 쉬었다가 갈 수 있도록 후하게 대접하는 일이다. 뜨거운 물을 자주 마시고 푹 쉬면서 그분과 놀다보면 다른 사람을 찾아 홀연히 떠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대립각을 세우고 싸운다고 쉽게 떠날 분이 아니다. 약(藥)으로 공격하면 통(痛)으로 받아친다. 다시는 그분이 안 오시게 하려면 섭생(攝生)을 잘해야 한다. 섭생은 건강을 잘 유지하며 인생을 잘 살다 가는 것이다. 섭은 관리한다는 뜻이고, 생은 생명이란 의미다. 나에게 주어진 생명 관리가 섭생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83세라고 하지만 건강수명은 73세다. 10년은 병과 싸우며 힘들게 말년을 보낸다는 의미다. 인생에서 건강을 잘 유지·관리하는 섭생은 돈과 명예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다. 섭생에서 실패하면 부와 성공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섭생은 ‘노자도덕경’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 죽음의 길이 아닌 삶의 길로 간다고 한다. 인간은 세부류로 나뉜다. 섭생을 잘하여 건강하게 살다 가는 사람(生徒·생도), 섭생에 실패하여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死徒·사도), 섭생을 잘하다가 중간에 섭생을 포기하고 죽음의 길로 가는 사람(動之死地·동지사지)이다.
노자는 세번째 부류가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어쩌면 섭생을 잘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온전하게 살다 갈 수 있었는데 잠깐 잘못하여 사지의 길로 들어가 안타깝게 섭생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한 나머지 섭생에 실패하여 사지로 들어서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생에 대하여 너무 잘해주려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이 있다. 문제는 과도한 애착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편한 곳에 살려 하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하고, 더 예쁜 옷을 입으려 하고, 더 멋있는 소리를 들으려 하는 생에 대한 애착이 섭생에 실패하는 원인이다.
이렇게 자신의 생에 애착을 갖는 것을 귀생(貴生)이라고 한다. 귀생은 섭생과 상반된 생에 대한 태도다. 귀생은 자신의 생명을 너무나 귀하게 여겨 생에 대한 애착이 너무 과한 것(生生之厚·생생지후)이다. 섭생과 귀생,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의 두 갈래 길이다.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善攝生者·선섭생자) 들판에서 맹수를 만나지 않고, 전쟁터에 들어가도 칼에 찔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죽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자가 말하는 섭생의 원칙은 애초부터 죽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귀하게 대접하려다가 결국 섭생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길은 늘 우리 인생에서 들어서기 쉬운 길이다. 공명심·부·명예·칭찬 등은 우리가 늘 만나게 되는 죽음의 땅, 사지다. 나의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다.
내 몸을 섭섭하게 대하는 것이 섭생이고, 내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귀생이다.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섭섭하게 대하면 건강을 유지하며 천수를 누릴 수 있고, 귀하게 대하면 오히려 몸이 망가지게 된다. 흙을 만지며 내 몸을 움직이고, 거친 밥과 채소를 먹어 내 몸을 섭섭하게 해야 한다.
누워서 편안히 지내는 것은 오히려 내 몸을 죽이는 일이고,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면 내 몸을 살리는 일이다. 나를 죽여야 나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섭생의 기본 원리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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