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현대 야구연습장 원문보기 글쓴이: 우리
기자회견을 하는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입니다..."로 말을 꺼내는 그의 표정은 '슬프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슬픔도 그 무엇도 묻어나지 않는 예의 그대로였다. 그는 30여년 알아왔던 지기를 떠나보내는 공식 발표를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는 초연했다, 비정상적으로. 당장 튀어나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을 것 같은 노통의 영정보다 그의 표정이 더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경남고, 경희대 법대 출신. 민변의 멤버. 사법고시 합격 후 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으나 과거 시위 전력 때문에 임용을 포기, 변호사를 택함. 부산으로 내려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며 인연 시작. 사람들이 문재인 전 실장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대략 이 정도일 것이다. 기타 그가 특수부대 출신이라든지, 유치장 안에서 고시 합격증을 받은 거라든지 하는 것들 정도가 대중에 노출된 전부일 것이다. 그는 손수 운전을 한다. 그것도 렉스턴 구형모델이다. 그는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었고 민정수석이었다. 그리고 변호사다. 아무리 인권변호사였다지만, 부산에서 이름대면 모를 리 없는 유명 변호사가 사법연수원 차석. 판사 임용도 가능했지만 시위 경력이 문제가 되었다. 전두환 정부는 그에게 검사직을 제의했으나 그는 거절한다. 수없이 많은 로펌의 손을 뿌리친다. 그는 "잡사건(=힘든 사건) 맡겠다"며 부산으로 내려왔다. 노무현을 만났고, 그가 수없이 낙선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으며 또 위로했다. 처음 참여정부가 들어섰을 때, 내각 인물들의 인터뷰가 한창이었다. "왜 청와대에 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것을 한 일간지의 기사에서 읽었다.
"노무현 대통령 혼자 외로울까봐...." 말끝을 흐렸던 것과는 달리 그는 노통 당선 직후 약간의 속옷과 그가 처음 맡은 일은 '민정수석'. 한마디로 깨끗한 인물을 골라서 추천하고, 노통 주변 인물 감시해서 부정한 것이 티끌이라도 있거든 탈탈 털어버리는 일이다. 깨끗한 공직, 깨끗한 청와대를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80년대 말에는 부산시장 출마를 거절했고, 각종 지방선거, 보궐선거 출마도 거절했다. "자신은 정치할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뒷날엔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한 채) "민정수석은 정치할 만한 위치는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어쨌든, 그는 정말 '노통이 외로울까봐' 청와대로 왔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데, 밖에서 ‘유지하라’고 말만 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청와대 일을 1년 정도만 하고 나가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해왔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노통의 주변은 모든 이들이 알고 있듯 언제나 바람 잘 날 없었고, 때문일까, 실제로 그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심어넣은 인공치아가 10여개. 남들 다 긴장하는 치과치료를 받으며 졸았을 정도로 일을 했으니 10개가 아니라 모조리 다 뽑아내고 임플란트로 채워넣었다고 해도 나는 쉽게 그러려니 할 것 같다. 취미가 등산에 스쿠버다이빙이라는데 얼마나 일을 했으면 기껏 생긴 게 고혈압이며, 얼마나 잠을 못 잤으면 녹내장까지 왔을까.
그의 표정은 항상 변함이 없었다. 탄핵 정국 때도, 노통의 형 노건평이나 기타 가족의 여러 법적인 문제 앞에서도 - 기자들 사이에서 실제로 친절맨으로 통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