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7 연중제6주간 목요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7-33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방안에서도 등짝이 시리다. 영덕에서 생긴 산불이 강풍에 북상 중이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도 극성이다. 빈집에 사는 식구들이 걱정이다. 밥집도 동파방지와 화재예방과 오미크론 감염예방에 초비상이다.
우리 밥집 식구들은 표정이 없다. 음악 방송을 크게 틀어주고, 라이브로 뽕짝 노래도 부르면서 쌩쏘를 해보여도 표정이 없다. 새벽부터 술에 취해 나타난 식구들은 예외다. 평소에 얌전한 사람이 술만 마시면 돌변한다. 말이 많아지고 겁이 없고 폭력적으로 변한다. 술의 힘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안하고 두렵고 잠이오지 않아 미칠것만 같다. 미친듯이 술을 찾는다. 소주 한병이면 만사해결이다. 알코올 의존자가 된다. 불행이 악순환된다. 우리 밥집 식구들에게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거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행복 추구 회로에 장애가 생기면 이런 회복 가능하나 금방 재발할 수 있는 불치병이 된다.
예수님께서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옳은 "대답"이다. 그러나 "신앙고백"은 아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제대로 볼 줄은 안다. 그러나 아직 "하느님의 일"은 제대로 모르고 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구원자"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십자가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이시며, 닫힌 하느님 나라를 다시 여시며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과 기쁨, 평화와 자유를 선포하러 오신 혼인잔치의 신랑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의 심려가 크시다.
어느 시인의 시집 서두의 말처럼, "숯이 내가 숯이다 하는 건 자연스럽다. 숯이 내가 다이아몬드다 우기는 건 매우 곤란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곤란한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참으로 맹랑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박준영. 장안에서 꿈을 꾸다)
게다가 진짜 다이아몬드, 소중한 것은 무지와 탐욕으로 무시당하는 어리석고 안타까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참된 행복, 영원한 생명, 구원의 관건은 믿음이다. 믿음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다. 결국 예수님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나의 정체성을 알 때, 올바른 관계, 믿음으로 참된 행복, 영원한 생명, 구원에 이른다.
이 믿음은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는 가장 큰 계명,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이다.(마르 12,28-34 참조)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야고 2,8)
시인 윤동주는 시 '십자가'에서 이 믿음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다행히도 참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바로 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과 함께 하는 것만도 큰 행복이다.
화양연화 가운데 나를 위한 빈의자가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