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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중 선생>
박경중 선생의 6대조가 이곳에 터를 잡고 5대조 박성호 선생, 4대조 박재규 선생 등 후손들이 지금까지 대를 이어 거주하고 있는 남파 고택은 밀양박씨 나주 종가로 그 유명세가 높다. 박경중 선생의 4대조 남파 선생은 장흥군수를 역임했다. 선생의 조부이신 박준삼(朴準三, 1898~1976) 선생은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였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21살 때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옥살이를 했고, 일본에 유학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독립운동을 했다. 1945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나주지부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1960년에는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청운야간중학교를 설립했다. 청운야간중학교는 1963년에 나주 한별고등공민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돌아왔지만 제문을 한글로 쓸 정도로 한글운동에도 힘썼을 뿐만 아니라 박준삼 선생이 유년기부터 직접 작성한 메모, 편지, 일기 등 개인기록물에서부터 일제시기의 잡지, 신문, 교과서 등의 다양한 수집기록물을 오늘날까지 잘 보관하고 있어 근대 문화와 생활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고택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지고 주변 산세와 어우러진 터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반해 나주 남파 고택은 시내 도로변에 있다. 대문 앞에 서면, 큰 대문 한 쪽 옆으로 또 하나의 문이 더 있고, 헛간채가 눈에 들어온다. 헛간채는 안사랑채를 허문 자재를 이용해 지은 건물이다. 헛간채 맞은편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를 배치하고 협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게 했다. 헛간채를 지나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쌓은 내외담이 있다. 방문객은 잠시 숨을 고르며 안채정원으로 눈길을 돌린다. 정성스레 가꿔놓은 정원에는 계절별로 꽃과 나무를 감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목을 심어 놓았다.
100년 동안 한 번도 개조 없이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안채는 전라남도에 있는 민가 중 단일 건물로는 규모가 제일 크다. 장흥군수를 지낸 남파 선생이 지은 안채는 장흥군 관아 모습을 참조해서 설계를 하고 곳곳으로 흩어져 있던 궁궐 목수를 데려와 지어서 일반 전통한옥과는 달리 격식과 위엄이 깃들어 있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一’자형 건물로 좌측부터 각각 4칸 규모의 부엌, 안방, 대청이 있고, 건넌방은 앞뒤로 한 칸씩 배치되어 있다. 부엌 쪽을 제외하고 건물 3면으로 낸 널찍한 툇마루는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들반들 윤이 난다. 특히 부엌은 100여년 전 건물을 지었을 당시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부는 매일 아침 조왕신을 위해 깨끗한 정화수를 올리고 가족의 안녕을 빈다. 4칸 규모의 널찍한 부엌에는 곡식을 저장하던 광과 땔감을 보관하던 나무청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고, 부엌 한 켠에는 음식준비를 위한 정지마루도 그대로 남아 있다. 안방 상부에는 방 크기와 같은 규모의 다락이 있어 집안의 중요한 물건들을 보관했고, 집안 곳곳에 당시 사용했던 다양한 생활용품을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안채 후면으로 돌아가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 어른 한 사람들이 누워도 될 정도로 큼직한 돌확이 그것인데, 남파 선생이 안채를 짓고 살기 시작할 무렵 계속해서 집안에 우환이 생기자 집터 기운이 너무 세서 그런 것이라 여겨 그 기운을 누르고자 들여 놓았다고 한다.
안채 정면에 나란히 배치한 사랑채는 두 건물 사이에 담장을 쌓아 각각 공간을 분리시키고 담장 한쪽으로 낸 협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게 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ㄱ’자형 건물로 좌측부터 사랑방, 대청, 작은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보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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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부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초당은 박경중 선생의 6대조 어른이 이곳에 터를 잡고 처음 지은 집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一’자형 건물로 좌측부터 건넌방, 대청, 안방, 헛간(부엌) 순으로 꾸몄다. 안방 뒤쪽으로는 골방이 있으며 앞쪽으로는 건넌방까지 툇마루를 설치했다. 지금도 전기를 놓지 않은 것은 물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을 한다. 종가 음식 맛을 지키며 전통을 이어가는 장독대가 초당 오른쪽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한결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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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과 어우러진 장독대>
나주 남파 고택에는 조선 인종 때 지방관헌을 했던 밀양박씨(密陽朴氏) 박부동 선생의 15대손인 박경중 선생 부부가 살고 있다. 박경중 선생은 10년간 나주문화원장을 지냈고, 전라남도의회 의원도 두 차례 지냈으며, 현재 (사)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서부지회장으로 우리 고택들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힘쓰고 계신다. 특히 종부 강정숙(1952년생) 씨는 나주시의 중심가에 위치한 고택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각종 개발에도 온전하게 지켜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8년 12월 대한민국 문화유산상(대통령상)을 받았으며 나주시의원으로 활동을 했다.
박경중 선생은 60년을 훨씬 넘게 이곳에서 살아온 지난 시간을 추억하시는 듯 집안 곳곳을 다니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할머니, 어머니께서 그랬던 것처럼 마당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선생의 손길이 느껴진다. 두 분은 선조가 물려준 집을 굳건하게 지켜나가고 계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숙명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