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붉게 물들어 내일을 기약하는
저녁 노을은 그저 아쉬움 입니다
익숙함으로 쉽게 인정해 버린 일상의 자잘한 부분까지 다시 디집어 보고
내 걸어 온 길들의 부끄러움을 생각합니다
쉽지만은 않았던 나날들
내 뒷모습을 말 없이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던
고마운 사람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더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합니다
노래를 보르며 생각했던 세상살이가
지금의 제 모습이 아님을 깨닫고 부대끼는 가슴이 아립니다
읽다만 책을 다시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내 기억력의 한계를 느끼듯
불러왔던 노래들을 다시 부르며
노래의 참뜻을 생각하니 또 한번 부끄럽습니다
지난 하루의 반성과 내일을 기약하며 쓰는 일기처럼
되돌아 보고 다시 일어나 가야할 길을
미련없이 가고 싶습니다
세수를 하다말고 문득 바라본 거울속의 내가 낯설어진 아침
부르고 또 불러도 아쉬운 노래들을 다시 불러봅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날의 꿈이여 (199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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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거리에서 (5:47)
02. 광야에서 (3:13)
03. 그녀가 처음 울던날 (2:58)
04. 그대 웃음소리 (4:30)
05. 그루터기 (3:47)
06.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3:48)
07. 나른한 오후 (4:29)
08. 나무 (5:25)
09. 나의 노래 (3:27)
10. 내 사람이여 (5:54)
11.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6:13)
12. 녹두꽃 (5:16)
13.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3:10)
14. 말하지 못한 내 사랑 (4:35)
15. 먼지가 되어 (3:27)
16. 바람이 불어오는 곳 (3:25)
17. 변해가네 (4:35)
18. 부치지 않은 편지 (5:11)
19. 사랑이라는 이유로 (3:55)
20. 사랑했지만 (4:27)
21. 서른 즈음에 (4:43)
22.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4:28)
23. 외사랑 (5:18)
24. 이등병의 편지 (4:48)
25. 이 산하에 (5:35)
26. 일어나 (4:36)
27.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4:17)
28. 혜화동 (4:35)
29. 혼자 남은 밤 (4:55)
30.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3:47)
[ 민중의 가객이 되길 바랬던 가수 ]
김광석의 노래들은 80년대와 90년대를 가로지른 심연의 혼돈 속에 자리잡고 있다. 멀리는 저 70년대부터 대학문화의 이름으로 대학가에 복류해 온 통기타의 자유주의 정신이 밑그림을 이루고, 80년대라는 거대한 함성에 대응하는 신서사이저의 음향이 새로운 음악의 집단적 경험을 제련해 나아갈 즈음 그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미지의 무한경쟁으로 치달은 90년대에 이르러 그는 달랑 남은 기타와 하모니카를 두른 몸으로 이미지의 유령들과 외로운 백병전을 전개했다.
따라서 80년대 전반 서울지역 대학의 노래동아리인 '연합 메아리'에서 '새벽', 그리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활동에 이어 그룹 '동물원'의 보컬리스트로 전신했다가 마침내 직업 음악인이 된 그의 어깨에 걸린 노래운동이라는 전력과 모던 포크라는 음악적 과제는 힘겹기 그지없는 화두였다. 80년대의 비합법, 혹은 반합법 공연에서 그의「녹두꽃」과「이 산하에」에 매료된 진보적인 대중들은 그가 김민기와 한돌, 그리고 정태춘으로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이어 내려온 '민중의 가객'이 되어 주기를 희망했으며 사랑타령과 탈인간적인 기계적 리듬의 범람에 휩쓸려 버린 비판 정신의 담지자가 되어 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김광석은 전투적인 예술가가 아니었으며 더군다나 모던 포크의 가장 중요한 전제인 싱어송라이터의 요건을 완벽하게 갖추지도 못했다. 그의 대중적 명성을 결정지은 노래 역시 동물원의 데뷔 앨범의 첫머리에 실린 「거리에서」(김창기 작곡)과 그의 솔로 2집을 견인했던「사랑했지만」(한동준 작곡) 같은 풍부한 울림과 짙은 시정을 동반한 '러브 발라드' 음악이었던 것이다.
[ 소극장 노래운동을 주도한 대중음악의 작은 대안 ]
그는 90년대에 이르러 더 이상 소망스러운 공간이 되지 못하고 힘없이 퇴조해 간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의 문화를 움켜쥐고 댄스 뮤직과 발라드에 밀려 거의 사멸해 가던 모던 포크의 불꽃을 되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김광석의 이름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84년 김민기가 대학가 노래운동의 주역들을 규합하여 만든 합법 음반『노래를 찾는 사람들1』의 '남자들' 목소리의 일원으로서였다. 그러나 그의 비범한 가창력은 그 이후 노래운동의 공연장에서 곧바로 증명되었고(비합법 실황음반 '또 다시 들을 빼앗겨'에 수록된 '이 산하에'같은) 87년 6월항쟁 직후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렸던 노찾사의 첫 번째 공식 공연에서 그는「녹두꽃」으로 가득찬 관객들을 열광시켰다.그러나 그가 본격적인 직업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노찾사가 아니라 대학가의 또다른 감수성을 형상화한 그룹인 동물원이었다. 김창기. 유준열 등 재기 넘치는 청년들이 결집한 동물원은 88년의 데뷔 앨범과 그것의 성공을 이어간 이듬해의 두 번째 앨범을 통해 정치적 전복의 감수성이 닿지 못한 또다른 대안 요청의 빈 공간을 채웠다.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거리에서」와「변해 가네」「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혜화동」 같은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노래는 일상적 구체성과 상업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이미지를 구축하여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던 주류 대중음악의 작은 대안이 된다. 김광석은 이 그룹의 간판 보컬리스트로서 1집의「거리에서」와 2집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통해 대중음악가로서의 카리스마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특히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는 한국 포크 록의 기념비적인 노래를 보컬리스트로서의 김광석의 깊은 시정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곡이다. 동물원 시절의 이 '작은 아름다움'의 노선은 그가 솔로로 전향한 이후의 그의 음악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따라서 80년대를 마감하는 해에 솔로로 데뷔한 뒤의 그의 음악적 과제는 결국 노찾사와 동물원의 음악적 이념을 발전적으로 결합하는 작업이 될 것임은 거의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쉴 새 없는 소극장 공연을 통해 '통기타 정신의 파수꾼'으로서의 트레이드마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그후 그는 모던 포크의 핵심을 향해 신발끈을 조여 맨다. 김민기의 후예들이자 70년대 말의 대학가 노래운동의 숨은 주역들인 한동헌과 한돌의 소박하고 건강한 의식을 되살려 내는 것이었다. 행진곡의 리듬과 과격한 정치선동으로 무장한 저항가의 원심력에 밀려 '소시민적'이라는 딱지를 받고 밀려나 있었던 「나의 노래」와「외사랑」, 그리고「나무」는 김광석에 의해 새로운 옷을 입고 무대에 다시 나타난다. 통기타와 하모니카, 그리고 음유시인적 이미지가 완전히 정착한 것도 이 지점이며 서구 대중음악의 영향 아래 때마침 일기 시작한 '언플러그드' 열풍은 기존의 언더그라운드 이미지에 더욱 빛나는 훈장을 그에게 달아 주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비님~~ 잘 들을게요.. 너무나 좋아하는 노래들입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