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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리온 뮤직 원문보기 글쓴이: 구름밭
알다시피 윤항기, 윤복희 남매의 아버지는 ‘ 한국 최초의 코미디언’ 이라 불렸던 전설의 작사가이자 희극인 윤부길이었다. ‘처녀 뱃사공’ 의 작사가로도 잘 알려진 윤부길은 무용수 고향선 (본명 성경자) 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바로 그 1남 1녀가 윤항기 (1남) - 윤복희 (1녀) 남매이다. 윤항기 - 윤복희 남매 모두 다 아티스트 집안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지, 대한민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톱스타로 성장하여 60 ~ 70년대를 주름잡는 최고의 엔터테이너로 우뚝 서게 된다.
특히 윤복희는 1967년 노래 ‘웃는 얼굴 다정해도’ 로 데뷔, 가수와 영화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무대는 물론이고 은막을 빛내는 여우 (女優) 로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었다.
그런 만큼 그녀의 연애사도 상당히 화려했을 뿐더러 굴곡졌는데, 윤복희의 첫 번째 남편은 독일계 혼혈의 가수 겸 배우였던 유주용이었다. 하지만 유주용과 윤복희는 이혼 도장을 찍게 되었다.
윤복희는 1976년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남진 (본명 김남진) 과 재혼을 하며 대한민국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윤복희 - 남진 커플은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 끝에 꼬박 3년 만인 1979년 이혼을 결심케 되었다.
당대 남자 톱스타들과의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여자 연예인이기 이전에 ‘연약한 여자’ 로서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은 윤복희로서는 눈앞이 캄캄하고 절망만 보일 뿐이었다.
사랑하는 여동생 윤복희를 더 이상 바라만 볼 수 없었던 윤항기는 그녀를 달래주고 ‘구원’ 해줄 노래를 준비하게 된다.
바로 그게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자, 국내 가스펠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길이 남게 될 대히트곡, 그리고 후세의 후배 뮤지션들이 끊임없이 커버하며 존경을 표시했던 시대의 대곡 ‘여러분’ 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윤항기는 ‘여러분’ 의 탄생 배경에 대해, “여동생 (윤복희) 이 한 여자로서 감내하기 힘든 아픔을 겪었기에, 격려와 응원의 의미에서 ‘여러분’ 을 만들어준 것이다. 아직도 그녀의 곁에는 팬들이 있고, 대중들이 있고, 또한 하느님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라고 밝힌 바가 있었다.
결국에는 사랑하는 동생 윤복희의 곁에는 자신 (윤항기) 뿐만 아니라 그녀를 지지해주는 팬들, 그리고 신앙 (기독교) 이 있다는 걸 ‘여러분’ 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뜻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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