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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탐방
일시:2017년 5월 15일 월요일~19일 금요일(4박 5일)
장소:제주도 구좌읍 세화리 바다, 하도리 해수욕장, 원앙폭포, 비양도, 비자림 등
2017년 5월 15일 월요일 김포공항 출발, 제주공항 도착
* 김포공항 출발
우리 부부는 문인 부부다. 나는 시인이고 남편은 수필가다. 서초문인협회에서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은 부회장이고 나는 이사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제주도에 가는 것은 여행 목적만은 아니다. 서초문인협회에서 오랫 동안 함께 활동해온 임방춘 시인님이 제주도에 펜션을 장만하셔서 오픈하여 초대받아 가는 것이다. 임선생님은 서초문협 감사를 오래 하셨고, 금년은 나의 남편과 함께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또한 임선생님은 우리 큰 아들 결혼식에서 주례를 하신 분으로 남다른 애정의 끈을 잇고 있는 분이다. 김포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 OZ 8975항공 14:25분 제주공항행 비행기다. 우리 부부 좌석은 15H, 15K로 창가좌석이다. 한 달 전쯤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입할 때 좌석을 지정해 두었다. 4박 5일 일정으로 오늘 갔다가 5월 19일 금요일에 온다. 화창한 날씨로 우리 부부의 제주도 여행을 축복하는 듯하다. 행복한 여정이다.
* 제주 국제공항 도착
제주 국제공항에 오후 3시 40분 경 도착했다.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되었다. 제주공항 임선생님과 만나기로 했다. 임선생님도 서울에서 우리 부부를 맞이 하시려고 오시는데 비행기 시간이 우리보도 2시간 정도 늦다. 제주 국제공항은 언제 와도 참 우람하고 아름답다. 공항 주변을 산책하였다. 같은 우리나라 영토인데 남국의 정열이 느껴진다. 나무들이 울창하고 야자수가 싱싱하게 자란다. 돌하루방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벌써 제주 향기 물씬 몸을 적신다. 임선생님 내외분께서 6시 무렵 도착하셨다. 인사를 나누고 함께 구좌읍 펜션으로 향했다.
2017년 5월 16일 화요일 원앙폭포, 선덕사, 구좌읍 세화리 바다 등
* 제주도 돌담 펜션
임선생님은 제주도 구좌읍의 한 농가를 구입하시어 수리를 하여 펜션으로 다시 완공했다. 작년 말부터 손님을 받는데 우리 부부는 벌써부터 오라고 하시는 것을 이제서야 시간이 허락되어 오게 된 것이다. 지난 밤 우리 부부는 임선생님 내외분이 머무는 내실에서 친형제처럼 정겨운 시간을 보내고 내실의 방에서 잤다. 숙박료라는 명목보다는 개업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작은 성의를 드렸더니 손사래 치시며 완강하게 받지 않으신다. 우리는 형제 같은 사이라시며, 아무런 신경 쓰지말라고, 사랑과 정성으로 보듬어 주신다. 감사한 마음으로 편안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공기가 달고 상큼하다. 이곳은 그야말로 제주를 눈앞에서 보는 펜션이다. 돌담 펜션이라고 나는 이름지어 부르기로 했다. 제주 특유의 돌담이 살아있어 참 좋다. 대문도 없다. 제주도에는 지금도 집집마다 대문이 없단다. 마당에는 당근이 야생초 사이로 곳곳에 많이 자란다. 작년에 농사지은 당근 밭에서 다시 제 스스로 일러선 당근이다. 심은 박혔어도 천연향으로 아주 맛있다. 감자밭도 있다. 신기하여서 마을도 한 바퀴 크게 돌아보았다. 어느 동남아시아 여행 온 것 같은 분위기여서 우리 부부는 마낭 좋아라 걸었다. 사모님이 아참 식단으로 떡국을 끓여 주셔서 맛있게 잘 먹었다. 우리는 같은 문인이라는 인연으로 4박 5일을 함께 여행할 것이다. 여러가지로 고맙고 감사하다.
* 돌 공원
펜션을 출발하여 제일 먼저 온 곳은 돌 공원이다. 이곳은 하도리 바다 바로 앞에 있는데 어느 펜션의 정원이다. 일반인에게 개방하여 우리도 둘러보았다. 도로변 입구에는 돌하루방 할아버지와 해녀로 보이는 여인의 돌 조각상이 있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조각상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런 저런 모양의 구멍 뚫린 크고 작은 현무암 돌들이 아름다운 자태로 전시되어 있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 구좌읍 하도리 해수욕장
하도리 해수욕장은 구좌읍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지금은 5월 중순 봄이라서 해수욕 손님은 없지만 바다 물빛과 산홋 해수욕장이 비경이다. 우도와 지미봉이 보인다. 해변을 걷다보니 한 남자가 카약과 스노클링 장치를 대여하고 있다. 여름에는 많은 손님이 올 것 같다. 해수욕장에서 해변도로로 올라오니 맞은 편에 철새도래지가 있다. 하얀 황새를 여러 가지 자태의 모형으로 전시해 두어 꼭 새들이 날아와 노는 형상이다. 바닷물이 스며든 민물로 새들에게 풍부한 먹이와 습지를 제공한다. 아주 큰 규모의 새 안식처다. 해수욕장에는 고운 정자도 있어 고풍스런 향기를 자아낸다. 제주의 산과 바다, 해수욕장, 정자, 철새도래지 등의 풍경이 어우러진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 서귀포 돈내코 원앙 폭포
서귀포 돈내코에 있는 원앙폭포에 왔다. 오는 길에 맛있는 한식 뷔페로 중식을 했다. 이곳은 돈내코 계곡에 있다. 자동차 주차장에서 한라산 산책로를 따라 1km 정도 걸어서 갔다. 산책로는 한라산 자락으로 연결되어 고도가 높다. 그래서일까. 귀가 비행기 탈 때처럼 먹먹했다. 나무판 길로 산책로를 잘 조성해 놓았다. 돈내코 계곡은 1994년 6월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에 의하여 개발된 관광지로, 깊은 골짜기와 폭포, 울창한 난대 상록수림이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한참을 걸어 간 곳에서 하산하니 원앙 폭포가 보인다. 산책로 나무 사이로 절경을 이룬다. 폭포 앞에 다가가니 두 줄기 폭포가 돌과 계곡물과 함께 비경이다. 이 깊은 산중에 원앙처럼 다정스럽게 두 줄기의 폭포가 흘러내린다. 계곡 한가운데 있는 원앙폭포는 높이 5m로 그리 높진 않지만 아름다운 폭포다. 주변의 돌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천연의 형상이어서 더욱 낭만을 자아낸다.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날 제주 여인들이 여름철 물맞이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물맞이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을 맞아 통증을 낫게 하는 민간요법이다. 돈내코 계곡 내에는 희귀식물인 제주 특산 한란과 겨울딸기가 자생한다. 청소년수련원·유스호스텔 야외공연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주변에 영실기암·서귀포자연휴양림·정방폭포외돌개·수악계곡 등의 관광지가 많다. 이곳 폭포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다. 그래도 평일인데 여러 여행객들이 찾아와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시 계곡에서 가파른 산책로 나무판 길을 따라 올라와 한라산 숲길을 걸었다. 온 몸이 나무 향기로 젖어 건강을 얻었으니 몇 년은 더 살 것이라는 흐뭇한 농담으로, 우리는 행복하게 웃으며 원앙폭포를 떠났다.
* 서귀포 선덕사
원앙폭포를 떠나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덕사에 들었다. 도로변에 선덕사라는 안내 문구가 걸려있다. 그 사잇길로 들어서서 한참 동안 울창한 산길을 달려간 곳에서 만났다. 저녁 무렵으로 어스름한 풍경이지만 매우 웅장한 사찰이다. 높은 산자락 아래 사찰 건물이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절 입구에는 큰 보살 석조입상이 세워져 있다. 선덕사는 서귀포시 상효동 속칭 선돌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선돌 지역은 오래전부터 많은 수행승들이 하천변 토굴 등에서 수행을 하다가 불사佛事를 일으켰다고 전해내려오는 곳으로 예로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선덕사는 소중한 불교 유형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 올바른 불교 지식을 알리고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친근한 불교 신앙의 공간으로 교육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82년 선덕사 개원 당시 고암 대종사가 3년 동안 주석하면서 부처님의 바른 법을 이어갈 선불장을 일으켜 세울 것을 주지 학균 승려에게 권하였다. 이에 학균 승려가 그 뜻을 이어받아 1982년 학전선원을 개산하고, 1993년에는 비구니선원을 개원하여 명맥을 이어오고자 했으나 1997년 IMF로 인해 수좌승려를 모시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덕사 뒤편에 조선 중기까지 존재했던 두타사 터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비구니들을 위한 선방을 개산하고,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또한 현재 한라산 영실에 자리한 영원사[오백나한전]도 여름철에는 선방으로 운영하여, 제주불교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선방 수좌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선덕사는 매년 신행단체와 신도회 등의 사찰 순례 대상으로서, 도내 성지순례를 실시해 신도들 간의 화합을 다지는 한편 도내 사찰에서 순례법회를 봉행하며 불자들 간의 신심을 돈독히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선덕사는 1982년 조계종 3, 4, 6대 종정이었던 고암상언[1899~1988] 승려의 뜻에 의해 창건되었다. 고암 승려는 손상좌인 학균 승려에게 이곳에 부처님의 바른 법을 이어갈 선불장을 일으켜 세울 것을 권하였는데 당시 이곳 선덕사 자리에는 150평의 부지에 30여 평의 법당과 작은 요사가 들어앉은 선도암이라는 암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은사 승려의 뜻을 받든 학균 승려는 이 선도암을 중심으로 주변의 3만여 평 부지를 마련하여 불사에 들어갔다. 비록 선덕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1870년 무렵 쌍월 선사와 응월 승려가 이곳에서 수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인근의 상효동 85-1번지에는 중세시대 사찰인 두타사 터가 남아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 사찰은 암자형태로 1930년대까지 존속했었다고 전한다. 이 고대 절터에 1982년 선덕사가 중창되어 고암 대종사를 모시고 학전선원을 개산하면서 새로운 산문을 일으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인데 오늘 와서 보니 매우 깊은 불심과 역사를 지닌 절이다. 절에서 하산하여 내려오며 잠시 자동차를 세우고 내려서 깊은 계곡도 보고, 뽀얗게 난 울창한 제주의 숲길도 보았다. 임선생님께서 안내하여 주신 흐뭇한 제주의 여정이다.
* 구좌읍 세화리 바다 비경
임선생님의 펜션은 구좌읍 세화리에 있다. 그래서 구좌읍 세화리에 도착하여 펜션 가까이에 있는 세화리 바다에 갔다. 검은 헌무암이 넓은 자락으로 해변을 덮고 있다. 아늑한 바다에는 등대도 있고 카페도 있다. 카페에서 바닷가 도로벽 위에 두 대의 의자와 아담한 탁자, 그리고 탁자 위에 꽃화분을 놓아 두었다. 우리 부부는 그 고운 자리에 앉아 바다를 조망하였다. 해수욕장의 뽀얀 모래사장이 전개되고 산호와 만난 물빛이 옥빛으로, 또는 코발트 빛으로 비경을 이룬다. 세화리의 옛 이름은 가는곶이다. 곶은 수풀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가는곶은 가늘게 뻗은 수풀 또는 덤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약 600여년 전 제주 고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구곶면의 지역으로 세화라 하였는데, 1914년 4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세화리가 되었다. 1946년 8월 1일 북제주군에 편입되었다. 1980년 12월 1일 구좌면이 구좌읍으로 승격되고,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의 출범과 함께 북제주군이 없어지면서 제주시에 편입되었다. 한라산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다. 해발고도 약 200m에 이르는 남쪽으로부터 북쪽 해안으로 가면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평탄지이다. 남쪽 끝에는 제주도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382.4m의 다랑쉬 오름(월랑봉)과 바로 동쪽에 198m의 아끈다랑쉬 오름이 분포한다.
세화리는 구좌읍의 동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상도리, 서쪽은 평대리, 남쪽은 송당리, 북쪽은 바다와 각각 접하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이 주요 기반 산업으로서 주요 농산물로 당근과 감자가 주 소득원이 되고 있다. 5일과 10일에 열리는 세화장이 있으며, 그리고 1종항이 있어 상업과 어업도 활발한 편이다. 주요 기관으로 구좌읍사무소를 비롯하여 우체국, 세화 초등학교, 세화 중학교, 세화 고등학교 등이 입지해 있어 구좌읍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남서쪽 송당리와의 경계 지점에는 온천 관광 리조트가 개발 중에 있다. 자연 마을로는 시장동·전항동·통항동·합전동·중앙동 등이 있다. 국도 16번 도로가 서쪽의 조천읍과 동쪽의 성산읍을 지나 서귀포시로 연결된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도로가 여러 마을로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임선생님은 이 좁은 도시에 학교, 병원, 약국, 교회, 절, 식당, 요양원, 자동차정비소 등 온갖 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신기한 곳이라고 하신다. 바다 풍경에 젖어 한 동안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가슴 속에 파고들었다. 나의 고향은 대천이다. 바다를 보고 바다에서 자랐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만나면 고향을 만나듯 반갑고 기쁘고, 가슴이 설렌다. 다시 이곳에 오면 나는 저 멀리까지 해변의 모래사장을, 바위림을 걸어볼 것이다. 언제든지 오라 하시니, 우리 부부는 가을쯤 시간을 내어 이곳에 다시 오자고 희망을 품어본다. 사모님과 바위림을 타고 걸으며 사진도 찍고 행복한 시간을 엮었다.
2017년 5월 17일 수요일 비양도
* 제주도 풍력계
오늘은 이곳 펜션에 유숙하는 분들과 비양도에 간다. 구좌읍에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선착장이 있다. 12시 비양도 가는 배를 승선하기 위해 서둘러 달려간다. 가는 길에 제주 바닷가 들녘에 서 있는 풍력계가 많이 보인다.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서 그렇다. 나는 세계여행 중 저런 풍경을 만나면 신비로운 정경에 눈이 커지고, 놓치기 아까운 장면을 카메라에 담곤 했다. 지금도 나는 그 향수가 밀려와 가슴을 훈훈하게 달군다. 우리나라에도 저토록 장엄하고 웅장한 풍력계가 저토록 많이 있다니 놀랍다. 풍요로운 제주의 한 단면이다.
* 비양도 가는 한림항 배 승선장
제주도 섬의 부속 섬인 비양도飛揚島 섬으로 가는 배는 한림항에서 승선한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12시 배표를 샀다. 1인당 왕복요금으로 4천원씩 받는다. 배로 15분 거리의 가까운 섬이다. 한낮의 햇살이 여름처럼 매우 강열하다. 승선장에서 점심식사로 싸온 주먹밥과 요쿠르트 음료를 먹었다. 비양도에서 나오는 배가 3시 15분이 마지막이어서 식당에 들어가 중식을 할 시간이 없어서다. 한림항은 애월읍에서 가까운 한림읍의 연안항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연안항 6곳(한림항·애월항·추자항·성산포항·화순항) 중 한 곳으로, 도내 서부지역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 제주항으로부터 서쪽으로 28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비양도는 한림항에서 남서쪽 3km 지점에 있다. 한림항은 제주 서부지역의 수산센터로서의 역할을 하는 연근해 어업의 중심지이자 모래·시멘트·감귤 등 지역 연안 화물을 처리하는 화물항이기도 하다. 항구 북측에는 서남서쪽으로 길게 놓인 북방파제가, 남쪽에는 북서쪽으로 놓인 서방파제가 있으며 중앙에는 물양장이 설치되어 있다. 서방파제 내측과 물양장 사이로는 안벽(岸壁; 선박을 안전하게 접안하여 화물의 하역 및 승객을 승·하선시킬 수 있는 구조물)을 축조하여 화물부두로 이용한다. 2007년도 기준으로 한림항의 화물취급량은 제주특별자치도내에서 제주항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으며, 무역항인 서귀포항보다 74% 정도 많다. 한림항은 제주도 서쪽 동중국해의 풍부한 어장에 근접하고 있어 일제강점기에 일본어업자본가들의 진출기지로 개발되었다. 1934년 전라남도가 공사비 12만 원을 투입하여 최초의 방파제를 만들었고, 광복 전에도 여러 차례 방파제 연장 공사를 하였다 한다. 광복 이후에는 제1차 경제개발계획 기간(1962~1966)부터 준설공사와 물양장·방충재·방파제 축조공사 등을 활발히 벌여 오며 오늘에 이른다. 육안으로 보아도 상당히 큰 항구다. 어선과 화물선 등 배도 많이 정박해 있고, 화물 선적장치도 매우 큰 규모로 설치되어 있다. 비양도에서 나온 배는 승객을 태우고 다시 12시에 비양도를 향해 출항하기 위해 한림항 승선장에 정박한다.
* 한람항에서 비양도 가는 배
나는 제주도에 여러 번 왔는데 그때마다 비양도를 가고 싶었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아 가지 못하였다. 새가 날아가 앉은 형상의 섬이어서 비양도라 이름 지었다고 알고 있다.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이 뚝뚝 흐르는 비양도를 향해 가고 있다. 남편은 내게 소원을 풀었다고 농담을 건넨다.그렇다. 비양도를 향한 나의 애정이 컸기에 그 기쁨 또한 크다. 우리 부부와 임선생님 부부는 갑판에 서서 바다 바람에 온 몸으로 맡기고, 흔들리는대로 바람결을 따라 제주의 절경을 감상하며 갔다. 참으로 가슴 설레는 순간이다. 청청한 바다와 바다 위에 뜬 제주 시가지가 두 눈에 가득 차 눈먼 그리움이다. 바다는, 그리고 배는 늘 이렇게 황홀한 비경을 선사한다.
* 비양도 항구
배는 어느 새 비양도 항구에 도착했다. 하선하여 항구 주변의 길을 걸으며 둘러보았다. 외객을 위하여 여러 곳에 비양도에 대한 안내문구와 지도 등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비양도 천년기념돌비가 세워져 있다. '봄날'이라는 드라마 촬영지라는 표식도 있다. 비양도는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딸린 섬이자 오름으로 기생화산이다. 인구는 2000년 기준으로 171명이다. 동서길이 1㎞, 남북길이 1.1㎞이다. 비양도는 죽도라고도 부르는데 섬이자 기생화산이다. 높이는 해발 114.7m이고 비고는 104m이다. 한림항에서 북서쪽으로 5㎞, 협재리에서 북쪽으로 3㎞ 해상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시대인 1002년(목종 5) 6월 제주 해역 한가운데에서 산이 솟아 나왔는데, 산꼭대기에서 4개의 구멍이 뚫리고 닷새 동안 붉은 물이 흘러나온 뒤 그 물이 엉키어 기와가 되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 보아 이 시기에 비양봉에서 어떤 화산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비양도 탄생 천년을 맞이하여 축제가 열리기도 하였다. 형태는 전체적으로 타원형이며, 서북∼남서 방향의 아치형 능선을 중심으로 동북사면이 남서사면보다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다. 섬 중앙에는 높이 114m의 비양봉과 2개의 분화구가 있다. 오름 주변 해안에는 ‘애기 업은 돌’이라고도 하는 부아석(負兒石)과 베개용암 등의 기암괴석들이 형성되었으며, 오름 동남쪽 기슭에는 '펄랑못'이라 불리는 염습지가 있다. 주민의 주산업은 어업이고 고구마 등의 밭농사를 겸한다. 부근 해역에는 황돔, 농어, 옥돔, 뱅어돔 등 80여 종에 이르는 어족이 서식하며, 각종 해조류가 자라고 있어 여름철이면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특산물로는 전복, 소라, 해삼, 오분자기가 있다. 북쪽의 분화구 주변에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비양나무(쐐기풀과의 낙엽관목) 군락이 형성되어 1995년 8월 26일 제주기념물 제48호인 비양도의 비양나무자생지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 유일의 비양나무 자생지로 보호되고 있다. 고려시대 중국에서 한 오름이 날아와 비양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한림읍 한림항에서 배편이 운항되며 운항시간은 약 15분이 소요된다. 비양도에는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동차이다. 섬의 둘레가 3㎞ 정도 밖에 되지 않고 또 마을이 제주를 바라보는 작은 항구 주변으로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가 없단다. 가족여행으로 전에 협재해수욕장에 왔을 때 바로 눈앞에 비양도가 보였었다. 배편이 여의치 않아 비양도에 가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오늘 오게 되어 참 기쁘다.
* 비양도 마을길
비양도 항구에서 마을길로 접어 들었다. 여전히 돌담으로 밭과 밭 사이, 집과 집 사이를 구분한다. 어촌이라서 농사를 짓는 풍경은 별로 없다. 민가 주택이 낮은 지붕이고, 그래도 풍요로운 정경이다.
* 비양도 산길
비양도 마을을 지나 산길로 간다. 가징 높은 산정 비양봉은 해발 114m다. 그런데 우리가 나가야 할 배시간이 2시 30분으로 예정을 해서 비양봉까지는 가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일행 중 일부는 가고, 우리 부부는 비양봉보다는 해변 산책로를 탐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산길을 조금 걷고는 해변길로 내려왔다. 그런데 산길에 분홍색 무꽃 무더기가 종종 보인다. 매우 청초하고 아름답다.
* 비양도 해변도로에서 본 코끼리 바위
비양도는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다. 독특한 지질현상이 산책로 가까이에 분포해 있다. 가까이서 접근하여 관찰을 하기에 좋다. 산길에서 하산하여 해변도로를 걷다 보니 코끼리 형상의 코끼리 바위가 있다. 등짝에는 파릇파릇 풀 종류가 자라고 코끼리 코를 닮은 바위가 바다로 내려져 있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 비양도 해변 수석거리
해변도로 가장자리에 수석을 전시해 놓은 거리가 있다. 역시 제주도의 독특한 돌들이다. 제주에 돌이 많다는 말은 어느 곳에서나 성립된다. 바다에서도, 들녘에서도 들은 정말 많다. 바닷가에 검은 화산탄의 크고 작은 돌들이 즐비한데 수석으로 장식해 놓은 돌들도 역시 제주의 향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곳 수석거리에서 한국시인협회 강영은 시인님을 만났다. 어찌나 반가운지 얼싸 안았다. 먼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그 분은 서귀포와 서울을 오가며 산다고 하셨다. 오늘 제주도에서 문학행사가 있어 일행분과 왔다며, 나에게 어떻게 여기 왔나고, 누구와 왔냐고 안부를 물었다. 나는 남편을 소개시켰다. 수필가이고 서초문협의 아는 시인님이 구좌읍에 펜션을 마련하셔서 초대받아 왔다고 했다. 우리는 반가움에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 비양도 해변 애기 업은 돌
비양도 선착장에서 동쪽 해안을 따라 500m쯤 가면 해안에 굴뚝처럼 서 있는 암석이 보인다. 큰 것은 굴뚝 모양이고, 작은 것은 팽이버섯 다발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이 비양도에서만 볼 수 있는 호니토이다. 용암에 있던 휘발성분이 폭발하여 마그마 물질을 화구 주변에 쌓아 넓이에 비해 높이가 높은 굴뚝 모양의 화산재를 만든 것을 호니토라 한다. 용암 알갱이들은 굴뚝 모양의 호니토 통로를 따라 흘러 내리기도 하고, 호니토 외벽에 흘러내리기도 하는데, 점점 휘발성분의 양이 줄어들면 폭발력이 약해져서 호니토 내부의 통로를 막아버리기도 한다. 비양도에서만 볼 수 있는 호니토(hornito)다. 거대한 화산탄들도 해변에 즐비하다. 바다와 만난 검은 화산탄들이 비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보았던 자이언트 코즈웨이의 해변 풍경을 연상케 한다. 그 사이로 애기 업은 돌이 오롯하게 서 있다. 꼭 애기 업은 형상의 호니토다. 비양봉도 용암분출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고려사의 기록에는 고려목종5년(1002년)에 있었던 화산분출을 비양도 화산 활동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서기 1002년 현재와 같은 해수면에서 바닷물을 뚫고 올라온 뜨거운 마그마가 용암과 스코리아로 이루어진 현재의 비양도를 만들었다는 것은 지질학적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또한 비양도 암석에 대한 연대 측정 결과 비양도는 1002년 역사 기록과는 관련이 없는 섬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표면이 굳게 되고, 내부는 휘발성분을 갖고 있는 용암이 분포하게 되는데, 용암 내에 있던 휘발성분이 굳은 표면에 생긴 틈으로 작은 알갱이의 용암을 낮은 높이로 분출하여 화구 주변에 계속 쌓아 굴뚝 모양의 호니토를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굳은 용암의 표면에 틈이 있었던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호니토라는 말이 생소하였다. 도로변에 호니토에 대한 설명과 생성과정을 자세히 적이 안내판으로 설치해 놓았다. 비양도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 비양도 해변 풍경
애기 업은 돌이 있는 호니토 분포지에서 해안을 따라가니 고구마 모양의 커다란 암석덩이들이 있다. 이 암석 덩이가 화산분출 때 나온 화산탄이다. 화산탄의 크기는 4m에 이르기도 하는데, 무게는 대략 10톤 정도로 추정된다. 이렇게 큰 화산탄들이 이 지역의 해변에 집단을 이루면서 분포해 있다. 큰 화산탄들이 터져 나올 때 화산폭발도 강렬했을 것이다. 화산탄은 분석구를 형성하는 화산활동 기간 중에 터져 나와 화구 주변에 쌓인 것이니 분명 화구가 가까이에 있었을 텐데, 화산탄만 남겨놓고 나머지 화산분출물은 어디로 사라졌다. 층리를 보이는 분석구의 일부가 도로변에 남아 있고, 층리가 화산탄 분포지 반대쪽으로 경사를 갖는 것으로 보아 분석구의 대부분은 바닷물에 의해 깎여 나가고, 무거운 화산탄만 그 자리에 남겨진 것이다. 지금의 비양도를 이루고 있는 분석구 외에 또 다른 분석구가 비양도에 있었고, 바닷물이 거대한 분석구 하나를 전부 깎아 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깎여 나간 분석구의 외곽부에 해당하는 분석층이 층리를 갖고 도로변에 분포해 있다. 이 분석층에는 기공이 많은 갈색의 주먹 크기의 암편들이 있는데, 이것이 스코리아이다. 스코리아는 기공이 많아 대단히 가벼우나 부석과는 달리 물에 뜨지는 않는다. 분석층에는 20cm 크기의 커다란 분석이 판상으로 분포하기도 한다. 비양도 북부에는 화산탄이 판상으로 서로 엉켜 붙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화산탄이 터져 나올 때 굳지 않은 상태에서 지면에 밀착되어 판상으로 변형된 것으로 이러한 화산탄이 집적되어 암석이 되었을 때 집괴암이라 한다. 비양도 해변은 매우 독특한 풍경으로 비경을 선사한다. 점점 비양도 항구 쪽으로 돌아가니 멀리 제주도 시가지가 보인다. 해변산책로 주변에는 제주도의 독특한 식물들도 있다. 아름다운 비양도 해변 풍경이다.
* 비양도 펄랑못
비양도 해변 산책로에서 연못을 하나 보았다. 꽤 넓은 호수다. 이곳은 펄랑못인데 염습지다.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고 썰물 때 바닷물이 나가는 신비로운 담수호다. 민물 호수에서 볼 수 있는 푸른 식물들이 물 위에 떠 있다. 길이 바다와 호수 사이에 있어서 바다와는 막혔는데 어디론지 바닷물이 밀물 때 스며든다는 것이다. 연못의 길이는 500m, 폭은 50m, 수심은 1.5m로 매우 거대한 규모다. 아득하게 호수의 물줄기가 전개된다. 펄랑못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염습지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되고 썰물 때는 민물로 바뀌는 정말 특이한 비양도만의 지형이다. 야생 식물로 지정된 황근, 해녀콩, 갯질경이, 갯하늘지기, 갯잔디가 군락하고 있다. 나무 막대기와 줄로 울을 쳐 놓았다. 긴 호수가 섬 깊숙히 파고 들어가 비양봉과 바다와 만나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 비양도 해변도로에서 본 제주도 풍경
비양도는 참으로 아름다운 섬이다. 비양봉, 비양도 해변 산책길, 푸른 바다, 화산탄 해변 등이 있어 비경인데 바다 건너 제주도 시가지 풍경이 비경을 더해준다. 가끔씩 배도 지나가고, 한라산도 보이고, 떠나기 아쉬움에 시간을 잡아두고 싶은 순간이다. 작은 섬 비양동에서 바라보는 큰 섬 제주도는 매우 웅장한 규모의 영토로 장엄하다.
* 비양도 마을 초등학교
비양도 해변산책로의 거의 끝 점에 다다랐을 때 초등학교가 있다. 돌담으로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다. 주변에는 민가 마을이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래서 초등이든, 중등이든 학교를 만나면 참으로 반갑고 흐뭇하다. 그리고 나의 재직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오른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니 운동장은 파란 잔디가 깔려있다. 그리고 아담한 학교 건물이 있다. 지금은 퇴직했지만, 내가 교사인듯 교정에 서서 비양도의 아이들이 제자로 다가오며 행복한 시간이었다.
* 비양도 항구 주변 풍경
비양도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비양도 항구로 왔다. 보건소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전망대도 있다. 던망대에 올라가서 제주도를 바라보니 더욱 아름다운 정경이다. 항구 주변에는 아낙들이 바다에서 잡아온 해산물을 팔고 있다. 우리는 2시 30분 한림항으로 가는 배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비양봉이 오롯하게 서서 외객에게 잘 가라고 손짓한다.
* 비양도에서 한림항 가는 배 승선
비양도 항구에서 2시 30분 출항하는 비양호에 승선했다. 이 섬에 올 때처럼 갑판에서 바다와 제주도와 비양도를 조망하며 간다. 수평선을 따라 제주도 본토가 아득하게 전개되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바다의 물빛이 크루즈 여행에서 보던 깊은 바다로 연상된다. 청청한 바다와 만난 제주와 비양도 시가지가 아름답다. 15분 정도 달려가면 한림항이다. 한림항 주변에는 화물 선착장 등 여러 시설들이 장치되어 있다. 매우 큰 항구다.
* 돌담 펜션 파티
오늘 저녁은 돌담 펜션에 유숙하는 사람들과 파티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비양도에서 올 때 제주시 5일장에 들러 구경도 할 겸 장보기를 하였다. 나는 수박을 큰 것으로 한 통 샀다. 그리고 집에 가지고 갈 다시멸치도 한 박스 샀다. 멸치가 값이 싸고 맛이 있다. 펜션에 도착하여 함께 저녁식사를 위한 식탁을 차렸다. 사모님 직장 후배라는 분이 신경을 많이 써서 회와 야채가 풍성하다. 그러나 이런 식탁은 임선생님 내외분이 제공하는 자리다. 참여가 가능한 사람들끼리 모여 제주 특유의 땅콩막걸리로 건배와 함께 회를 먹고, 해물찌개와 저녁식사를 하고, 수박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내 조국을 위한 발전적인 이야기로 밤 깊어가도록 정담의 꽃을 피웠다. 각자 직장에서 살아온 이야기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는 그 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등 서로 다른 삶의 과거와 미래를 조명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한 임선생님과 사모님께 고마웠다.
2017년 5월 18일 목요일 구좌읍 비자림
* 구좌읍 비자림
비자림은 구좌읍에 있어서 펜션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다. 임선생님은 비자림뿐만 아니라 제주도 여행 내내 자가용으로 운전하시며 우리 부부를 안내해 주셨다. 비자림에 오다가 펜션에 유숙하는 관리소장의 건설현장에도 잠시 내려 소장의 안내로 건축하는 광경을 보았다. 구좌읍은 관광명소가 많아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서 지금 리조트 종류의 건물을 짓고 있단다. 육지의 사람들이 휴양하기 위해 분양받곤 한단다. 다시 숲길을 달려 비자림으로 갔다.
비자림은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된 국내 최대의 비자나무 군락지이다. 448㎢의 면적에 500년에서 800년의 수령을 가진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자라고 있어 단일 품종 군락으로는 그 규모가 세계 최대로 꼽힌다. 비자나무의 열매는 한약제나 제사 음식으로 쓰였으며 나무는 재질이 좋아 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 데에 사용한다. 제주의 비자림은 옛날 마을 제사에 쓰이던 비자나무 열매가 사방으로 흩어져 군락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숲 한가운데에는 비자나무들 가운데 최고령을 자랑하는 800년 수령의 조상목이 자리 잡고 있다. 잘 가꿔진 산책로를 따라 비자나무 숲을 걸으면 심신의 피로가 풀리고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우리는 오후 3시에 모여 해설사를 따라 설명을 들으며 비자림을 관람했다. 비자나무의 열매가 잎사귀 뒤에서 맺힌다. 봄이라서 초록 열매인줄 알았는데 가을에 익어서도 초록색 열매란다. 산길을 따라 오르며 부부 사이의 금슬이 너무 좋아 벼락 맞았다는 해설사의 농담과 함께 벼락 맞은 비자나무도 보았다. 송이라는 붉은 용암 부스러기를 깔아놓은 흙길도 걸었다. 맑은 공기와 푸른 나무와 붉은 흙길이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10년의 수명을 더 선사한다고 해설사는 말한다. 우리도 함꼐 동감하며 상쾌하고 행복힌 걸음으로 숲길을 걸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청청한 비자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울창하다. 이과수 국립공원에서 정글투어를 하던 그 풍경과 유사하다. 천남성이라는 식물도 보았다. 잎사귀는 산삼 비슷한데 코브라 뱀모양의 꽃봉오리가 솟구쳐오른다. 그런데 독성이 강하여 만지면 마비증상을 일으킨다는 무서운 식물이다. 해설사는 천 명의 남성을 유혹하는 식물이니 얼마나 무섭겠냐고 하여, 우리는 많이 웃으며 보았다. 가을에는 붉은 열매가 옥수수 알처럼 맺힌단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갈래 갈래 줄기가 나뉘어 자라며 깊은 연륜을 드리운 비자나무가 있다. 800년 수령의 비자나무로 해설사는 핸섬 비자나무라고 농담 섞어 소개한다. 생명력이 강한 비자나무는 돌 위에 뿌리를 감고 살기도 한다. 숨구멍이 돌 사이에 뚫려있어 수분이 나오고, 촉촉한 땅으로 숲의 식물들이 잘 자란다. 비자림은 두 코스가 있는데 중간에서 돌아가는 1Km 정도의 탐방로와 우리가 택한 아주 긴 2.2Km의 탐방로가 있다. 긴 탐방로의 끝에 다다르니 새천년 비자나무가 웅장한 자태로 서서 비자림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천년을 살았다는 비자나무다. 비자나무가 주목과 형제라고, 초입에서 해설사가 소개했듯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몸통도 크고 늙어진 모습으로 나무를 타고 다른 식물이 기생한다. 끈질긴 집념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새천년 비자나무의 생명력에 감탄하였다.
* 비자림 하산길
새천년 비자나무를 돌아 정점을 찍고 하산길로 들어섰다. 두 비자나무가 붙어 자라는 연리목 사랑나무 앞에서 우리 부부와 임선생님 부부는 부부의 애정어린 모습을 연출하며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젊은이들이 옆에서 지켜보며 말하기를 우리 부부들의 자세를 보며 더 진한 사랑 표현으로 손잡으라고 하여,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마음을 사진에 담았다. 돌담길이 길게 뻗어 제주도의 특징을 살려놓은 하산길도 있다. 비자림의 약수도 마시고 짙푸른 숲길을 따라 하산하였다. 기막힌 보물의 비자림 숲이다.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돌아왔다.
* 돌담 펜션과 감자 밭
해질 무렵 펜션에 돌아왔다. 석양에 비추이는 돌담 펜션과 감자 밭이 참으로 정겹다. 같은 내 조국인데 이런 이색 풍경에 어느 외국에 온 듯하다. 구좌읍 세화리 마을의 밭들이 돌담으로 둘러싸여 비경을 선사한다. 흙이 화산재로 폭신폭신하여 감자, 당근이 잘 자란다. 주변의 밭에 감자가 많이 심겨져 있다. 제주도의 농촌을 배우는 소중한 여정이다.
2017년 5월 19일 금요일 제주공항 출발, 김포공항 도착, 귀가
* 돌담 펜션의 새벽 풍경
오늘 우리는 이곳을 떠난다. 우리 부부는 오전 9시 5분 비행기이고, 임선생님 부부는 8시 비행기로 서울로 같이 간다. 임선생님은 집이 서초구에 있어 제주와 서울을 오르내리시며 생활한다. 우리 부부가 제주에 오던 날도, 지금 가는 날도 함께 동행하이 주셔서 고맙다. 4박 5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함께 동행하며 잘 안내주심에 깊은 감사드린다. 펜션의 새벽 풍경은 참으로 아늑하고 평화롭다. 어젯밤에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도 보았다. 북두칠성이 찬란하게 빛났다. 인공위성으로 보이는, 빠른 속도로 하늘을 달리는 불빛도 보았다. 어둠을 가르고 동녘에서 붉은 해가 뜬다. 며칠 동안 정들었던 이곳 저곳을 다시 둘러보며, 제주가 그리울 때, 임선생님 내외분이 그리울 때 다시 오겠노라 다짐하며 떠나왔다.
* 제주 국제공항 출발 귀가
구좌읍에서 아침 일찍 첫 버스로 제주공항에 왔다. 버스 타는 곳까지는 사모님의 직장 후배였다는 여자분 투숙객이 자가용으로 태워다 주어서 편하게 나왔다. 고마웠다. 701번 버스를 타고 제주시 터미널에 와서 제주공항행 시내버스를 타고 공항에 왔다. 임선생님 부부는 8시 비행기로 시간이 축박하여 제주시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먼저 가셨다. 우리 부부는 9시 5분 비행기여서 좀 여유로운 마음으로 제주공항에 와서 탑승 수속을 밟았다. 제주 국제공항은 매우 넓고 쾌적한 분위기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발전된 내 조국의 한 단면으로 흐뭇한 정경이다. 우리가 탑승할 비행기는 원래 10시 30분 아시아나 OZ 8910 항공이었는데 임선생님 부부의 비행기가 8시 항공이어서 함께 펜션을 나서려고, 어제 아시아나 항공에 전화하여 9시 5분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 오늘 12시에 종로 수운회관에서 수필문학 이사회가 있어 참석하기 위해서는 바꾸는 것이 좋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쥬스 한 잔을 마시고, 1시간 정도 소요하여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남편은 전철로 수필문학 이사회 참석차 종로로 가고, 나는 리무진으로 귀가하였다. 참으로 뜻깊고 보람된 제주도 탐방이었다. 임선생님께 감사하고, 초면인데도 사랑과 정성으로 보듬어주신 사모님께도 깊은 감사드린다. 언제든지 다시 오라는 훈훈한 말씀을 가슴에 담고 왔으니 우리 부부는 제주가 그리울 때, 임선생님 내외분이 그리울 때, 언제든지 제주도에 다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