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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나라
최 태 호
“엄마아.”
“엄마아, 엄만 옛날 나라에 가봤수?”
“뭐?”
어머니는 부지런히 바늘을 놀리시던 바느질감을 놓으시고 간난이를 바라보십니다. 남폿불이 환히 엄마 얼굴을 비칩니다. 남폿불에 비친 엄마 얼굴은 참 곱
기도 합니다.
“옛날 나라가 뭐냐?”
“아아니 저어, 리터엉 할아버지가 옛날 나라에 가보셨대. 옛날 나라에 엄마도
가보셨지?”
“응, 엣날 나라. 그럼 가보고말고.”
어머니는 시치미를 뚝 떼시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는 리터엉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셨길래 간난이가 그런 말을 하는가 짐작이 되십니다. 그래서,
“간난아, 너도 가보고 싶으냐? 엄마가 구경시켜줄까?”
고 하셨옵니다.
“그럼, 나도 좀 가봤으면.”
이런 기쁠 때가 없읍니다. 리터엉 할아버지만 가보신 줄 알았더니, 엄마도 가보시고 또 간난이도 구경 시켜 주신다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간난아, 색동이불을 깔아줄께 엄마 무릎을 꼭 베
고 눈을 딱 감고 있어 응.”
엄마는 간난이가 제일 좋아하는 색동이불을 깔아주셨읍니다.
“자아, 눈을 꼭 감고 누워 있어, 눈을 감고 있어야 옛날 나라에 간다.”
간난이는 얼씨구나 하고 엄마 무릎을 베고 눈을 꼭 감았읍니다. 이제 곧 옛날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서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그러나 암만 기다려도 눈앞에 옛날 나라가 나타나기는커녕 캄캄하기만 합니다. 엄마는 바느질만 하시는지 부스럭부스럭 옷감 스치는 소리만 납니다.
그러자 간난이는 별안간 궁금하기 시작했읍니다. 옛날 나라에 가려면 걸어가든지 기차를 타든지, 하다못해 말이나 소라도 타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암만 생각해도 드러누워서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간난이는 엄마가 거짓말 하실 것 같지는 않고, 또 눈을 떴다간 나라에는 못 갈 테니 꼼짝도 못합니다. 그래서 간난이는 심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여 속셈으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렇게 세어보기도도 했읍니다.
쉰도 더 세었읍니다. 여든까지도 세었읍니다. 그러는 동안에 간난이는 문득 재미있는 걸 알았읍니다. 셈을 자꾸 세어가는 동안에 제꺽제꺽 하면서 장단을
맞춰주는 게 있지 않겠어요.
기둥시계의 추가 흔들리는 소리로구나 하고 간난이는 생각했읍니다. 조용히 드러누워 있으니까 똑똑히 들려오나봅니다.
자아 이제 속셈으로 세이나가는 것도 제법 재미가 납니다.
제꺽제꺽 소리는 어느덧 째깍째깍으로 변하더니 또 칙폭칙폭 소리로 변합니다. 그런데 소리가 점점 변하는데도 어찌 빨리 되어가는지 따라갈 수가 없읍니다. 나중에는 하나 둘, 하나 둘, 이렇게 셀 수도 없고 숨만 찹니다.
간난이는 문득 눈을 떠버렸읍니다: 이상도 하지요, 간난이는 어느새 오색이 영롱한 담요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지 않겠읍니까. 씽씽씽씽 하는 소리는 구름
을 헤치면서 날아가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야아, 재미 있다. 리터엉 할아버지가 얘 기해주시던 아라비안나이트 같다. ”
간난이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읍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저쪽에는 이쁜이가 커다란 학을 타고 날아오고 있는가 하면, 바위와 돌이가 썰매를 타고 쫓아옵니다. 놀라운 것은 리터엉 할아버지가 썰매 위에서 사슴 고삐를 채찍질을 하면서,
“간난아, 어떻게 옛날 나라 가는 길을 알았니?”
하시는 것이었읍니다.
하늘나라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노랗게 핀 것은 개나리꽃이겠지요. 빨갛게 핀 것은 진달래꽃이겠지요. 그러면 꼭 색 동저고리처럼 알록달록 핀 꽃은 모두
무슨 꽃들일까요?
그러자 리터엉 할아버지가,
“자, 다 왔다. 얘들아, 이 사슴은 말이야, 내가 그 전에 이야기해준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사슴이야. 이 썰매는 산타 할아버지 썰매고.”
하시며 설명 해주십니다. 그러니까 사슴이,
“할아버지, 옛날 나라에 들어가실 때 조심하셔요. 문지기가 웬일인지 할아버지한테 잔뜩 화가 났어요.”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문지기 있는 곳까지 왔읍니다.
문지기라는 건 뜻밖에도 호랑이였읍니다. 호랑이가 기다란 담뱃대를 썩 피워
물고서 짐잖게 앉았다가,
“어흥, 리터엉 할아버지 잘 만났소. 내가 옛날에는 나팔 때문에 혼이 났지만,
인젠 안 속을걸. 오늘은 아무래도 원수를 갚아야겠소.”
이러지 않겠읍니까. 자아 큰일 났읍니다. 간난이는 그만 무서워서 도망을 칠 궁리부터 합니다. 그렇지만 리터엉 할아버지는 끄떡도 안하시고,
“아 바보 호랑이야, 아직도 혼이 덜 났구나, 암말 말고 우리를 들여줘. 더구나 이런 귀여운 손님들이 오셨는데 대접을 잘해야지.”
하시는 것이었읍니다.
“뭐, 나보고 바보라고? 나팔소리 같은 건 이제 무섭지 않아.”
하며, 호랑이가 불쑥 내미는 건 조그만 나팔이었습니다. 아하, 저 나팔 때문에
호랑이 가죽었구나 생각하니까, 간난이는 무서운 중에도 웃음이 나올지경입니다. 그런데 리터엉 할아버지는,
“그까짓 나팔은 바보 같은 네가 무서워하는 게지만, 네 할아버지가 제일 혼난
것을 난 가지고 있어, 자 봐라, 이 곶감을.”
하시며 곶감 한 꼬치를 쑥 내미시니까 여태까지 아주 뻐기고만 있던 호랑이란 놈이 별안간 부르르 떨지 않겠읍니까. 리터엉 할아버지는 참 지혜도 많으십니다.
호랑이흔 담뱃대를 내던지고 발을 싹싹 빌면서,
“아이구 할아버지 살려주셔요. 우리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곶감처럼 무서운
건 없다고 하셨어요.”
하며 쩔쩔 메는 것이었읍니다.
호랑이 문지기를 항복시켜놓고서 리터엉 할아버지는 간난이와 이쁜이와 바위와 돌이를 데리고 문안으로 들어섰읍니다.
거기는 아주 예쁘게 칠한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읍니다. 둥그런 무지개가 놓여 있는 것이었읍니다.
“얘들아 조심 해. 간난아 미끄러질라.”
리터엉 할아버지는 앞장을 서 가시며 가꿈 뒤를 돌아다보십니다. 간난이는 처음엔 좀 무서웠지만, 한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그 무지개가 땡강땡강 하며 소리를 내는 게 재미가 있어서 부지런히 기어올랐읍니다.
그런데 발자국 소리는 땡강땡강 하더니, 빨리 걸으면 걸을수록 땡동 땡동 땡동 소리로 변하고 나중에는 제법 가벼운 음악소리로 들립니다. 금방 춤이라도 추고 싶읍니다. 그걸 벌써 알았는지 이쁜이는 까치걸음을 하머 뛰어갑니다.
그러다가 간난이는 문득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읍니다. 거기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 아가씨들이 음악소리에 맞춰서 대운동회날 언니들이 유회하는 것처럼 댄스를 하고 있읍니다. 그중에 선녀 하나τㅏ 나타났읍니다. 그 선녀가 두둥실 날아다니며 춤추는 아름다움에 간난이는 발길을 멈추고 홀린 듯이 그 선녀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 선녀란 바로 엄마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엄마아〉 하고 반가와 못견디겠다는 것이 그만 무지개에서 미끄러졌지요.
“얘는 그새 잠이 들었나봐, 옛날 나라 구경을 가랬더니·….”
바느질 하시던 어머니가 눈을 반짝 뜬 간난이를 보시고 빙그레 웃으십니다.
간난이는 어머니 무릎을 벤 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남폿불에 비친 엄마는 암만 보아도 옛날 나라에서 본 선녀 같읍니다.
“아니야 엄마아, 난 지금 옛날 나라 구경 갔다온 걸. 엄마아, 엄마가 선녀가 돼서 훨훨 하늘을 날아다니며 춤추는 걸 난 봤어. 별 아가씨들이 꼭 대운동회 때처 럼 유희를 하고…….”
간난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또 여태 깔고 누웠던 색동이불을 보교 깜짝 놀랍니다.
“엄마아, 그리고 무지개다리가 꼭 이 이불 같애.”
하였읍니다.
이 이야기가 이쁜이 귀에 들렸읍니다.
“어쩌면! 간난아, 너 옛날 나라에 가봤다지?”
이쁜이가 부러운 듯이 묻습니다. 돌이도 간난이가 옛날 나라에 가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바위도 들었읍니다.
그러나 바위는,
“가짓부렁이 말아. 네가 무슨 엣날 나라에 가보아. 리터엉 할아버지한테 물어봐야지.”
하고 좀체로 곧이 듣지를 않았읍니다. 돌이도,
“그래그래, 우리 리터엉 할아버지한테 가서 물어보자.”
이래서 아이들은 리터엉 할아버지한테 가서 물어보기로 하였읍니다.
“응, 그래? 간난이가 옛날 나라에 가보았다고?”
리터엉 할아버지는 간난이가 가보았다는 옛날 나라 이야기를 주욱 들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정말 가보았구나. 그때 바로 내가 사슴이 끄는 썰매를 몰고 갔지, 돌이도 바위도 내가 썰매를 태워주지 않았니? 이쁜이는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지. 간난이 엄마 선녀가 춤추는 것도 보았지?”
리터엉 할아버지는 에헴 기침을 한번 크게 하셨옵니다.
“그런데 옛날 나라는 말야. 마음씨가 간난이처럼 곱고 엄마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야 보이는 거야. 바위나 돌이처럼 남의 말을 가짓부렁 이라고 하는 사람은 안 보인단다. 암 그렇고 말고, 눈이 다르면 안 보이지. 하하하.”
자아, 리터엉 할아버지가 같이 가보셨다니까 간난이 어깨가 으쓱 올라갔습니다. 돌이도 바위도 이젠 가짓부렁 이라고 할 수도 없읍니다. 이쁜이는 점점 간난이가 부러위 못견디겠읍니다. 나도 같이 갔다는데 왜 몰랐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옛날 나라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더니 벌써 간난이가 가본 걸 또 하면 뭘 하나? 그럼 이번엔 내가 임금님이 돼봤던 이야기를 해줄까?”
리터 엉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위가,
“아녜요, 할아버지도 옛날 나라 가보신 이야기해주셔요.”
하고 말했읍니다. 그러나 리터엉 할아버지는,
“그건 너희들이 오늘 저녁에 제각기 간난이처럼 가보는 것이 좋아. 오늘밤에 못 가면 내일 밤, 언제든지 너희들은 갈 수 있는 걸 뭐.”
하십 니다. 그러니까 이쁜이는,
“그러셔요. 그럼 오늘밤엔 할아버지가 임금님이 되셨던 이야기해주셔요.”
하고 응석 을 부리며 리터엉 할아버지 무릎을 흔들었읍니다.
“그럼 그러지. 내가 임금님 됐던 이야기를 해주마.”
아이들은 모두들 눈을 반짝이며 리터엉 할아버지 얼굴을 쳐다봅니다. 그러는 아이들 귀는 모두 벌써 쫑긋쫑긋 합니다. 리터엉 할아버지는 다시 기침을 에헴 하시고 이야기를 시작하셨읍니다.
“옛날 나라에 가서 재미나는 구경을 하고 있노라니까, 파랑새가 쪼르륵 날아와서 말이지, 에헴.”
리터엉 할아버지는 눈을 한참 감고 계시다가 빙그레 웃으시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셨읍니다.
“파랑새가 말이다. 〈제가 사는 새나라 구경을 가세요. 저도 마침 고향 생각이 나서 못견디겠어요〉 그러잖겠니?
그래서 〈네가 살던 새 나라는 어떤 곳이냐? 〉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파랑새는 대답 대신에 노래를 부르는구나.
나의 살던 고향은 늘 푸른 동산
맑은 시내 졸졸졸 장단 맞춰서
즐거웁게 정답게 도레미파솔
빗종뱃종 쪼르릉 노래 한다오.
나는 파랑새 노래를 듣고 불현듯이 새나라에 가보고 싶었단다. 언제나 즐겁게 정답게 노래부르는 세상― 그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겠니? 그래서 나는 곧, 〈그래, 네가 살던 고향으로 가보자〉 고 하였다.
한참이나 파랑새를 따라가노라니까, 눈앞에 새파란 숲이 보이겠지. 옳지 저기가 새나라로구나 하고, 어쩐지 나까지 우리 고향에 가는 것 같아서 기뻐 못견디었어.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이냐? 그 숲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파랑새가 자랑하던,
즐겁게 정답게 도레미파솔
빗종뱃종 쪼르릉 노래한다오.,
이런 노래가 아니고,
짹짹 짹짹 애개개 아야아야야
엄마 아빠 살려주, 아이구 죽겠네.
이런 울음소리였단다. 나는 이상해서 파랑새보고, 〈얘 저기가 네 고향 새나라
냐?〉 고 물어봤지. 그러니까 파랑새는, 〈예, 예. 저기가 바로 새나라예요. 새고
향이에요) 이러는구나. 그래서 다시 물어봤지.
〈그러면 왜 즐거운 노래가 안 들리고 술픈 울음소리만 들리니 웬일이냐?〉고 했더니, 파랑새도 〈글쎄요, 저도 지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중입니다〉고 아주 근
심 스러운 얼굴을 하더구나.
그러나 어떻게 하니? 이왕 왔을 바에야 빨리 새나라를 찾아가볼 수밖에. 부지런히 걸어서 숲앞에 다다랐더니, 과연 새파랗게 우거진 동산 그속에서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나오는데, 그 물이 맑은 물이 아니고 벌건 핏빛이야. 아차, 이거 무슨 변이 생겼구나. 모두들 슬피 울고 물빛이 벌건 걸 보니 아마 전쟁이 일어났거나 탈이 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나는 곧 파랑새를 보고 얘, 암만해도 수상하니 조심조심 들어가보자〉 이렇게 주의를 시켰단다. 아니나다를까, 숲속에서 뭣 인지 시커먼 놈이 총알처럼 날와서 파랑새한테 달려들겠지. 그걸 내가 얼른 후려갈겨서 붙잡가지고 보니 박쥐란 놈이야.”
리터엉 할아버지는 지금 막 박쥐라도 잡으시는 것처럼 손을 번쩍 들었다가 주먹을 꼭 쥐십니다. 그 바람에 간난이는 눈을 휘둥그래 떴읍니다. 이쁜이는 고개를 움찔했읍니다. 바위도 돌이도 조금은 놀랐읍니다. 리터엉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주욱 둘러보시고는,
“너희들, 박쥐 알지 ? 왜 저기 쥐처럼 생긴 놈이 여름 저녁때 훨훨 날아다니는 것 있지 않아. 그 박쥐를 내가 꼭 붙잡았단 말이야. 그리고 그 박쥐보고 한바탕 호령을 했지. ‘이놈, 네가 새도 아니면서 뭣하러 새 나라에 날아온단 말이냐?’고 땅땅 을러댔더니 요 박쥐란 놈 좀 봐라.
‘제가 날개가 이렇게 달렸는데 왜 새가 아니야요.’ 하지 않겠니? 그래서 나는 허허 웃고, ‘이놈 새나라에서 살던 파랑새가 있는데 무슨 거짓이냐? ’고 파랑새를 돌아다보았더니, 파랑새가 무서워서 벌별 떨고 있다가 그제야 ‘그런 새는 없어요. 저는 처음 봤어요’ 하는구나.
박쥐는 말이어, 옛날부터 새처럼 날아다니기도 하고, 또 쥐처럼 생겼기도 하기 때문에, 짐승하고 새하고 싸울 때에는 이기는 편에만 따라다니던 놈이란다.
그래서 요새처럼 새와 짐승이 싸우지 않는 때는, 새한테 들키면 새한테 욕을 먹고 짐승한테 들키면 짐승한테 혼이 날 테니까, 어두컴컴한 밤하늘이나 날아다니고, 또 굴속 같은 데만 사는 놈이야. 이 지혜 많은 할아버지가 그까짓 놈한테 속아서야 되겠니? 그래서 나는 박쥐란 놈을 꼭 쥐고 단단히 호령을 했단다. 이놈 똑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재미없다. 정직하게 말해라. 지금 새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 봐!’ 그러니까 아니나다를까 지금 새 나라에는 전쟁이 일어나셔 밤낮 노래나 부르고 정답게 살던 새들이 날마다 자꾸 죽어가서 울고불고 야단이라는 것이었단다. 자아, 그러면 박쥐 이야기나 들어보자.”
리터엉 할아버지는 박쥐처 럼 우는 소리로 말씀하셨읍니다.
“바른대로 말씀드릴 테니 목숨만 살려주세요 네. 사실은 이렇습니다.
저희들은 그전부터 새나라 한구석에 있는 큰 느티나무에 살고 있었답니다. 거기는 썩어서 뚫어진 굴이 많이 있어서 숨어살기 꼭 알맞지요. 그런데 새 나라 새들이 식구가 점점 늘어서 여간 큰 나뭇가지가 아니면 함께 모여서 음악회를 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저희들이 살고 있는 큰 느티나무를 음악회장으로 쓰게 되었답니다. 자, 그러니 저희들은 밤이면 몰래 나가서 새 새끼들을 훔쳐서 잡아먹던 판에 숨어사는 집을 뻬앗기게 되지 않았겠읍니까? 그래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던 판에 좋은 꾀를 하나 내었답니다. 뭐 별다른 꾀가 아니어요. 시꺼먼 몸뚱이에다 봉승아 물을 빨갛게 들여가지고 새들한테 가서 꾀었답니다. ‘여러분, 우리가 더 재미나게 살려면 임금님을 모셔야 됩니다. 보십시오. 어느 나라치고 임금님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읍니까? 우리들이 임금님을 시켜줄 테니 그대신 우리들을 보호해주시오’ 이렇게 꾀었답니다. 부엉이란 놈이 기뻐한 건 물론이지요. 단박에 ‘그래라, 그놈들이 대낮이면 앞 눈을 못 본다고 그렇게 나를 깔보는데 잘됐다. 그럼 네가 어떻게 잘 해봐라.’ 이렇게 해서 저희들은 기운이 나서 새 나라에도 임금님을 세우자고 사방으로 돌아다녀서 기어코 부엉이를 임금님으로 만들었읍니다.
그런데 부엉이란 놈은 임금님이 되자 밤마다 새들을 모아놓고 잡아먹기 시작했답니다. 그 틈에 저희들은 새 새끼를 잡아먹지 않아도 부엉이가 먹다 남은 것만 해도 배가 터질 지경이 됐답니다.
처음에는 새들도 임금님 이니까 잡아먹을 줄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보고 도리어 저희들이 잡아먹는 줄 알고 싫어했지요. 그러니 저희들은 부엉이를 보고 저희를 욕하는 놈부터 잡아먹자고 꾀어서 이제부터는 부엉이 욕도 못하고 저희들 박쥐만 미워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제발 저희들만은 꼭 살려주셔요. 정말 새들을 잡아먹은 건 부엉이예요. 저희들은 얻어먹기만 했어요.”
리터엉 할아버지가 참말로 박쥐나 된 것처럼 우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시는 바람에 바위와 돌이는 킥킥하고 웃었읍니다. 이쁜이와 간난이는 ‘어머나, 저런 나쁜 놈의 박쥐들 봐’ 이렇게 소곤거렸읍니다. 리터엉 할아버지는 다시한번 기침을 에헴 하시고 말씀하셨읍니다.
“자, 새 나라가 이렇게 불행하게 되었다니까 듣고 있던 파랑새까지 엉엉엉 울
지 않겠니. 이걸 어떻게 한담? 나는 있는 지혜를 다 내어보았단다.
우선 박쥐란 놈을 나뭇가지에다 꽁꽁 묶어놓고는 튼튼한 활과 미끈한 화살을 하나 만들었단다. 그리고 나서 파랑새를 보고, ‘네가 용기를 내야지, 네 고향 새나라 새들이 산다. 자아 출발이다.’ 하고는 살금살금 새 나라 숲속으로 기어들어 갔단다.
숲속으로 들어가니까 들리는 건 모두 다 울음소리인데,
이놈들아 말 들어라 부엉.
나는 새 나라의 임금이다 부엉.
내 말을 잘 들어야 부엉
박쥐가 잡아먹지 않는다 부엉.
하고 부엉 이 한 마리가 눈을 껌벅껌벅 하고 앉아서 서투른 노래를 부르고 있구나. 그놈이 어떻게 배부르게 새를 잡아먹었는지 꼭 돼지만해.
나는 가만히 파랑새를 보고, ‘얘, 저 부엉이란 놈은 내가 잡아 없앨 테니 너는 몰래. 박쥐가 사는 느티나무에 가서 탐정을 해가지고 오너라. 앗 참, 그 전에 말야, 고무줄을 있는 대로 모아가지고 와, 그다음에 탐정을 해라. 들키지 않도록해.’ 이렇게 명령을 했지.
파랑새는 한참만에 고무줄을 많이 가지고 왔어, 이쁜이하고 간난이하고 고무줄뛰기하는 그런 고무줄이야. 그리고 파랑새는 탐정을 나갔단다.
인젠 준비는 다 되었어. 그래서 나는 부엉이가 앉은 바로 밑으로 기어가서 활을 힘껏 당겨가지고 탁 쏘았더니 화살은 씽 날아가서 뚱뚱보 부엉이 배때기에
콱 박혔단다.”
조용히 듣고 있던 바위와 돌이가 별안간 손뼉을 쳤읍니다. 이쁜이도 간난이도 쳤읍니다. 한숨까지 후우 쉬었읍니다. 모두들 싱글벙글하고 떠드는 통에 리터엉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계속하지 못하셨옵니다.
“가만히들 있어, 부엉이 한 마리만 잡아서야 되겠니? 정말 전쟁이 이제부터 벌어졌단다. 나는 그걸 벌써 알고 있었어, 박쥐란 놈들이 최후 발악으로 덤벼들 것 아니냐. 그래서 나는 곧 소리를 지르며 말했단다.
새 나라 새들아 모두 모여라.
배불뚝이 부엉 이는 죽어버렸다.
도둑놈들 박쥐를 쫓아버리자.
빨리빨리 모여라 준비를 하자.
아아 그랬더니 별안간 여태까지 울고만 있던 새들이 기운이 나서 빗종빗종 쪼르르 하고 우루루 날아오겠지. 그래서 나는 고무줄을 짤막하게 자른 것을 하나씩 나눠주고는, 여기저기 나뭇가지 갈라진 곳에닥 너희들이 장난하는 고무총처럼 만들라고 해놓고 돌멩이를 입에 물고 잡아당기라고 하였단다. 박쥐가 오면은 쏘아서 떨어뜨릴 작정 이거든. 이때 할아버지 지혜가·…˙.
아니나다를까 조금 있더니 파랑새가 쪼르릉 헐레벌떡 날아오더니, ‘큰일났어요. 박쥐란 놈이 총공격을 해옵니다.’ 하지 않겠니? 그러자 곧 박쥐란 놈이 꼭 중공 오랑캐처럼 떼를 지어 와르르 덤비는데, 시꺼먼 구름장 같아. 그렇지만 무서울 게 뭐냐? 그놈들이 가까이 왔을 때, ‘쏘아라.’ 하고 명령을 했더니 고무총을 잔뜩 잡아당겼던 새들이 한꺼번에 입을 벌리니까 돌멩이 탄환이 씽 씽씽 씽 씽씽 딱딱 딱 딱딱 하고 박쥐들에게 들어맞는데 금방 산더미 같은 박쥐들 시체가 땅에 가득 쌓였단다. 그야 물론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다 쏘아 죽였지.“
“야아 멋 있다.”
이렇게 말한 건 돌이입니다.
“할아버지 만세.”
이렇게 외친 건 바위입니다.
“아이구 어쩌면. ”
이렇게 할한 건 이쁜이하고 간난이입니다.
리터엉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기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새 나라 새들은 다시 새 세상을 맞이했단다. 암 그렇고 말고, 그게 다 할아버지의 지혜가 많았기 때문이야. 그런데 걱정거리는 새 나라 새들이 나를 보고 임금님 이 되어달라고 자꾸 조르는구나. 파랑새까지 나를 붙들고 임금님이 되어달라고 하겠지. 그래서 나는 할 수없이 임금님이 되었단다.
새 나라 임금님은 참말 재미있었어, 낯이나 밤이나 즐거운 음악회가 있고 모두 다 날 보고 임금님 임금님 하니 얼마나 유쾌한 일이냐? 그렇지만 나는 놀고만 있지 않았어. 새둥우리를 새로 만들어주고, 어떻게 하면 새 나라 새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고 지혜를 내었단다.
그러나 나는 다른 이상한 나라 구경을 가야 했기 때문에 얼마 동안만 임금노릇을 하다가 그곳을 떠나기로 했단다. 자꾸만 더 있어달라고 붙들며 섭섭히 여겼지만 할 수 있어야지. 그래서 내 다음 임금님을 큰 느티나무로 정해주었단다.
그 느티나무가 어떻게 새를 잡아먹겠니? 구리고 또 박쥐가 살던 굴은 홀륭한
새짐도 될 테니까……하하하.”
리터엉 할아버지는 한바탕 웃으시고 나서,
“자아 그럼 오늘은 재미나던 이야기 끝이니 하나만 더 해줄까?”
하고 둘러보셨읍니다. 아이들이 기뻐한 것은 물론입니다.
“야아, 리터엉 할아버지 만세.”
돌이는 만세까지 불렀으니까요.
인제는 리터엉 할아버지가 에헴 기침만 하면 그만입니다. 바위도 이쁜이도 간난이도 턱을 쳐들고 기다렸읍니다.
“새 나라를 떠나서 얼마쯤 가노라니까 말이야. 파랑새가 쪼르릉 울면서 팻말을 세운 데에 앉길래 자세히 보니까 거기는,
― 라나 리터엉.
이렇게 써 있지 않겠니? 라나 리터엉이 뭔가? 하고 생각해봤더니 그게 바로 〈엉터리 나라〉를 그렇게 썼더구나. 옳지, 여기나 구경하자고 표한 쪽으로 가보
았지. 엉터리 나라 엉터리 나라, 이름부터 엉터리 아니냐? 아˙마 내가 그 엉터리 나라를 라나 리터엉이라고 쓴 것을 보고 갔기 때문에 리터엉 할아버지라고
부르게 됐는지도 몰라. 하하하하하.
아뭏든 엉터리 나라에 가보니까 참 재미있더라. 안되는 게 없어.
부지런히 걸어가다가 하도 목이 말라서 쩔쩔 매고 있는데 마침 우물을 발견하였단다. 들여다보니까 맑은 물이 충충 괴어 있는데 두레박이 있어야지. 그렇다고 우물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목은 마르고 속온 타고·…·이럴 때 너희들은 어떡하겠니? 뭐, 두레박을 만든다고? 아니야, 그때 마침 엉터리 나라 사람이 성큼성큼 오더니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왜 물을 마시지 않느냐고 그러는구나. 그래서 두레박이 없는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허허 웃고 나서 우물을 그냥 번쩍 들어서 꿀떡꿀떡 마시지 않겠니, 참 기가 막혀서·…·그래서 나도 우물을 번쩍 추켜들고 꿀떡꿀떡 마셔버렸지. 그런데 그게 탈이었어. 실컷 마시고 우물을 놓는다는 것이 잘못되어, 우물이 뜩 부러지며 쓰러져버렸구나. 자, 큰일났지 뭐냐? 별안간에 샘물이 쏟아져서 나는 그만 물에 빠져 둥둥 떠내려가게 되었다.
한참 동안 물을 먹고 나서 정신없이 허덕이다가 문득 바라보니까 눈앞에 바로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겠지. 됐다 인젠 살았다고 그 바위에 기어올라갔단다. 그런데 그놈의 우물에서 얼마나 물이 많이 나는지 암만 기다려도 그치지 않코 그대로 강물이 되어버렸어. 그러니 헤엄쳐 나올 수도 없고 배는 자꾸 고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인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하니 처량하기 짝이 없더라. 그렇지만 사람이란 살게 마련이거든, 꼭 죽었다고 걱정을 하였더니, 내가 올라탄 그 바위가 별안간 꿈틀꿈틀하기 시작하였단 말이야. 글쎄 황소가 들에서 낮잠을 자다가 부시시 일어난 게 아니겠니. 덕분에 나는 황소를 타구 무사히 물을 건너게 됐는데, 그때 나는 배가 고픈 김에 주머니칼을 꺼내어 쇠고기를 실컷 베어먹을 수 있었단다.
참, 쇠고기 먹은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엉터리 나라 사람들이 돼지를 기르는 방법 이 재미나더라. 우리나라 같으면 우릿간을 지어놓고 그 속에다 넣어서 먹이를 주어 기르지만, 그렇지가 않아, 거기서는 말이야. 둥그런 통속에다 넣고서 모가지만 쏙 내놓아요. 그러고는 통 한모퉁이에다 구멍을 하나 뽕 뚫어놓아. 그러면 돼지가 갖다주는 먹이를 실컷 먹고서 살이 포동포동 쩌서 나중에는 돼지고기가 뚫어진 구멍으로 새어나온단다. 그 고기를 칼로 베어먹으면, 베어먹을수록 돼지는 언제나 그만큼 커서 통속에서 살기 마련이거든. 그러니 돼지를 어떤 집에서나 두서너 마리는 다 기르고 있단다.
그러니 갖다팔래야 사는 사람도 없고 욕심을 부려서 많이 기르는 사람도 없
어.” ,
리터엉 할아버지의 엉터리 나라 이야기는 점점 엉뚱한 곳으로 나갑니다.
“엉터리 나라에 가서 참 아슬아슬한 일을 한번 당해봤단다.”
암만 보아도 싫지 않은 리터엉 할아버지, 암만 들어도 재미나는 리터엉 할아버지의 이야기, 이런 때 혹 할아버지 이야기가 그치면 큰일입니다. 바위도 돌이도 이쁜이도 간난이도, 혹 리터엉 할아버지가 ‘얘 오늘 저녁은 그만.’ 하실까봐 조마조마합니다.
할아버지는 곧잘 이렇게 말씀하시곤 그다음에 에헴 기침을 하시지 않으면 그만두시기를 잘하시거든요.
“에헴.”
옳지, 리터엉 할아버지가 기침을 멋지게 하셨읍니다.
“자아, 그럼 그 아슬아슬하던 이야기를 해주지.”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고 쓰윽 아이들을 훑어보셨옵니다. 얼마나 기뻤겠어요. 아이들은 속으로 소리 안 나는 박수를 막 치면서 침을 꿀꺽 삼켰읍니다.
“자아, 아슬아슬한 이야기, 이것도 워낙은 내가 너무 지혜가 많았던 것이 탈이었단 말이야. 글쎄 엉터리 나라에 가보니까, 모두들 저희들이 잘났다고만 자랑들이 아니겠니? 돼지 기르는 법이 근사하다고 칭찬을 해줬더니 그까짓 것쯤 문제없다고 나를 막 깔보는구나. 그래서 내가 한번 엉터리를 부려서 한번 뽐내주었거든.
돼지를 기르지 말고 사냥을 하라고 했지. 그때는 마침 추운 겨울이었어. 산돼지들이 날은 춥고 먹을 것이 없으니까 동네로 떼를 지어서 내려와 가지고는 야단들이로구나. 그걸 보고 내가 생각해낸 것이란다. 먼저 동네사람들을 꽁꽁 얼어붙은 강가로 데리고 가서 꼿꼿하게 금을 그으라고 해놓고는, 그 위에다 감자를 주욱 줄을 지어 놓았단다. 너희들이 조회 때에 ‘앞으로 나란히,’ 한 것보다 더 곧바로 놓았어. 그리고 나서 나는 커다란 총을 하나 가지고 나갔단다. 총알은 단 한방, 그런데 총알 끝에는 기다란 철사를 미리 이억 놓아두었단다, 그때 엉터리 나라 사람들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고 따라 나왔단다.
마침 달은 밝아서 하얀 달빛이 강위에 얼어붙은 얼음판을 비추는데, 얘들아 거기 뭣이 있는지 알아? 산돼지들이 수백 마리, 아니 천 마리도 넘었는지 몰라. 감자를 먹느라고 곧바로 나란히 서 있구나. 나는 옳지 됐다 하고 총을 잘 겨눠서 한방 땅 쏘았단다.
그러자, 쿵 쿵 쿵 쿵 쿵·…·한참 동안 쿵 소리가 나는 대로 산돼지가 총알에 맞아서 쓰러지는구나. 총알 한방에 그 많은 산돼지를 잡았으니 엉터리 나라 사
람들이 얼마나 놀랐겠니? 이건 참 훌륭한 사람이 왔다고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데, 나는 다시한번 뽐냈단다. 여보시오 가만히들 계시오. 이 많은 산돼지를 짊
어지고 가려면 당신들의 힘이 들까봐서 미리 철사로 꿰어놓았으니 끌고 갑시다·…· 이렇게 말하고서 철사끈을 잡아당기니까, 그 많은 산돼지가 한꺼번에 끌려오지 않겠느냐. 그야 몰론 내가 얼마나 지혜가 많은가 보여주려고 한 것이
지만, 내 꾀에는 모두들 야코가 죽었나봐. 혀를 헤헤 들렀으니까·…·.
아이참,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또 내 자랑을 늘어놓았구나 하하하하하.”
리터엉 할아버지는 정말 유쾌한 듯이 웃으셨읍니다.
“아슬아슬한 것은 이제부터야, 에헴.”
그래서 돌이도 바위도 이쁜이도 간난이도 속으로 안심을 하였읍니다. 할아버지는 유쾌하게 웃고 나서는 곧잘 이야기를 그만두시는데 또 에헴 하고 시작하셨으니까요. 안심한 끝에 바위는 박수를 귀청이 뚫어지게 막 쳤답니다.
“글쎄 그 많은 산돼지를 끌고가는데,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까, 멀리 얼음판
위에 돼지 한 마리가 떨어져 있겠지. 아차 웬일인가 하고서 뒤돌아가서 봤더니
그놈의 총알이 마지막 산돼지를 뚫고 나가지 못하고 박혀 있다가 그만 빠져버렸더구나. 에에라 이놈마저 끌고가자고 다리 하나를 꽉 붙잡았더니 그게 탈이었어. 산돼지란 놈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내가 붙잡는 바람에 벌떡 일어나 답려들지 않겠어.
인제 꼭 죽었지 뭐냐? 아이구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막 도망을 치는데 안될 때는 할 수 업거든. 어떻게 잘못해서 얼음이 풍덩 꺼지며 물속으로 텀벙 빠져버렸단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강물은 흘러내리지 않니? 나는 한참 떠내려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늘은, 아차 하늘이 아니라 천장은 매끈매끈한 얼음판인데 이놈을 어떻게 깨뜨릴 수가 있어. 참말 꼭 죽겠더라.”
리터엉 할아버지는 두 손을 들고 허위적 거려 보이십니다.
“그때에 바로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은 차려라 하는 속담이 생각났어. 그래서 죽을 힘을 내가지고 주먹으로 얼음판을 때려봤지. 그렇지만 어디 꿈쩍이나 하더냐? 그런데 더 곤란한 건 말이야, 산돼지란 놈까지 빠져서 나를 쫓아오는 게 아니겠니? 인젠 할 수 없다고 나는 내 턱을 꽉 붙잡고서 내 목을 쑥 뽑아가지고 얼음장을 힘껏 때렸단다. 우지끈 짱, 얼음판이 쫙 갈라지더니 달이 훤히 비치는 하늘이 보이길래 그 구멍으로 기어올라왔지 뭐냐.
뭐? 쑥 뽑은 머리는 어떻게 했느냐고? 그야 도로 붙이면 그만이지. 그러니까 엉터리 나라는 재미있었다고 그러지 않았니? 하하하하하하.”
리터엉 할아버지 웃음소리는 한참 동안 그치지 않았읍니다.
웃음소리가 그치차 할아버지 이야기는 그만 그쳐버리게 되었읍니다. 바위도 돌이도 간난이도 이쁜이도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더 듣지 못한 것은 물론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쁜이가 혼자 중얼거렸읍니다.
“어쩌면 총 한방에 산돼지를 몇백 마리나 잡을까?”
“그야 곧바로 세워놓고서 쏘았으니까 그렇지.”
바위가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이 말했읍니다.
“아무리 그렇게 많이 잡을까?”
이쁜이도 지지 않습니다.
“이 바보야. 막 뚫고 나가는데 몇천 마리는 못 잡아?”
바위는 하도 딱해서 혀까지 찹니다. 그때 돌이가,
“그렇지만 그 많은 산돼지를 어떻게 꿰어가지고 끌고오니?”
하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글쎄, 총알에 철사를 매놓았으니까 한꺼번에 끌려오지 않아.”
바위는 돌이가 우스워 못견디겠읍니다. 그리고는 리터엉 할아버지 지혜가 참
놀랍다고 생 합니 다.
“엉터리야 엉터리. 그런데가 어디 있어. 아무리 급하더라도 어떻게 자기 머리를 뽑아서 얼음을 깬담.”
돌이도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위가 질 까닭이 없읍니다.
“뽑은 머리는 도로 박으면 되지. 않아?”
이때 간난이가 호호 웃으면서,
“뭘 그래, 나는 얘, 우물을 들고 물을 마신다는 것도 이제 생각하니까 좀 우습다.”
하고 웃어제 꼈읍니다.
“이것도 바보야. 그러니까 엉터리 나라 아니냐? 리터엉 할아버지가 뮈 거짓말 하실 줄 아니 ? 나도 리터엉 할아버지처럼 그런 나라나 구경 했으면 좋겠다
“얘.”
바위는 좀체로 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요다음은 꼭 그런 나라 구경융 꼭 가야
겠다고 생각합니 다.
“잘가아.”
“잘가아.”
간난이와 이쁜이가 둘이서 제 집으로 들어가면서 떠들어도 귀에 잘 안들립니다.
하늘에서는 별이 꿈뻑꿈뻑 눈짓들을 합니다. 별들은 할아버지가 가보신 나라들을 잘 아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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