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사람들은 '여행'이라고 하면 '노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여행을 가기전에 '예습'을 하고, 다닐 때에도 무엇인가?
느끼기 위해서 노력하고, 마친 후에도 교훈과 배운 것을 정리해서
꼭 기행문을 남긴다.
여행은 '장소'에 따라서 국내여행이 있고, 해외 여행이 있다.
또한 '운영 형태'에 베낭여행과 패키지 여행으로 분리할 수 있다.
과거 젊었을 때에는 직접 운전을 해서 다니는 여행을 선호했다면,
장시간 운전이 두려워 지는 나이가 되니, 아무래도 패키지 여행을 선호하게 된다.
패키지 여행은 모든 일정과 계획이 고정된 상품을 돈내고 지원한다.
그리고 관광버스, 기사, 가이드가 세팅되어 있는 '여행상품'에 내 몸을 맡긴다.
국내 패키지 여행이라고 다 비슷한 것은 아니다.
'가격 규모'에 따라서 고급이 있고, 싸구려가 있다.
제주도 2박3일 여행도 패키지로 19만원짜리도 있다.
하지만 제주도 2박3일이 50만원짜리도 있기 마련이다.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관광버스 등급, 음식 등급, 숙소 등에서 차이가 확연하다.
전라남도 '목포', 신안, 영광 등을 1박2일로 여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1인당 275,000원이니, 고급 패키지에 해당한다.
관광버스가 '우등'으로 고급이고, 출발부터 복귀까지 최상의 음식이 나온다.
호텔도... 그야말로 최상급이다.
싸구려 여행이 좋으냐? 고급 여행이 좋으냐??
그것을 정확히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것도~ 저것도~ 다 교훈이 있다.
과거... 백두산 여행을 위하여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중국 단동까지
간적이 있다.
저녁8시에 출발해서 아침 8시 도착하니.. 참으로 따분하고
지루하다. 하지만 그래도 교훈은 충분하다.
다시는 이것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싸구려 여행은 .. 식사가 거의 '개별매식'이다.
비싼 것을 사 먹든지~ 굶든지~ 선택의 자유를 준다.
위 사진은 목포 시내와 유달산을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케이블카'이다.
싸구려 여행은 케이블카 사용료를 추가적으로 돈을 내야 한다.
케이블카를 안 타는 사람은 주변 시장이나 다른 곳을 둘러 봐야 한다.
목포시내를 여행하려면 케이블카를 반드시 이용하기를 권한다.
케이블카를 타면, 일단 큰 바다를 건너야 한다.
그리고 '유달산'을 지나간다.
288미터 낮은 유달산을 걸어서 올라가도 괜찮다.
하지만 케이블카로 보면, 목포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목포는 일제강점기 때에 무역항으로 가치가 높았고, 발전했다.
해방 및 전쟁이후에는 중국 등 산업단지와의 무역을 위해서 존재가치가
높았지만, 이제는 목포 도시에 대한 이용가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전라남도 수도 역시 이동했고, 이제는 갈수록 부동산 가치는 낮아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목포' 도시의 85%가 과거에는 바다였고, 간척지 였다는
것이다. 하여간 그래서 그런지.. 도시에 모든 도로는 거의 반듯반듯 하고,
도시 치고는 보고 싶은 편이다.
목포의 상징으로 손 꼽을 수 있는 것은 유달산과 '갓바위'
마치 갓을 쓰고 있는 듯한 바위가 두개 있는데, 암반이 약해서
조금씩 침식하고 있어서 언젠가는 모양이 많이 바뀔듯 싶다.
그리고 목포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삼학도'라는 섬이 있다.
대학도, 중학도, 소학도 등 세개로 분리가 되어 있다.
과거에는 모두 매립해서 없앴다가, 최근에는 다시 뱃길(수로)을 파서
다시 섬 세개를 만들었다.
섬 모양이 학 세마리같이 생겼다고 '삼학도'라고 이름지었다.
삼학도 기슭에는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이난영 씨의 기념공원(묘지)이 잘 조성되어 있다.
작년 여름에도 개인적으로 와 보았는데, 더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겨울에 방문하니 오히려 포근하고 괜찮았다.
마지막으로 목포를 상징할 수 있는 것은 목포에서 배출한 정치인 '김대중'이다.
정치적인 성향에 대해서는 언급할 마음은 없다.
삼학도에는 '김대중 기념관'이 있어서, 수시로 전시 형태를 교체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김대중은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떨어진 '신안군' 하의도에서 1924년에
태어났다. 가난한 소작농 부모님이지만 서당에 보내서 공부를 시켰다.
하의보통학교+(전학가서) 목포북교초교 졸업,1943년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징집을 피하기 위하여 일본인이 운영하는 '목포상선'에 취직했고,
해방후 이 회사 관리인으로 선임되었다.
김대중의 정치의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행당된지 오래 되지 않은 '민주주의 초보국가'다 보니
공정과 상식보다는 폭력과 야비함이 앞섰던 시절이었다.
군부 세력(정치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기를 통과하는 동안.
납치를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구속 수감 심지어 사형선고까지 받는다.
군부정권이 끝난 다음에 문민정부라고 할 수 있는 김영상 그리고 김대중
등이 정권을 이어 받는다.
그러고보면.. 김대중의 최고 라이벌은 김영삼이다.
왜 김영삼은 김대중보다 먼저 대통령이 되었는가??
둘다 야당이고 군부정권에 피해자이며, 공통점도 많다.
모대학 언론학과 교수가 쓴 내용을 인용해서 두 사람을 비교해 보자.
김영삼은 부자집 아들이고, 돈 쓰는 것이 과감하다.
고급지갑 수십개를 미리 사 두었다가,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지갑에 현찰로 100여만원을 넣어서 준비한다.
그리고 기자에게 잘 봐 달라고 지갑 통채로 전한다.
0.1초면 금방 거래가 성립한다.
모든 신문마다 김영삼은 웃는 인상이 나오고,
가급적이면 좋은 내용이 실린다.
반면에 김대중은 가난한 환경속에서 자라났다.
돈 쓰는 것이 아무래도 대범하지 않다.
지갑을 사용하지 않고, 기자를 앞에 세워 놓고 마치 용돈을 주듯이
돈을 세고 있다. 돈 받는데 오래 걸린다.
'기자' 입장에서는 김대중보다 김영삼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신문 메인영상으로 올릴 '자료'는 가급적 인상 쓴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결국.. '이미지 마케팅'에서 김대중은 김영삼에게 밀렸다.
이것은 대학교수가 쓴 책 내용이지만, 본인이 생각해도 어느정도
타당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사진'도 그런데.. 기사 내용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글이란.. 쓰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미세하게 청중을 움직일 수 있다.
하여간.. 잘났든 못났든... 한 나라에 '대통령'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박정희든, 전두환이든, 이명박이든. 박근혜든...
대통령을 한번이라도 했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특히.. 목포 시민들 입장에서는 목포 출신의 대통령이
나왔으니, '김대중'은 목포의 자랑으로 기억하고 싶을 것이다.
한국의 지도에서 좌측 끝에 '목포'가 위치하고 있다면, 목포에서 서해안 방향으로
수많은 섬이 있다.
무안군을 지나서 '신안군'에 수많은 '섬'이 있다.
얼마나 섬이 많으면, 그 섬 갯수가 1004개나 된다.
물론 나무가 한그루도 없는 바위 섬까지 합치면 13개 더 늘어난다.
하지만 섬이 많아봐야 '생산성'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
(그 섬에 살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수 있어야 거주할 것이다.)
그래서 정작 1004개 섬 중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은 20개도 안 된다.
크고 작은 섬 사이에 '다리'를 놓고, 길을 만들어서 연결을 시켜 놓았다.
물론 다리 놓는 것을 거부하는 섬도 있다.
신안군에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신경을 많이 썼다.
즉.. '선도' 안에는 모든 색을 노랑색으로 했고,
'병풍도'안에 들어가면 빨간색으로 ..
그리고 퍼플섬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보라'색이다.
지붕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 색도 보라, 차량 색도 보라..
하여간 칠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색상을 칠해 놓았다.
칠해 달라고 신고만 하면 동사무소에서 달려와서 색을 칠한다.
쓰레기통에 개집까지, 화장실 문짝, 안내판 등등..
참으로 열심히 칠해 놓았다.
하여간 이것이 마케팅에 성공해서 그런지... 입장료 5천원을 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사진 찍는 것이 어려울 정도..
그래도 겨울 오전에는 얼음 때문에 이동이 어렵다보니 사람이
가장 적은 편...
걸어서 3km 정도 가면, 다시 시작점이 나온다.
입구에 있는 마트에는 '기념품 상점'이 있는데, 그 안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은 당연히 '보라색'이다.
사소하게라도 보라색 제품을 구입했다는 영수증을 제시하면
5천원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가게에서 물건을 안 사더라도, 보라색 옷이나 보라색 우산, 보라색 모자를
써도 입장료는 안 받는다.
땅끝마을 섬이다보니 기후가 온후하고, 간척지가 많다보니 농사지을
땅이 풍부하다.
이러한 잇점을 살려서 마늘, 양파, 무우/배추, 무화가 등을 재배한다.
논이 많으니 지푸라기가 많이 생산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소'를 재배하는
풍경(축산)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농민이지만 대부분 부유하게 생활한다고 ~!
이 추운 겨울에도 마늘이 손가락 길이만큼 자라고 있었고,
바로 옆에 무덤이 있는데, 무덤까지 진입로를 인조잔디로 포장해 놓았다.
죽은자를 위하여 포장했을까?
아니면 유족들(산자)을 위하여 포장했을까??
시간 여유가 있다면 신안에 있는 섬들을 구석구석 다니면서
기행문을 쓰겠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서 한계가 있었다.
일단은 '신안'이야기는 이상으로 마감하고, '영광'으로 넘어가 보자.
전남 '영광'은 전국에서 '굴비'로 유명하다.
굴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자린고비'가 생각난다.
자린고비는 수전노,守 (지킬 수), 錢 (돈 전), 奴 (노예 노)=돈을 지키는 노예
노랭이, 스크루우지 등과 비슷한 개념이다.
너무 돈을 아껴서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뜻한다.
'자린고비'와 '굴비'와는 어떤 연관이 있나?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자린고비'는 원래 '절인고비(考妣)'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고비'는 늙은 어미, 아비를 뜻한다.
제사를 지낼 때에 제삿상 위에 '조상의 영정'을 의미하는 '지방'을 써서 붙인다.
제사를 마치고 태워야 하는데, 그것을 두었다가 계속 재사용하다보니
세월이 흘러서 종이가 절여서 상태가 안 좋게 되었다.
그것을 '절인고비'가 되었는데, 그 말이 세월이 흘러서 '자린고비'가 되었다.
하여간 얼마나 지독하게 돈을 안 썼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만약에 이런 사람이라면, 밥 먹을 때 굴비를 공중에 메달아놓고,
구경만 하고 밥만 먹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식당에 가서보니.. 자린고비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1인당 '굴비정식' 가격이 3만원이었다. 와우....~!
뿐만 아니라, 굴비 상점에 가서 보니, 10마리 묶어 놓고,
12만원, 20만원, 심지어 30만원짜리도 있더라.
이렇게 비싸니 무슨 수로 굴비를 사 먹겠는가??
'영광' 읍내를 둘러보면 굴비 저장 시설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전남 영광 지역은 과거 '백제' 땅이고, 바다 포구가 접해 있다.
해외 수출입 및 문화재의 유입이 활발한 곳이다.
백제에 불교는 서기 384년 침류왕 때, 인도에 '마라난타'라는 인도승녀가 중국
동진을 거쳐서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 백제에 전해졌다.
그 도착한 곳이 바로 '영광' 법성포이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절'이 지어져 있다.
고구려 불교: 서기 372년 소수림왕 때..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 들였다.
그래서 고구려 불교 문화는 중국 경향이 강하다.
신라의 불교: 서기 527년에 전해 졌고, 다른 나라들보나 가장 늦었다.
중국, 서역 등의 영향을 받았다.
하여간 그 당시만해도 '기독교'가 없을때이니 불교 종교 개념이 참으로
참신하게 느껴 졌을 것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