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위빠사나 붓다 선원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법구경& 디가니까야 낭독 209사랑
불원 추천 0 조회 14 25.07.01 16:22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5.07.02 13:54

    첫댓글 법사님, 우선 이렇게 법을 전해주심에 큰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불교를 잘 모르지만 예전부터의 의문을 올려봅니다. '사랑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특성같은데 (대승불교의 참나, 또는 티벳불교에서 말하는 참본성의 본질?) 부처님은 그 마저 버리라고 하시는 구나 -- 결국 윤회를 끝내고 열반에 가려면 4성제의 첫번째 진리인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란 것을 통찰해서 삶에 대한 염오가 일어나야 하는 것인가 부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4성제를 우리가 닦아가는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자비는 '논리적으로' 어디에 위치하게 되는지 갸우뚱합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참나 나 본래면목은 부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의 참본성이 사랑이라면, 이를 수행으로 깨닫고 보살도를 실천하면 되겠지만, 초기 불교에 따르면, 존재를 염오하여 윤회를 끝내고 아라한이 되는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자비와 보살도는 '어떤 구조안에서' 설명되는지 의문이 듭니다. 깨우쳤다는 선사님이나 큰스님들, 또는 라마나 마하리쉬 같은 성자는 초기 불교 구조에서 어떻게 설명되나요? 아라한? 벽지불? 초기불교와 대승의 엇박자가 답답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