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시집 나오면 10만부 시인 박준
박준은 '출판계 아이돌'로 불리며 요즘 2030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2012년 발간된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12만5000부, 2017년 낸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16만 부가 팔렸다. 지난해 12월 낸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는 지금까지 5만 부 정도 나갔다. 신동엽 문학상(2013),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17), 편운 문학상(2019), 박재삼 문학상(2019) 등 최근 문학상 네 개를 휩쓸었다.
"일부러 2030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문구를 쓰는 게 아니냐"라고 물으니 "그 정도로 똑똑하지도 못할뿐더러, 그렇게 억지스러운 시는 금세 티가 나기 마련"이라고 답한다. "출판계뿐 아니라 실은 모든 문화산업의 핵심 동력이 2030 여성들입니다. 저로서는 주요 독자층과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어요."
인기 비결을 묻자 나긋한 톤으로 말한다. "평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해요. 시어(詩語)도 조심스럽고 따뜻한 편이에요." 시에서 쓴 경어체가 말투에도 배어 있었다.
시인은 '직장인'이기도 하다. 출판사 '창비'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출판사가 있는 서교동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시인은 와인을 시켰다.
―시인이라면 막걸리에 깡소주를 마실 것 같은데.
"시인 김수영, 박인환, 조병화, 서정주가 명동에서 매일 술잔을 기울이던 때 얘기 아닌가. 전화 없이도 어느 술집에 찾아가면 누구 시인이 상주한다더라 하던 시절. 지금의 시인들은 '생활인'이다. 술을 마시면 오래도록 대화하다 밤늦게 파하는 경우는 있지만 독한 술에 거나하게 취하는 경우는 잘 없다."
―생활인으로서 '출판사 편집자'의 삶은 어떤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회사에 출근하면 책상에 수많은 시집이 쌓여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시집을 기획하는 일이다. '노동'하듯 시집을 읽는다. '덕업일치(좋아하는 대상과 직업이 일치할 때 쓰는 신조어)'의 슬픈 점은 강박이 생겼다는 거다. 좋아하는 일로 시작했지만 강제성이 생겼을 때 반대급부처럼 따라오는 막막함과 지겨움 같은 게 있다. 둘째는 그럼에도 축복이라는 것. 따끈따끈한 신작을 최전선에서 음미할 수 있다는 기쁨이 있다. 끊임없이 감각의 날이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축복이다."
―연달아 문학상을 받았다.
"상은 예상치 못한 결과다. 그래서 그 의외의 행운들에 늘 제대로 대비를 못 하는 것 같다. 첫 시집을 내고 신동엽 문학상을 받았다. 담당자가 8월 말쯤 전화 와서 11월 중순에 시상하는데 상금이 1000만원이라고 하더라. 기뻐서 일단 다이어리를 펼쳤다. 신세 졌던 고마운 분들께 일일이 전화를 걸어 석 달간 저녁 약속을 잡았다. '제가 쏠게요!'라면서 약속을 서른 개쯤 잡았다. 열 번쯤 술을 샀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뿔싸, 상금 1000만원이 남아나질 않겠구나.' 선배 시인들이 '상금 받으면 술값으로 다 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겠더라. 이제는 상을 받으면 한 번에 화끈하게 '쏘고' 약속은 자제한다."
―지금은 여유 있게 얘기하지만, 등단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시 1000편을 투고했다던데.
"시를 오해하고 있던 시절의 일이다. 처음 시를 쓸 때가 스무 살 정도였는데, 스스로 너무 잘 쓴다고 생각했다. '문학의 신(神)이 나한테 왔나?' 오해할 정도로. 하루에 몇 편씩 시를 썼다. 신춘문예에 '명태'라는 이름의 연작을 낸 적이 있는데, '명태', '황태', '동태', '순태', '북어' 이렇게 다섯 편을 묶어서 냈다. 시를 장난처럼 너무 쉽게 봤던 거다. 객관적으로 당선될 수준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나름 왕성하게 쓰고 계속 응모했는데 4년 연속 모든 신춘문예에 낙방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원효대사 해골물' 같은 순간이 오더라. '아, 내가 글을 정말 못 쓰는구나' 싶은. 예전에 쓴 못난 시들을 모아 '화형식'을 했다. 막 울면서. 내 지난 시간을 같이 태워버린다는 심정으로."
―창작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과정인가.
"맞는다. 대부분의 창작자가 처음엔 스스로 굉장히 잘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성숙한 작품들을 내놓는 순간 슬럼프가 찾아온다. '내가 이걸 제일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절망이 찾아오는데 지나고 보면 큰 동력이 된다."
―이제 시 쓰는 게 조심스럽나.
"시 한 편을 퇴고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를테면 이미 완성했고 문학 잡지에 발표했는데 막상 시집으로 묶어 내려니 고민하게 되는 시들이 있다. 그 시를 사흘 밤낮으로 들여다보다 한 글자 고친다. 조사 하나 바꾼 거다. 그러고 나서 한 사흘간 또 그 시를 들여다보다 조사를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끝낸다. 결과적으로 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 사실상 바뀐 거다.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가."
―긴 퇴고 과정이 '시 쓰는 삶' 자체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시집을 발표하고 문학상을 받고 주목도 받으면 삶이 변하는 것 같지만 다시 자정이면 흰 백지 앞에 하나도 바뀌지 않은 상태로 앉는다. 그런 의미에서 길고 지난한 퇴고 과정이 시 쓰는 삶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 쓰는 청교도적인 삶에 낙(樂)이 있다면.
"독주를 좋아한다. 40도 이상의 술. 시 한 편 쓰고 나서 스스로에게 보상처럼 싱글 몰트위스키 한두 잔을 준다."
―시인으로서, 편집자로서 목표가 있다면.
"편집자로서 목표는 있다. 시간에 묻힌 고전들, 20~30년 전 작가들이 혼신을 다해 썼던 작품 중 아까운 게 많다. 옛 작품에 쌓인 먼지를 털고 새 옷을 입혀 내면 어떨까 골몰한다. 시인으로서의 목표는 함부로 세우기 어렵다. 예술가는 문학 작품과 정반대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름답지 않은 삶을 살면서 아름다운 작품을 쓸 수는 없는 거다. 문학은 놀랍게도 속이는 게 불가능하다. 글과 가까운 삶을 살려면 자주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머뭇거리고,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가까스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쓰겠다기보다 어떤 삶을 살겠다는 목표만 갖고 있다."
'미인(美人)'이란 단어가 그의 시에 유독 자주 등장한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같은 시구. "미인이 자칫 '미녀'라는 의미로 오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아름다운 존재'를 통칭하는 것"이라 했다. "2008년 사고를 당해 세상을 뜬 누나와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을 생각할 때 주로 떠오르는 표현이에요." 부재해서 그립고 애틋한 존재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단어란다.
불쑥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를 꺼내더니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펜을 꺼
내 들고 앞날개를 펼친 뒤 시인이 생각에 잠겼다. "'반갑습니다!'라고 쓰면 북한 시인 같겠죠?" 해맑게 웃더니 그의 시 '마음 한철'의 한 대목을 적었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독자를 향한 그의 마음이 담긴 문구라 했다. "오래가는 시인으로 욕심부리기보다 동시대 독자에게 전부를 주는 시인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