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편제 촬영지 주변
사람의 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어 주려 해서 심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닌 걸세. 사람의 한이
라는 건 그런 식으로 누구한테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
서 긴긴 세월 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어떤 사람들한테 외려 사는 것이 한을 쌓
는 일이고 한을 쌓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 되듯이 말이네 …….
―― 이청준, 『서편제』에서
▶ 산행일시 : 2019. 4. 6.(토), 맑음
▶ 산행인원 : 14명(버들, 영희언니, 모닥불, 악수, 한계령, 소백, 수담, 사계, 향상, 제리,
해피, 오모, 무불, 메아리)
▶ 산행시간 : 6시간 43분
▶ 산행거리 : GPS 도상 11.7㎞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0 : 03 - 동서울버스터미널 출발
03 : 02 -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
06 : 09 - 완도항
06 : 30 - 완도항 출항
07 : 27 - 청산도, 산행시작
08 : 11 - 지리, 산속 진입
09 : 57 - 대성산(△345.9m)
10 : 37 - 대봉산(大鳳山, 378.8m)
11 : 13 - 임도, ┫자 갈림길, 왼쪽은 백련암 오르는 길
11 : 24 ~ 11 : 55 - 부흥리, 점심
13 : 09 - 당리 서편제 촬영지
14 : 10 - 청산도항(14 : 30 출항), 산행종료
15 : 20 ~ 17 : 40 - 완도항, 목욕, 저녁
23 : 23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청산도 지도(영진지도, 1/50,000)
2. 산행 고도표
며칠 전부터 이명인 왼쪽 귀가 울렁거리고 무언가 귓속에서 구르는 소리가 들리고 먹먹하고
어지럽기도 했다. 아내는 주말마다 산행하느라고 너무 애를 써서 그러지 않겠느냐며 이석증
의 전조일 수도 있으니 장거리 산행은 자제할 것을 처방한다. 어쨌든 이비인후과에 가서 알
아볼 일이라 동네 의원에 들렀다. 혹시 의사 선생님이 금주나 금족령을 내리지나 않을까 내
심 불안했다.
의사 선생님은 귀에 가느다란 대롱의 카메라를 넣어 촬영하고는 모니터에 올려 귓속상태를
자세히 보여준다. 귀지가 꽉 들어찼다. 아마 이 귀지 때문일 것이라며 진공청소기 같은 흡입
기를 넣어 대청소하였다. 큰 귀지는 귀이개로 들어냈다. 그랬다. 귀지를 없애니 당장 먹먹한
현상 등이 사라지고 개운했다. 청산도 가는 도중에 이 얘기를 하자 수담 님이 내놓은 처방이
귀에 솔깃하다. 동서울터미널 근처에도 있는 귀청소방을 종종 들르시라는.
작년 2월에 보길도에 갔다가 뜻하지 않은 악천후를 만나 애먹었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생
생하다. 4월의 청산도라고 안심하기는 이를 것이라 여차하면 해남 달마산 쪽으로 튀자 하고
간다. 그런데 출발이 꼬인다. 자연 님은 동서울로 오는 중에 친척의 부고를 듣고 그만 발길을
돌려야 했고, 신가이버 님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출근해야 했다. 신가이버 님의 플러스 원
까지 잃는다.
한계령 님을 ‘만남의 광장’에서 태우기로 했다. 우리 버스는 천안논산고속도로를 타야 하니
당연히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였고, 거기 만남의 광장에서 한계령 님을 찾았으나 없다. 한계
령 님은 여느 때처럼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기다릴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곧
바로 전화 걸고, 우리의 생각이 들어맞았다. 이 심야에 택시가 있을 턱이 없고 우리 버스가
그리로 간다.
완도가 멀다. 동서울에서 완도까지 437.28km 거리이다. 밤에는 차창 밖에 보이는 것이 없어
더 멀다. 완도대교 건너 완도에 들어서자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청산도 가는 첫배는 06
시에 있고 그 다음 배는 06시 30분에 출항한다. 우리는 06시 30분 배를 탄다. 완도 오는 길
이 하도 한산하여 이 새벽에 우리만 타고 가는 것이 아닐까 했는데 잘못 생각했다. 완도항에
도착하자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며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서 있다.
괜히 마음이 급해진다. 화장실을 들를 틈도 없이 신분증을 꺼내어 배표 사는 줄에 선다. 청산
도 가는 배는 7,700원(경로우대 6,300원)이고, 청산도에서 완도 오는 배는 7,000원(경로우
대 6,300원)이다. 오후 2시 30분에 청산도에서 나오는 배편까지 왕복을 끊는다. 우리 버스
는 완도항에 두고 간다.
우리가 탄 청산아일랜드호는 선실에 비치된 구명조끼만 526개나 되는 큰 배다. 새벽 바닷바
람이 제법 차다. 1, 2층 선실은 먼저 탄 승객들로 만원이다. 우리는 2층 선실의 화장실 앞 복
도에 간이의자 펴고 둘러앉는다. 입선주(入船酒) 탁주가 없을 수 없다. 그 안주로 해피 님의
아무렇게나 썬 돼지편육과 따뜻한 메밀전병이 아주 제격이다. 아예 아침 요기한다.
3. 고흥 외나로도(?)
4. 완도의 상왕봉과 백운봉(오른쪽)
5. 고흥 외나로도(?)
6. 도로 옆 덤불숲에 핀 복사꽃
7. 지리 가는 길 벚꽃
8. 지리 가는 고갯마루
9. 지리 가는 고갯마루
10. 지리 마을의 벚꽃
11. 지리 마을의 벚꽃
12. 대성산 서릉 오르막, 간혹 하늘 트인 너덜도 지난다
청산도 청산항까지 50분 걸린다. 청산항에 내리자마자 지도 보고 우선 대로를 걷기 시작한
다. 그 많던 사람들은 모조리 당리 서편제 촬영지 쪽으로 가고, 지리로 가는 길은 우리뿐이
다. 한갓진 시골길이다. 집집마다 담장 너머 화단의 수선화, 텃밭의 유채꽃, 길섶에 핀 자운
영, 꽃다지, 장딸기 등이 구경거리다. 양쪽 가로수의 벚나무는 마치 우리가 오기를 여태 기다
렸다는 듯이 이제 막 꽃을 활짝 피웠다. 왕벚나무다.
보이는 곳
마음 닿는 곳마다
올해의 첫 벚꽃
(見る所おもふところやはつ櫻)
가와이 오토쿠니(川井乙州, ?~1720)가 읊은 벚꽃이 이랬을 것. 우리는 이 벚꽃 아래에서 자
리 펴고 입도주(入島酒) 탁주 나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탁주다. 그렇지만 술보다는 벚꽃
에 취한다. 농로 따라 산기슭을 향한다. 그 기슭의 그림 같은 집 앞을 지나자 주인인가 묘령
의 여인이 나와 그리로는 아무 길이 없다며 우리를 걱정해준다.
그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온몸으로 느끼고 알게 된다. 밭두렁 덤불
지나고 잡목 숲을 헤친다. 메아리 대장님이 앞장선다. 상록수림이 울창하여 어두컴컴하다.
밀림 탐험한다. 가시철조망 못지않게 질긴 청미래덩굴은 선창에 복창하여 인계인수한다. 발
밑도 여간 사납지 않다. 너덜이다. 낙엽과 덩굴에 가린 너덜 틈에 빠지기 일쑤다. 잠깐 하늘
이 트인 너덜지대에서는 뒤돌아서 가쁜 숨 돌리며 다도해 감상한다. 바다가 잔잔하여 섬섬이
수반에 조형한 석가산 같다.
더러 동백꽃이 피었다. 늦둥이다. 산벚꽃은 한창이다. 보춘란은 세상이 궁금한 듯이 목을 길
게 빼고 사방을 둘러보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우스우리라. 우리는 강고한 청
미래덩굴 학익진에 갇히고 낮은 포복하여 겨우 빠져나간다. 한 발 한 발을 조심스레 내딛는
다. 뭍의 여간한 준봉에서도 가시덩굴과 잡목, 너덜에 이렇게 시달리지 않았다.
길었던 오르막이 마침내 수그러들고 공터가 나온다. 휴식한다. 입산주 탁주가 약간 늦었다.
아직도 정상은 270m나 남았다. 아득하다. 그 길 역시 한 걸음도 빈틈없는 형극의 길이다. 본
의 아닌 마조히즘적 산행이다. 이번에는 오모 님이 앞장선다. 어쩌면 오늘 산행길이 내내 이
럴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생기고 뒤늦게나마 각오를 새롭게 다질 무렵, 길이 나왔다는 오모
님의 외침이 복음으로 들린다.
소로인 산길과 만나고 곧 △345.9m봉이다. 이 산을 내린 안부의 이정표에 의하면 ‘대성산’이
다. 풀숲과 흙에 묻힌 삼각점을 발굴한다. 좀처럼 보기 힘든 1등 삼각점이다. 청산 11, 1988
복구. 나무 그늘에서 잠시 휴식한 후 청산도의 최고봉인 대봉산을 향한다. 잡목과 가시덩굴
에 생고역을 치렀던 터라 메아리 대장님이 앞으로는 산행계획의 형광선을 무시하고 이런 잘
난 길만 따라가자고 하자 모두 쌍수 들어 환영한다.
13. 보길도와 노화도(?)
14. 보춘란
15. 등로 주변의 현호색
16. 오른쪽은 보적산
17. 보적산
18. 대봉산에서 북동쪽 전망
19. 대봉산 정상에서
20. 보적산, 왼쪽 뒤의 섬은 상도
21. 대봉산 정상의 진달래
22. 보적산
23. 부흥 마을의 느티나무, 저 느티나무 아래에서 점심자리 폈다
전후좌우 조망이 가린 숲속길이지만 울울창창한 상록수림이 낯설고 보니 이국이라도 걷는
양 전혀 심심하지 않고 틈틈이 들여다보는 제비꽃, 돌양지꽃, 현호색 무리가 반갑기 그지없
다. 대성산에서 줄곧 완만하게 1.0km쯤 내려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이 나 있다. 여기서
대봉산은 0.3km 오르막이다. 경주하듯 단숨에 오른다.
대봉산 정상.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우뚝한 둔덕이다. 아마 청산도 제일의 경점일 것. 사방
조망이 훤히 트인다. 남으로는 고도인 상도 뒤로 망망대해가 펼쳐 있고 북으로는 수반의 석
가산 연봉 연릉이 늘어섰다. 이러니 정상주 탁주가 더욱 맛이 날 수밖에. 아무래도 더 이상
붙잡고 있기 어려운 보적산과 매봉산을 놓아준다. 이 길로 부흥리로 내려 점심 먹고 당리 서
편제 촬영지까지 걸어가기도 빠듯하다.
대봉산을 올라온 길로 내린다. 안부 갈림길에서 왼쪽 부흥리로 내린다. 가파르다. 하늘 가린
상록수림을 빠져나와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는 왼쪽 산중턱 백련암(白蓮庵)으로 간다. 임도
는 농로로 이어지고 밀밭 지나 부흥리 마을이다. 집집마다 돌담을 쌓았고 돌담은 송악이 허
물지지 않게 붙들었다. 마을 동구 밖의 높다란 누각 같은 단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거
기가 점심자리로는 더없는 명당이다.
유채밭 농로를 간다. 세상이 온통 노랗다. 이런 들판 길 걷는 것도 봄날 정취다. 농로 벗어나
면 청산도를 순환하는 10번 도로다. 벚꽃길이기도 하다. 벚꽃 구경한다. 고갯마루에서 잠시
휴식하고 산자락 돌아내리면 읍리다. 읍리 고샅길 지나 언덕을 오르면 당리 서편제 촬영지
다. 청산도에 온 사람들은 여기에 다 모여 있다. 소리꾼 유봉과 두 남매 송화, 동호가 구성지
게 진도아리랑을 한 판 노래하던 돌담 농로다.
그때 먼지 살짝 일던 한 줄기 바람이 어찌나 스산하던지. 60년대 그들의 기구한 삶을 회상하
며 잠시 그 길을 서성이다 너른 유채밭이 내려다보이는 주막에 들러 술상을 보아오게 한다.
유자탁주에 안주는 파전과 김치다. 맛이 괜찮다. 그때 술 취한 유봉의 걸음걸이로 데크로드
따라 청산항을 향한다.
부기) 완도항 근처에 있는 대흥탕 목욕탕은 지난주 평창의 목욕탕보다 몇 배는 더 나았다.
요금은 5,000원이고 냉탕, 열탕 샤워기도 썩 양호했다. 저녁은 작년에 들렀던 프로 골퍼 최
경주의 큰아버지 집(?)을 찾느라고 헤매는 사이에 수산센터에서 이미 도미를 잡아버렸다고
하여 가까스로 찾은 그 집을 포기하고 수산센터 2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세팅비가 1인당 7천원이나 한다. 물론 매운탕 포함 가격이다. 멍게, 해삼이 약간 나오고, 삶
은 꼬막이 한 접시 나온다. 꼬막이 별미다. 금방 다 비우고 더 달라고 강청했다. 회는 도미다.
자연산 5kg짜리를 15만원에 샀다. 회에는 전문가로서 일가견이 있는 제리 님, 해피 님, 수담
님, 소백 님 그리고 얼마 전에 통영에 가서 도미회를 먹었다는 메아리 대장님의 눈 지그시 감
은 감정평가에 의하면 비할 데 없는 최상품의 맛이라고 한다. 거기에 향긋한 더덕주를 곁들
이니 단품이지만 화찬이다. 단톡방에 좋은 의견을 올린 상고대 님이 참고하시라고 몇 자 적
었다.
24. 벚꽃, 이제 활짝 피었다
25. 벚꽃다발
26. 고목 맹아에도 벚꽃이 피었다
27. 유채꽃
28. 서편제 촬영지, 저 위 하얀 집은 ‘봄의 왈츠’ 촬영지
29. 서편제 촬영지
30. 서편제 촬영지 주변
31. 유채밭
32. 서편제 촬영지 주변
33. 왼쪽이 대성산, 그 왼쪽 뒤는 대봉산
첫댓글 바쁘게 한바쿠 돌던 생각이 나네요~ 멋진 봄풍경을 만끽 하셨슴다요~
다시보니,,,역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벚꽃과 유채, 수선화,,,그리고 맹감나무의 가시 등..남쪽나라의 봄정취를 만끽한 하루였습니다^^
만발한 유채에, 벛꽃. 그리고 여러가지 꽃들. 봄맞이 산행을 감축드립니다. 사진속의 모습이 다들 꽃이 된 것 같아요.
악수형님 산행기 덕분에,
저도 청산도 봄나들이 잘 다녀왔습니다.
조금 더워 보입니다 ~~~
봄빛이 현란합니다. 청산도를 음미하며 다시 한번 찬찬히 둘러보는 느낌입니다.
잔상이 남는 잔전한. 풍경들이 너무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