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이 깃든 고장. 전북 전주는 고도(古都)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첫 번째 코스로 찾아간 덕진공원. 후백제의 견훤이 911년에 도성 방어를 목적으로 조성했다는 덕진연못이 있는 곳이다. 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자동차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 들어서면 분홍빛 연꽃 향기가 세상을 감쌀 것 같은 분위기다.
전주 고속버스터미널 인근 덕진공원
6만㎡ 덕진연못 속엔 연꽃 향기 가득
조선 후기 동학 지도자 3명 동상도
'관광특구' 한옥마을 입구 경기전
조선 태조 이성계의 흔적 곳곳 남아
널찍한 앞마당엔 젊음의 기운 넘쳐
한옥마을엔 한복 입은 10·20대 가득
전통 문화와 현대 문화의 뜻깊은 만남 무려 6만㎡에 달하는 초대형 연못을 둘러싼 산책로에는 조선 말 동학군을 이끌고 전주 감영을 점령했던 동학 접주 전봉준(중도파)과 김개남(급진파), 손화중(온건파) 등 동학 지도자 3명의 동상이 차례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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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공원에 있는 전봉준 동상. |
조선 말기 부패한 관료사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추진하다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관군에 패배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 평범한 시민들이 쉬어가는 도심 공원에 이처럼 이념적 색채가 강한 인물들의 동상을 건립한 배경은 무엇일까.
무능과 부패로 점철된 봉건 왕조에 저항의 불길을 댕겼던 동학군에 박수를 보냈던 당시 전주지역 민초들의 정서에 공감을 표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로 찾아간 전주한옥마을. 최고 중심가인 교동과 풍남동 일대 목조 건물에 기와를 얹은 한옥 70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통마을이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무렵, 일본 상인들이 도심을 점령하기 시작한 데 반발한 지역 유지들이 조선인 거주지를 만든 것이 그 효시라고 했다.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돼 재산권 침해 논란을 빚으면서 폐허 직전까지 갔다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활기를 되찾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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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마당에서 사진을 찍는 신세대 커플. |
덕진공원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한옥마을 입구에는 조선왕조의 문을 연 이성계의 초상화와 전주 이씨 시조, 이한공 부부의 위패를 모신 경기전이 있다. 경기전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에 한복을 입은 젊은 신세대 커플들이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홍살문, 외삼문 등 이름조차 낯선 문들을 거쳐서 도착한 건물에 붉은 옷을 입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역사 교과서 등에서 자주 보았던 그림이라 별다른 감흥은 없지만 서울 고궁과 비슷한 경기전의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 때 터의 절반 이상을 초등학교 용지로 내어 주고 남은 것이 이 정도 규모라니 놀라울 뿐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방대한 시설을 왜 하필 전주에 지었을까. 아마도 '여진족 관리' 출신인 태조 이성계가 '전주 이씨'라는 혈통을 앞세워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의 궁궐 수준의 사당을 지었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성계의 초상화가 걸린 정전에서 오른쪽 쪽문으로 연결된 마당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가 있다. 목조 계단을 올라 전주사고로 들어가면 "임진왜란 때 몇몇 전주 시민들이 이곳에 있던 왕조실록을 내장산 동굴로 옮겨 보관해 전란을 피했다"는 사연이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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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성당. |
경기전 맞은편에는 전동성당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당한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 정문 앞에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시복기념 해외원조 성금 봉헌의 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1914년에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으로 완공됐다는 본관 건물 앞에는 기념 촬영하는 관광객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경기전과 전동성당 사이에서 시작되는 한옥마을 중심 도로를 걷다 보면 길 양쪽으로 한지, 부채, 도자기, 닥종이 인형 등 전통공예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줄을 서 있다.
그 앞으로 화려한 색감의 한복 차림에 아이스크림과 꼬치를 들고 가는 신세대 커플들의 모습이 싱그럽다. 도심 거리에 웬 한복? 가볍게 던진 질문에 한옥마을 곳곳에 한복 대여소가 있다고 했다.
한옥마을 중심도로가 끝나는 오르막길 오른쪽의 조그만 언덕으로 올라가면 오목대가 있다.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황산벌(현재 남원)에서 왜구를 격퇴한 후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주 이씨 종친들과 축하연을 벌였다는 곳이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간 오목대.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에 가득찬 전통 한옥마을의 보수색채와 외세 배격을 외치며 부패한 조선 왕조에 정면 도전을 선언했던 동학 혁명 주역들을 모셔놓은 도심 공원. 여기에다 우리나라 최초로 가톨릭 순교자가 발생한 자리에 들어선 성당을 랜드마크로 활용하는 관광특구.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면면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고유 문화를 새롭게 창출해가는 모습이 역사와 전통의 고도, 전주의 진면목이 아닐까.
글·사진=정순형 선임기자 junsh@busan.com
여행 팁
■교통편 대중교통;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1577-9956)에서 전주로 가는 고속버스가 오전 7시(토·일요일은 6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0차례씩 운행한다. 3시간 20분 소요. 운임 2만 3천700원(우등고속).
자가용;남해고속도로(진주분기점) →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장수분기점) → 익산포항고속도로. 3시간 20분 소요. 통행료 1만 900원.
■먹거리
돌솥비빔밥(사진)은 전주가 자랑하는 대표 음식이다. 콩나물과 미나리, 애호박 등 신선한 채소 등 30여 가지 재료를 넣고 만든 비빔밥은 영양학적으로 완전 식품에 가깝다. 사골을 우린 물로 지은 밥이 구수한 맛을 더한다. 1만 원. 풍남정 063-285-7782. 정순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