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 하느님의 일
[제1독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그 무렵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9 있는 동굴에 이르러
그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주님께서 11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12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그러자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저는 주 만군의 하느님을 위하여 열정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돌려 다마스쿠스 광야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거든 하자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임금으로 세우고,
16 님시의 손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 므홀라 출신 사팟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열왕기 상권 19,9ㄱ.11-16)
[오늘의 묵상]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예언자의 사명에 충실하였지만,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서슬이 퍼런 권력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당당하게 옳은 소리를 외쳤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은 도망자가 되어 무기력하게 호렙산 동굴에 홀로 서 있을 뿐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주님께서는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 속에도, ‘온 땅을 뒤흔드는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않으시며,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나타나십니다. 세상을 뒤흔드는 바람, 지진, 불은 엘리야 예언자의 역동적인 활동을 상징하는 듯 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역동적인 상황에서 엘리야에게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으셨고, 그 모든 것이 지난 뒤 조용히 침묵 가운데 오셨습니다.
교회가 정의와 평화, 인권, 공동선, 환경, 생명 등의 문제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일 때, 엘리야와 같이 무기력한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목소리를 내어도 세상은 바뀌기는커녕 듣지도 않습니다. 주님의 소리를 외친 대가는 거센 비난과 싸늘한 비웃음, 대중이나 권력의 압박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묻게 됩니다. 교회가 행한 일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가? 그 일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셨는가?
그러한 실망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는 침묵 안에서 조용히 당신 계획을 준비하십니다. 당신의 뜻을 이룰 새로운 임금과 새로운 예언자를 세우시며 구원사를 끌고 가십니다. 이 세상의 정의와 평화가 반드시 내 손으로, 그리고 지금 내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계획을 거두지 않으시고, 그 계획은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하느님의 일을 이어 가는 사람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고, 그들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는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 최정훈 바오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자료: 매일미사(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24.6.14(금) https://missa.cbc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