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24]백거이白居易의 ‘불출문不出門’이라는 시
지난 주에 남원에 사는 막역莫逆한 서예가 친구가 <대한민국서예대전> 공모전에 출품했다며 작품사진을 보내왔다<사진>. 작가의 성품처럼 예서체가 깔끔, 단정하다. 준비할 때 몰입을 하지 못했으니 기대는 하지 말라는 겸사謙謝를 덧붙였다. 잘 쓴 줄은 알겠는데, 한시와 한문에 조예가 없기에 내용을 물었다. 중국 당나라 때의 대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불출문不出門>에서 따온 구절이고, 한시 전문全文은 행서로 병기했다고 했다고 한다. 정확한 뜻을 알고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나의 마음에도 흡족한 시였다.
不出門來又數旬불출문래우수순
將何銷日與誰親장하소일여수친
鶴籠開處見君子학롱개처현군자
書卷展時逢古人서권전시봉고인
自靜其心延壽命자정기심연수명
無求於物長精神무구어물장정신
能行便是眞修道능행변시진수도
何必降魔調伏身하필항마조복신
*항마降魔는 마구니(불교용어 잡생각)의 항복을 받아낸다는 뜻이고,
조복調伏은 마음과 몸을 조화하여 여러 가지 잡생각을 굴복시킨다, 없앤다는 뜻.
나름대로 의역을 해본다.
문밖 출입을 안한지 또 수십일이 되었네.
앞으로도 시간을 어떻게 때우고 누구와 벗을 할까?
새장을 열어 학을 바라보니, 마치 ‘군자’를 대하는 듯하고,
책을 펴고 글을 읽으니 ‘옛사람’을 만나는 듯같네.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 목숨도 늘어나는 것같고
물욕을 멀리 하니, 정신이 따라 깊어지는 듯하네.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진짜 도 닦는 게 아닐까?
몸을 부려(괴롭혀) 마구니(잡생각)를 구태여 굴복시킬 필요가 어디 있을까?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한자성구成句 ‘일일청한一日淸閑 일일선一日仙’(하루내내 마음을 깨끗하고 한가롭게 가지만 그 하루는 신선과 같다)과 뜻이 일맥상통한 것같아 좋았다. 한문을 잘 아는 친구에게 날마다(每日) 그런 마음으로 살면 ‘매일신선每日神仙이지 않겠냐’고 했더니, 매일선每日仙은 일일선日日仙이 한문어법에 맞는 것같다는 말을 들은 게 기억났다. 그렇다. 내가 지향하는 ‘익어가는 나이’ 노년老年의 삶은 자족自足과 자정自靜의 ‘일일선’이건만, 그게 어디 말이나 글처럼 쉽게 될 일인가 말이다. 하여, 졸필이지만, 서예가 친구의 글을 흉내도 내보았다. 흐흐.
아무튼, 백거이는 중국의 성당盛唐시대 ‘이두한백李杜韓白’ <이태백(701-762)-두보(712-770)-한유(한퇴지, 768-824)-백거이(백낙천, 772-846>으로 불리는 대시인으로, 3700여편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듣는 ‘장한가長恨歌’를 지었으며,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의 ‘권학문勸學文’으로 유명하다. ‘비익조比翼鳥 연리지連理枝’라는 재미난 시구詩句도 그의 장한가라는 장시에 나오는데, 비익조는 눈과 날개가 하나씩인 새가 어찌 홀로 날 수 있겠는가? 반드시 암수가 붙어야 날 수 있을 터이고, 다른 나무가 각각 자라다 옆나무 가지와 엉켜 아예 한 나무의 가지가 된 것을 연리지라고 하지 않던가. 따라서 ‘비익연리’는 예로부터 한 쌍의 사랑하는 부부를 일컫는 말로 쓰였다. 백년해로百年偕老보다 더 멋진 최고의 덕담이지 않은가.
수십 년 전 중국 낙양의 운대산과 용문석굴 관광 중, 인근에 있던 백거이의 묘 주변에 한국 수원백씨종중이 세운 기념비를 본 것도 생각났다. 백낙천의 <권학문>은 오늘날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어디 자식들 교육이 부모의 마음대로 되는가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그나저나 한번은 읽어보자. 책 읽어라, 공부해라 잔소리가 무슨 소용인가. ‘손바닥 전화’ 속에 세상 사는 모든 지식과 이치와 방법들이 다 들어있는 것을.
有田不耕倉廩虛(하고) 유전불경창름허
有書不敎子孫愚(라) 유서불교자손우
倉廩虛兮歲月乏(하고) 창름허혜세월핍
子孫愚兮禮儀疎(라) 자손우혜예의소
若惟不耕與不敎(는) 약유불경여불교
是乃父兄之過歟(인저) 시내부형지과여
*창름倉廩은 창고이고, 핍乏은 궁핍하다는 뜻이다. 약若은 만약, 與여는 –와, 내乃는 곧, 지之는 –의. 과過는 허물. 여歟는 그렇다는 의미이다.
밭을 갈지(갈 경耕) 않으면 곳간(창름倉廩)은 비게 되고
글을 가르치지 않으면 총생(자손)들은 어리석게 마련이다.
곳간이 비고 세월은 갈수록 가난해지니,
자손이 어리석을 뿐 아니라 예의 또한 소홀해지네.
만약에 밭도 갈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으면,
이거야말로 학부모의 허물인 것을.
첫댓글
좋은 결과를 기원합니다!
*
어머니 <최영록>
그냥
한번
불러봤어요
대한민국서도대전 특선으로 입선했다는 반가운 소식임다.
실력과 내공을 인정받은 값진 열매입니다.
축하해 주세요.
축하할 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