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루소의 말 속에는 문화에 대한 실망감과 두려움이 배어 있다.물론 루소 이전에도,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연인이 되고자 했으나 결국은 문화인으로서 삶을 마쳤다.
그런 점에서 문화는 자연과 대립된다.자연은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세계다.인간들은 이런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화를 만들어냈다.인간사회가 오로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에 의해 유지되는 순간 우리는 모두 동물이 되는 것이다.문화는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짓는 요건이며,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리다.
우리 사회에서도 문화가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이것은 중요한 사실이다.자신이나 어떤 특정집단의 행동을 개별적인 것으로 생각하기보다 문화의 한 속성으로 다룰 때 문제해결에 대한 공동의 노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관습 탄생·유지엔 이유가
평소에 쇠고기를 귀한 음식으로 여기는 우리가 암소를 숭배하는 힌두교도와 만나 논쟁을 벌인다고 해보자.우리는 끝까지 ‘왜?’라고 질문할 것이고,그들은 끝까지 신의 뜻임을 강조할 것이다.아마 오랫동안 타협점을 찾지 못할 것이다.우리나라를 첫 방문한 외국인이 추석 귀향인파를 보고 우리를 비합리적인 민족이라 한다면 우리도 선뜻 수긍할 수 있을까.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1차적으로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생긴다.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으나 모든 인간에게 공통점이 있듯 문화에도 형성원리가 존재하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마빈 해리스는 우리에게 문화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해준다.문화 형성의 기본적 원리는 같은데,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문화 형성의 기본적 원리
우리가 평소 미개한 사람들이나 행하는 의식 관습쯤으로 치부해왔던 문화들이 그 나름대로의 효용성을 바탕으로 진행돼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커다랗고 살찐 암소 옆에서 굶어죽어가는 인도인이 찍힌 사진을 본다면 한심한 생각과 더불어 일종의 신비감을 느끼게 된다.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종교적 신념체계에 의해서라기보다 경제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수긍이 간다.가뭄이 잦은 인도에서 소까지 전부 잡아먹고 나면 가뭄이 끝나더라도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때문에 종교적 계율로 금지한 것이었다.그리하여 최후의 생활터전을 확보해두는 것이다.한번 굳어진 종교적 신념은 관습이 되어 남는다.후대 사람들은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아주 기이하게 보이는 신앙이나 관행들이라 하더라도 어떤 근거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유대인들이나 회교도들이 돼지고기를 금하는 이유중 하나는 더운 중동지방에서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돼지를 대규모로 사육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갈등을 없애고자 돼지고기 자체를 금기시한 것이라고 본다.
15세기부터 17세기 사이 유럽에서 50만명 이상이 마녀로 몰려 죽어간 일은 도대체 왜 일어났는가.교회는 부패하고 신교운동으로 교황의 절대적 권위가 도전을 받기 시작하자 때마침 불기 시작한 마법신앙을 빌미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대대적인 마녀사냥을 단행한 것이다.이러한 설명은 문화라는 것이 그 표면적 이행방식은 다르지만 원시사회로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그 기본적 원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래의 문화, 문화의 미래
문화를 경제학적 생태학적 관점과 지배피지배에 의한 불평등 구조를 통해 설명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결혼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오늘날의 문화나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굳건해보이는 묘지문화,점성술이나 무속과 같은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모돼 갈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이해할 수 없는 문화란 없으며,미개하거나 우월한 문화라고 구분짓는 것은 정복자들의 논리일 뿐이다.우리 모두가 평화롭고 서로 사랑하고 관대하고 경쟁하지 않는 생활양식을 택하는 방식으로 노력해 왔다면 우리는 반문화운동보다 훨씬 더 나은 무엇인가를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마빈 해리스의 결론은 우리가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명시적으로 나타내준다.